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국내 최대 아연제련소로 명성이 자자한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 제련소가 자리한 경북 봉화군은 영풍공화국이라고 불릴 만큼 석포제련소로부터 받는 영향이 크다. 지역 경제 및 인근 주민들의 생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봉화군의 경제를 좌지우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렇다 보니 영풍이 제련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어떤 불법 행위를 자행하더라도 이를 입 밖에 내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다. 지역의 환경단체와 주민들은 석포제련소가 지역의 환경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고 있다며 수년째 제련소 가동 중단 및 폐쇄를 위해 영풍과 맞서 싸우고 있다. 허나 공화국이라는 수식어답게 영풍의 만행이 수면 위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석포제련소는 버젓이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총 6편에 걸쳐 석포제련소의 어두운 민낯을 파헤치고자 한다.

<연재 순서>

① 봉화군은 어쩌다 중금속에 점령됐나
② 영남인의 물그릇 ‘안동댐’도 중금속 비상
③ 하늘·땅·물 어느 하나 성한 게 없다

④ ‘환경이냐, 생계냐’…깊어만 가는 주민 갈등의 골
⑤ 허술한 관리·감독 솜방망이 처벌까지…영풍 ‘환피아’ 논란
⑥ “카드뮴 공장 폐쇄” 영풍에 부정 여론 여전…해답은 ‘장항제련소’

지난 5월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또 법령위반, 통합환경조사 실시하고 사업장 폐쇄하라’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 5월 21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영풍석포제련소 또 법령위반, 통합환경조사 실시하고 사업장 폐쇄하라’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강원도 태백에서 발원해 봉화, 예천, 안동, 대구, 부산을 따라 흐르며 식수나 농업용수로 활용되는 영남지역의 물그릇 ‘낙동강’.

강원 태백과 경북 봉화에 걸친,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풍석포제련소(이하 석포제련소)에서 무방비로 배출한 중금속 오염물질은 주변 토양이나 식생뿐만 아니라 낙동강까지 망가뜨리며 인근에 터를 잡고 사는 주민들의 건강에까지 적신호가 켜졌다.

강 상류에 위치한 석포제련소가 내뱉는 카드뮴과 비소, 아연, 크롬 등 각종 중금속은 물길을 따라 안동댐을 거쳐 강 하류에까지 흘러들며 고스란히 1300만 영남민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제련소 인근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에게서는 다른 지역 주민에 비해 다량의 중금속이 검출됐고, 강물을 끌어다 농업용수로 활동하는 낙동강 하류지역 주민들의 토지에서도 토지정화명령이 내려질 정도의 다량의 중금속이 확인됐다.

환경단체와 피해 주민들은 낙동강 수생태계와 주민 건강을 이유로 즉각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폐쇄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폐쇄는커녕 공장을 유지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증설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낙동강 상류, 제련소에 인접해 사는 태백시 주민들이다. 태백시 주민들이 이 같은 목소리를 내는데도 이유가 있다. 당장 공장이 폐쇄될 경우 일자리를 잃게 되며 생계 위기에 놓인다는 것.

환경과 생계를 두고 나뉜 지역 주민 간의 첨예한 갈등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중금속에 노출된 석포주민들

해발고도 약 600m 이상의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석포면 주민의 80% 이상은 제련소 인근 1km에 거주하고 있다. 2016년 환경부 산하 국립환경과학원은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산학협력단과 함께 이들의 건강영향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제련소에 노출됐다고 판단되는 석포면 주민 771명(평균 연령 61.2세)과 비교를 위해 제련소에서 남서쪽으로 30km 떨어져 영향을 받지 않는 물야면 주민 307명(평균 연령 67.0세), 총 1078명을 선정해 진행됐다.

우선 중금속 인체노출 조사 결과 석포면 주민의 소변에서 카드뮴 수치는 1.32 ㎍/L, 혈액 중 카드뮴은 1.36 ㎍/L, 혈액 중 납 농도는 4.05 ㎍/dL로 나타났다.

반면 물야면의 경우 각각 0.95 ㎍/L, 0.77 ㎍/L, 2.70 ㎍/dL 석포면 주민들이 물야면 주민보다 중금속 인체노출 정도가 눈에 띠게 높게 측정됐다. 게다가 카드뮴 0.38 ㎍/L, 혈중 납 1.94 ㎍/dL인 우리나라 평균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제련소 근무 경험과 주변 지역 거주 여부가 중금속 인체노출과 상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석포면 주민 중 제련소 근무 경험이 있는 주민을 제외했을 때 평균치가 중금속 인체노출 평균치가 낮아지며, 제련소 근무자를 제외한 조사대상 중 제련소와의 거리가 가까울수록 소변이나 혈액 내 카드뮴 수치와 혈액 내 납 농도가 높아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또 건강영향조사에서도 석포면 주민들이 물야면 주민들보다 천식이나 비염 결막염 등 각종 질환을 더 많이 호소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임상검사에서 신장 기능 이상소견이 보인 주민의 비율은 석포면 주민은 23.1%(161명), 제련소 근무 경험자를 제외하면 25.4%(95명)인 반면 물야면 주민은 17.0%(45명)였다.

간장 기능 이상도 석포면 주민은 13.8%(99명), 제련소 근무 경험자를 제외하면 12.4%(48명)이지만 물야면 주민은 7.9%(21명)로 집계됐다.

이 밖에도 피부염 소견자 비율도 석포면 주민은 피부염 8.0%(56명), 제련소 근무 경험자 제외하면 7.5%(28명)로 3.8%(10명)인 물야면 주민보다 높은 경향을 보였다.

환경단체가 카드뮴 등 중금속 오염에 열을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12년 일본 도야마현 진즈강 인근 지역에서 대량의 카드뮴 중독사건이 발생했다.

진즈강 상류 다카하라강에 자리한 미쓰이금속주식회사의 카미오카(신강)광업소가 선광 및 정련 과정에서 발생한 폐수와 폐광석, 광물찌꺼기 등을 강에 무단으로 방류했고, 이것이 하류의 진즈강까지 흘러들어 인근의 식수와 농작물 등을 오염시킨 게 원인이 됐다.

강물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체내에는 다량의 카드뮴 등 중금속이 쌓이기 시작했고 칼슘부족으로 인한 요통하지근육통, 고관절 개폐 제한, 보행 장애 등의 질환을 겪다 사망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1963년 이뤄진 첫 역학조사에서 51년간 사망자는 100여명에 달했고 이후 16년 동안 130여명의 환자가 추가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81명은 사망한 사실도 확인됐다. 이들의 발병 시기는 진즈강 하류가 카드뮴 등에 오염된 시점과 동일했다.

국내에도 카드뮴 중독 사례가 있다. 지난 2004년 마을 뒷산에 폐광이 된 구리광산의 흔적이 남아있는 경남 고성군 삼산면 병산마을에서도 주민들이 집단으로 카드뮴 수치가 높게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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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장 침출수 <사진 제공 =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공동대책위 임덕자 공동집행위원장>

제련소 폐쇄 둘러싼 ‘갑론을박’

이 같은 사례를 토대로 환경단체는 중금속 중독 사태가 낙동강 일대 주민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해 제대로 파악은 못하고 있지만 만약 피해 사실이 구체적으로 확인된다면 피해보상을 위해 적극 나서겠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한편에는 석포제련소 폐쇄 논란에 달갑지 않는 눈초리를 보내는 이들도 있다. 석포제련소와 생계 측면에서 밀접한 연관이 있는 주민들이다.

대체로 석포제련소가 밥줄과도 같은 상류지역 주민들은 생계 및 지역발전을, 상대적으로 제련소로부터 경제적 영향을 덜 받지만 피해가 상당한 하류지역 주민들은 생태계 회복과 건강을 내세우며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석포제련소 폐쇄 반대를 주장하는 석포면현안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석포제련소에 근무하는 직원은 1200여명으로 대다수가 경북도민이다. 뿐만 아니라 인근의 슈퍼마켓, 식당, 카센터, 이발소 등을 운영하는 2200여명의 주민들도 모두 석포제련소의 영향권 안에 있다.

국내 조선,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 전반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필수적인 기초 소재를 생산하는 석포제련소의 공장 가동이 중단되거나 폐쇄될 경우 주민들의 생계와 더 나아가 국내 제조업마저도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석포면현안대책위 관계자는 “낙동강 상류에는 석포제련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낙동강 환경오염의 책임이 영풍에게만 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제련소가 문을 닫으면 90%에 가까운 주민들의 생계가 위험해진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환경오염이 심각하고 주민들의 건강에도 좋지 않아 끝내 공장폐쇄나 이전을 고려해야 하는 경우라면 주민들을 위한 대책부터 마련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물론 환경도 중요하지만 수십년 동안 주민들의 생계가 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없애겠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폐쇄를 논하기 전에 주민 대책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와 낙동강 하류지역 등 일부 주민들은 석포제련소로 인한 환경오염과 이에 따른 주민 건강 위험이 가시화된 만큼 공장 가동 중단과 폐쇄만이 이 문제를 뿌리 뽑을 수 있는 길이라고 규탄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공동대책위 신기선 공동집행위원장은 피해를 많이 보는 주민, 피해를 덜 보는 주민간의 갈등이 아니라 석포면의 지역성 특성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위원장은 “과거 석포는 몇 가구 살지 않는 산골이었다. 그런데 제련소가 들어서고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형성됐고 석포면으로 승격했다. 만약 제련소가 없어지면 석포면이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엄청나게 큰 공장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에 완전 틀린 말은 아니다. 석포면 주민 90% 이상이 제련소로 인해 먹고 산다. 때문에 제련소에 문제나 불만이 있어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서 말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석포제련소를 둘러싼 갈등의 뚜렷한 해법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한치의 양보도 없는 줄다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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