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로 명성이 자자한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 제련소가 자리한 경북 봉화군은 영풍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석포제련소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다. 지역 경제 및 인근 주민들의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봉화군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영풍이 제련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를 자행하더라도 이를 입 밖에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역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석포제련소가 지역의 환경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수년째 제련소 가동 중단 및 폐쇄를 위해 영풍과 맞서 싸우고 있다. 허나 공화국이라는 수식어답게 영풍의 만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석포제련소는 버젓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총 6편에 걸쳐 석포제련소의 어두운 민낯을 파헤치고자 한다.

<연재 순서>

① 봉화군은 어쩌다 중금속에 점령됐나
② 영남인의 물그릇 ‘안동댐’도 중금속 비상
③ 하늘·땅·물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
④ ‘환경이냐, 생계냐’…깊어만 가는 주민 갈등의 골
⑤ 허술한 관리·감독 솜방망이 처벌까지…영풍 ‘환피아’ 논란
⑥ “카드뮴 공장 폐쇄” 영풍에 부정 여론 여전…해답은 ‘장항제련소’

안동댐 ⓒ투데이신문
안동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풍부한 수자원으로 ‘물의 도시’라고 알려진 경북 안동. 안동에는 높이 83m·제방길이 612m·총저수용량 12억4800만t 규모의 거대한 다목적댐 ‘안동댐’이 있다.

1976년 낙동강 하구 상류지점에 준공된 안동댐은 한때 영남인의 소중한 식수로 이용됐으며 현재는 농업용수와 휴양 및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티끝 없이 맑은 하늘 아래서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인 잔잔한 안동댐의 모습은 더할 나위 없는 절경이다. 그러나 안동댐의 고요함 뒤에는 무서운 민낯이 감춰져 있다.

낙동강은 호아지 연못에서 발원되는데 이로부터 약 30km 떨어진 지점에는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인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가 자리 잡고 있다. 석포제련소는 수십년째 낙동강 중금속 오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황지천으로 흐르는 황지연못 물은 석포제련소 인근을 거쳐 안동댐까지 유입된다. 때문에 안동댐 역시 중금속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하고 있다.

실제 안동댐 아래는 비소와 카드뮴, 납 등 중금속 성분이 섞인 1m 높이의 퇴적물이 쌓여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012년 정부는 안동댐에 쌓인 퇴적물 일부를 걷어내겠다는 5개년 안을 세웠다. 그러나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손도 대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4월 안동댐의 감춰진 그늘을 살피고자 경북 안동시를 찾았다. 이날 취재에는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이태규 회장과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 임덕자 공동집행위원장이 동행했다.

중금속 오염 때문으로 추정되는 붉은 끼 ⓒ투데이신문
중금속 오염 때문으로 추정되는 붉은 끼 ⓒ투데이신문

‘침전 저류조’ 안동댐의 실상은

이 회장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 창문 너머로 안동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이 회장은 “정말 멋지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잠시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시원하게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안동댐의 광경은 더욱 멋졌다.

지면과 가까워지는 가장자리에 중금속 오염 때문으로 추정되는 붉은 끼가 보이는 듯했으나 지난번 봉화군 방문 때보다는 심각하지 않아 안동댐 오염의 심각성이 짐작이 되지 않았다.

임 위원장은 봉화와 안동댐의 오염은 조금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봉화는 낙동강물이 계속 흐르기 때문에 유속에 중금속이 흘러내려가죠. 그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하는 거예요. 하지만 안동댐은 달라요. 석포제련소로부터 안동댐까지 약 95km 구간 중에 70km는 하천, 나머지 25km는 호수에요. 호수는 중금속이 흘러가지 않고 그대로 쌓이게 되잖아요. 지난해 조사 결과를 보면 댐 바닥에서부터 1m 이상 쌓여 있어요. 침전 저류조 역할을 하고 있는 거죠.”

이 회장은 와룡면 오천리 인근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자 농경지로 추정되는 땅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한때는 주민이 농사를 짓던 경작지로 활용됐지만 안동댐이 들어서면서 수몰지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안동댐의 저수율이 낮아 일부는 물이 빠져나가 잠기지 않은 곳이 남아 있었다.

물길이 나 있는 자리에 눈에 띄게 붉은 색 ⓒ투데이신문
물길이 나 있는 자리에 눈에 띄게 붉은색 ⓒ투데이신문

물에 잠기지 않은 곳으로 좀 더 가까이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 땅 곳곳에는 안동댐의 물이 졸졸졸 흐르는 물길이 나 있었다. 그런데 물길이 나 있는 자리는 눈에 띄게 붉은색을 나타냈다. 물이 흐르지 않는 땅과 비교해보니 그 차이는 더욱 확연하게 드러났다.

물이 빠져나간 자리의 땅의 상태는 더욱 심각했다. 땅 전체가 온통 붉은색으로 점령돼 있었다. 일부는 거품까지 들끓고 있었다.

옆 논에는 물이 고인 자리는 불그스름했지만, 물이 마르고 땅이 촉촉하게 젖어있는 곳은 까만색이었다. 이 회장이 나뭇가지로 땅을 파헤치자 펄처럼 새까만 토양이 드러났다. 이 회장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안동댐 중금속 영향이 크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부유물들은 물 아래 깔려있던 폐미(제련 후 남은 찌꺼기) 침전물들이 물이 빠져나가면서 위로 올라와서 생겼을 가능성이 높아요. 땅이 더 마르면 옆에 땅처럼 까맣게 되는 거고요. 여기뿐만이 아닐 거예요. 비가 오고 이것들이 강물에 흘러들면 결국 주민들의 식수가 되는 거죠.”

차를 타고 조금 더 이동한 곳에는 빈 낚싯배가 물 위에 동동 떠 있었다. 이 회장이 다급하게 손짓해 가보니 죽은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근래 물고기가 많이 살지도 않지만 간혹 발견되는 물고기마저도 이같이 죽어있거나 숨만 겨우 붙어있는 상태란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물에 사는 물고기들이 떼로 죽어나갈 뿐만 아니라 그 물고기를 먹은 백로와 왜가리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고 이 회장은 설명했다.

ⓒ투데이신문
이태규 회장이 폐미 침전물로 추정하는 까만 펄 ⓒ투데이신문

식수·농업용수 안동댐, 괜찮을까

이 회장은 중금속 위험이 결코 물고기나 철새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자며 도산면 서부리의 한 마을로 차를 돌렸다.

이 회장에 따르면 이 마을에는 암 환자와 중풍 환자가 유난히도 많다. 지난해 이 마을 사망자 12명 중에 8명이 암 환자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이곳에 사는 주민들이 중금속 오염된 안동댐 물을 수십년간 식수나 농수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서부리에서 40년간 사과와 고추를 재배하며 살아온 이명수(가명·73) 할아버지는 팔과 다리의 마디마디가 쑤신다고 했다. 최근에는 보행에 어려움을 느끼며 지팡이를 짚기 시작했다고 한다. 마을에는 할아버지와 같은 증상을 호소하는 주민들이 더러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할아버지는 언젠가 낙동강 물이 오염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다고 했다. 과거 동네사람들 중에는 낙동강에서 잡힌 물고기를 바로 잡아 회를 떠먹기도 했지만 이 같은 얘기가 들린 후에는 조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낙동강에서 폐사한 물고기들 <사진 제공 = 이태규 회장>

공대위 임덕자 위원장은 이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주민건강영향 조사가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민건강영향조사를 실시하고 주민들이 호소하는 건강상 문제가 중금속 중독에 의한 것인지 인과관계부터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임 위원장의 설명이다.

“중금속으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조업정지 조치를 받았는데 불과 1년 만에 불소 기준치 초과 사실이 적발됐어요. 말 그대로 (일부가) 적발됐을 뿐이지 평상시에도 중금속이 강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 물을 끌어다가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먹기 때문에 주민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맞죠.

안동시의 상수도 보급률이 82% 정도밖에 안 돼요. 특히 물이 많은 산간지역은 상수도 공급이 더딘데, 그러다보니 안동댐 주변에 상수도 공급이 시작된 건 불과 3~4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그럼 이전에 40여년 가까이는 석포제련소로 인해 오염된 물을 식수로, 생활용수로 사용해 왔고 주민들 몸에 중금속이 축척돼 있겠죠. 특히 카드뮴이나 비소는 혈액이나 신장 기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을 거라고 짐작되는데 안동시에서는 주민 건강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어요.”

석포제련소에서부터 시작된 중금속은 낙동강을 타고 흘러 안동댐으로까지 흘러들었다. 지금도 지역 주민들은 자신들의 몸에 중금속이 쌓여가는 것도 모른 채 안동댐 물을 농업용수로,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다.

안동댐 ⓒ투데이신문
안동댐 ⓒ투데이신문

안동과 봉화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공장이 자리 잡고 있어 직접적으로 연관이 큰 봉화 지역의 경우 석포제련소에 대한 지역 내 의견교류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반면 상대적으로 안동은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논란과 문제를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주민들을 더러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석포제련소가 안동 지역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미치고 있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보다 적극적인 지역 주민 간의 소통이 우선적으로 필요할 듯 보였다. 임덕자 위원장이 주민건강영향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미뤄 짐작해 본다.

고요하고 잔잔하게 흐르는 댐 물 아래 감춰진 어두운 그림자를 알리기 위한 안동댐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안동 전 지역 주민들에게 울리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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