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보건기구, 게임질병코드 도입 논의
30년 전 뉴스서도 오락기 중독 현상 보도
게임장애 및 중독 학술적 근거 부족해
게임활동, 뇌 학습 긍정적 영향 연구도
게임중독 관련 연구 한국, 중국이 주도
“문화의 문제는 의학 아닌 문화로 풀어야”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질병코드의 도입 결정을 눈앞에 두면서 특정 문화산업에 대한 탄압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세계보건기구가 게임질병코드의 도입 결정을 눈앞에 두면서 특정 문화산업에 대한 탄압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중독은 나쁜 것일까. 특정 대상 및 행위에 집중하고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투입하는 것을 반드시 질병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몰입은 어떠한가. 몰입과 중독의 경계를 우리는 어떻게 구분 지어야 할까.

최근 세계보건기구(WHO)를 중심으로 게임 과몰입을 질병화 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되자 국내 학계와 문화계의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게임 과몰입과 질병간의 상관관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특정 미디어를 지나치게 탄압하려 한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특히 다양한 사례의 과몰입 현상을 제치고 유독 게임만 질병코드를 도입 하려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그리고 묻는다. 음악을 하루에 6시간씩 듣는 사람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자전거를 8시간 타는 사람, 낚시를 10시간 하는 사람도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사람으로 간주해야하는가. 

이들은 지금은 권장되는 활동인 책 읽기가 중세시대 수사들에게는 일부 금지된 행동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화적 활동에 대한 부작용을 의학적으로, 병적인 것으로 낙인찍는 순간 개인에 대한 통제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투데이신문
문화연대와 국내 학계 및 문화계 인사들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5월 3일 토론회를 열었다. ⓒ투데이신문

5월 세계보건총회서 게임질병코드 도입 여부 논의

WHO는 오는 20일부터 열리는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게임장애에 따른 질병코드의 도입여부를 결정한다. 총회에서 도입을 확정하면 2022년 1월 1일부터 세계 각국 보건당국에 권고될 전망이다. 쉽게 말해 게임을 질병의 원인으로 규정할 근거가 생기는 것이다. 

게임장애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된 건 2013년이다. 그해 미국정신의학협회(APA)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 제5차 개정안’에 게임장애가 등장했다. 다만 당시에는 추가연구가 필요한 범주로 분류됐다. 

이후 WHO는 2018년 6월 18일, 국제질병분류 최신판인 ICD-11에 게임장애를 포함시켰다. 게임장애는 ‘정신적, 행동적 또는 신경발달적 장애’라는 대범주 안에 편입됐다. 세부적으로는 ‘물질사용이나 중독성 행동으로 인한 장애’의 일환으로 간주됐다.   

한국 정부도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부정하지는 않는 모습이다.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은 지난해 10월 11일 열린 국정감사에서 “WHO에서 확정적으로 게임장애 질병코드가 정해지면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적어도 보건복지부 차원에서는 게임질병코드 도입에 대한 입장정리가 된 모습이다. 

이보다 앞서 국회에서는 당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을 통해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 발의되기도 했다. 이 법안에서 게임은 알콜, 마약,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대상에 오를 만큼 그 유해성이 격상됐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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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의 사건을 거치면서 게임은 병인이 됐다”

게임을 문제행동의 원인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생각보다 짧지 않다. 이미 30여 년 전부터 공중파 등 주요언론을 통해 전자오락과 중독의 상관관계를 단정하는 기사들이 양산됐다. 

당시 뉴스에서는 ‘오락기 중독증세가 청소년들 사이에 빠르게 번지고 있다’라며 단순히 재미로 넘기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청소년 전문 정신과에 오락중독증을 호소하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고 보도하며 여타 병리적 중독증세와 구분을 두지 않았다. 

이 같은 경향은 2000년대 초반에 이르러 자살, 살인, 방화 등 강력범죄의 원인으로 게임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이어졌다. 가령 총기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게임중독여부를 수사하겠다고 밝히고 미디어가 제목을 뽑아 보도하는 식이다. 

특히 존속살인 사건의 경우 게임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게임 과몰입이 폭력행위로 이어진다는 가설은 아직 구체적으로 증명되지 않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연세대 커뮤티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세기말의 PC방, 2005년 ‘바다이야기’를 거치면서 게임은 불순한 무엇이 됐고 2000년대 몇 개의 사건을 거치면서 게임은 병인(病因) 혹은 살인무기가 됐다”고 말했다. 

게임중독 척도에 차용되는 킴벌리 영의 인터넷 중독 테스트 문항 ⓒ문화연대
게임중독 척도에 차용되는 킴벌리 영의 인터넷 중독 테스트 문항 ⓒ문화연대

게임중독 현상의 실체

그러면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은 객관적으로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일까. 윤태진 교수는 학술적 근거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게임장애라는 용어가 등장한 이후 게임중독 연구의 가시적인 진전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일하게 합의된 내용은 게임장애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다”라며 “게임 장애의 증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게임장애는 비디오게임 전체에 적용되는 것인지, 문제 행동은 다른 정신 장애에 의해 유발되는 것은 아닌지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게임중독 연구에 활용되는 진단도구 및 척도 자체에 대한 비판도 있다. 

실례로 연구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활용하는 척도는 미국의 학자 킴벌리 영(Kimberly Young)의 인터넷 중독 테스트(IAT, Internet Addiction Test)다. 이밖에는 GAS(Game Addiction Scale), CIAS(Chen Internet Addiction Scale) 등이 활용된다. 

하지만 IAT는 1998년에 만들어진, 벌써 20년이 넘은 진단도구일뿐더러 게임중독과는 무관한 질문들도 포괄하고 있다. 가령 IAT의 7번 문항은 ‘공부나 해야 할 일을 하기 전에 이메일부터 먼저 확인한다’인데 이는 게임중독과는 큰 관련이 없는 질문이고, 질문자체도 PC나 스마트폰이 일반화된 지금에서는 이메일 확인과 중독 증세의 상관관계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더욱이 통일된 척도를 통해 연구가 이뤄지지 않다보니 연구결과의 격차도 상당하다. 가령 2016년 한 연구에서는 게임중독의 유병률이 0.7%로 나타났지만 2014년 다른 연구에서는 15.6%라는 결과가 나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몇몇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게임은 뇌의 학습효과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거나 기억과 공간을 담당하는 회백질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게임은 정말 뇌에 악영향을 줄까

게임이 정말 뇌에 안 좋은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가 아직 과정 중에 있는 만큼 그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판단도 아직은 다양한 관찰결과를 들여다보며 유보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뇌과학자 다프네 바벨리에(Daphne Bavelier)는 게임의 긍정적인 효과를 강조한다. 그는 과도한 수준이 아니라면 비디오게임은 뇌의 학습활동에 유의미한 기여를 한다고 본다. 그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액션게임의 경우 ▲주의력의 방향을 조절하는 대뇌피질 ▲주의력을 유지해주는 전두엽 ▲갈등 해결을 관장하는 전측대상회 등에 좋은 영향을 준다. 이상의 세 가지 영역은 뇌의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부분이다. 

또 일반적으로 알려진 비디오게임을 많이 하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통념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는 설명이다. 바벨리에는 동일한 시력을 가진 사람 중에서 액션 및 슈팅게임을 하는 사람의 시력이 더 높게 나왔다는 결과를 밝히기도 했다. 

게임이용이 뇌의 회백질을 증가시킨다는 보고도 있다. 회백질은 기억형성·공간탐색 등을 담당한다. 이 연구는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진행해 과학잡지 ‘네이처’에도 실렸는데, 두 달 동안 하루 30분씩 닌텐도의 ‘슈퍼마리오64’를 즐긴 집단의 회백질이 증가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동연 교수는 “게임과 뇌 사이의 부정적인 영향 관계에 대한 보고서는 결론적으로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면적인 것이다”라며 “최근의 게임 뇌 이론은 과학적방법론에 입각한 객관적 검증을 통과하지 못해 가설로 분류됐고 수많은 반론들이 전 세계적으로 발표돼 유사과학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게임중독 연구를 지원한 기관들과 논문 수 ⓒ윤태진 교수
게임중독 연구를 지원한 기관들과 논문 수 ⓒ윤태진 교수

누가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욕망했나

게임중독 연구의 주요 지원기관이 한국과 중국의 정부기관이라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게임을 바라보는 문화적 특성이나 정책기조가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임장애 연구의 권위자인 미국의 심리학자 크리스토퍼 퍼거슨(Christopher Ferguson) 교수는 WHO의 게임질병코드 도입 논의에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 국가들의 압력이 있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실제로 게임중독과 관련해 가장 많은 연구논문을 지원한 곳은 중국의 자연과학펀드(NSFC)로 이들은 50편에 달하는 연구를 지원해왔다. 뒤를 잇는 기관이 한국연구재단, 한국 보건복지부, 한국 미래창조과학부 등인데 이들은 각각 35편, 23편, 17편의 게임중독 연구논문을 지원했다. 총 논문수로 본다면 한국은 91편으로 중국 기관으로부터 나온 85편보다 많았다. 

문제는 2013년 이후 발표된 대다수의 관련 논문들이 게임중독이라는 현상을 전제하고 진행된다는 점이다. 게임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이것이 의료화(Medicalization) 현상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의료화란 의학적으로 평가받을 필요가 없는 사안이 의학적 문제로 규정되는 과정을 말한다. 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바라보지 않았던 증상도 제도권 등을 통해 의학적 문제로 정의되면 질병 및 질환에 대한 평가가 생기고 차료의 필요성이 강조된다. 

저서 ‘어쩌다 우리는 환자가 되었나(the medicalization of society) 등을 통해 의료화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는 미국의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Peter Conrad)는 “의학적 문제를 지닌 모든 사례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특히 정신의학에서의 진단은 꼭 객관적 증상을 반영하는 지표라고 볼 수만은 없고 오히려 사회적·정치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 협상과 상호작용의 결과물”이라고 분석했다. 

일례로 동성애는 1990년 5월 WHO가 국제질병분류에서 삭제하면서 질병이라는 오명을 벗었다. 트랜스젠더 역시 최근에 이르러야 정신질환 범주에서 제외됐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콘래드가 이야기한 것처럼 의료화가 객관적 증상을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극명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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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학자들은 게임 과몰입의 원인으로 대상자의 우울과 불안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뉴시스

중독의 원인은 게임이 아니다

게임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게임을 대상으로 한 중독 또는 과몰입 증상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중독에 대한 연구가 아직 과정 중에 있는 만큼 객관적인 데이터가 쌓이기 전에 중독현상의 원인으로서 게임을 지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퍼거슨 교수 역시 게임 과몰입의 원인은 게임 자체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그는 불안 및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증상으로 게임 과몰입이 나타날 수 있지만, 게임이 다른 중독 증상보다 특별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가 거의 없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와 유사한 관점에서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요한 하리(Johann Hari)는 우리가 중독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은 틀렸다고 말한다. 그는 이 과정에서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예로 든다. 그가 인용한 캐나다 벤쿠버 대학의 연구에서는 고립된 쥐가 코카인에 탐닉하다 죽음에 이르는 결과를 반박하기 위한 실험을 준비한다.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쥐 공원’ 제공한다. 충분한 양의 치즈와 즐길 수 있는 색깔 공, 번식을 위한 다른 쥐를 함께 풀어 놓는다. 실험 결과 ‘쥐 공원’의 쥐들은 코카인을 건드리지 않았다. 고립돼 있을 때는 100% 남용률을 보이다가 행복하고 교류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자 0% 대로 떨어진 것이다. 이 같은 결과는 포르투갈 등 유럽의 정책실험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났다.  

이밖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도 주목할 만하다. 5년째 진행 중인 이 연구에서는 게임 과몰입을 중독으로 몰고 갈 근거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체부 콘텐츠산업과 박승범 과장은 “5년에 걸쳐 초·중·고·대학생 2000여명을 대상으로 게임이용자 연구를 진행했는데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과 과몰입 정도는 매년 변한다”라며 “5년 내내 과몰입 집단에 남아있는 경우는 1.4%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FMRI(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 촬영에서도 뇌의 구조에 있어 과몰입에 따른 변화는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었다”라며 “과몰입군의 청소년들은 삶의 만족도가 낮았고 학업 스트레스의 수준도 높았다”고 부연했다. 

대구카톨릭대학교 언론광고학부 박근서 교수도 이 같은 게임 산업에 대한 낙인찍기를 우려했다. 

박 교수는 “(게임질병코드 도입은) 개인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메카니즘을 갖는다는 위험성도 있다”라며 “왜 하필 게임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중독에 대한 척도 질문에 다른 분야를 대입하면 어떨까. 과몰입은 보편적인 문화적 현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만화에 대한 탄압과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제작하고 향유하는 계층이 서열상 하위계층, 어린 계층이라는 점 때문에 학무보, 교육권력, 정치권력이 타격하기 좋은 지점이다”라며 “문화의 문제는 문화로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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