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①] 낯선 도시에서 보낸 삶에 관한 보고서_허승연
[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①] 낯선 도시에서 보낸 삶에 관한 보고서_허승연
  • 김종근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4.29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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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 작품에는 유독 천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의 작품이 곧 잘 등장한다.

그는 처음에는 조르쥬 드 키리코 화풍의 괴이한 물체나 인간끼리의 만남 같은 풍경을 그리다가 1936년부터는 불가사의한 힘을 끄집어내는 듯 매력적인 세계를 리얼하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천을 뒤집어쓰고 강물에 투신한 그의 어머니 모습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마그리트가 체험한 개인적 삶 때문이다.

작가의 그림이 스스로의 삶과 체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마그리트는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이다.

허승연의 초기 작품에서 최근작까지를 보면서 내가 받은 가장 강렬한 첫인상은 숨기지 않는 리얼한 삶의 정직성이었다. 

그 정직함은 자신의 감정에 대한 거침없는 표출에서 더욱 증폭된다. 하나같이 그녀의 그림 속에는 그녀의 존재가 들어가 있다. 평면이든 설치든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또 하나 놀라움은 모든 표현에서 그 어느 것 하나 과감하고 거침뿐만 아니라 주저함도 없다.

그녀가 느끼고 본 것, 경험한 것,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직설적으로 토해낸다.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이라면 모두 그녀에게 호출당하는 무한의 경계 없음도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그의 시선은 먼저 유학한 미국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살며 부대껴온 시카고에서 뉴욕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사춘기 소녀로 시작, 성장해서는 여류작가로 살아가는 모든 성장통의 흔적을 화폭에 일기처럼 쏟아냈다.

사랑과 외로움 그리고, 혼자 사는 방안의 모습들, 남자들, 꽃에서 생활의 오브제 까지 때로는 필름처럼 그로데스크하게 지나간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들은 곧 그녀가 이국에서 외롭게 그리고 아프게 살아온 그간의 삶에 관한 보고서처럼 읽혀진다.

무엇보다 그녀 회화의 가장 큰 특징은 “회화란 이런 것이다”라는 회화의 진부한 질서를 추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림이 될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그녀의 그림은 날것이고 거칠며 비린내가 난다. 그러나 이것이 그녀만의 개별적인 삶이고 체험이라면 이것은 비린내가 될 수 없다.

허승연에게 그림이란, 회화 그 이전에 인간의 본질적인 감성의 토해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녀의 붓질은 비정형적이고 일그러져 있고 뭉개져 있다.

예를들면 <너와나는 하나의 몸>이란 작품에서럼 얼굴 형상의 파괴나 해체, 미완성으로 남겨두는 기법 등 도처에서 충분하게 발견된다.

뿐만 아니다. 최근의 작품에서는 얼굴이나 상체의 표현을 분할하거나 인간의 묘사에서도 시점과 형태, 구성의 존재 형식도 무시하는 더욱 독자적인 형식미에 다가간다.

아니 초기부터 그녀는 기존의 일상적인 회화의 표현언어를 철저하게 거부하는 저항성을 포함하고 있다.

화폭 속에 얼굴이나 몸짓들은 어설프게 얽혀 있고, 어긋난 퍼즐의 베드페인팅(bad painting) 처럼 뒤엉켜 있다.

허승연 작품의 이 날 것 같은 감성의 생채기는 이국에서 젊은 여류작가가 헤쳐나가며 품었던 진주 같은 눈물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언어 자체였다.

거울 속에 비친 자화상과 그 뒤 실내풍경이 곧잘 오버 랩 되는 도상들, 두 얼굴이 빚어내는 야누스 같은 자화상은 그 스토리가 자신의 이야기라는 서사로 더욱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 가운데 <화장중>의 작품은 그러한 거울 앞에선 자신의 초상과 삶을 가장 생생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비치는데 또 다른  <고된 하루>도 그러한 그녀의 팽팽했던 삶의 풍경은 이어진다.

그녀의 매 순간 부딪치는 모든 삶의 에피소드는 그녀의 작품 속에 일기장처럼 모두 나타난다. 

<한강 키스> 또한 지역만 다를뿐  사랑의 또 다른 표정 관계를 극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누구나의 삶이 언제나 행복하지만 않듯 또한 불행과 고통도 마찬가지이다. 

드물게 허승연의 작품에도 아름답고 간절한 소망이 깃들인 작품이 있다.

<나도 밥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소중한 진정성을 단순 명료하게 표시해 둔 작품이다.

작가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로 이 땅에 남고 싶은가를 절실하게 그리고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나는 이 작품 하나로 그녀 내면의 갈등이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고 미칠 듯 가슴 아팠는가를 인지한다. 

마치 1980년대 뉴욕을 휩쓸었던 뉴페인팅이나 쟝 미쉘 바스키아의 화폭처럼 그의 화면 속에는 배설적인 메시지가 없을 뿐, 그들이 공유했던 본질적인 삶의 언어와 감출 수 없는 격정은 동등하다. 

허승연 작가
허승연 작가

그럼에도 허승연은 당대의 작가들과는 느낌이 다른 철저하게 개인적 감정에 충실한 메시지로 현재에 이르렀다.

물론 거울 속에 자신의 초상과 현실을 중첩 시키는 테크닉은 결코 특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 기술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메시지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화법은 허승연에게 유익한 기법이 되고 있다.

낯선 이국땅에 체류하며 젊은 청년작가로 살아온 그 냉혹한 현실의 고뇌와 갈등이 이제는 그림일기가 되어 우리에게 공감의 울림을 전해주고 있다.  

그녀 작품에 진정한 가치는 인간 본연에 고뇌의 모습과 표정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그만의 언어로 드러낸다는 사실, 아니 진실에 있을 것이다.

또한 이따끔 현실의 풍경을 절묘하게 다른 풍경과 오버랩 시키며 드러내는 맛도 간과 할 수 없는 그녀만의 매력이다.

인물의 형태를 지나치게 변형, 왜곡하는 생략의 화법이 다소 서툴고 낯설기도 하지만 그녀가 고백하듯 “그것은 온전히 스스로가 경험 하거나 느낀 자전적 일들의 기록이기에 작업속 인물들 대부분은 자화상의 변형이거나, 혹은 나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인물과 그와의 관계에 대한 주관적 해석” 이란 발언에 주목한다면 그것은 그리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여전히 허승연의 독창적인 말 걸기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암호나 코드로 다가 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씩 자세히 그녀의 비밀스런 코드를 따라가 보면 그녀의 발언은 의외로 솔직하지만 가슴 저미듯이 아프게 다가온다. 

現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우리가 그녀의 작품에 더욱 주목하고 집중할 필요가 있는 이유이다. 그가 경험하고 느끼고 체험하는 모든 모티브가 회화적인 언어로 화폭에 등장하는 것을 그녀는 스스로 감각의 의인화이자 회화 안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나름의” 존재들로 규정한 바 있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생생하게 혹은 격정적으로 부활하는 나름의 존재들, 그렇다 이것이 그녀의 작품이 우리들에게 찌릿하게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인 이유이다. 나는 그녀가 홀로 외롭고 전투적으로 싸웠던 시카고와 뉴욕시절의 예술작업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가 너무나 인색했음도 첨가하고 싶다. 

그에게 “회화”는 개념적으로 해석되는 매체가 아닌, 본능적이며 직접적인 감각이 격렬한 소통을 하는 도구라는 자신의 고백을 믿는다면, 그의 작품들은 더욱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우리들 마음을 촉촉하게 흔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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