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제 개혁안 잠정 합의에 물꼬 튼 패스트트랙 4당 공조
자유한국당의 반발과 바른미래당 내 내홍에 적신호 켜져
바른미래당의 공수처법 당론 반영 요구…반영의 여지는?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사실상 무산될 가능성 높아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과 정개특위 여야 3당 간사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선거제 개편안 관련 최종 논의를 위해 만났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성식 간사, 심상정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민주평화당 천정배 간사 ⓒ뉴시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과 정개특위 여야 3당 간사들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선거제 개편안 관련 최종 논의를 위해 만났다. 왼쪽부터 바른미래당 김성식 간사, 심상정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김종민, 민주평화당 천정배 간사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여야 4당이 추진하는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 개혁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안 등 개혁입법의 패스트트랙(신속지정안건) 지정이 암초에 걸렸다.

자유한국당은 여야 4당의 선거제 개혁안 잠정 합의에 대해 ‘입법쿠데타’, ‘권력야합’, ‘좌파장기집권플랜’ 등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고, 선거제 개혁안에 잠정 합의한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고 있다.

이후 바른미래당이 공수처안과 검경수사권조정안에 자당의 안을 반영하지 않을 시, 패스트트랙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선거제 개혁 잠정 합의한 여야 4당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지난 15일 선거제 개혁 단일안에 대한 큰 틀에서의 합의안을 도출하고, 17일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혁안 초안을 마련하는 등 선거제 개혁에 잠정합의했다.

여야 4당은 이후 선거제 개혁안과 함께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 등 개혁법안도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대해 합의를 추진하고 있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은 해당 법안의 소관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재적위원 5분의 3이 찬성할 경우 지정할 수 있으며, 이후 상임위에서 18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90일, 본회의에서 60일 이내에 심사를 마치지 않을 경우 자동 상정되는 제도다. 즉, 상임위와 법사위에서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법안이라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면 최장 330일 후에는 본회의에서 표결이 가능하다.

때문에 선거제 개혁으로 의석수 손해를 보는 민주당도 이번 패스트트랙을 통해 공수처법과 검경 수사권조정 등 개혁입법 처리를 마무리하길 바라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에 잠정 합의하면서 패스트트랙 추진은 속도를 낼 것으로 보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의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던 중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의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듣던 중 퇴장하고 있다. ⓒ뉴시스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에 반발하는 자유한국당

앞서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과 관련해 의원총사퇴까지 언급하며 결사 저지 의사를 밝힌 자유한국당은 이 같은 여야 4당의 잠정 합의에 즉각 반발했다.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을 여야 합의 없이 처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연일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해 비판을 퍼부었다. 20일 당 대표 및 최고위원-중진의원 선거대책회의에서는 ‘좌파장기독재의 고속열차’, ‘야바위 선거법’ 등의 발언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 나경원 원내대표는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정체불명의 선거제 개편은 좌파장기독재의 고속열차나 다름없다”며 “좌파장기독재의 길을 터줄 선거제 개편 패스트트랙 강행 세력과 선거제 개편 저지로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세력의 구도로, 의회구도를 재편해가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기준 의원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운영하는 연동형 비례제도를 국회 패스트트랙에 올리겠다는 건 헌정파괴이고 좌파독재”라며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도를 국민이 몰라도 된다고 하는 건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이고 좌파독재를 위한 야합”이라고 밝혔다.

정진석 의원도 “이 법은 반민주주의 악법, 민주당 2중대를 위한 선거법이고, 기승전 정의당법, 야바위 선거법이며, 민생을 무시하는 선거법”이라며 “평생 선거제도만 연구해온 명지대 김형준 교수가 ‘이 제도는 민심이 왜곡되고 자신의 표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투표를 해야 하는 제도다. 평생 선거제도만 연구해왔지만 나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한 자유한국당은 선거제 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정의당과도 말 폭탄을 주고받았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정의당 소속인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심상정 위원장과 이른바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산식 논란’으로 수일에 걸쳐 신경전을 벌였다.

양당의 대립은 지난 20일 본회의장에서도 표출됐다.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나선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연설 도중 나경원 원내대표를 겨냥해 선거제 개혁 관련 비판을 시작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집단 퇴장했다. 이후에도 양당은 ‘전형적인 소인배들의 행태다, 제1야당이란 이름이 아깝다’, ‘민주당 2중대임을 자인하는 것, 야당의 역할을 스스로 포기했다’며 대립각을 이어가고 있다.

내부 반발 직면한 바른미래당

패스트트랙 추진과 관련해 이 같은 자유한국당의 반발과 함께 여야 3당과 공조하고 있는 바른미래당 내부에서도 불협화음이 포착됐다.

지난 20일 바른미래당은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선거제 개혁 잠정합의안과 개혁입법 관련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해 4시간 40여분에 걸쳐 논의를 벌였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날 긴급 의총은 19일 바른미래당 지상욱, 유승민, 유의동, 하태경, 김중로, 이언주, 정병국, 이혜훈 의원 등 8명이 선거제 개혁과 패스트트랙 추진과 관련해 “당 전체 의원의 의견을 수렴하겠으나, 사법개혁특위와 정치개혁 특위 위원이 패스트트랙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당론을 모으는 절차가 의무사항은 아니다”는 김관영 원내대표의 발언에 반발해 소집을 요구하며 열렸다.

이날 의총에서는 선거법은 여야 합의로 처리돼야 하는 문제이며, 국회의 오랜 관례이기 때문에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진행하는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나 불가피하게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한다고 하더라도 공수처법이나 검경수사권 조정안까지 연계해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견들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반해 선거법과 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에 찬성하며 당 지도부에 최종 결정을 위임하자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의총 도중 퇴장한 유승민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선거법 내용과는 무관하게 아무리 좋은 선거법이라도 패스트트랙을 하는 건 맞지 않다”며 “선거법과 국회법은 과거에 지금보다 다수당 횡포가 심할 때에도 숫자의 횡포로 결정한 적이 없다”면서 선거제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해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유 전 대표는 “특히 선거법은 게임의 규칙 문제이기 때문에 과거 어떤 다수당이 있었다고 해도 이 문제는 끝까지 최종 합의를 통해 (결정)한 게 오랜 국회 전통이었는데 패스트트랙은 결국 숫자로 하는 것”이라며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법은 권력기관이 국민을 어떻게 대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국민 관점에서 안을 내고 패스트트랙에 태울 수 있다고 보지만 선거법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의동 의원도 “지금은 우리가 패스트트랙 제도로 편익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차후 좋지 못한 의도의 정당들이 연합할 경우 막을 수 없다”며 “이런 판도라의 상자를 직접 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했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모습 ⓒ뉴시스
지난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의원총회 모습 ⓒ뉴시스

이언주 의원은 “선거법과 관련해 100% 연동형비례제가 아니지 않느냐”며 “이상한 편법을 쓰고 있는데 그 자체에 대해 장단점을 떠나 이런 시도 자체가 일종의 우리 당을 와해시키기 위한 술책이나 모략도 들어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김중로 의원도 “연동형 자체를 싫어하기 때문에 반대했다”며 “선거제를 끼워서 협상하는 건 순수성이 결여되기 때문에 민주당의 꼼수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에 대한 바른미래당 내 내홍에 자유한국당은 반색하는 모양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바른미래당의 긴급 의총이 열린 20일 당 회의에서 “다른 야당에서도 조금씩 반대목소리가 나온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야합 패스트트랙을 우파 야권이 반드시 단결해 좌파집권세력의 장기독재 야욕을 막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진석 의원도 “많은 바른미래당 의원들이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우려는 시도에 대해 부당함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바람직한 결론을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여야 4당 공조에서 바른미래당의 이탈에 기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결국 21일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당 원내정책회의에서 공수처법과 검경수사권조정안에 자당의 당론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패스트트랙 절차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공수처법에 관련해 △기소와 수사 분리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구성과 추천위원 5분의 3 이상 동의를 얻은 공수처장 추천 △국회 추천위원 4명 중 여당 이외 교섭단체에서 3명 임명 등을 요구했다.

김 원내대표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어제 전체 의원들이 의원총회 마지막 결과로 의견을 모으고, 그것이 관철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추진을) 마치자는 중재안이 나왔다”며 “전체 의원들이 수용했기 때문에 또 다른 양보를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해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추진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

패스트트랙 추진은 앞날은?

이처럼 현재 선거제 개혁과 개혁입법에 대한 패스트트랙 추진은 여야 4당 내에서부터 어려움에 직면했다.

이미 50%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혁안과 개혁법안 패스트트랙 추진을 추인한 평화당과 선거제 개혁에 사활을 걸고 있는 정의당, 또 선거제 개혁과 관련해 자당의 기본안이 받아들여지고, 이번 패스트트랙을 통해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 등 개혁입법을 함께 처리하려는 민주당의 당내 추인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선거제 개혁, 패스트트랙 추진과 관련해 극심한 당내 갈등을 보이고 있는 바른미래당이 공수처법에서 자당의 당론을 반영하지 않을 시 패스트트랙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민주당이 바른미래당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또 선거제 개혁안 패스트트랙 추진의 경우에도 게임의 룰인 선거법 개정을 제1야당과의 합의 없이 처리한다는 부담도 여당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여야 4당은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으로 자유한국당을 선거제 개혁 협상장으로 끌어내겠다는 입장이지만,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현 상황에서 자유한국당이 이에 응할지는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로서는 이번 패스트트랙 추진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종훈 평론가는 “바른미래당이 응하지 않으면 패스트트랙 추진이 불가능하다”며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건 상징적 조치에 불과하다. 패스트트랙에 일단 올려놓고 자유한국당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데 바른미래당이 저렇게 나서면서 패스트트랙에 올리는 게 힘들어진 것 같다”며 “아울러 선거제 개혁안 자체도 불투명해진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선거제 개혁안 처리가 무산되면 공수처법 처리도 이번 정부에서 쉽지 않은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높다”고 짚었다.

또한 민주당이 바른미래당이 제시한 공수처안을 받을 여지도 적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여당으로서는 공수처안 처리도 중요하지만, 담길 내용도 중요하다. (바른미래당의 안을 받는 건) 매력도가 떨어지는 것”이라며 “선거제 개편으로 민주당 입장에서는 의석도 손해인데, 그렇게까지 해서 공수처법을 처리하는 게 실익이 있느냐는 얘기가 당내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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