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과 불법 경계에서 운영되는 IT보도방
“유흥업소 보도방과 돌아가는 형태가 비슷”
월급 떼이고 사람이 죽어도 구조적 변화 無
파견 대기동안 월급 미지급 사례 다반사
경력위조 팽배, 신입직원 3~4년차 대리로 속여
특별법 제정 등 처우개선 위한 노력 이어져야

ⓒ게티이미지뱅크
IT업계의 인력파견업체를 일컫는 보도방으로 인한 피해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IT업계에는 속칭 ‘보도방’이라는 곳이 있다. 업계에서 인력파견업체를 낮춰 부르는 은어다. 보도방이란 일반적으로 성인업소에 유흥인력을 공급하는 곳을 일컫는다. IT업계에서 이 같은 용어가 통용된다는 것은 그만큼 노동자들의 인력 수급 방식이 조악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IT보도방은 다양한 사람들의 필요를 원동력 삼아 합법과 불법의 경계에서 운영되고 있다. 아직 기술 숙련이 부족한 업계 초년생들은 당장의 취업과 월급을 위해 보도방을 찾는다. 10년차 이상의 경력직들도 관리직으로의 이직보다는 프로젝트 작업 수행의 이점을 보고 파견업체를 이용한다. 그리고 보도방은 이들의 상황을 악용해 관계에서 우위에 올라 부당한 조건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배를 불린다.

IT 인력파견업으로 유명한 한 업체는 10년 가까이 악명을 유지하면서도 영업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 발을 들이는 초년생들의 품삯을 앗아가고 잔뼈가 굵은 경력직들의 마지막 월급을 꿀꺽 삼켜도 이들의 입지는 여전히 견고하다. 

ⓒIT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
신입 개발자 박호영(가명)씨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해주지 않고 교육비를 받아간 인력파견업체에 민사소송을 접수했다고 밝혔다. ⓒIT산업노동조합 홈페이지

“파견 대기동안은 월급도 없고 근로계약서도 안 쓴다”

A업체는 부당한 파견 행태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보도방식 운영을 영위하는 곳 중에서도 특히 악질적이라는 게 종사자들의 총평이다. 실제로 이제 막 IT업계에 뛰어든 박호영(가명)씨는 이 업체가 요구한 교육비를 떼여 민사소송을 접수했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4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는 박씨의 설명은 이렇다. 그는 해당업체의 안 좋은 소문을 접했음에도 구직 서류를 접수했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면접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고 박씨는 IT 업계의 첫 면접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A업체에서 제시한 조건은 매우 이상했다. 이 업체는 정규직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을 뽑았지만 다른 업체로 파견을 가기 전까지는 대기상태로 있어야 하고 그 기간 동안은 월급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 대기 중 교육만 받고 타 업체로 떠나면 손해가 발생하니 교육비를 받아 1년 동안 보관하겠다고 했다. 박씨는 어이없는 조건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전공자 신입인 자신의 입지를 고려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더욱 황당한 일은 출근 첫날 벌어졌다. 사측으로부터 파견 대기기간은 근무일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겠다는 설명을 들었다는 것이다. 박씨는 근로계약서 작성 없이는 함께 일할 수 없다며 앞서 지급한 교육비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회사는 1년 근속이 안됐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고 전했다. 사실상 근로를 시작하지도 않은 면접자의 돈을 갈취했다는 게 박씨의 주장이었다. 

이 업체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유사한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가 상당하다. 당연히 취업플랫폼의 평가도 최하위권이다. 이곳에 몸담았던 직원들은 “사회초년생 제대로 등쳐먹는 초악덕 기업”. “개발자 착취하는 기업, 고생하고 싶다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음”, “불량기업, 업계에서도 인정한 그 기업”. “사정이 있었는데 교육비만 받고 번호를 아예 차단해 버렸다”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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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방에서 일자리가 필요한 신입직원들을 이용해 경력 위조를 조장한다는 증언들이 제기됐다. ⓒ게티이미지뱅크

신입을 3~4년차로, 보도방 배불리는 ‘경력 뻥튀기’ 남용

박씨가 경험한 무급대기는 보도방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영업방식이다. 이들은 정규직을 채용하는 것처럼 공고를 내고서는 사실상 프리랜서의 위치를 요구한다. 파견대기 동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미루는 것은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보인다. 이 같은 행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업체는 물론, 1인 회사 수준에 불과한 곳에서도 이뤄진다. 

만약 박씨가 근로계약서 미작성 등의 부당함을 감내하고 회사에 남아있었다면 다음에 경험해야 하는 악습은 ‘경력 뻥튀기’다. 경력 뻥튀기란 신입직원을 3~4년차 정도의 경력직으로 위장해 파견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의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을 일컫는 SI(System Integration) 업계에서는 ‘경력 뻥튀기를 하지 않으면 신입은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말이 팽배하다. 

1년차 내외의 신입들이 4년차 대리로 파견될 경우, 회사에서 요구하는 생산성을 맞춘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야근을 하며 업무량을 채워나갈 수밖에 없다. 

경력위조 사실이 드러날 경우 파견업체가 빠져나갈 구멍은 많다. 노동자에게 책임을 떠넘기거나 사례가 쌓여 안 좋은 소문이 났을 때는 법인명을 바꾸고 새로운 업체인 것처럼 영업을 이어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당사자의 취업 경력에는 치명적인 기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보도방들이 굳이 신입의 경력을 위조해 파견 보내는 것은 돈 때문이다. 3~4년차 이상의 개발자를 요구하는 발주처로부터 그만큼에 해당하는 인건비를 받은 후, 신입의 월급으로 인력을 고용해 파견한다. 10명을 투입해 그중 과반이 실력 미달로 쫓겨나도 결국에는 돈이 된다는 셈법이다. 

ⓒIT개발자 커뮤니티
인력파견업체들의 담합 정황을 목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IT개발자 온라인 커뮤니티

유흥업소 보도방과 유사한 운영방식

취업이 어려운 업계 초년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도방을 찾는다. 경력직원만 찾아 고용하는 세태에 뻥튀기 경력이라도 쌓아내려면 다소의 위험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위법의 경계에서 계약과 업무지시가 이뤄지는 만큼 제대로 된 처우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IT 인력파견업체들이 보도방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건 이 같은 부당한 대우가 계속되기 때문이다. 한 업계 종사자는 “유흥업소 보도방과 돌아가는 형태가 비슷해서 IT업계에서도 그렇게 부른다”라며 “콜 들어오면 실어다 날라주고 모든 책임은 당사자가 지고 일당은 노동자와 보도방 실장이 배분하고 인기 있어 소문나면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지명손님도 있고 가끔 실장이 돈 가지고 사라지고, 소름 끼치도록 똑같지 않냐”고 말했다. 

보도방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보도방의 보도방, 보도방의 보도방의 보도방이 양산됐다. 당연히 노동자들의 처우는 더욱 열악해졌다. 이 구조는 필연적으로 3~4단계 이상의 하청구조를 만들어 내는데 이 과정에서 실무 노동자의 임금은 크게 줄어들고 직간접적으로 업무지시를 내리는 갑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는 몇몇 보도방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개발자들이 모여 있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업계의 충격적인 단면을 봤다며 몸담았던 파견회사를 몇 개월 만에 그만뒀다는 토로가 나온 것이다. 

상담할 문제가 있어 회사를 찾아갔다던 작성자는 의도치 않게 사장의 단체 채팅방의 메시지를 보게 됐다고 전했다. 그에 의하면 채팅방에는 악덕리스트에 오른 회사들의 이름이 보였다. 그들은 ‘신입개발자 경력 몇 년 해서 얼마 받음’, ‘XX회사 신입 얼마에 어디 프로젝트 팔아요’, ‘ㅇㅇㅇ신입개발자 못 버티고 도망감. 사람 뽑을 때 참고하세요’ 등의 대화를 나눴다는 설명이다.  

그는 “왜 신입개발자 연봉들이 하나같이 비슷한지 이유를 알게 됐다”라며 “연봉담합이 충분히 가능해 보였고 완전히 노예 경매하는 느낌이었다. 아무 말 안하고 그만두고 나왔다”고 말했다.

ⓒ개발자 D씨 제공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경력직들도 하청의 하청 구조 속에서 임금체불을 겪기도 한다. ⓒ개발자 김모씨 제공

보도방이 야기하는 하청의 하청의 하청구조

보도방으로 인한 피해는 비단 초보개발자들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자도, 심지어는 대기업을 끼고 들어간 작업에서도 문제는 발생했다. 개발자 김모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2016년 12월부터 모 대형마트의 문화센터 홈페이지 리뉴얼 프로젝트에 참여했지만 마지막 2개월분의 월급을 받지 못했다.

김씨의 고용구조는 대형마트문화센터에서 B업체까지 4단계로 이어졌다. 김씨는 면접과 연봉협상은 B업체와 했고 교육은 2차 하청업체에서 받았다. 실무는 1차 하청을 통해 이뤄졌지만 사무실은 대형마트에서 얻어준 곳을 이용했고 본청에서 근태관리를 직접 했다는 설명이다. 직간접적으로 업무 연관성을 가진 곳은 4곳이었지만 임금체불이 발생한 후 책임지겠다고 나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다른 중견급 개발자도 프리랜서를 선호하는 업계 구조상 보도방의 양산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적극 동의했다. 

그는 “경력직의 경우에는 보도방을 통해 투입되면 급여가 적지 않다. 경력들 사이에서도 무급대기나 마지막 월급을 떼이는 사례가 발생하는데 정규직의 그늘을 벗어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고용형태를 개선하거나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 한다”라며 “수년 전 주말 밤을 새우고 돌아가는 길에 상급자가 쓰러진 적이 있다. 3개월 동안 한 번도 못 일어나고 돌아가셨다. 그때 보니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억울한 죽음뿐이었다”고 전했다. 

장모씨의 사례도 보도방식 인력파견 형태의 전형적인 피해로 거론된다. 그 역시 4단계 하청으로 이뤄진 고용구조의 말단 노동자였으며 보도방을 통해 증권사의 프로젝트 계약을 맺었다. 그는 상위 하청업체 임원과 술자리를 가진 후 만취한 상태로 근처 호텔에 끌려갔고, 임원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호텔 밖으로 도망치려다 비상계단에서 실족사했다. 

업체 관계자의 갑질적 요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웠지만 유가족의 형사소송은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됐다.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라도 가려보고 싶었던 유가족의 바람은 그렇게 좌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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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과 노동계는 고용노동부의 적극적인 태도와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정부의 적극적 노력, 특별법 제정 등 이뤄져야

보도방을 중심으로 한 IT업계의 하도급 관행은 종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난다. 더불어민주당 이철희 의원과 IT산업노동조합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IT노동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참여자 503명 중 201명이 원청에서 일한다고 대답했지만 원청과 직접 계약했다는 노동자는 100명에 불과했다. 이 의원 역시 이 과정에서 프리랜서들과 하도급업체들을 연결해주고 커미션을 받는 인력거래소 보도방을 문제로 지적했다. 

이 의원실은 “IT 강국, 소프트웨어 강국을 표방하고 4차 산업혁명의 선두에 서겠다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대열에 설 인재를 키우는데 실패하고 있다. 키우기는커녕 보호조차 못하고 있다”라며 “지금이라도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전수조사해 제대로 파악하고 보호‧육성‧진흥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T노조 정연아 정책국장은 특히 고용노동부의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했다. 

정 국장은 “최근 드라마 에피소드에서도 불법 보도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소규모 보도방들은 문제가 생기면 폐업하고 다시 문을 연다. 이런 곳들은 파견업이 안되는 불법 보도방들이다”라며 “큰 업체들 중 일부는 인력파견업으로 등록을 하고 보도방식 운영을 하고 있어 겉으로는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여 더욱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프트웨어산업 진흥법을 통해 공공기관에서는 하청으로 IT개발자를 고용하지 않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했지만 아직 그 외 산업 부문에서는 해결해야할 문제가 많다”라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서는 고용노동부가 나서야 한다. 부처간 협의를 통해 IT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서는 더불어민주당 고용진 의원실이 IT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고 의원실은 불합리한 고용구조로 업계 종사자들이 죽음에까지 이르는 상황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고용진 의원실 관계자는 “구체적인 윤곽을 잡은 건 아니지만 IT업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계속되는 하청으로 매우 열악한 근로여건에 놓여 사망까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최소한 종사자들의 죽음은 방지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미에서 출발했다”라며 “건설근로자에 대한 처우개선 특별법이 있는데 이에 준해서 IT업계의 노동자 근로환경개선을 위한 관련법을 준비하고자 했다. 현재는 법안에 담길 내용과 관련해 노동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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