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동네에 있는 아파트 단지 옆을 걸었다. 인도와 아파트 단지의 경계를 따라 얕은 잔디 둔덕이 길게 나 있다. 둔덕은 여러 나무와 식물들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잔디 위의 풀과 꽃들을 보며 길을 걷는데 웬 팻말이 달린 말뚝 하나가 리듬을 깨고 툭 꽂혀 있다. 팻말에는 “이곳은 길이 아닙니다.”라고 큼지막하게 써 있다. 아닌 게 아니라 팻말 아래에는 인도와 아파트 사이를 잇기라도 하듯 좁은 길이 나 있다. 아파트 단지에서 만든 팻말인 줄 알았는데 구청이름이 박혀 있다.

녹색 잔디 위에 황색 맨흙이 슥 그어져 있으니 보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 아마 아파트 단지 사람들이 정해진 입구로만 드나들면 빙 둘러 가야 하니까 짧게 다니느라 지름길이 생긴 모양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걷고 있는데 얼마 못 가 다른 지름길을 또 나 있는 걸 봤다. 이 아파트 단지에는 아파트와 인도를 잇는 통행로가 별로 없는 듯했다. 

처음엔 사람들도 참 어지간하다 생각했다. 다니기 불편한 건 알겠는데, 누군가 애써 심은 잔디를 얼마나 무심하게 여겼으면 바리캉으로 정수리 밀어 놓듯 저리 길을 냈을까 싶었다. 팻말의 주인이 구청인 걸로 봐선 아마 잔디 둔덕은 아파트 소유가 아니라 구청의 소유인 듯하다. 그렇다면 잔디와 풀들은 세금으로 심은 공공의 재산일텐데, 사람들이 그걸 제멋대로 훼손하는 셈이 된다. 

그런데 그게 아파트 주민들의 잘못으로만 생각되진 않았다. 저 정도로 사람들이 다니면 아예 제대로 된 계단을 만들어 두는 게 낫겠다 싶다. 친구들이 사는 이런 저런 아파트에 가 보면 단지마다 사잇길들이 꽤 있다. 가만 보면 처음엔 그리로 출입구를 낼 생각이 없었는데 하도 사람들이 다니니까 쇠 울타리를 자르고 임시방편인 듯 계단과 간이 문을 달아 둔 곳들이 많다. 잔디가 구청 소유라면 차라리 공간 사용에 대한 분담금을 합의 보더라도 그 곳에 적당한 길을 내면 될 것을, 굳이 길이 아니라는 팻말을 꽂아가며 서로의 몸과 마음을 불편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길은 한번 나면 거스를 수 없다.

길이란 애초에 길이 아닌 곳이다. 원래 잡풀과 나무로 우거진 곳을 짐승이나 사람이 자주 다니다 절로 길이 난다. 길이 생기는 건 두가지 이유다. 첫째는 목적지로 가는 거리가 가장 짧은 동선인 경우다. 둘째는 다니기 가장 수월한 지형이라 자주 선택하는 경우다. 보통은 이 두가지가 섞여서 길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누군가 엉뚱한 곳에 억지로 길을 만들어도 위의 두 이유로부터 벗어나면 있던 길조차 다시 초목으로 덮여 야생으로 돌아간다. 

길이 나는 건 막을 수 없고 한 번 난 길은 되돌릴 수 없다. 길이 나야 할 곳은 반드시 길이 난다. 거기엔 끝끝내 이어지고야 마는 숙명의 힘이 있다. 일단 길이 나기 시작하면 그 앞은 무참하게 헤집어지고 거슬리는 것들은 말끔히 치워진다. 그래서 ‘길을 내다’, ‘길들이다’ 같은 표현을 접할 때 마다 그 이면의 근엄한 무게를 느낀다. 사람은 산을 깎고, 다리를 만들고, 터널을 뚫으면서까지 숙명이 가리키는 곳에 의지의 끈을 잇는다. 비록 사람이 원해서 사람이 하는 일이지만, 마치 숙명의 지휘를 받아 이행하듯 개척해 나간다. 

사람들이 만드는 역사의 길도 그러하다. 역사의 길이 만들어지는 건 거스를 수 없다. 민중의 흐름이란 마치 길을 내듯 숙명적이어서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한 집단이 아무리 방향을 틀려고 해도 곧장 직진한다. 과거의 궤적을 부정하고 당대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미래의 목적지를 거부하는 모든 것들은 역사에 길이 날 때 치워져 왔다. 

지금의 한국사회는 수십년간 쌓여온 노폐물들을 체외로 배출해야 하는 숙명 속에 있다. 민심은 이를 강력히 요구한다. 한국의 발전에 기여해 온 바는 있지만, 우리사회의 계층구조는 오랜 세월 사회적 병리로 고착해버려 오히려 모두의 안위를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법관이 법을 무시하고 권력이 법 위에 서는 게 자주 받아들여져 왔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개개인의 권리보다 더 중히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한 과거의 부스러기들을 털어내는 일은 지금의 역사가 내는 길이다. 이미 길이 나기 시작했으므로 거스를 수 없다. 

여야 정당들은 공수처 법안과 선거법 개정 등의 사안에 큰 뜻에서 합의를 했다. 역사 속 우리가 마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유 한국당은 이를 저지하는 중이다. 그러면서 독재타도니 헌법수호니를 외치면서 국회법을 무시하고 물리력을 썼다. 자신들의 뿌리집단이 저질러 온 독재와 반민주 반헌법의 역사를 되레 남에게 뒤집어 씌워 부정하고, 잘못된 구습과 병폐를 고치자는 민심의 흐름을 거부하는 것은 역사의 길을 가로막는 것이다. 모두가 바라는 미래의 목적지로 가자는 당대의 숙명을 거스르는 일이다. 

사람들은 가장 짧고 수월한 동선을 알아봤다. 길이 나기 시작했다.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해봤자, 그곳은 이미 길이다. 길을 길이 아니라고 하는 게 이미 ‘길이 아니다.’ 새로 나는 길 앞에서 반드시 치워지고야 마는 것들일 수록 눈에 띄게 크고 무성하다. 그리고 치워져 쓰러질 때 반드시 큰 소리가 난다. 자유 한국당은 길을 낼 건지, 아니면 길에서 치워질 건지 이제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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