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 옥시 본사 앞 무기한 농성 돌입
피해단계 구분 철폐 및 3·4단계 피해자 지원 해결 촉구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옥시(RB코리아) 본사 앞 설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시민분향소 ⓒ뉴시스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옥시(RB코리아) 본사 앞에 설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시민분향소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정부로부터 사실상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인정을 받지 못한 40대 환자가 폐섬유화로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유족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옥시 본사 앞에서 시민분향소를 차리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가습기살균제 피해단계 구분 철폐와 3·4단계 피해자 지원 해결 등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폐렴 증상으로 강동경희대병원에 입원했던 故 조덕진씨가 폐섬유화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는 가습기살균제 4단계 피해자였다.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등에 따르면 조씨는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에 걸쳐 가습기살균제 ‘옥시싹싹 뉴 가습기당번’을 사용했다. 2016년 간질성 폐렴 및 폐섬유화 진단을 받은 조씨는 환경부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신청을 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조씨에 대해 피해자 4단계 판정을 내렸다.

가습기살균제를 함께 사용한 조씨의 어머니도 2012년 간질성 폐렴으로 사망해 피해자 신고를 했지만 2018년 피해구제계정만 인정받았다. 조씨의 아버지도 같은 해 천식으로 피해구제계정을 인정받았다.

정부는 2017년 만들어진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가습기피해구제법)’을 토대로 피해자 지원을 하고 있다. 피해구제가 가능한 폐 질환은 ‘소엽중심성 폐 섬유화를 동반한 간질성 폐 질환’으로 피해자 인정 범위가 매우 제한적이다. 이 밖에도 천식과 태아 피해 등도 피해자 인정 질환으로 본다.

환경부의 피해구제위원회 산하 폐질환조사판정전문위원회는 피해자의 폐 섬유화 상태와 병력, 습관 등을 토대로 피해단계를 나눈다. 피해단계는 가능성 거의 확실(1단계), 가능성 높음(2단계), 가능성 낮음(3단계), 가능성 거의 없음(4단계) 등 총 4단계로 구분된다.

1~2단계 피해 판정자의 경우 요양급여, 장의비, 간병비 등을 구제급여 대상에 포함된다. 반면 3~4단계 피해 판정자의 경우 가습기피해구제법 등에 근거한 특별구제계정을 토대로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이렇다보니 3·4단계는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꼴이라는 게 관계 단체의 해석이다.

피해자들은 현행되는 가습기피해구제법만으로는 사실상 피해자로 인정되지 않는 3·4단계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및 구제의 한계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조씨의 유족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조씨의 사망을 계기로 지난 2일부터 여의도 옥시(현 RB코리아) 본사 앞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한 시민분향소를 차리고 무기한 농성을 시작했다.

이들은 피해단계 구분 철폐 및 3·4단계 피해자 지원 문제 해결 등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다. 아울러 옥시 등 모든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들에게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 및 납득 가능한 수준의 배·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 김기태 공동운영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미세먼지만 들이마셔도 전신질환에 가까운 질병이 발생하는데 하물며 작은 방에서 24시간 동안 독성물질을 들이마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은 어떻겠느냐”며 “소엽중심성 폐 섬유화와 천식만 피해자로 인정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판정기준을 개정해 보다 많은 피해자들이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며 “특별구제계정과 구제급여 대상을 구분하지 말고 모두가 구제급여 대상이 될 수 있도록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무기한 농성을 예고했지만 오는 9일까지 1차적으로 반응을 볼 예정”이라며 “농성을 더 이어갈지 여부는 이후 상황을 보고 판단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씨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보면서 현재까지 집계된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망자’ 수는 1403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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