Ⓒ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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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정리해도 짐이 줄어들지 않는다. 좁은 집안에선 수많은 가재기들과 얽힌 추억이 쏟아져 나온다. 부모님께서는 쫓기듯 사글세와 단칸방을 옮겨가며 자식 셋인 것이 죄인 것 마냥 고개를 연신 숙여가며 방을 구하러 다니셨다. 그러다 내 나이 예닐곱쯤 마지막으로 둥지를 틀고 삼십여 년이 넘게 한자리에서 지내오셨다. 그렇게 힘겹게 얻은 높은 언덕 위의 집을 주변이 변해도 옮기지 않은 것은 이사의 고단함을 수십 년이 흘러도 잊히지 않으신 듯했다. 재개발로 더 이상 버틸 수 없었을 때 결국 마지못해 짐을 정리하셨다. 정리하던 짐 사이에서 감실감실 두꺼운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한참을 잊고 지내다 꺼내진 추억은 사진 속 그 시간으로 기억을 돌려놓는다.

가난함을 벗어나려고 부모님은 일터를 찾아 나서야 하다 보니 학교를 보낼 나이의 오빠와 언니도 문제였지만, 일곱 살의 나를 유치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고 하루 종일 홀로 둘 수 없어 나에게 단짝 친구를 만들어주셨다. 바랜 사진 속 가족 나들이에서 곱게 흰 한복에 쪽진 머리를 하고 인상 가득 찌푸린 나이 많은 할머니가 나의 보호자이자 단짝 친구였다.

동네 언니오빠들이 학교에서 올 때까지는 나와 할머니 단 둘뿐이었다. 어린 나이에 집에 있기 싫어서 살림 도와주려는 할머니의 손을 끌고 나가자 떼도 많이 써댔다.

“한데 갈래? 우리 아가 한데 가고 싶어?”

할머니의 한데가 어디인 줄 모르고 그저 신이 나기만 했다. 할머니는 집근처는 개발을 해대느라 민둥산이 되어버린 누런 돌산을 하얀 고무신을 신고 같이 올라주었다. 아주 낮은 민둥산을 오르다보면 까마죽이나 산딸기들이 모여 있는데 할머니는 몇 알 따다 쓱쓱 치마 깃에 문지르곤 나의 입으로 넣어주었다. 달콤하고 쌉쌀함이 여느 과자 부럽지 않았다.

돌산 너머 아스팔트가 깔리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시간이 멈춘 듯한 시골 같은 마을이었다. 지금에야 그린벨트 지역이라 개발이 안 된 것이라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할머니와 나의 나들이의 최고의 놀이 장소였다.

작은 개울에 흐르는 물가에는 개구리도 뛰어놀고 작은 송사리 떼도 많았다. 물가에서 첨벙첨벙 발 담그고 노는 동안 할머니는 지천에 깔린 봄나물을 골라 담았다. 그렇게 담아 온 봄나물은 저녁 반찬으로 한몫을 해냈다. 가을이면 할머니와 산에 올라 예쁜 솔방울을 주어다가 깨끗이 씻어 말렸다. 겨울이 오면 아이들 감기 걸린다며 머리맡에 서너 알씩 두면 신기하게도 며칠 뒤면 솔방울이 활짝 펼쳐진다. 그렇게 추운 겨울 목감기 한번 걸리지 않고 손주들을 동장군으로부터 지켜주었다.

내가 글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우리 집에는 까막눈이 두 명이었다. 할머니와 나는 한글을 같이 배웠다. 학교에서 배운 기역, 니은, 디귿을 같이 쓰고 더디게 배우는 할머니를 선생님 흉내 내며 야멸차게 대했고 서운함에 삐지시기도 했지만 할머니의 읽기 실력은 더듬더듬 늘어났다.

어느 날 할머니의 손을 잡고 글씨공부 삼아 간판을 읽느라 건물이 늘어서 있는 번화가까지 나와 버렸다. 무더위에 나이 차이 많이 나는 두 친구는 돌계단 아래 앉았다. 재미 들려 읽다보니 먼 거리를 온 줄 모르고 늙은 몸과 어린 작은 몸으로 걷다보니 몸에 무리였나 보다. 우연히 그곳에서 할아버지가 아주 곱고 화려한 양산을 쓴 아주머니와 함께 걷는 것을 보고 말았다. 외면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할머니가 이상했다. 할머니가 막을 사이도 없이 철없는 나는 할아버지를 보고 달려 반갑게 인사를 했다. 나를 발견한 할아버지는 두리번거리며 곁을 보더니 곧 계단에서 일어서는 할머니를 찾아냈다. 할아버지는 나를 제치고 성큼성큼 할머니 앞으로 걸어가 그 큰 손으로 얼굴을 후려쳤다. 일어서다가 다시 주저앉은 할머니를 보고 놀라 그 자리에서 멈췄고 할아버지는 나를 한번 바라보곤 그 아주머니 어깨를 잡고 돌아서 가버리셨다. 내가 맞은 것마냥 울며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눈물 하나 흘리지 않고 할머니는 말없이 천천히 계단 옆 화단을 쓱쓱 손으로 훑더니 누군가 버리고 간 꽁초 담배 하나를 찾았다. 그리곤 늘 주머니에 있던 일회용 라이터를 꺼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난 놀라서 몇몇 바라보던 행인들도 다 사라지고 할머니의 작은 담배가 다 꺼져 마음 속 응어리를 뿜어낼 때까지 옆에 서서 많이 울었더랬다.

할머니는 배운다는 즐거움을 조금 아실 무렵 할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셨다. 내 손을 잡고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엘 가면 물침대를 터트릴 정도의 커다란 할아버지의 몸을 욕창이라도 날까 이리저리 돌려가며 할머니는 있는 힘을 다해 닦아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온갖 정 떼려는 야속한 할아버지를 홀로 다 받아 내셨다.

그렇게 두 해쯤 할아버지가 앓고 떠나시니 할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딱 한 달 만에 할아버지 곁으로 가셨다. 병명도 없었고 어떤 약도 드시지 못했다. 허무하게 할머니는 그렇게 사라지셨다.

정리가 늦다는 엄마의 타박에 할머니의 치마 속에서 나는 돌아왔다. 내 옆으로 다가온 엄마는 할머니의 사진을 발견하시곤 짧은 한숨을 쉬었다. 짐 정리하던 손을 멈춘 엄마는 옆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엄마에게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시어머니였겠지만 안타까움의 한숨이 새어나오는 듯했다.

오래되고 낡은 사진을 접착식 사진첩에서 떼어내었다. 기념으로 핸드폰에 사진 찍어 남겨두려 한다. 사진이 쩍 떨어지며 그 밑에 작은 종이가 같이 떨어져 나왔다. 오래되고 빛바랜 누런 종이에는 삐뚤빼뚤 ‘배분순’이라 적혀있었다. 가만히 보다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배분순이 누구야?”

“너 하무니자나...”

“할머니는 할머니지, 하무니는 뭐야?”

“에고. 기억이 안 나는구나. 넌 할머니 발음이 안 되어서 하무니라 부르며 참 많이 따라다녔더랬지.”

엄마의 기억속의 하무니가 나왔다. 엄마에게 들은 하무니는 내가 아는 까막눈이 아니었다. 하무니는 시집오기 전 가난한 훈장 집 딸이었다. 집안 형편에 가난하지만 이름만 있는 양반집으로 시집을 갔다. 돈벌어보겠다고 일본으로 떠난 남편을 찾아 무작정 따라 일본으로 향했다. 바닥 일을 하면서 아이를 둘을 더 낳으시고 타국살이의 서러움을 잊으려 한국으로 돌아오니 원치 않던 전쟁에 휘몰리게 되었다. 한글을 아는 여자라 의용대에 선출되어 본인의 삶을, 딸려 있는 가족의 삶을 살려내셨다고 한다. 전쟁 중 아이 하나를 더 낳아 다섯 형제를 키우시고 다 출가시켰다. 하지만 남편의 주사와 폭력으로 자식들은 부모님을 갈라 모시게 되었고 할머니는 그렇게 나의 하무니가 되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내 친구가 되어 주려고 우리 집으로 올 때 혼자가 아닌 치매라는 불청객이 함께 왔고 띄엄띄엄 오던 치매로 주변 가족들은 힘들게 했지만 어린 손녀만은 그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와 있을 때에는 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셨는지 치매증상이 나오지 않았다 한다.

할머니는 나와 한글을 배우실 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다시 기억해 잊지 않으려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한글을 배우고 어린 손주에게 꾸지람도 들었지만 그렇게 좋아하셨단다. 먹고 사느라 바쁜 자식들에게 치매가 찾아온 할머니의 보호자는 겨우 다섯 살 넘은 나였을는지 모르겠다.

나의 단짝 할머니의 이름도 모른 채 살아왔다. 그렇게 친한 내 친구이자 서로의 보호자였는데 이름조차 몰랐다. 손가락으로 사진 위에 허공에 글씨를 써본다. 내 친구 배분순.

 


당선소감

김인주 (수필 부문)

인천광역시교육청 교육감소속 근로자 행정실무원(현근무지:인천완정초등학교)
제9회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장려상(제목: 무뚝뚝한 손)
2017 장애인 고용 인식개선 콘테스트 은상(제목: 큰나무 벤치)
2018년 전국 시각장애인 시·수필 공모전 장려상(제목: 마주보기)
제13회 마음으로 보는 세상 글 공모전 대상(제목: 열우물 버들아래)

 

 

평생 간직하고만 있을 줄 알았던 꿈이 갑작스럽게 현실이 되어 기쁨과 설렘을 주체할 수 없다. 나에겐 글을 쓴다는 것은 마치 처음 간 낯선 산길을 걷는 기분이다. 생각지도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쉬어가라 유혹하는 시냇가도 있어서 그대로 멈추고도 싶었지만 나의 글이 어느 사람에겐 마음을 흔들어준다는 말에 힘을 얻고 용기 내어 한걸음씩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산중턱에서 다시 숨을 고르고 산 아래에서 첫발을 떼며 설레던 마음으로 천천히 오르려한다. 글을 쓰기 위해 마음을 담아 자판을 두드리듯이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며 조금씩 앞을 향해 걷고 싶다. 냇가에는 냇물냄새가, 숲속 큰 나무에서는 나무냄새가 나듯 작가의 글에서도 각자 특유의 향기가 배어있다. 나의 글에서 따스한 향기가 가득 배어나길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다 해보려한다.

길고 긴 등반길에 만난 생각지 못한 특별한 나무 그루터기처럼 잠시 숨 고르고 앞으로 나설 수 있게 도와주신 ㈜투데이신문사, (사)한국사보협회, (사)한국문인협회소설분과와 한국문화콘텐츠21 관계자님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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