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SOC예산…민자사업도 증가
20년 된 예타, 문턱 완화 개편 논란
경기 침체에 경제 정책 변화 조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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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세기 기자】 문재인 정부가 평택~익산 고속도로 등 12조6000억원 규모의 민간투자사업 13건을 연내 착공 추진한다. 또 도로·철도 등 53개 시설에 한정됐던 민간투자 대상도 모든 사회기반시설로 확대하고 민자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위해 절차도 대폭 단축시켰다. 이는 야당시절과 정권 출범 초기 부정적으로 바라봤던 민자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

그동안 정부와 여당은 민자사업과 SOC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숨기지 않아왔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야당시절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SOC사업을 추진할 때 마다 앞장서서 반대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정권 초기에도 SOC를 통한 경기 부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태도로 지난 2017년 5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인위적인 경기 부양에 반대했다. 

특히, 그해 편성한 2018년도 SOC 예산은 전년보다 3조원(14%)가량 삭감한 19조원으로 책정되면서 기조를 유지했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도 이슈의 한 축이다. 예비타당성 조사는 정부나 지자체가 국가 재정 지원이 300억원(총사업비 500억원 이상)을 넘는 대규모 재정 투입 사업을 벌일 때 사전에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평가하는 제도로,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예산 집행의 효율성은 물론 사업 선정의 투명성까지 높여서 불필요한 대규모 토건사업을 함부로 벌이지 않도록 하는 국가 재정 사업의 안전장치다.

하지만 지난 3일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의 문턱을 완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불을 지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토 균형 발전을 합리적으로 고려하고 삶의 질과 관련한 사회 가치를 반영할 기회”라고 반겼다. 혈세가 낭비될 것이란 지적에 대해선 “예타 전문성을 강화하기 때문에 방만 사업 추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야당은 내년 총선을 앞둔 ‘혈세 퍼주기’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개편안 발표 다음날 “지난 20년 동안 예타는 재정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며 “국가재정법을 개정해 재정 낭비를 막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활력대책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민자 SOC사업 ‘활성화’…영역 확대·절차 단축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활력대책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19년 민간투자사업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먼저 정부는 민자사업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해 12조6000억원 규모의 대형 민자사업 13개를 올해 안에 착공하겠다는 방침이다. 

환경영향평가 협의가 완료되지 않아 미착공 상태였던 평택~익산 고속도로(3조7000억원)와 주민민원으로 착공이 지연된 광명~서울 고속도로(1조8000억원)가 이에 포함됐다. 

경찰청 어린이집, 폴리텍 기숙사 등 6000억원 규모의 생활밀착형 민자사업은 등 속도를 더 높이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투자활성화 추진 협의회’를 운영해 민자사업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신규 프로젝트를 발굴하기로 했다. 

아울러 정부는 민자사업 추진 절차를 단축해 사업 지연과 이에 따른 민간기업의 비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민자사업 추진 단계별로 최대 허용기간을 설정하기로 했다. 민자적격성조사 기간은 현행 최대 3년에서 1년으로 제한하고, 실시협약 기간도 18개월(1년 원칙+6개월 연장)로 한정한다. 

올해 경제정책방향에서 신속 추진하기로 한 4조9000억원 규모의 11개 민자 사업은 착공시기를 평균 10개월 단축하기로 했다. 위례~신사선 철도와 오산~용인 고속도로, 용인시 에코타운 등이 이에 포함된다.

그동안 민간투자 대상은 도로, 철도 등 53개 시설에 한정됐지만 내년부터는 모든 사회기반시설로 확대될 전망이다. 

민자사업 대상이 아니던 영역에서 1조5000억원 규모 이상의 시장이 창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정부는 네거티브(포괄주의) 규제방식을 도입하는 내용의 민간투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연내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이 외에도 정부는 민사업자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 민간투자를 촉진하고 높은 사용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자사업에 대한 신뢰도와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실시협약 정보 공개를 의무화하고, 사업 단계별 추진 상황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홍 부총리는 “4월 중 민간사업자에 대한 산업기반 신용보증 최고 한도를 4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상향해 민간의 금융비용을 줄이고, 연내 민간고속도로 4개 노선의 요금을 인하·동결해 국민 부담도 경감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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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타당성조사 제도 20년만에 개편

20년 만에 바뀐 예비타당성조사(예타) 제도는 예상대로 ‘균형발전’에 방점이 찍히며, 그동안 답보 상태를 보였던 수도권 교통 인프라 사업과 동해안고속도로, 부산 경부선 철도 지하화 등 지역 숙원 사업이 탄력을 받게 됐다. 

정부가 지난 3일 발표한 ‘예비타당성조사 제도 개편 방안’은 올해 초 발표된 예타 면제 대상에서 탈락한 지방 SOC사업에 대한 새로운 추진 가능성을 제시했다.

특히, 부동산·건설업계는 신도시와 서울을 연결할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신분당선 연장 사업 등 인구 과밀 해소와 주민의 생활여건 개선을 위해 필요한 수도권 교통 인프라 사업 등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는 이번 개선안에서 일자리, 주민 생활여건 영향, 지역 주민 사업 수용성 등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정책성 평가의 주요 항목에 넣고 원인자 부담 등으로 재원이 상당 부분 확보된 사업의 경우 특수 평가 항목에서 별도로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기존 예타 제도의 경우 주민 부담금은 예타 평가 항목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지만, 개선안은 종합평가 시 주민 부담금에 대해 가점을 주도록 제도화했기 때문에 수도권 사업의 예타 통과 가능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다만 현재 민자로 추진되는 사업은 개선안이 적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예타 조사 면제와 민자시장 활성화에 이어 예타 제도 개선까지 추진되면서 무분별한 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1월 예타 면제 대상 사업규모만 24조원에 달하고, 정부가 활력을 불어넣겠다고 공언한 민자시장 규모도 상당하다. 이에 SOC 등에 투입된 자금이 미래에 작지 않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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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정책의 이유있는 변화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인위적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며 SOC 예산을 매년 줄이고, 대신 복지를 확대하는 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건설 투자 지표가 계속 하락하고, 일자리 지표에도 빨간불이 들어오자 대규모 민자 SOC 사업 등으로 이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

또 정부가 경기 부양과 지역균형발전을 명분으로 대규모 토건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 면제를 추진하는 것도 논란거리가 됐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예타 면제를 확대하겠다며 전국 각 시·도로부터 신청 사업을 접수받았다.

이같은 변화에는 올해도 대내외 경제 여건이 개선되기 힘들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자동차와 조선 등 주력 산업 부진과 내수 침체 등 구조적 문제들이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고, 세계 경제의 성장세마저 둔화돼 수출 환경도 나빠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민간기업 투자 활성화를 내년 경제정책 방향의 우선순위로 두고, 올해 민간투자법을 개정해 모든 공공시설물에 민간 참여를 허용하기로 하고 민간기업의 대규모 프로젝트가 조속히 진행되도록 행정 규제를 풀어줬다. 

그러면서 정부는 예산 중 일자리 예산과 SOC 예산을 내년 상반기에 각각 65%와 59.8% 조기 집행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의 활력을 제고하겠다는 구상이다. 

또 경제 활력제고와 사회안전망 확충으로 압축되는 정부의 내년 재정운용 방침은 재정 정책을 통해 경제 활성화와 사회적 포용성 확대, 인구 감소 대비, 안전한 환경 등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회귀한 경제정책 효율성·생산성·시급성 감안

하지만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총선을 앞두고 경제성 낮은 사업에 예타 면제를 남발할 경우 혈세를 낭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예타 면제 혜택의 덕을 톡톡히 봤지만 실패사례로 남은 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강 사업’이다. 당시 정부는 관련 시행령까지 개정해 ‘재해 예방 사업’을 예타 면제 대상으로 추가하고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보 건설·준설 사업을 여기에 포함시켜 예타 조사의 감시를 피해갔다.

시민단체들도 이를 우려한 듯 ‘지역 선심성’ 예산이라며 비판을 가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과 녹색교통운동,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 1월 23일 기자회견을 열고 “침체된 경기를 토건 사업으로 부양하려는 내년 총선을 위한 지역 선심 정책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예타 면제는 토건 재벌 건설사들에 막대한 혈세를 퍼줄 뿐”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 권오인 경제정책팀장은 “예타는 재정의 누수를 막고 사업을 실효성 있게 하는 안전장치”라며 “예타를 면제했다가 향후 재정의 문제나 누수가 발생해도 단 한 번도 정치권이 책임진 적 없이 국민의 혈세로 막아야 했다”고 지적했다. 

또 “예타에서 문제가 됐던 민자사업, 특히 4대강 사업은 거의 다 재정 낭비로 이어졌다”며 “특히 지자체별로 나눠주기 식으로 언급하는 것은 건설 경기를 일으키고 일감을 주려는 의도로만 보인다”고 비판했다. 

이에 홍남기 부총리는 “프로젝트를 발표한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부양에 있지 않고, 예타제도의 한계를 감안해 국가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것”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홍 부총리는 “사업규모 24조1000억원 중 국비는 18조5000억원이 투입되지만, 사업이 10년 동안 추진되기 때문에 국비에 대한 연간 자금수요는 2조원이 안되는 것으로 나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준비기간이 필요해 올해와 내년에는 건설사업이 이뤄지진 않을 것 같다”라며 “1~2년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 아닌 10년 안목을 보고 추진했다”라고 말했다.

예산 낭비 논란에 대해서도 홍 부총리는 “4대강 관련 평가는 이미 나왔기에 따로 말씀드리지 않겠다. 다만 이와 다르게 하려고 노력한 것 중 하나가 꼭 SOC 뿐만 아니라 지역전략산업육성지원과 그런 것들을 같이 포함하려 노력했다”고 전했다.

이어 “특정 사업에 해당되는 것도 있고 전국을 커버하려는 사업, 복수의 광역시를 연결하려는 기간망 사업이 15조로 62% 정도를 차지하기에 효율성이나 생산성, 시급성을 감안한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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