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재난대응 매뉴얼’ 요구 국민청원
“매뉴얼·대피훈련 등 모두 비장애인 기준”
정부 “장애인 특성 반영한 매뉴얼 마련 중”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강원도 고성군에서 시작된 산불이 동해안 일대로 번져 수많은 피해를 내던 지난 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애인 재해 대피요령을 활성화 해 달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스스로를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고 밝힌 이 청원자는 “큰 화재에도 대피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장애인, 노약자분들을 생각하니 눈 앞이 캄캄해진다”고 운을 뗐다.
청원자는 지난 2017년 규모 5.4의 지진이 포항을 강타했을 때도 같은 내용의 청원을 올렸다며 “일반 초·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지진대피훈련을 할 때 ‘교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으라’거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천천히 내려가자’는 등 적합한 대피요령을 배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에게 적합한 대피요령을 찾아도 부족할 뿐 아니라 따로 찾아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장애인 대피요령이 안내되지 않았다”며 “장애인들은 재난상황에도 아무 조치도 못하고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난상황에서 장애인이 배제돼선 안 된다”며 “재해에 대한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장애인들에게 적합한 ‘장애인 재해 대피요령’ 매뉴얼 마련과 교육을 활성화 해 달라”고 청원했다.
“장애인, 재난대응 훈련서 배제”
위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재난 대피 훈련, 안내는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돼 있다. 학교에서 이뤄지는 재난대피훈련도 장애학생은 받지 못하고 있다. 실제 재난상황이 닥친다면 장애인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국가재난안전포털의 지진국민행동요령 등 재난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탁자 아래에 들어가 몸을 보호하라’거나 ‘계단을 이용해 밖으로 대피하라’는 등의 안내가 돼 있을 뿐 장애인들이 자신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안내돼 있지 않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장애인차별철폐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대피훈련 자체가 비장애인 중심으로 진행된다”며 “장애인은 재난대피훈련에서 전반적으로 배제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방청에서 안전점검을 하는 것 말고는 장애인 관련 매뉴얼이 거의 없는 상태”라며 “관련된 매뉴얼이 없다보니 특수학교에서는 대피훈련 자체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에서는 이제야 장애인의 재난대피 매뉴얼 관련 논의를 시작하고 있다”며 “지진이나 화재 발생 시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지침이다. 휠체어 이용자 들 이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어떻게 대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행정안전부 관계자는 “지난 2017년 행안부, 보건복지부, 교육부 등 9개 관계부처 합동으로 장애인 특성을 반영한 재난·안전 관리와 안전 교육·훈련을 강화하는 ‘장애인 안전 종합대책’을 마련한 바 있다”며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현재 기존 국민행동요령을 장애인 대상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이 외에 지자체나 각 기관의 장애인 대상 지침을 마련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도 이제는 지진으로부터 안전한 나라가 아니다. 또 지난 겨울에는 전국 곳곳에서 크고작은 산불이 많이 일어났다. 이런 상황에서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마련된 재난대응 매뉴얼만으로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없다. 장애인들의 안전 확보를 위해 정부의 빠른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