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축출 후에 최대주주가 회사 이익 독식 의혹
가치평가서 제출‧자진상폐 시도기간 제한 등 도입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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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자진상장폐지가 소액주주를 축출해 최대주주의 배만 불리는 제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에 따라 정치권은 소액주주 피해를 막기 위한 방안을 내놨지만 시민사회에서는 여전히 미진하다는 지적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치권은 자진상장폐지가 악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고심 중이다. 기업들이 상장프리미엄보다 유효한 이익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자진상장폐지를 악용한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들은 자진상장폐지를 통해 소액주주를 축출하고 대주주의 배당을 강화하거나, 이목을 피해 구조조정‧인수합병‧고용승계 등을 진행하려 한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이 과정에서 상당한 재산피해를 입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자진상장폐지 기업의 소수주주 주요 피해사례 ⓒ금융소비자원
자진상장폐지 기업의 소수주주 주요 피해사례 ⓒ금융소비자원

소액주주 반발에도 자진상장폐지 시도 이어져 
싼값에 주식 매수한 후 최대주주에게 고배당 

실제로 몇몇 기업들은 싼값에 주식을 매수한 후 고액을 배당해, 수년간 쌓아온 이익을 최대주주가 독식했다는 의혹을 낳았다.

지난 2016년 5월 자진상장폐지한 경남에너지가 대표적이다. 금융소비자원에 따르면 이 회사는 상장폐지 후 2017년 10월 소액주주를 축출하고 그해 결산 배당으로 395억원을 책정했다. 기존 배당성향은 10~20%에 불과했지만 소액주주 축출 후에는 136%로 최대 13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설명이다. 

같은 해 상장폐지를 결정한 태림페이퍼에 대해서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태림페이퍼는 상장폐지 당시 주식 매수가가 3600원에 불과했지만 2018년 3분기 대주주에게 주당 4311원을 배당했다. 이에따라 이 회사의 대주주가 상장폐지 후 2년간 투자원금의 120%를 회수했으며, 소액주주들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면 주당 최대 2만원까지 이익을 얻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밖에 차량용 배터리 제조회사 아트라스BX의 자진상장폐지 움직임에도 시선이 쏠린다. 아트라스BX는 소액주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수차례 자진상장폐지를 시도해왔다. 

아트라스BX는 한국타이어의 지주회사인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31.1%의 지분을 보유한 곳이다. 업계에서는 아트라스BX의 상장폐지 이후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가 높은 배당성향으로 이익을 얻어가려한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아트라스BX는 지난 2016년 공개매수로 자사주를 늘려가며 자진상장폐지 요건인 95%의 지분을 확보하려 했지만 89.5%에 그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소액주주 권익 보호 위한 상법 개정안 발의
지배주주 요건 강화해 자진상폐 제한 추진

이 같은 사례가 반복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지난달 26일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종걸, 심상정 의원 등이 참여한 이번 개정안은 지배주주의 인정요건을 강화해 자진상장폐지를 어렵게 하고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기업이 자진상장폐지를 하기 위해서는 최대주주의 주식비율이 95%에 달해야 하는데 이 지분비율에 자사주가 포함돼 있어 논란이 됐다. 이 경우 최대주주가 자진상장폐지를 위해 회사 자금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주주공동재산인 자사주를 지배주주의 주식에 포함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이에 따라 이번 개정안에는 최대주주가 자진상장폐지를 진행할 경우 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95% 이상을 자기 명의로 보유하도록 제한하는 내용을 담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배주주 요건 충족을 위해 최대주주가 자사주를 제외하고 자기 명의로 95% 지분을 확보해야하는 부담이 더해진 만큼 자의적인 자진상장폐지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 개정만으로는 소액주주 피해 막을 수 없어
금융당국, 개별 항목 개선 추진...땜질 처방 우려

하지만 ‘95%룰’ 개정만으로는 자진상장폐지에 따른 소액주주들의 피해를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대주주가 직접 자사주를 매입해 자진상장폐지를 진행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고, 이미 자사주 없이 상당한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게 유지해 소액주주들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자진상장폐지 시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회계법인을 통해 가치평가서 제출을 의무화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자진상장폐지의 시점을 결정할 권한이 대주주 및 경영진에게 있는 만큼, 시장가격이 실제 가치에 비해 현저히 낮을 때 소액주주를 축출할 가능성을 방지하자는 취지다. 

자진상장폐지 시도 기간을 1~2년으로 제한해야한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일부 기업이 자진상장폐지 당시에는 급박한 경영환경 대응을 위해 자사주를 매입한다고 해명을 내놓은 후, 수년이 지난도 상장폐지를 시도하며 헐값에 소액주주들을 축출하려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금소원 관계자는 “지배주주 요건에 자사주를 제외하는 것은 한 단계 나아간 것이기는 하지만 전체를 보지 않고 개별적인 항목만 개선하려는 것이 여전히 아쉽다”며 “금융당국이나 한국거래소도 이런 문제들을 잘 알고 있을 텐데 조각조각 땜질 처방만 하는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이어 “회사 상장 시에는 가치평가기관과 시장참여자들에 의해 최종 공모가액이 확정되는 반면 자진상장폐지 시에는 오로지 대주주 및 이사회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고 있다”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증선위가 지정한 회계법인의 공정한 회사가치 평가자료를 공시해야 한다. 소액주주는 회사가 제시한 가격에만 의존하지 않고 외부 평가기관의 평가자료를 바탕으로 투자결정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수년간 지속된 자진상장폐지 시도로 주주들은 유동성 부족으로 불편을 감수하고, 국내기관투자자들은 유동성 부족의 이유로 투자를 꺼리게 되면서 가치대비 현저히 저평가를 받고 있다”라며 “자진상장폐지 시도기간을 1~2년으로 제한해 소액주주 보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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