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실험 등 계속되는 세계적 기본소득 관련 실험
국내도 경기도 청년기본소득 시행으로 관심 높아져
찬성 측 “기존 사회보장제도 문제 극복할 수 있어”
반대 측 “막대한 재원 낭비…비용대비 효과 떨어져”

 

홍세화(가운데) 장발장 은행장 등이 지난 201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홍세화(가운데) 장발장 은행장과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강남훈(왼쪽) 이사장 등이 지난 2017년 8월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피켓을 들고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전 세계적인 관심을 모은 2년간의 핀란드 기본소득 실험 이후 예비결과를 두고 기본소득과 관련된 논의가 확대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기본소득 실험도 계속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지난해 총선에서 기본소득 공약을 앞세워 최대정당이 된 오성운동이 공약 시행을 준비 중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실험이 진행되거나 추진되고 있다.

아울러 한국에서도 경기도가 올해 4월부터 성남시의 청년배당을 확대한 청년기본소득 정책 추진에 나섰고, 서울시나 제주도 등 여러 지자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본소득에 대한 시각차는 여전히 크다.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복지제도의 결함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대 측은 막대한 재원 낭비, 근로의욕 감소 등을 지적하며 기본소득이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비해 효용이 떨어진다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본지는 기본소득의 논의 추이와 현재 진행된 실험들의 의의와 한계,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학자들의 주장을 담아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에 이어 세계적으로 기본소득 관련 실험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올해 4월부터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정책이 시행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높아지는 관심과 더불어 찬반 여론이 일고 있다.

기본소득 찬성 측은 실업이 늘고 불안정한 일자리가 확대되고 표준화된 고용이 사라져가는 상황에서 사회보험이 아닌 기본소득이 대안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기본소득이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며, 기존 사회보장제도에 비해 비용대비 효과가 떨어진다는 입장으로 여전히 커다란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

기본소득은 무엇인가

기본소득과 관련된 세계적 네트워크인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는 기본소득을 ‘정치공동체가 심사와 노동요구 없이 모든 개인에게 주기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현금’이라고 정의한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한신대 강남훈 교수의 저서 <기본소득의 경제학>에 따르면 BIEN의 기본소득 정의는 △기본소득은 가구단위로 지급되지 않고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개별성’ △자격 심사 없이 모든 사람에게 지급된다는 ‘보편성’ △수급의 대가로 노동이나 구직활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지급’ 원칙 등 5가지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기본소득 찬성 측은 이 같은 기본소득의 정의를 통해, 기존의 사회복지정책이 갖고 있는 복지사각지대, 낙인, 수치심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기본소득 제안은 크게 우파와 좌파 버전으로 나뉜다. 연세대 행정학과 양재진 교수의 논문 <기본소득은 미래 사회보장의 대안인가(2018)>에 따르면 우파는 기본소득을 통해 사회보장제도의 중첩성, 파편성, 관료주의화로 인해 발생하는 막대한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자산조사로부터의 해방을 통해 공적급여를 받기 위해 저임금 근로를 회피하고 공적 부조에 안주하는 ‘빈곤의 덫’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활성화도 기대한다. 여기에는 기존의 사회보장제도를 전면 대체하는 추가적인 재정소요가 없는 재정 중립적 기본소득과 노동을 조건으로 하는 부의 소득세 형태의 기본소득이 해당된다.

좌파의 경우에는 기본소득을 통해 근로와 급여의 연계성을 단절시키는 것이 핵심이다. 생산 활동을 외부적 보상에 의해 좌우되지 않게 만들어 진정으로 인간의 소외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설명이다. 내면의 요구대로 근로하며 사회문화 활동에도 더 전념할 수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가 기본소득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 사회가 차별적인 보상을 통해 근로를 유인하지 않아도 풍부한 부를 만들어 내는 생산력에 가까이 도달했다고 보며, 인공지능과 로봇의 결합으로 생산력은 더 발전하는 동시에 일자리는 사라지는 사회가 도래한다고 여긴다. 기존 사회보장제도와의 보완관계를 이루는 기본소득, 공유부 배당과 분배정의로서의 지속가능한 기본소득이 이에 해당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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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본소득 논쟁의 추이

기본소득은 2002년 한국 학계에 처음으로 상세히 소개됐다. 가톨릭대학교 사회복지학과 백승호 교수의 논문 <기본소득 논쟁 제대로 하기(2018)>에 따르면 국내 기본소득 논쟁의 역사는 △1997년 IMF 경제위기 이후인 2000년대 초반 △구상 논쟁이 시작된 2010년대초 △본격적인 찬반논쟁으로 발전된 2016년 이후까지 세 시기로 구분된다.

2002년 당시 IMF 경제위기(1997년) 이후 심화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성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제안됐다. 완전고용을 전제로 한 전통적 사회보장제도가 변화하는 노동시장 상황과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사회보험이나 공공부조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했던 당시 상황에서 이 같은 제안은 몽상가적인 제안 정도로 치부됐다는 설명이다.

이후 2009년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한국형 기본소득 모델을 제안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보고서가 발간되고, 2010년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주최한 ‘기본소득 국제학술대회’에서는 탈노동, 재분배, 해방적 기본소득으로 요약되는 기본소득 서울선언이 발표된 뒤, 이에 대한 반론이 제기되면서 기본소득에 대한 구상 논쟁이 시작됐다.

2016년에 접어들며 한국사회의 기본소득 논쟁은 본격적인 찬반논쟁으로 발전했다. 지난 2009년 2편에 불과했던 기본소득 관련 논문은 2010년 12편으로 증가한데 이어, 2016년에는 33편, 2017년에는 77편으로 급증했다. 또한 대중적 관심도 크게 증가해 2007~2009년 사이 16개에 불과했던 주요 일간지의 기본소득 관련 기사는 2016년에는 444개, 2017년에는 643개에 달했다.

또 정치적 공간에서도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2015년 성남시 청년배당 구상과 2017년 대선 경선 과정에서 ‘생애주기별 기본소득’과 ‘전 국민 대상 기본소득’ 공약을 내놓으면서 이슈를 이끌었다.

이처럼 구체적 정책공약으로서 기본소득이 제안되면서 이 시기의 기본소득 논쟁은 기본소득 구상에 대한 추상적 차원을 넘어 실행과 관련된 논쟁으로 확장됐다는 설명이다.

기본소득에 대한 찬반 의견

그렇다면 기본소득을 둘러싼 찬반 의견은 어떻게 전개되고 있을까.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노정호 교수의 논문 <핀란드와 네덜란드 기본소득 실험의 방법론적 의미와 한계, 그리고 시사점(2018)>에 따르면 기본소득 찬성 측은 기본소득이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사회적 배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기본소득 찬성 학자들은 세계화의 확대와 노동시장의 이중화 등으로 인해 불안정성과 불평등이 심화된 상황에서 빈곤근로자와 불안정 노동자들이 점차 늘고 있는 현실이 현존하는 사회복지체제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또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한 대량 실업사태에 대한 우려도 기본소득 도입이 필요한 이유로 꼽는다.

이들은 또 기본소득이 현행 사회정책에 비해 갖는 장점으로 기본소득제가 모든 개인에게 동일한 금액을 제공하는 단순한 제도이기 때문에 자산조사 등에 필요한 행정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자산조사에 의해 빈자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은 필연적으로 낙인효과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기본소득은 이를 원천 제거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한다.

반면 반대 학자들은 기술진보가 대량실업을 야기할 것이라는 주장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자동화와 인공지능이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의 인력을 대부분 대체할 수 있는 시대가 아직 오지도 않았고, 그 시대가 오더라도 대량 실업으로 연결된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이어 노동시장 불안정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 사회보장제도의 보완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최저임금이나 근로장려세제(EITC)의 강화가 기본소득제도의 엄청난 비용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효율적인 사회안전망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기본소득제의 세수확보 및 비용문제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한다. 기본소득 찬성 측은 기존 복지제도의 혜택을 없앰으로써 재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지만, 부자이건 가난하건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기본소득제를 실행하려면 기존 복지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의 몇 배가 필요하거나, 기본소득의 혜택 수준을 상당 부분 낮춰야만 가능할 것이고, 이는 결국 복지를 정말로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을 줄여 부자들에게 돈을 주는 ‘회귀적(regressive)’ 복지제도로 귀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근로유인에 있어서는 찬성 측과 반대 측의 의견이 정면 배치된다.

찬성 측은 기본소득제가 기존 복지제도와는 다르게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어도 지속적으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소득을 일정 수준 이하로 유지함으로써 복지혜택을 얻으려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고, 추가적인 소득을 위해 근로유인이 늘어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반대 측은 기본소득제도로 인한 탈상품화(노동자가 임금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회적 급부를 통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로 인해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근로유인은 감소할 것이라고 말하며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의 효율성과 근로유인 등에 대한 찬반 의견이 팽팽한 상황에서도 ‘모두에게 조건 없이 혜택을 나누자’는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한 정책과 실험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계속해서 추진 또는 제안되면서 기본소득이 복지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룰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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