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사진제공 =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서울미래유산’, 중소기업벤처부 지정 ‘백년가게’ 등으로 선정된 서울 중구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터줏대감 ‘을지OB베어’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다.

을지OB베어 강호신 사장,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빈곤사회연대, 서울지하철노동조합, 중구문화예술거버넌스, 참여연대 민생팀, 민생경제연구소, 향린교회 사회부 등으로 구성된 ‘을지OB베어의 상생을 위한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지난 8일 을지OB베어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임대인과의 분쟁으로 폐업 위기에 처했다. 임대인은 대화를 통해 상생의 길에 나서달라”고 촉구했다.

지난 1980년 12월 3일 영업을 시작한 이래 39년간 을지로 골목을 지키며 지금의 노가리골목을 일궈냈다. 서울시는 그 공로를 인정해 지난 2015년 이 곳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12월 호프집으로는 유일하게 중기부에서 지정하는 ‘백년가게’에 선정됐다.

대책위에 따르면 을지OB베어의 분쟁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6월경이다. 당시 임대임은 “더 이상 계약을 진행할 수 없다”며 재계약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계약이 만료되는 같은 해 10월 30일까지 가게를 뺄 것을 종용했다.

강 사장 등 임차인들은 임대인에게 ‘월세가 적으면 2배, 3배라도 올려주겠다’고 사정했으나 임대인 측은 이를 거부하고 계약이 만료되기 전인 그해 9월 명도소송 소장을 보냈다.

대책위는 “임대인 측 변호인은 소송 과정에서 ‘을지OB베어 자리에 커피숍을 들일 계획’이라고 변론했다고 한다”며 “노가리골목의 생태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주장임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당시 판사도 지적한 바 있는 내용”이라며 “이 골목에 있는 동종업계 업장이 들어오려한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제공 =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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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임차인인 을지OB베어 측은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현행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가법) 제10조 제2항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은 최초의 임대차기간을 포함한 전체 임대차기간이 10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는데, 이미 39년째 임차해 운영되던 을지OB베어는 아예 계약갱신요구권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맘상모 홍명기 공동운영위원장은 8일 기자회견에서 “궁중족발 사태 이후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조항(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2항)이 기존 5년에서도 적용받지 못한다”며 “사실상 상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가게”라고 지적했다.

이어 “백년가게를 말하는 사회가 정작 오래된 가게를 법으로 없애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임대인은 대화를 통해 상생의 길로 나가길 당부드린다”고 호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상공인특별위원회 전순옥 위원장은 “최근 노가리골목의 인지도 상승은 이 골목에서 오랫동안 장사해 온 상인들이 이뤄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중당 서울시당 백성균 사무처장도 “단순히 가게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잃게 되는 것”이라며 임대인의 상생을 촉구했다.

을지OB베어는 을지로의 노가리골목이라는 브랜드를 만들어낸 원조 가게다. 을지OB베어가 장사를 시작한 이후 인근의 인쇄골목, 철물점 노동자들이 이 곳에서 맥주와 노가리로 피로를 달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노가리골목이 형성됐다. 을지OB베어가 사라진다면 소중한 미래유산, 100년을 이어갈 가게를 잃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등 의원 16인은 지난 1일 상가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안은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기한을 삭제하고 임차인에게 특별한 귀책사유가 없는 한 계속해서 갱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맘상모 쌔미 활동가는 “백년가게 선정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걸림돌이 되는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 기한을 삭제해 계약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며 “법안 발의는 환영하나 국회가 멈춰있는 상황에서 논의가 될 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를 지키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상생의 길은 없는 것일까. 여야가 한 목소리로 외치는 ‘민생’이 공허한 소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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