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사고 위험에 노출된 대리운전기사들
노동자로서의 사고 보상 대부분 어려워
‘유명무실’ 4대보험…‘있으나 마나’
노동기본권부터 우선적으로 보장해야
소득 중심 사회보험 체계 변화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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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노동시민사회단체의 노조할 권리 가로막는 노동부 규탄 공동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달 28일 새벽 3시경 경남 창원시에서 한 신호위반 차량이 횡단보도를 건너던 대리운전기사 2명을 덮쳤다. 한 사람은 하반신 골절, 또 다른 사람은 목숨을 잃었다. 지난해 11월에도 경남 진해에서 고객을 만나러 가던 50대 대리운전기사가 이동 중 교통사고로 끝내 유명을 달리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의 교통사고, 대리운전기사들에게는 예삿일이다. 시민들의 늦은 밤 귀갓길을 책임지는 전국 20만명의 대리운전기사들은 늘 이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일하지만 정작 자신의 안전은 위협받는 이들을 더욱 서럽게 만드는 것은 노동자이지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앞서 소개한 창원시 대리운전기사들은 업무 중 사고를 당했지만 노동자로서는 어떠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하 산재보험)과 직장건강보험에 가입돼있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자라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들이지만 이들만큼은 예외다.

대리운전기사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소위 말해 특수고용노동자다. 이들의 업무 형태는 사업자보다는 노동자에 가깝지만 위탁계약을 맺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사업자로 인정된다. 때문에 노동자로서 누릴 수 있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법, 사회보험 등 각종 법의 테두리와 권리로부터 배제되기 일쑤다.

최근 대리운전기사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전국의 모든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사회안전망 확대를 위한 ‘4대보험 의무적용’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속히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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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노동자? 개인사업자?

다른 사람 소유의 자동차를 돈을 받고 대신 운전해주는 대리운전 서비스는 1980년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시 음주운전이 사회문제로 제기되면서 개별적인 대리운전이 문제 해결방안으로 제시되며 대리운전 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정부도 음주운전 문제를 줄이는 데 큰 효과가 있다고 봤다.

1990년대 고급 유흥가 중심으로 돌아가던 대리운전 시장은 2000년대 접어들며 급격하게 성장했고, 현재 대리운전기사 규모는 전국적으로 약 20만명으로 추정된다.

2010년 발간된 ‘퀵 서비스, 대리운전종사자에 대한 산재보험 적용 타당성 연구’에 따르면 대리운전을 전업으로 한다는 응답자가 74.4%(762명), 부업으로 한다는 응답자는 25.6%(262명)으로 조사됐다.

또 같은 해 근로복지공단의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루 평균 8.2시간 근무하며, 월평균 근무일수는 23.5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리운전이 과거 퇴근 후 저녁시간을 일부를 활용한 아르바이트였다면,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가 달린 생계형 일자리가 됐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대리운전기사가 늘어나고 전업으로 여겨질 만큼 다수 노동자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는 반면 그들을 위한 처우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 원인 중 하나로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하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란 계약 형식과는 무관하게 노동자(근로자)와 유사한 노동을 제공하지만 근로기준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업무상 발생한 재해로부터의 보호가 필요한 자를 뜻한다. 주로 하나의 사업에 그 운영에 필요한 노동을 상시적으로 제공해 보수를 받아 생활한다. 

쉽게 설명해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용역·도급·위탁·운송계약 형태로 일을 하기 때문에 사업자로서의 성격을 띠지만 실상은 회사 지시에 따른 업무를 수행하고 정해진 보수 및 서비스 수수료를 받는 시스템으로, 사업자보다는 노동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현행법상 개인사업자인 대리운전기사는 그동안 사회·법률적 측면에서의 노동자 처우 개선이 이뤄졌다 할지라도 피부로 느끼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종진 부소장은 특수고용은 산업구조와 직업의 형태가 변화함에 따라 기존에는 없던 새로운 직업이 창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노동자로 근로계약을 체결할 경우 사업주에게 퇴직금이나 연장근무수당, 산재수당 등 물리적 책임이 뒤따르다 보니 경제법을 적용받는 갑과 을 관계에서 노동의 대가에 맞춰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채택했다는 게 김 부소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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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9월에 열린 특수고용노동자 산재보험 즉각 전면 적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뉴시스

노동자 차별하는 사회보험 

대리운전기사는 노동자이지만 노동자가 아닌 탓에 노동자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사회보장제도에서 배제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주요 수단으로 ‘사회보험’을 채택하고 있다. 노동자나 그 가족을 상해나 질병, 노령, 실업, 사망 등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험은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가입하는 것이 아닌 법에 의한 강제성을 띠고 있으며, 보험료도 개인 혼자가 아닌 기업과 국가가 함께 분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한국은 국민연금, (직장인)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가지를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리운전기사들은 이중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우선 산재보험은 대리운전기사가 유일하게 가입 대상으로 포함된 사회보험이다. 불과 3년 전만 하더라도 산재보험 가입 대상에서 배제됐으나, 2016년 7월 산재보험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일부 9개 직종은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게 됐다. 이때 대리운전기사도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전속대리기사에게만 적용됐으며, 이마저도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일 뿐이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사업주가 산재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대리운전은 사업자와 노동자가 보험료를 각각 절반씩 부담해야 한다.

대리운전은 대부분 한 업체에만 소속돼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업체에서 콜 요청을 받는 노동 형태이기 때문에 전속성이 낮아 사실상 산재보험에 가입한 대리운전기사는 극히 드물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등록된 산재 적용 대상 대리운전 기사는 고작 12명에 불과했으며, 이중 산재보험에 가입된 대리운전기사는 8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이 낮은데는 ‘적용제외신청’도 한몫한다. 해당 제도는 산재보험 가입 여부에 있어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서는 산재보험 적용을 기피하는 사업주가 이를 악용해 재계약을 빌미로 노동자에게 적용제외신청을 강요하거나, 노동자 모르게 신청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김주환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산재보험은 4대보험 가운데 대리운전기사가 유일하게 적용 대상에 포함된 보험”이라면서 “그러나 전속성 있는 대리기사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대리운전 특성상 한 업체에 소속돼있을지라도 업무를 수행할 때는 연합콜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전속성이 기준이 되는 것은 현장의 시각에서는 비현실적인 기준”이라며 “산재보험에 가입 대상 대리운전기사가 전국에 12명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속성이 기준이 되다 보니 대상조차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속대리운전기사가 산재보험에 가입 의사가 있더라도 업체에서 계약을 해지를 요구하니 가입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적용제외신청을 할 수밖에 없다”며 “생계가 급급한 대리운전기사들이 산재를 위해 먹고사는 문제를 희생할 순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고 안타까워했다.

<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br>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일부 캡처>
<자료 출처 = 보건복지부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 일부 캡처>

고용보험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을 때 생활안정을 위해 일정 기간 급여를 지급하는 실업급여를 보장한다. 대리운전기사는 법률상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사실상 실업급여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고용보험심사위원회에서는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사·정으로 꾸려진 고용보험제도개선 TF가 6개월간의 논의를 특수고용노동자와 예술인들 대상으로 한 고용보험 적용을 위한 방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다양한 종사 형태를 감안해 고용보험을 단계적으로 적용하고, 노무제공 특성상 보험료 동일 부담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되면 사업주의 부담 비율을 달리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할 계획이다.

현장에서는 부담 비율의 기준이 전속성이 되면 산재보험과 마찬가지로 실효성 없는 제도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대리운전기사는 현재까지 고용보험 대상에서 배제돼 있다”며 “지난해 특수고용노동자 등 고용보험 적용 방안이 심의·의결됐지만 세부 시행령을 보면 직종을 정하게 돼있는데 아직까지도 확정된 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만약 (적용 대상에 들었지만) 부담 비율의 기준이 전속성이 된다면 실효성이 없는 결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그렇게 되면 비용 부담이 노동자에게 전가될 뿐만 아니라 결국 산재보험처럼 가입조차 안 되는 결과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의 경우는 사업장 가입자는 사업주와 노동자가 반반씩 나눠서 내지만 지역 가입은 모두 본인이 부담한다.

그러나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대리운전기사 등 9개 특수고용직 중 국민연금 가입대상자는 41만2691명이며 이중 사업장 가입자는 7만3558명(17.8%)에 불과하다. 미가입자 9만3034명으로 집계됐으며, 대상조차 되지 않는 납부예외는 3만9034명에 달했다.

반면 연금보험료 전액을 본인이 부담하는 지역가입자 수는 20만7065명으로 절반 수준으로 확인됐다.

특히나 대리운전기사의 경우 가입대상자는 단 15명(사업장 가입자 8명, 지역 가입자 4명, 납부예외 2명, 미가입 1명)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산하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해 9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국민연금 사업장 가입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권고한 상태다.

앞선 고용보험, 산재보험,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직장인건강보험은 특수고용직 특성상 가입이 어렵고, 지역보험에 가입하자니 보험비 부담 때문에 애초 가입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국민연금 지역 가입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소득이 있어야 하는데 대리운전기사 다수가 생계가 어려운 분들이 많아 그럴 여유가 적다”며 “정부는 사회보험 등 그동안 이행하지 못한 특수고용노동자를 위한 정책을 하겠다고 발표는 했지만 사실상 논의만 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가 불투명하다”고 꼬집었다.

이어 “현장에서는 희망만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며, 이 시간이 길어질수록 희망이 고문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 같은 사각지대는 노동 과정에서의 위험성을 높여 노동자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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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에 열린 국제노동기구(ILO) 100주년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조합법 2조 개정 촉구 집회 ⓒ뉴시스

“노동기본권 보장이 우선”

이는 비단 대리운전기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퀵 서비스, 학습지 교사, 보험설계사 등 전국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공통분모다.

지난 13일 민주노총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총궐기대회’를 열어 노동권기본권(근로권·단결권·단체교섭권) 보장 등을 촉구했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2개 이상 광역자치단체에 걸친 노동조합을 새로 구성할 때는 노동부에 설립 신고를 하고 조합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나 앞서 언급된 것처럼 대리운전의 경우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에 노동기본권이 인정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현장에서는 노동기본권이 우선적으로 보장돼야만 이후 사회보험이나 근로조건 개선 등을 당사자들과의 협의를 통해 현실화해나갈 수 있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주환 위원장은 “복지가 하루아침에 뚝딱 이뤄질 수 없다는 건 노동자들 역시 알고 있다. 우리가 요구하는 건 최소한이다. 우리의 절박한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단결권을 인정해달라는 것”이라며 “우선적으로 노동자가 단결할 수 있는 노동기본권을 보장해주고 이후 당사자와 정부 등이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 사회보험 등의 복지를 하나씩 현실화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수고용노동자대책회의 이영철 의장 역시 “노동기본권을 갖게 되면 정부에서 항상 말하는 ‘노사 간 자율’이 가능해진다”며 “노동자와 기업이 복지나 근로조건, 사회보장 등을 논의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고, 국회는 노조법 2조 개정을 통해 근로자의 개념을 확대해 노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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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중심 사회보험 체계로 바뀌어야”

한편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으로 김종진 부소장은 사회보험의 체계가 노동자 중심에서 소득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 부소장은 “노동자, 특수고용노동자, 자영업자에 관계없이 소득에서 사회보험료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직장 가입 여부를 따진다는 것은 노동자이냐 아니냐를 보는 것이다. 최근 특수고용노동자가 250만명이 넘어가고 프리랜서도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 여부를) 따지지 않고 소득에 비례해 적용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은 건강보험공단이나 근로복지공단 등 사회보험 각각의 관계 기관에서 보험료를 징수하는 방식이지만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국세청에 사회보험 징수 권한을 주고 있다”며 “이처럼 좀 더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해결 가능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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