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선(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칼럼] 선(善)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22 14: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두 같은 글을 읽지만, 선(善)에 뜻을 두고 읽으면 군자의 도(道)가 되고, 이익에 뜻을 두고 읽으면 소인의 도가 되니, 선비가 뜻을 세우는 일에 신중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조익(趙翼, 1579 –1655>

표창원 의원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지난 2016년, 나는 현재 국회의원으로 활약하고 있는 표창원 의원의 선거캠프에서 자원 봉사를 한 적이 있다. 표 후보는 당선이 됐고, 나는 보좌진 인선이 되기 전까지 소소한 일을 맡아서 처리했다. 보슬비가 내리는 봄날 나는 표 의원의 도장을 새기기 위해 도장집을 찾아갔다. 도장 새기는 분은 60대 중반 쯤 되어 보였으며, 눈이 맑고 표정이 온화하며, 목소리도 무척 부드러웠다. 나한테 천천히 묻는다.  

“본인 인장 하러 오셨나요?”

“아닙니다. 이번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표창원 선생님 인장 새기러 왔습니다.”

“허허, 그래요. 본인이 오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셔야 하는데, 선생님이 요즘 경황이 없어서 제가 대신 왔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지. 그럼 지금 오신 분은 비서신가요? 아직 보좌진 인선이 안 되었을 텐데…….”

“저는 한국한시를 전공한 작가입니다. 이번에 표 선생님 캠프에 있었는데요. 임시로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오호, 그러시군요. 표의원님하고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되셨나요?”

“제 책의 초고를 SNS에 올렸는데, 표 선생님이 보시고 많은 도움을 주셨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제가 드린 종이에 표 의원님 생년월일을 쓰고, 성함은 한자로 쓰세요.”

“예. 알겠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표 선생님은 한글 인장을 원하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한자가 나을 텐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여쭤보진 않았습니다만, 제 짐작에 표 선생님은 무엇이든 여러 사람이 보기 편하고 알기 쉽게 하는 걸 좋아하는 분이라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그래요. 그럼 눈에 잘 띄게 가로로 ‘표창원’ 세 글자만 쓰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거 넣지 말고 단순하게 갑시다.”

“네. 그러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표 선생님은 곧은 분입니다.”

도장 새기는 분은 잠시 말을 않고 있다가 불쑥 이렇게 묻는다. 

“표 의원의 목표는 어디까지입니까?”

“네? 무슨 말씀이세요?”

“국회의원이 되셨으니 앞으로 더 올라가고 싶은 곳이 있을 것 아닙니까. 허허.”

“하하,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시진 않았습니다.”

“그럼 작가님이라고 했나요? 작가님은 표의원이 어디까지 올라갔으면 좋겠습니까?”

어디에 뜻을 두어야 하는가

도장 새기러 왔을 뿐인데 엉뚱한 질문을 받게 됐다. 대체로 많은 돈을 갖고 있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은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계별로 준비했고, 실천했다’고 한다. 그냥 저냥 계획 없이 살면 아무 것도 이룰 수도 없다고 역설한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오로지 목표에만 집착하면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이 급해지면서 시야가 좁아져 성공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무어라 단정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하겠다. 어쨌든 이 분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낫다고 여기는 것 같다. 물론 유명한 사람 일이므로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셨을 수도 있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나도 분명히 ‘이것은 이거고 저것은 저거다’고 할 만한 것은 없다. 아직 무언가를 성취하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상을 다 살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 이럴 때 옛사람의 글이 도움을 준다. 조선 후기의 초입에 살면서 유가 경전에 밝았고, 대동법(大同法)을 전국에 확대 시행하는 데 크게 기여했던 조익(趙翼, 1579-1655)은 이렇게 말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군자가 되고,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은 소인이 되니, 군자와 소인을 나누는 기준은 선함과 이익일 뿐이며, 선함과 이익으로 나뉘는 것은 학문을 시작할 때 뜻을 세우는 데 달려있다. 

선비의 일 중에는 독서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 그러나 독서하는 사람 중에는 이를 통해 이치를 연구하고 자신을 닦아 성현의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자도 있고, 문장과 구절을 외우고 말을 긁어모아 글짓기를 배운 뒤에, 과거시험에 붙어 벼슬길에 올라 부귀의 발판을 얻으려는 자도 있다. 

독서를 통해서 성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선을 행하는 일이고, 부귀를 좇는 것이 이익을 추구하는 일이다. 이처럼 선을 행하는 것이 군자의 도가 되고, 이익만 추구하는 것은 소인의 도가 된다. 모두 같은 글을 읽지만, 선에 뜻을 두고 읽으면 군자의 도가 되고, 이익에 뜻을 두고 읽으면 소인의 도가 되니, 선비가 뜻을 세우는 일에 신중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조익(趙翼, 1579-1655), 『포저집(浦渚集)』, 권 22, 「경신학(警新學)」>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는 물음에 대한 조익의 대답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를 추구하는 것을 반드시 ‘소인의 도’라고 폄하해선 안 되겠지만, 그것만 바라보다가 탈이 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게 된다. 조익은 아마 그런 세태를 염려해서 이런 말을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도장 새기는 분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이와 같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

내가 대답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자리가 목표라면 그런 목표는 세우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목표가 없다?”

“그 자리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그 때문에 자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흠, 그래요. 그러면 작가님은 표창원 의원님이 어떤 정치인이 되기를 바랍니까?”

“지금껏 살아오신 것처럼 앞으로도 그러한 정치인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길은 가다 보면 나올 것 같습니다.”

“그래요. 알겠습니다. 저는 작품 만들 때 그 사람의 사주도 보고, 성품을 반영합니다. 의원님 생시는 모르시지요?”

“네. 생시는 모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원 인장으로 쓸 거니까 너무 작아도 안 되고, 너무 커도 안 됩니다. 그래도 다른 인장보다는 조금 큰 게 좋습니다. 재료는 어떤 걸로 할까요? 나무, 물소 뿔, 상아가 있습니다.”

“물소 뿔이나 상아는 가격이 너무 높고, 화려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럼 나무로 해야겠군요. 나무도 좋습니다. 대추목이 오래 가고 쓰기에 편합니다.”

“네. 그럼 그걸로 만들어 주시죠.”

“그렇게 하지요. 그건 그렇고, 작가님은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목표가 뭡니까?”

“하하, 저요? 저는 지금껏 목표를 세우고 살지 않았습니다. 길이 보이면 거기로 가다가, 다른 길이 나타나면 또 거기로 갔습니다. 20년 동안 학교에 있다가 표 선생님을 만났네요.”

▲ 김재욱 칼럼니스트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허허, 그러게요. 인연이란 게 뭔 지……. 내일 이 시간에 찾으러 오십시오.”

세상이 넓은 만큼 다양한 생각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공부하는 자식들에게 특정 학교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나한테 심부름을 시켰던 표창원 의원도 뭐가 되는 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마 세상 물정 모른다는 소리를 들을 확률이 높지만, 실력을 갖추고 노력하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트리며 사는 것보다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자신의 상태를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를 하고, 선한 사람을 돕기 위해 정치를 해야 한다고 믿으며 산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