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희생자 유족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29일 여순사건 첫 재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 및 시민단체로 구성된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29일 여순사건 첫 재심 공판준비기일이 열린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준엄한 심판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948년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처형된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첫 재심이 열렸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아)는 29일 장모씨 등 3명에 대한 내란 및 국권문란 사건 재심 첫 공판준비기일을 열었다.

이번 재심은 지난 2013년 희생자 유족 장경자씨와 故 이모씨 등 3명이 재심을 청구한 지 8년 만에 열리게 됐다. 장씨는 이 사건 재심청구인 중 유일한 생존자다.

재판부는 심리를 시작하기 전 “이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이 반드시 풀어야 할 아픈 과거사”라며 “사건이 일어난 지 71년이 지났고 재심을 청구한 지도 8년이 지나 유족들에겐 너무나 길었던 통한의 세월이었다”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재심 개시를 결정한 대법원의 결정문을 정독하고 검토했다”며 “대법원도 여순사건을 민간인이 희생된 비극적인 집단학살사건이라고 판단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형사재판이 요구하는 최소한의 절차와 증거가 없고 사형선고 판결문조차 남아있지 않아 현행법상 진실규명이 얼마나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희생자들에 대한 사죄와 배상, 명예회복을 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라며 “희생자와 유족에게 책무를 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대법원의 결정으로 재심이 진행되는 역사적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재심으로 진실이 밝혀지고 희생자의 억울함이 없도록 책임감 있게 재판에 임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당시 피고인에게 어떤 이유로 사형이 선고됐는지 알아야 판결의 정당성을 밝힐 수 있는데 이 사건은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고 명령서만 존재해 심판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경우 공소가 기각되지만 절차적 문제로 기각되는 것은 실체적 진실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희생자들의 억울함이 해명되도록 당시 군법 재판 자료 등 자료확보에 노력할 것이며 재판부도 진실에 접근할 수 있도록 소송지휘를 해 달라”고 밝혔다.

재심청구인을 대표한 김진영 변호인은 “공소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더라도 피고인의 죄명인 내란죄의 실체를 밝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심청구인 3명 중 장씨를 제외한 2명이 사망했기 때문에 재판이 같이 진행되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재심을 청구한 장씨는 “법정에서 아버지의 명예를 비롯해 수많은 여순사건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며 “남아있는 유족들이 살 날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을 빠른 시일 내에 마쳐달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오는 6월 24일 오후 2시 2차 공판준비기일을 열어 숨진 재심청구인 2명에 대한 재판 진행절차를 심리할 계획이다.

한편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여수·순천 지역에 주둔하던 14연대 군인들이 제주 4·3사건을 진압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명령을 거부하면서 일어났다. 이 전 대통령은 10개 대대 병력을 동원해 진압을 명령했다.

여순사건 희생자 장모씨 등 3명은 진압군이 14연대를 진압하고 순천을 탈환한 뒤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체포돼 22일 만에 군사재판에 넘겨져 사형선고를 받고 곧바로 사형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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