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아이들 싸움의 승패는 단순하다. 먼저 우는 쪽이 지는 거다. 상대를 울리는 게 이기는 거라는 신념은 일종의 규칙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상대의 마음에 상처 주는 방법을 쓴다. 태어나 좀 살아보니 알겠는 거다. 괴로움을 선물하면 상대가 운다는 사실을. 그리고 학습한다. 감정을 요리하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첫째, 안 좋은 별명을 붙인다. 

들으면 기분 나빠 할 온갖 것들로 부른다. ‘바보야!’나 ‘멍청이야!’는 순수한 축에 든다. 사람들이 꺼리는 동물이나 냄새나고 더러운 것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아니면 듣는 순간 왠지 모욕적일 것 같은 아무 낱말이라도 붙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혐오나 차별이 담긴 이런 호칭은 어른들도 견디기 힘들다.

둘째, 괴롭힘을 놀이로 삼는다. 

아이는 상대가 화를 내면 자신의 공격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확신하게 된다. 상대가 화를 낼수록 즐겁다. 효능감을 느낄수록 재미가 붙는다. 신이 난 입에선 더 반복적으로 강한 말들이 나간다. 당하는 아이는 자신이 놀이의 대상이 된 것 같아 더욱 상처를 입는다.

셋째, 못된 동료를 모은다. 

1:1로 갈등하는 관계에선 자신이 정당할 가능성이 절반이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이 함께 공격해 주면 주변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은 것으로 주장할 수 있다. 그래서 친구들을 끌어들인다. 남 괴롭히는 데 일가견 있는 친구도 붙는다. 당한 아이는 억울해 한다. 하지만 저쪽은 목소리 괄괄하고 얄궂은 아이들로 뭉쳐서 하나하나 상대하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버거움의 고통을 안다.

넷째, 어른이 말려도 그 때 뿐이다. 

권위 있는 어른이 개입해서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고 따끔하게 혼내는 경우가 있다. 친구끼리 그러면 안된다며 화해도 시킨다. 하지만 그리 쉽게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았다면 싸울 일도 없다. 안 괴롭힌다고 했지만 그건 안 걸릴 정도만 하겠다는 뜻인 경우가 적지 않다. 멈추지 않을 것이란 걸 알려줘서 앞으로 겪을 괴로움을 상상하게 만든다.

다섯째, 살살 약 올린다.

‘이래도 네가 버틸 수 있어?’라고 묻듯 묘하게 시비를 건다. 우연인 듯 툭 치고 지나가거나, 친구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게 만들거나, 무슨 일이든 사사건건 반대를 한다. 무언가 부탁을 하면 말로는 들어주겠다고 하고 행동도 들어주는 척하지만 실은 어영부영 어깃장을 놓는다. 딱히 싸움을 걸어온 게 아니라서 당한 아이는 화를 낼 수도 없다. 걸핏하면 성질내는 아이로 보일까 봐 조심하는 상대를 괴롭히는 것이다.

여섯째, 발뺌한다.

기분 나쁘게 굴지 말라고 해도 자신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발뺌한다. 그러면 다른 친구들이 보기엔 일부러 그런 게 아닐 수도 있어서 갸우뚱하게 된다. 당한 아이는 자신의 어떤 감정이 다쳤는지 잘 아니까 억울하기 이를 데 없다. 발뺌한 아이는 잘못이 없는 양 모르는 척 한다. 

일곱째, 불행을 놀린다.

싫어하는 아이가 곤란이나 불행을 겪으면 위로하지 않는다. 되려 눈에 보이게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흥겨운 콧노래를 부르며 지나가기도 한다. 가뜩이나 무거운 마음에 돌덩이를 하나 더 얹으면 상대가 얼마나 힘들어질지 잘 아는 것이다. 

여덟째, 거짓말을 한다.

 자기가 잘못한 일을 거꾸로 포장해 남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운다. 주장은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마음에 거짓이 없으면 하지 못할 일이다. 사실관계를 아는 아이는 뻔한 거짓말에 속이 탄다. 그걸 해명하겠다고 정신 사나운 말다툼을 하다 보면 진실은 중요해지지 않게 된다. 누가 더 요란스럽게 구는지 평가받는 걸로 끝나기 일쑤다. 그래서 뒤집어 씌우는 아이는 진실이 흐려질 때까지 거짓을 말해서 상대를 속상하게 만든다.

아홉째, 싸움을 만들려고 한다.

언제 한 번 능력을 보여주고 싶은데 그럴 기회가 없으니 싸움이 될 만한 시비가 터지길 늘 기다린다. 일단 싸움이 나면 제대로 본때를 보이려고 작정하고 있다. 기다리는 거로 안 되겠으면 싸움이 되게끔 몰아간다. 그걸 아는 상대 아이가 싸움을 피하려는 만큼 약 올리는 수위도 같이 올라간다. 

열째, 유치함을 감추려 한다.

물론 아이들도 자신들의 방법이 유치하다는 걸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감추고 싶어 한다. 게다가 어른이 되면 진짜 승자는 누군가를 울리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도 울 필요 없도록 만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도 여전히 속이 애 같으면 유치한 방법에 골몰한다. 체면 차리느라 아닌 척하지만 그럴수록 더 유치해진다. 예를 들어 이 앞 문장에 주어가 없으므로 이 글은 자유한국당 이야기가 아니라고 변명을 하면 그게 유치한 경우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