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혜련 안-권은희 안’으로 복수지정된 공수처 설치법
수사대상·수사범위·기소권·처장 임명에서 이견 보여
여론, 공수처 설치에 찬성…기소권 없는 공수처엔 반대
흔들리는 4당 공조…패스트트랙은 국회 문턱 넘을까?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 회의장 앞에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연 기자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공수처 법안 수정안’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 회의장 앞에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이상민 위원장이 연 기자간담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당직자가 ‘공수처 법안 수정안’을 들고 있다. ⓒ뉴시스

권력형 비리 척결과 검찰권력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부정부패 사건과 관련해 끊이질 않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와 그간 실시돼왔던 개별특검이 국회 의결 과정에서 정치권의 타협과 정쟁의 산물이 될 수밖에 없는 등 한계를 노출함에 따라 본격화됐다.

이와 함께 개별특검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상설특검제와 특별감찰관제 모두 문제점을 노출하며 유명무실화됨에 따라 검찰개혁의 아젠다로써 권력형 범죄를 독립적으로 관할하는 특별수사기구 도입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 현재에 이르렀다.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사법개혁과 관련해 반발하던 검찰도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대립각을 여전히 유지하면서도 기소권 일부를 갖는 공수처 설치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상태다.

그러나 학계와 법조계를 중심으로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여전히 찬반 이견이 갈리고 있는 가운데, 최근 공수처 설치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됨에 따라 관련 논의는 다시 국회의 몫으로 넘어갔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4월 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법안이 선거제 개혁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됐다.

이 과정에서 패스트트랙 지정에 나선 여야 4당과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충돌했고, 국회 선진화법 도입 이후 사라졌던 ‘동물국회’가 재연됐다. 또한 바른미래당은 공수처 설치법과 관련한 내부 반발에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소속 위원의 사보임 문제 등으로 극심한 내홍을 겪었고, 결국 공수처 설치법은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의 안 2가지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최근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의 원내지도부가 교체되면서 여야 4당의 공조에 균열이 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공수처 설치법을 포함한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들의 운명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 설치법안의 주요 차이점 ⓒ투데이신문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의 공수처 설치법안의 주요 차이점 ⓒ투데이신문

패스트트랙 지정된 2개의 공수처법, 차이점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 설치법안은 민주당 백혜련 의원과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의 안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당초 관련 합의에 기초한 백혜련 의원의 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기로 했으나, 바른미래당이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당내 진통을 겪으면서 결국 권은희 의원의 안을 함께 공수처 설치 관련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했다.

두 안은 ▲수사대상 ▲수사범위 ▲공수처의 기소권 ▲처장 임명에 대한 국회 동의 여부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백 의원의 안은 수사대상인 고위공직자의 범위를 대통령, 국회의장, 국회의원, 대법원장,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헌법재판관, 국무총리, 중앙행정기관 정무직 공무원,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 공무원, 장성급 장교로 재직 중이거나 2년 이내 퇴직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 수사범위는 고위공직자 본인과 가족(배우자 및 직계비존속, 대통령의 경우에는 배우자와 4촌 이내 친족)의 특정 고위공직자 범죄로 명시하고 있으며,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 공무원의 경우에는 공수처가 직접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수처장 임명에 대해서는 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가 2명의 후보를 추천한 후 대통령이 1명을 지명해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반면 권 의원의 안은 공수처의 명칭을 ‘고위공직자부패수사처’로 하고, 현직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며, 수사 범위를 고위공직자 본인과 그 가족의 부패 범죄로 한정했다.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의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 행사에서도 20세 이상 국민 7~9명으로 구성된 기소심의위원회의 판단을 받도록 했다. 공수처장 임명과 관련해서도 인사청문회 이후 국회의 임명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주요 골자다.

이 같은 차이를 보이고 있는 권 의원의 공수처 설치법안과 관련해 백혜련 의원은 지난달 3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바른미래당에서도 내분을 무마시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권은희 의원 안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야 다른 당에서는 제가 냈던 안이 모두가 합의했던 안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번 내분으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조기 사퇴하고, 후임 원내대표로 공수처 설치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한 오신환 원내대표가 선출되면서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여야 4당 내 논의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기소권 없는 공수처, 결정적 문제”

현재 공수처 설치에 대한 여론은 찬성이 우세한 상황이다. 지난 3월 26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의 의뢰로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여론을 조사한 결과, 찬성 응답은 65.2%로, 반대 응답(23.8%)의 2배가 넘었다.(전국 19세 이상 성인 7918명에 통화를 시도, 최종 502명 응답. 응답률 6.3%.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를 참조)

다만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 응답자(332명,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5.5%p) 가운데 기소권 없는 공수처에 대한 평가에서는 반대가 59.4%로, 찬성(27.5%)의 2배가 넘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소권 없는 공수처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은 가운데,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2개의 공수처 설치법에 대해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검찰 권력의 통제와 권력형 비리 척결 측면 모두에서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수처 구성을 법조인으로 한정한 점 ▲보장된 수사관들의 임기가 짧다는 점 ▲검찰의 공수처 파견이 가능한 점 ▲공수처 조직이 지나치게 작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공수처의 가장 본질적인 속성인 독립성을 제대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권한 부분에서도 많이 축소돼 있을 뿐만 아니라 기소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아주 결정적인 문제”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이건 검찰에 종속된다는 측면도 있지만, 나아가 권력형 비리를 자기 의지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자기가 수사한대로 기소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소권이 검찰로 넘어가 버리면 거기서 어떤 바이어스(편향)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런 점에서 사실 양에 차지 않는 법안이지만, 없는 것보다 나은 조직이니까 그 법이라도 그나마 제대로 통과됐으면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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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설치법, 처리 전망은

현재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공수처 설치법은 최장 330일 후에 선거제 개혁안과 검경수사권조정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 위해선 아직 많은 난관이 남아있다.

우선 핵심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는 백혜련 의원안과 권은희 의원안이 모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됨에 따라 앞으로 두 안에 대한 협의와 조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수처 설치법과 관련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오신환 원내대표로 바른미래당의 원내지도부가 교체되면서 관련 논의에 난항이 전망된다.

또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의 본회의 표결 순서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22일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패스트트랙 관련 협의에서 패스트트랙 지정 안건의 본회의 표결 순서를 ‘선거법→공수처 설치법→검경 수사권 조정안’ 순으로 정했다.

즉, 선거제 개혁안이 본회의 표결을 통과해야 공수처 설치법도 통과될 수 있는 상황에서 선거제 개혁과 관련해 민주평화당이 의원정수 확대를 꺼내 들면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앞으로 선거제 개혁안과 관련된 논의의 진행에 따라 공수처 설치법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패스트트랙 지정을 이끈 여야 4당 가운데 3당의 원내지도부가 교체된 상황에서 이들의 결속이 지속될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번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내홍을 겪었던 바른미래당은 공수처 설치법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한 오신환 원내대표가 선출됐다. 이에 따라 패스트트랙과 관련해 바른미래당의 당론에 대폭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평화당 유성엽 신임 원내대표 역시 선거제 개혁안과 관련해 “반쪽짜리 연동형 비례제는 절대 안된다”며 의원정수 확대 문제를 꺼내 들었고, 이와 함께 선거제 개혁안 논의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 논의를 함께 진행할 것을 제안하면서 개헌 이슈가 정국의 블랙홀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정치평론가들은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선거제 개혁안 등에 대한 합의가 공수처 설치법안 통과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소장은 “(공수처 설치법이) 지금 선거법과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묶여있고, 본회의 처리 순서도 선거법이 먼저”라며 “선거법이 합의돼야 공수처 논의가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여당은 성과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선거법은 합의처리 또는 총선 이후로 미루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조정을 먼저 처리하는 쪽으로 정치권이 대타협하는 방안이 있지만, 선거제 개혁이 좌초될 수 있어 정의당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상황”이라며 “일단 변수가 바른미래당이 어떤 당론을 정하느냐가 포인트가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엄 소장은 또 지금까지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보인 여야 4당 대 자유한국당의 구도가 변화한 점도 지적했다. 그는 “지금까지 구도를 보면 애초에 정부·여당의 전략은 대략 여야 4당 대 자유한국당의 구도로 자유한국당을 고립시켜 선거제 패스트트랙이 통과가 안 돼도 총선 때 그 책임을 자유한국당에 뒤집어씌워 총선 이슈로 쓰는 그림을 그린 것”이라며 “그러나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가 당선되면서 그 포위 구도는 일단 깨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 처리는) 지금으로서는 전망이 그다지 밝아 보이지 않는다”며 “바른미래당의 내분이 어떻게 정리되고, 어떤 당론을 정하느냐가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제와 전략그룹 ‘더 모아’의 윤태곤 정치분석실장도 공수처 설치법안이 선거제 개혁안, 검경 수사권 조정 등 함께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안들과 함께 논의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윤 실장은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세 가지가 내용적으로 보면 별개라고 할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다 엮여있어서 독자적으로 진도를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정개특위하고 사개특위에서 각각 진행되는 논의 자체는 따로따로 되겠지만, 특위 내에서 논의가 보다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것과 패스트트랙 전체의 진도하고 크게 상관이 있을까 싶다”고 전했다.

지난 25년여간 논의를 거듭해온 공수처 설치.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그간 활로를 찾지 못하던 공수처 설치법안이 여러 부분에서 축소된 끝에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긴 했지만, 여야 4당의 패스트트랙 공조에 금이 가고 있는 악재를 맞아 어떤 결말을 맞이할 것인지 앞으로 논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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