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경제 양대 축, ‘공정거래법‧상법개정안’ 제동
재계‧야당 ‘기업 옥죄기’ 반발, 논의조차 안돼
정권 중기‧총선 국면, 법안 표류 장기화 예상

국회 본회의장ⓒ뉴시스
국회 본회의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문재인 정부가 경제 정책 핵심으로 내세운 공정 경제가 좀처럼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현 정부는 시장 경제가 기울어졌다고 판단에 기업의 견제 기능 강화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공정경제를 위한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이 대표적인 공정경제 법안으로 꼽힌다. 하지만 재계와 야당의 시장 자율성을 해칠 것이라는 우려에 좀처럼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추진된 법안은 올해 상반기를 지나는 시점에도 여전히 평행선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 가치관에 따른 이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치권이 이미 내년 총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쟁점 법안의 표류는 장기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다시 수면 아래로

이번 정부 공정경제 정책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38년 만에 이뤄지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이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지난 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제18회 공정거래의 날‘ 기념행사에 참석해 “공정경제 국정과제의 체감성과에 기여하기 위해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역량을 집중하는 동시에 시장 정착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바람과는 달리 공정위가 지난해 11월 30일 제출한 개정안은 현재 국회 문턱에서 멈춰서 있는 형국이다. 상법 개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논의가 있었지만 선거제 개편과 고위공직자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이슈에 밀려 현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지 4개월만인 지난 3월 29일 국회 상임위(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안건 상정은 됐지만 심사는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은 강력한 대기업 규제안을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대기업 규제 기준이 되는 기업집단 지정기준을 현재 자산총액 기준 10조원에서 명목GDP 0.5%로 변경한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기준도 상장과 비상장사 구분 없이 규제대상 기업을 총수일가 지분 20% 이상으로 확대하는 동시에 지금까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던 자회사(50% 초과 지분보유)까지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전속고발권 일부 폐지와 함께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순환출자 규제 강화 등도 핵심 내용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뉴시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뉴시스

하지만 사실상 대기업 옥죄기 아니냐는 야당과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는 지난해 말 개정안 제출 이후 지금까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지만 부정적인 입장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주요 입법 현안에 대한 경제계 의견’을 통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바 있다. 상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해선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불확실성 증대가 우려된다는 입장이다.

이에 지난해 대한상의는 국회에 전속고발제 폐지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간 이견 발생 시 조정 방안과 고발 남용 방지책 마련을 건의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와 관련해서는 기업의 내부거래 특수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상의는 당시 의견서를 통해 “지주회사는 본질적으로 자회사 지분 보유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이번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지주회사의 자회사까지 확대 적용키로 한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로 총수의 지배력이 낮아지는데 따른 경영권 공격이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과도한 형사 처벌로 이어져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공익법인과 총수일가 지분을 합쳐 의결권을 15%까지만 인정하겠다는 제한 규제도 기업 경영권 확보 차원에서 재계가 개정안에서 꺼리는 대목이다.

상법 개정안, 갈 길 먼 기업 지배구조 개편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중점을 둔 상법 개정안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지난 1월 법무부가 마련한 상법 개정안은 현재 20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번 상법 개정안은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의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다중대표소송제를 비롯해 전자투표제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 의견 독립성을 위해 한 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다른 임원과 불리 선출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이 주요 내용이다.

소수 총수를 중심으로 권한이 집중된 국내 재벌 지배구조에 대해 손을 대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상법 개정안을 통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제1야당인 한국당의 반대로 법안 상정이 가로막혀있다. 한국당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아 국내 기업이 해위 투기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상법 개정안은 2018년 이후 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심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뉴시스
박상기 법무부 장관ⓒ뉴시스

재계 또한 상법 개정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이 기업 경영권 위협하고 있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국내 주요 기업들의 경영권이 해외 악성 투기자본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로 행동주의 펀드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소송 공격이 거세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중대표소송제를 독일이나 프랑스, 중국 등 대다수 국가가 법으로 도입하지 않고 있고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도입한 것 또한 대만, 인도, 터키 정도에 불과하다며 글로벌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이 외에도 경제민주화 또는 공정경제 관련 법안으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금융소비자보호법 개정안, 대리점거래 공정화법 개정안 등이 있다.

답답한 정부, 돌파구 마련 고심

하지만 공정경제 분야 핵심인 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과 상법 개정안이 정체되면서 나머지 법안 추진 동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 또한 공정경제 관련 법안이 번번이 제동이 걸리면서 일단 합의 가능한 것부터 추진하자는 시도도 엿보인다.

상법 개정안 논의가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법무부는 재계 설득 총력전에 나섰다. 우선 4개의 주요 내용이 단번에 국회를 통과하기 어렵다고 보고 재계 반대가 거센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잠시 미뤄두고 다중대표소송제와 전자투표제를 중심으로 협의의 돌파구를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재계의 설득 작업은 좀처럼 진전이 없어 보인다. 법무부는 재계와 합의안을 도출하기 위해 지난달부터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상장사협의회 등 재계 3단체와 여러 차례 모임을 가졌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실상 재계 동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올해 상반기 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던 법무부의 계획이 지켜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는 김상조 위원장 또한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야 의원이 발의한 4개 분야별 공정거래법 개정안 중에서 재계와 야당이 공감하는 혁신성장과 법 집행 절차 분야부터 먼저 처리될 것”이라며 일괄이 아닌 부분 개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우선 법집행절차 투명화 분야 등 비쟁점 사안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복안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과감한 개혁을 요구했던 진보진영에서의 ‘반쪽짜리 개혁’ 또는 ‘공정경제 후퇴’라는 지적이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현 정부의 핵심 지지층인 진보진영에서는 정권의 힘이 강한 집권 초기 개혁 입법을 강하게 추진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미 중반기에 접어든 시점인데다 이미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갈등이 최대치에 달한 현 시점에 관련 법안 통과는 더욱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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