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 크림슈타인 글·그림 / 최지원 옮김 / 김선욱 감수 / 165*227 / 244쪽 / 1만7000원 / 더숲

너무 빨랐다. 너무 분노했다.
너무 똑똑했다. 너무 어리석었다.
너무 정직했다. 너무 의기양양했다.
너무 유대인다웠다. 유대인답지 못했다.
너무 사랑이 넘치고, 증오가 넘쳤으며,
너무 남자 같은 반면, 충분히 남자 같지 않았다.

이 이야기는 한나 아렌트라는 인간의 일생이다.
지금과는 다른 시대에 잃어버린 나라의 잃어버린 세계에서 태어난
이 난민 철학자이자 사상가의 이름을 아마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남는(그리고 처음 떠오르는) 질문은 결국 이것이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인 이 사람은 왜 철학을 포기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녀의 사상은 우리에게
앞으로 나아갈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주는가?

- 서문 중에서
 

【투데이신문 김지현 기자】 시대를 초월한, 사유하고 행동하는 지식인 한나 아렌트에 대한 최초의 그래픽노블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한나 아렌트는 20세기 최고의 정치사상가이자 현대 철학과 정치에 빠짐없이 인용되는 인물로 사망 무렵 학자들 사이에서 제한적인 명성을 누렸던 한나 아렌트의 사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와 위상이 높아져, 그의 저작은 거의 모든 주요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출간되었을 만큼 그 영향력은 가히 전 세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 앞에 존재하는 지금 꼭 알아야 할 인물인 한나 아렌트. 그런 그녀의 삶과 사상을 그린 최초의 그래픽노블이 바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이다. 

한나 아렌트는 전설적인 정치사상가이자 철학자, 유대인, 여성, 난민으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그런 그의 사상은 20세기를 넘어 난민·인종차별·소수자 문제·극우주의 등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시대에도 매우 의미 있는 지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의 깊이로 인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번 책은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감각적인 그림을 통해 독자들이 한나 아렌트를 한층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 한국아렌트학회 회장인 김선욱 숭실대 철학과 교수는 그래픽노블인 이 책에 대해 “이 책의 등장은 아렌트가 이미 대중적 관심사가 되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이 책은 나치의 박해 속에 여러 나라를 탈출하면서도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한나 아렌트의 삶이 속도감 넘치면서도 생생하게 담았다. 또한 1,2차 세계대전과 전체주의가 휩쓸어간 격동의 시대와 함께, 일생의 사랑이었던 철학자 하이데거를 비롯해 발터 벤야민, 프로이트, 알버트 아인슈타인, 장 뤽 고다르 등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모습을 한편의 영화처럼 보여주고 있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 폭력과 악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사상가이자 인간 한나 아렌트의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감수를 맡은 김선욱 교수는 “이 책의 방점은 ‘세 번째 탈출’에 있다. 독일에서의 탈출, 그리고 파리에서의 탈출이라는 앞선 두 번의 탈출과 세 번째의 탈출은 서로 결이 다른 이야기이다. 세 번째 탈출 이야기는 그녀의 삶을 넘어 그녀의 핵심적 사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저자는 이 세 번째 탈출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가 가진 사상의 핵심인 듯 그려내는데, 나는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 책은 그 세 번째 탈출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볼 기회를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악의 평범성, 전체주의, 공적영역과 사적영역 등 정치사상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개념들부터 기존 한나 아렌트의 저작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삶의 내밀한 면모까지 들여다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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