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 하태임

일찍이 모리스 드니는 1890년 “회화는 전쟁터의 말이나 누드의 여인 혹은 어떤 일화이기 이전에 본질적으로 일정한 질서 아래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라고 정의했다. 

무엇보다 회화는 색채로 둘러싸인 하나의 그림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왜 20세기 미술가들은 수백 년간 회화가 세계에 봉사했던 구상회화에서 등돌려 이해하기 어려운 색채와 형태의 예술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지각된 현실을 미술로 옮겨야 하는 것이 미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Une Impression,  300×200 cm, Acrylic on Canvas, 2008
Une Impression, 300×200 cm, Acrylic on Canvas, 2008

<색띠 그림 > 혹은 <컬러 밴드>로 잘 알려진 하태임의 추상작품도 이러한 추상회화의 근원적인 인식에서 출발한다. 

나는 하태임의 작업이 아마도 다음 두 가지 영향에서 출발했을 것이라 추정한다. 하나는 잭슨 폴록의 뜨거운 액션 페인팅과 마크 로스코의 숭고한 색면 추상의 위대함이 굽은 색띠를 만들었으며, 두 번째는 비구상 화가로 유명했던 아버지 하인두 화백의 추상 DNA의 절대적 영향일 것이라는 점이다.  

하태임은 입버릇처럼 언제나 ”예술은 소통“이라고 발언했다. 그 소통을 위해 예술의 가장 기본적이고 원초적인 도구가 무엇인가라고 할 때 그것을 문자와 언어라고 응답했다.

이러한 반증은 그의 작품 유형을 세 가지로 세분할 때, 2000년 초기 캔버스 위에 한글과 알파벳을 그려놓은 일련의 작품에서 소통을 향한 그의 언어 코드임이 증명된다. 

아마도 그것은 일찍이 유학한 프랑스 미술의 영향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그의 언어코드를 점진적으로 궤도 수정했다. 진정한 소통은 그런 직접적인 언어로 드러내는 표현이 아님을 부친의 추상작품에서 발견했을 것이라 가정한다.

비록 그녀가 어린 시절 아버지 작업실 서재에서 본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이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작가는 이미지화한 문자를 색으로 지워가면서 비로소 회화는 문자 보다 훨씬 더 강력한 메시지가 색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Un Passage No.171026, 130x130cm, Acrylic on Canvas, 2017
Un Passage No.171026, 130x130cm, Acrylic on Canvas, 2017

”무심한 듯 한 붓의 제스처, 반복된 굽은 등, 괴팍하지 않은 순한 색깔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됩니다.“ “분홍색, 초록색, 파란색, 검은색, 노란색이 특히 노란색은 자연이 주는 선물 같은 색이 아닌가 해요.” “저는 컬러를 쓰면서 그 컬러 한테 위로를 많이 받아요.“

이 같은 작가의 자전적 발언을 보면 작가가 그림을 통해서 치유를 얻고, 그 행위로 소통한다는 결론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녀의 작업은 곧 그녀 자신을 향한 말 걸기이며, 그림은 곧 자신을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un passage
▲un passage

내면을 들여다보는 통로, 그것이 곧 그녀의 작업인 셈이다. 그가 회화의 테마를 <통로 un passage>라고 상정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가치와 의미를 지닌다. 

어쨌든 그가 작업해온 20여년의 작업은 기본 매개체인 알파벳 문자를 통해서 풀어보는 일과 그 문자의 의미가 사라진 후 2000년 초중반 색채에 집중하면서 색띠를 화폭에 병렬시키는 화풍으로 변화했다.

지우기에 집중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지우기와 그리기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콤포지션과 색채의 띠들이 확장과 색면으로 만나면서 보기 드문 그만의 색면 하모니가 탄생된다.

그녀의 그림은 이제 칸딘스키처럼 색채의 감정으로 교감하고 소통하며, 색면의 교차와 올림으로 그리는 행위의 누적이 곧 회화라는 사실에 닻을 내렸다. 

작가는 ”매일의 일기를 쓰듯 물감을 올리고 화폭 위에 색띠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친 일상 속에서 마치 한차례 태풍이 지나간 뒤 고요함이 찾아오듯 잠시 숨을 고르며“ 그녀만의 색띠와 대결하는 이상적인 예술가적 삶을 영위하면서 하테임의 컬러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컬러는 늘 겹쳐진 층들의 형태로 맞물리거나 교차하며 어우러져 색색의 오케스트라 소리를 내며 막을 내린다. 아마도 작가는 이 순간을 ”내가 다다르고 싶은 평온하고 잔잔한 엔딩으로 막을 내린다“고 했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동시에 깊은 희열의 순간을 웅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Un Passage No.172007, 130x162cm, Acrylic on Canvas, 2017
Un Passage No.172007, 130x162cm, Acrylic on Canvas, 2017

우리가 이제 주목할 것은 그 색띠들이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화음과 투명한 붓질이 주는 순결한 색채의 힘, 즉 영혼의 카타르시스와 생명력에 관해 물어볼 차례이다. 마치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눈물 흘리게 만드는 명상의 에너지와 울림을 그의 작품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두말할 것 없이 그러기 위해 누에고치가 실을 뽑듯 하염없이 쉼표도 없이 색실을 뽑아내는 그의 고통은 아름다운 창조를 위한 진주 같은 눈물과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확신컨대 지친 육체로 다양한 컬러의 아름다운 비단 실을 뽑아내는 작가가 하태임인 것은 틀림없다. 

▲최근 제작한 입체 작품 모델
▲최근 제작한 입체 작품 모델

어쩌면 하태임은 폴 고갱이 내적인 현실과 감정에 대한 묘사에서 “마음으로 그려라” 했던 신념을 그가 가졌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한편으로는 감정 표현에서도 지적인 통제가 필요해 색채가 정확한 윤곽선,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들만으로 회화의 세계를 이룩한 로베르 들로네나 장 헬리옹처럼 그런 탁월한 재능을 이미 선천적으로 부여받았을 수도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무엇보다 하태임은 색을 통한 추상적 언어의 메시지, 색다른 조형적 경험과 컬러밴드에서 보이는 독창성으로 유행의 시류나 아우라를 쫒지 않는 그녀의 흔들리지 않는 작업이야 말로 하태임이 가진 최고의 덕목이며 이것이 그를 빛내고 유명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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