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①] 30년째 미뤄둔 협약 비준…이번에는?
[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①] 30년째 미뤄둔 협약 비준…이번에는?
  • 남정호·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5.0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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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가입 이후 30년째 비준되지 못한 ‘결사의 자유·강제노동금지’ 협약
‘핵심협약 비준’ 공약 건 文…노동계-경영계 이견에 노사정 합의는 결렬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공무원노조특별법 폐지 및 대통령 약속이행 촉구 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효자치안센터 앞에서 열린 ‘공무원노조특별법 폐지 및 대통령 약속이행 촉구 결의대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국제노동기구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 등 각계각층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국은 ILO 핵심협약 4개 분야 가운데 ‘아동노동금지’, ‘차별금지’ 등 2개의 협약에 대해서만 비준하고 있다. 노동계를 중심으로 나머지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협약에 대한 비준도 이뤄져야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하게 제기되고 있으며, 정부에서도 이에 대해 검토 중이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비준 조건을 내걸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핵심협약 비준이 ‘흥정의 대상’이 아니라며 조건 없는 비준을 주장하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더욱이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기념총회에서 기조연설자로 공식초청 받으면서 6월까지 핵심협약 비준을 마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투데이신문>은 ILO 100주년을 앞두고 한국의 ILO 가입 이래 협약 비준 상황과 이번 핵심협약 비준을 둘러싼 갈등 및 입장차,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 가능성과 국회 입법 상황에 대해 살펴본다.

【투데이신문 남정호·전소영 기자】 한국이 국제노동기구 ‘ILO’의 회원국이 된지도 어느덧 28년이 흘렀다. 그러나 한국은 반쪽짜리 회원국에 불과하다.

ILO는 노동조건 개선 및 노동자 생활수준의 향상을 목적으로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수행해야 할 의무사항인 핵심협약 비준을 규정하고 있다.

이중 한국은 4개 분야 8개의 핵심협약 가운데 ‘아동노동금지’와 ‘차별금지’ 등 2개 분야에 대해서만 비준하고 있다. 1991년 ILO 가입 당시 4개의 분야 모두 비준됐어야 마땅하지만 국내법과 충돌하는 지점 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지금까지 미뤄져 왔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한국의 노동권은 국제사회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으로, 핵심협약 비준을 통해 끌어올려야 한다는 지적을 계속해 왔다.

그러나 국내 사정은 여전히 복잡하다. 노동계와 경영계는 여전히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꾸준하게 무조건적인 핵심협약 비준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영계에서는 ILO 핵심협약의 내용이 우리나라의 실정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비준을 위해서는 관련 국내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올해 6월 10일 ILO 설립 100주년을 앞두고 이를 둘러싼 노동계와 경영계의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선 후보 시절부터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낸 문재인 정부에서 어떤 결단을 내리게 될지 국내외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ILO는 무엇인가

ILO는 1919년 설립된 노동문제를 다루는 국제연합(UN) 산하 전문기구로,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적 노동보장을 목표로 한다.

ILO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의해 창립됐다. 산업혁명 이래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 침해가 극심해졌고 이로 인한 사회 갈등도 점점 커져갔다.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진행될 무렵엔 유럽 각국에서 노동입법 문제가 사회 주요 이슈로 대두됐다. 국가 간 무역이 증가하면서 어느 한 국가만 노동조건이 개선돼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국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국제노동기준이 설정돼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비로소 ILO가 탄생했다.

이에 따라 ILO는 1944년 필라델피아 선언에 기초해 노동자의 국제적 보호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다. 필라델피아 선언에서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지속적인 발전에 필수적이다’라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람은 경제발전을 위한 도구나 단순 보호대상이 아닌 주체가 돼야한다 것이다.

ILO 헌장 전문에서도 1일 및 1주당 최장 근로시간의 설정을 포함한 근로시간 규정, 노동력의 공급조절, 실업 예방, 적정 생활급 지급, 직업상 발생하는 질병·질환 및 상해로부터의 근로자 보호, 동등한 가치의 근로에 대한 동일 보수 원칙의 인정, 결사의 자유 원칙의 인정, 직업교육 및 기술 교육 실시 등을 통해 정의와 인도주의, 세계의 항구적 평화를 확보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9월 4일 청와대에서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9월 4일 청와대에서 가이 라이더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지금까지의 핵심협약 비준 논의

지난해 3월 기준 ILO 회원국은 187개국으로, 한국도 이 중 하나다. ILO는 1998년 노동에서의 기본원칙 및 권리에 관한 국제노동기구 선언에서 ‘결사의 자유’(제87호, 제98호), ‘강제노동금지’(제29호, 제105호), ‘아동노동금지’(제138호, 제182호), ‘차별금지’(제100호, 제111호)로 총 4개 분야 8개 협약으로 구성된 ‘핵심협약’을 회원국이 수행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의무사항으로 제시한다.

그러나 한국은 결사의 자유에 관한 기본협약들을 전혀 충족하지 못해 가입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1991년 UN 회원국이 되면서 ILO 헌장 비준에 의한 자동가입을 통해 우회적으로 ILO의 회원국이 될 수 있었다.

현재 한국은 4개 분야 핵심협약 가운데 아동노동금지와 차별금지 항목만 비준하고 있으며,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는 비준하지 않고 있다. EU의 27개국 모두 8개의 협약을 비준하고, OECD 34개국 중 28개의 회원국이 8개의 협약을 비준한 것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은 상대적으로 뒤쳐진 상태라고 평가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선 이후 국정 5개년 계획에도 이 같은 내용을 포함시켰고 ILO 100주년을 맞이하는 2019년에 맞춰 핵심협약 비준을 이뤄내겠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과거 여러 정권에서도 핵심협약 비준을 목표했었다. 故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6년 한국이 OECD에 가입하면서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고, 故 김대중 전 대통령도 당선 이후 ILO 대표단을 만나며 핵심협약 비준의 뜻을 내비쳤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도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서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달성하지 못했다.

이처럼 전 정부에서도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핵심협약 내용이 국내법과 충돌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협약에 어긋나는 국내법 개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핵심협약 비준에 난항을 겪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조속한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영계에서도 비준 자체에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단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5가지 조건을 수렴해달라는 주장이다. 이는 비준으로 노동계의 권한이 강화됐을 때 이를 대응하기 위한 경영계의 대비책으로 해석된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사·정으로 구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를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하고자 했다. 42차례의 회의 끝에 경사노위 공익위원회가 권고안을 냈지만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 만족하지 못하며 결국 노사정 합의는 결렬에 이르렀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집행위원이 지난 9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갈 길 바쁜 핵심협약 비준

국제사회는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수차례 촉구해오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6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ILO 100주년 기념총회의 기조연설자로 공식 초청됨에 따라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압박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한국의 핵심협약 비준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EU는 한·EU FTA 위반을 주장하며 한국 정부를 압박해오고 있다. EU는 이른 시일 안에 한국 정부가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 분쟁 해결 절차에 돌입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4일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집행위원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산업통상자원부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이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EU는 서한을 통해 “선진국이자 OECD 회원국인 한국은 국제무역의 주도국이자 본보기다. ILO 핵심협약에 나와있는 원칙에 대한 책임을 감당하면서 경제발전과 무역이 노동권을 존중하고 촉진하는 것과 함께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노동체제를 ILO 협약에 일치시키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타당한 일이다. 기업은 책임기업관행에 관한 기준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며 “EU는 기업이 노동기본권 등 책임기업관행을 준수하도록 정한 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및 인권점검실천 의무 관련 지침을 수립,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무역관계는 상품과 서비스 거래만 의미하는 게 아니라 국제노동기준과 같은 관련 의제와 연관된 가치와 약속에 관한 것이다. 이런 약속은 FTA 정당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국 정부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한다. 만약 이 우려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EU는 다음 단계(전문가패널)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 다음달 9일 서울에서 진행될 8차 한·EU 무역위원회 전까지 앞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증거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EU가 제시한 기한으로부터 20여일 가까이 지났지만 핵심협약 비준에 관한 구체적인 그림이 나오지 않고 있어 EU 제재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점점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만약 전문가패널 단계까지 들어설 경우 한국의 평판이 국제적으로 손상될 뿐만 아니라 국가 신임도도 떨어질 거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ILO도 핵심협약을 둘러싼 한국의 갈등 상황에 대해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한편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을 기점으로 한국의 노동권에 긍정적 변화가 일거라는 기대를 보내고 있다.

이상헌 ILO 고용정책국장은 지난달 7일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ILO 핵심협약 미비준은) 밀린 숙제”라며 “ILO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기업경쟁력에 대한 우려가 많은 듯하다. 하지만 ILO에서 오랜 기간 진행한 실증연구에 따르면 단결권과 단체행동권 강화는 무역이나 고용·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일부 연구는 오히려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유럽은 무역문제를 경제의 문제만이 아니라 도덕·가치의 문제로 본다. 단순히 물건을 거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물건을 생산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하느냐에 관심도가 높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국장은 “한국의 ILO 가입 이래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수세적이었는데 이번에 대통령이 연설이 이뤄지면 좀 더 당당하게 국제노동 문제에도 의제설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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