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③] 활로 잃은 핵심협약 비준 논의…앞으로 전망은
[갈길 먼 ILO 협약 비준③] 활로 잃은 핵심협약 비준 논의…앞으로 전망은
  • 남정호·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5.13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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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월간 논의 끝에 중재안 내놓은 경사노위
노동계-경영계 반발에 안개 속 노사정 합의
패스트트랙 후폭풍에 녹록지 않은 국회 상황
비준 위해선 정부가 보다 주도적인 역할 해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 ⓒ뉴시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대회의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전소영 기자】 현재 한국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된 논의는 노사정으로 구성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에서 진행되고 있다.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지난해 7월부터 지금까지 9개월여간 비준 문제에 대해 뜨거운 논쟁을 벌여왔다.

그간 노동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꾸준히 내온 반면, 경영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으로 노사 간 힘의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핵심협약 비준의 전제조건으로 사업주의 방어권 마련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경영계는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제도 개선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쟁의행위 찬반투표절차 보완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 5가지 조건에 대한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경영계가 제시한 조건이 ILO 핵심협약 비준에 위배되고, 노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노조 공격권’이라고 비판하며 조건 없는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이 같은 노사 간 극심한 이견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은 지난달 15일 쟁점 사항에 대한 중재안을 내놨지만, 노사 모두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으며 관련 논의는 합의에 이르지 못한 채 경사노위 운영위원회로 넘겨진 상태다.

좁혀지지 않는 노동계-경영계의 입장차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와 관련해 노동계-경영계와 논의를 이어온 경사노위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는 지난 9개월여간 42차례에 걸쳐 협의를 이어갔으나, 노사 간의 이견 차만 확인하고 결론을 내지 못했다.

결국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 공익위원들은 지난달 15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노조의 사업장 점거 금지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처벌 금지 등 노사 간 쟁점 사항과 관련해 중재안인 공익위원안을 내놨다.

이 같은 공익위원안에 대해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라는 평가를 내놨다.

노동계는 공익위원안에서 경영계의 요구안을 일부 수용한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통해 경총의 ‘노조 공격권’ 요구가 포함된 공익위원안은 개선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며, 과연 경사노위 공익위원이 ILO 협약 취지에 따르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질타했다.

입법에 앞서 우선 비준해야 할 ILO 핵심협약은 기본 가운데서도 기본인 노동기준으로, 경사노위 공익위원이 노사의 타협을 요구하거나 행정‧입법 조치를 핑계로 비준을 미룰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최소한 ILO 협약 취지에 맞는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민주노총 김형석 대변인은 “경사노위에서 합의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ILO 핵심협약을 거스르는 경영계의 요구안 때문”이라며 “경영계가 주장하는 방어권은 사실상 노조에 대한 공격권으로 판단된다. 경영계의 요구안은 ILO 핵심협약에도 위반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이 OECD 가입 당시 ILO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했지만 이를 미뤄왔고,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며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국내법과 충돌하는 문제는 국회에 비준동의안을 넘겨 비준을 완료하고 이후에 국회가 이에 맞춰 법 제도를 바꾸는 방향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핵심협약은 ILO의 200여개의 협약 중 최소한의 것”이라며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을 더 이상 경사노위와 국회, 야당에 미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경영계는 노사 간 입장을 중립적이고 공정하게 다루지 못한 데 유감스럽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같은 날 당초 ‘노동계 요구사항(1단계)-경영계 요구사항(2단계)-1·2단계 요구사항 병합(3단계)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으나, 2단계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편향적이고 파행적으로 운영됐고, 이에 따라 공익위원회의 논의 결과도 노동계의 입장에 경도되는 결과가 나왔다고 비판했다.

경총 노사관계법제팀 관계자는 “공익위원 안은 노사 간 합의가 되지 않은 내용”이라며 “경영계의 요구안들이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은 노사관계 평가가 최하위 수준이다. 이런 노사관계 상황에서 단결권만 강화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 의심스럽다”며 “단체교섭과 쟁의에 있어 노사관계 선진화를 위한 기반이 함께 마련돼야 부작용과 부정적 측면이 최소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측면에서 단체교섭과 쟁의에 있어 필수적인 개선사항을 경영계에서는 5가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며 “단순히 단결권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한 비준할 것이 아니라 경영계의 요구안도 받아들여주는 것이 노사관계도 바람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노동계와 경영계가 모두 공익위원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히면서 해당 논의는 결론을 내지 못한 채 경사노위 운영위원회로 넘어갔다.

경사노위 관계자는 “공익위원 합의안을 운영위에 이송한 상태에 있으며, 아직 그 안에 대한 처리를 어떻게 할지를 다루는 운영위 회의가 열리지 않고 있다”며 “조만간 운영위 회의가 열려야 (해당 안이) 본위원회로 넘어갈지, 아니면 의제별 위원회에서 다시 더 논의할지를 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차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사정 합의기구인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건 사실상 어려워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결국 경사노위에서 노사 간 이견을 줄이지 못한 채 핵심협약 비준 문제 논의를 국회로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국회 본회의장 ⓒ뉴시스

논의 시작조차 쉽지 않은 국회 상황

경사노위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일 노동절을 맞아 협약 비준을 위한 골든타임이 지나기 전에 ILO 핵심협약 비준이 이뤄져야 한다며 야당에 협력을 당부하고 나섰다.

권미혁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ILO 핵심협약 비준을) 계속 미룰 경우 유럽연합(EU)이 한-EU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을 이유로 한국에 다양한 경제적 불이익을 초래할 상황에 직면해있다”며 “진영 논리와 무관하게 ILO 핵심협약 비준은 빠르게 이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현재 국회의 상황으로 미뤄볼 때, ILO 핵심협약 비준과 관련한 국회의 논의 역시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 관련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현재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탄력근로제 확대 등 굵직한 현안 관련 논의에서도 여야 간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첨예한 대립이 불가피한 ILO 핵심협약 문제가 사회적 합의 없이 넘어올 경우, 국회에서의 합의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김학용 환노위원장은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국내 노동관계법 개정 논의와 관련해 “환노위에서 당분간 정식의제로 삼기 어렵다”며 선을 그은 바도 있다.

김학용 위원장은 지난달 18일 대한상의 고용노동위원회 초청 간담회에 참석해 “대통령께서 6월에 ILO 창립 100주년 행사를 가시기 때문에 그 안에 해결했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겠지만 시간에 쫓겨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며 “(ILO 핵심협약 비준은) 최저임금을 뛰어넘는 핵폭탄급 이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조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과 동일하게 기업하기 좋은 환경도 같이 만들어서 딜이 돼야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다”라면서 비준을 위한 사전입법활동과 사회적 합의 등 제반 여건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더구나 현재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 정국 이후 장외투쟁에 나서는 등 여야 간 극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 내 논의 자체가 시작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협약 비준 전망은

이처럼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에 대한 경사노위나 국회의 논의가 어려운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6월 10일 ILO 설립 100주년 기념총회에 기조연설자로 공식 초청되고, EU가 한-EU FTA 협정 위반을 주장하며 분쟁해결절차에 나서고 있는 등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압박은 국내외적으로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ILO 핵심협약 비준 전망에 대해 관련 전문가들은 한-EU FTA 협정 위반이 되는 상황에서 어찌 됐든 ILO 핵심협약을 비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는 점에 방점을 찍었다.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승욱 교수는 “대통령 국정과제이기도 하고, 한-EU FTA와 관련해 핵심협약 비준 의무가 사실상 우리나라에 부과됐기 때문에 비준은 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 공약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이명박 정부 때 그렇게(ILO 핵심협약 비준) 하기로 FTA 협정을 체결했다”며 “이 FTA 협정에 근거해 EU가 우리나라의 핵심협약 비준 문제로 분쟁해결절차 마지막 단계까지 온 상황에서 핵심협약 비준하지 않기는 힘들 것 같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선 정부가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순천향대학교 법학과 조경배 교수는 “정부가 이니셔티브(주도권)를 취하지 않는다는 게 지금 노동계의 불만이다. 합의가 될 수 없는 경사노위에서 자꾸 합의하려는 것에 대해 정부가 비준할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며 “정부가 주도적으로 비준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논의하지 않으면 결국 (핵심협약 비준은) 성사되기 어렵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를 둘러싼 노사 간 이견차가 극심하고, 파행 중인 국회에서의 논의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국내외적 압박은 거듭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핵심협약 비준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부의 역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향후 ILO 핵심협약 비준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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