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②] ‘선비준’이냐 ‘선입법’이냐…갈리는 의견
[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②] ‘선비준’이냐 ‘선입법’이냐…갈리는 의견
  • 남정호·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5.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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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비준하고 입법 촉진시키자”…‘선비준-후입법’ 주장하는 노동계
선 긋는 정부 “입법사항 관한 조약, 대통령 재가만으로 비준 안 돼”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세계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세계노동절 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전소영 기자】 현재 한국이 국제노동기구 ‘ILO’(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핵심협약 가운데 미비준하고 있는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비준 문제와 관련해 현행 국내 관계법과의 충돌이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금지 등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국내법상 노동관계제도로는 △공공부문의 단결권 범위 △기업별노조 중심 체계에서 비롯된 실업자·해고자의 노조 가입문제와 설립신고제도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에 관한 근로시간 면제제도 △파업에 대한 처벌 및 기타 통제와 형벌 위주의 법 제도 등 노동관계법령 전반에 퍼져 있는 제도들이 거론된다. 또한 비군사적 대체복무와 강제노동 문제 등 노동규율 영역 밖에 있는 제도들 역시 거론되고 있다.

이처럼 ILO 핵심협약의 취지에 반하는 제도가 광범위한 상황에서 ‘먼저 비준을 통해 향후 입법을 촉진하자’는 ‘선비준-후입법’ 방식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국내 노동법의 전반적인 체계 변화를 가져오는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선입법-후비준’ 방식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는 형국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ILO 핵심협약과 현행 관계법의 충돌

ILO 핵심협약 가운데 현재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것은 총 2개 분야, 4개 협약이다. 세부적으로는 ‘결사의 자유’ 분야에서 87호(결사의 자유와 단결권의 보장 협약)와 98호(단결권과 단체교섭권 협약), ‘강제노동금지’ 분야의 경우에는 29호(강제노동협약)와 105호(강제노동철폐 협약)다.

현재 이 2개 분야의 ILO 핵심협약 비준에 대한 주요 쟁점으로는 △비준에 필요한 법개정 사항(범위) △비준 시기 △비준 방식 등이 제시되고 있다.

특히 비준에 필요한 법개정 사항과 관련해서는 노조 및 노동관계조정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병역법, 형법 등 광범위한 현행 관계 법령과 핵심협약 사이의 충돌 문제가 있다.

결사의 자유와 관련된 87호와 98호 협약은 노조 설립과 운영 보장, 단체교섭권 보장, 쟁의행위를 포함한 단체행동권 보장 등을 포함한다. 이에 저촉되는 국내 관계법상 제도로는 △노조설립신고제도 △노조전입자에 대한 급여지급을 금지하는 근로시간 면제제도 △실업자·해고자에 대한 노조가입 제한 △교섭대표노조가 아닌 소수노조의 교섭권 제한 △법률을 통한 임원자격·조합원 한정과 조합 임원의 임기 제한 △인정 범위가 넓고 유지수준이 매우 높은 필수유지업무제도 등이 꼽힌다. 또한 △공무원 노조의 설립단위 제한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설립 제한 △공무원·교원의 교섭창구 단일화 강제 등도 문제가 되고 있다.

강제노동금지와 관련된 29호 협약은 △의무 군복무 △시민적 의무를 수행하는 공무 △교도소 내 강제노동 △비상시의 강제노동 △소규모 공동체의 의무 업무 등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 금지를 원칙으로 한다. 29호 협약을 보충하기 위해 마련된 105호 협약은 △정치적 의견이나 정치·사회·경제제도에 대한 견해와 의견표명 △경제발전을 위한 동원 노동 △노동규율에 대한 수단 △파업참가에 대한 제재 △인종·사회·민족·종교적 차별대우 수단으로서 강제노동이 이용돼선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제노동금지와 관련된 29호와 105호 협약과 국내 관계법상의 충돌 문제에서는 △대체복무제도 △징역형을 중심으로 한 재소자 노동 △파업참가자를 포함한 정치범·사상범에 관한 처벌 등 강제노동 등이 쟁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또한 파업에 대한 처벌 및 기타 통제와 형벌 위주의 법 제도도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선입법-후비준 vs. 선비준-후입법…제시되는 2가지 방법론

이와 함께 비준 방식을 두고도 ‘선입법-후비준’과 ‘선비준-후입법’ 등 2가지 방법론이 대립하고 있다.

선입법-후비준 방식은 핵심협약 내용과 충돌하는 국내 관련법을 개정한 뒤, 핵심협약을 비준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국내법령과 국제법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규범충돌을 예방할 수 있다. 때문에 선비준-후입법 방식을 택할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정부의 핵심협약 비준 이후와 국회의 비준 동의 이전에 발생할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노동법령의 성격상 사회적 합의가 쉽지 않고, 노동법령의 제·개정의 내용과 방향 자체뿐 아니라 선입법의 대상 법령을 확정하는 단계부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힌다.

이에 반해 선비준-후입법 방식은 정부가 먼저 핵심협약을 비준하고, 이에 따른 국내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보완입법을 촉진시키자는 방법이다. 비준된 국제조약은 1년 뒤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발생한다. 이 1년 동안 핵심협약과 충돌하는 국내 관계법에 대한 보완을 마무리하자는 방식이다. 이 같은 선비준-후입법 방식은 협약 비준에 소요되는 국내 절차를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현재 노동계는 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할 수 있는 이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협약이 국내법령과 충돌되는 경우, 법제처, 차관회의 및 국무회의 심의 결과를 확정할 수 없고, 국회 비준 동의로 넘어갔을 경우 국회의 논의 과정이 지연되거나 중단될 가능성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고용노동부 김대환 국제협력관이 지난 4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고용노동부 김대환 국제협력관이 지난 4월 1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뉴시스

‘선비준’에 선 긋는 정부

현재 정부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경우에는 대통령의 재가만으로 비준이 가능한 것이 아니라며 노동계의 ‘선비준-후입법’ 방식에 대해 불가 입장을 밝힌 상태다.

고용노동부 김대환 국제협력관은 지난 4월 17일 브리핑에서 “양대 노총 등에서는 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선비준 절차 추진을 요구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동부는 그동안 노동계에서 주장해온 선비준-후입법 방식에서 ‘선비준’의 의미에 대해 △조약(협약) 비준권은 대통령에게 있기 때문에 국회 비준 동의 없이 ‘대통령 재가’로 ILO 핵심협약 비준하는 것 △국회의 비준 동의를 거쳐 ILO 핵심협약을 우선 비준하고 이후 관련법을 개정하는 것 등 두 가지로 구분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조약(협약) 비준권이 있지만 예외적으로 국내법과 상충해 법 개정이 필요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비준에 대해서는 국회가 동의권을 갖는다. 때문에 이 경우 국회 동의는 대통령이 조약을 비준하기 전에 이뤄져야 하므로,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의 경우 대통령의 재가만으로 비준이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게 노동부의 설명이다.

그러면서 그간 ILO에서 우리나라 노조법 등이 결사의 자유 협약에 위반된다는 권고를 수차례 한 점 등을 고려할 때 결사의 자유 협약은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으로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 협력관은 “대통령이 비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이 협약과 상충하는 법 개정 내지 국회의 비준 동의가 필요하다”며 “이 경우 정부가 법 개정에 앞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할 수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국회 동의가 있어야 비준이 가능하기 때문에 정부의 비준동의안 제출만으로 조약 비준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노동부는 일단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논의와 국회 논의 진행 상황을 더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김 협력관은 “입법을 위해서는 공감대가 필요한데, 결사의 자유 협약과 관련한 쟁점들은 이해관계자 이견이 상충되는 상황”이라며 “정부는 경사노위를 통한 노사정 논의를 지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국회에서도 한정애 의원안, 김학용 의원안, 추경호 의원안 등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기에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도 있다”며 “이런 노사정 논의와 국회 논의를 지켜보면서 비준 방식에 있어서 어떤 방식을 취할지는 제반상황을 검토 후 결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노사 간 협의가 진전이 없을 경우 법 개정을 위해 정부가 먼저 비준동의안 초안을 마련해 제출하는 방법을 옵션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내비쳤다.

이 같은 정부 입장에 대해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는 두 방식 모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선입법이 보다 현실적인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승욱 교수는 “선비준이나 선입법 둘 다 국회 동의를 받아야 된다는 점에 대해선 노동계나 정부나 같은 입장”이라며 “ILO 핵심협약과 국내법이 상충되는 게 명확하기 때문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건데, 상충되는 국내법이 있는 상황에서 법을 고치지 않고 핵심협약 비준에 동의를 받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 현실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부 입장이 맞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단 핵심협약과 국내법이 상충은 되는데, 법은 어떻게 고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현재 국회가 현실적으로 동의를 해주겠느냐는 현실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한다”며 “협약 비준의 필요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노동계의 주장도) 이해가 가는 바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겠느냐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비준과 입법을 동시로 진행하는 게 제일 현실적이라 본다”며 “상충되는 입법의 개정내용을 국회에 보여주고, 협약비준동의를 함께 구하는 것이 유일한 방향이지 않을까 싶다”고 부연했다.

반면, 선비준을 하더라도 핵심협약 비준에 따른 효력이 발생하는 1년 사이에 입법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순천향대학교 법학과 조경배 교수는 “노동계는 선입법의 경우, 현재 국회 지형에서 입법이 될 리가 없다며 정부가 과연 그럴(핵심협약 비준) 의지가 있는지 의심하는 것 같다”며 “노동계에서는 정부가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맡기려는 것 자체가 좀 의심스럽게 보는 것으로, 정부가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먼저 제출하고, 주도적으로 입법해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하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선비준-후입법의 경우 비준된 핵심협약과 현행 관계법상 충돌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국제조약은 양자간 조약이 아니라 다자간 조약이라 내용 자체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돼있고, 비준하더라도 바로 효력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1년 뒤부터 효력이 생긴다”며 “그 사이에 법안을 개정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느냐. 정부가 주도적으로 비준동의안을 내고, 이를 통해 국회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돼 효력이 발생까지 1년의 여유 동안 국회에서 입법을 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참고자료

<ILO 핵심협약 비준의 쟁점>(김근주, 노동리뷰, 2017)
<강제노동에 관한 핵심협약 비준 논의의 쟁점>(김근주, 노동리뷰, 2017)
<ILO 결사의 자유 기본협약 비준과 당면과제>(윤애림, 노동리뷰, 2017)
<ILO 핵심협약 비준의 의미와 노동법·제도적 과제>(조경배, 노동사회, 2018)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시민사회의 과제>(신수정, 노동사회,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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