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에세이집 ‘널 보러 왔어’ 펴내…청소년 쉼터에 인세 전액 기부
대사관 인턴·연구원·주류/자동차 영업직·방송인 등 독특한 이력
다양한 직업 거칠 수 있었던 이유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선택”
한국 직장문화 “장·단점 공존, 힘들지만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틈새책방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씨즈온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 인턴으로 시작해 이탈리아어 강사, 조세재정연구원 소속 연구원, 맥주회사 영업직, 자동차 회사 영업직을 거쳐 방송인까지. 독특한 이력이다. JTBC <비정상회담>으로 잘 알려진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36·Alberto Mondi)의 이야기다.

알베르토는 중국 유학시절 알게 된 지금의 아내를 만나기 위해 2007년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렇게 정착하게 된 한국에서 결혼을 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치며 일을 하던 중 우연히 출연하게 된 방송으로 유명세를 탔다.

방송인으로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알베르토는 중국 유학시절부터 방송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재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널 보러 왔어>를 최근 출간했다. 책에는 중국 유학을 하게 된 계기와 아내와의 연애 및 결혼까지 알베르토의 인생 이야기가 담겨있다. 또 한국의 문화와 직장생활을 이탈리아인의 시각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널 보러 왔어>를 자신의 ‘성장 에세이’라고 표현한 그는 이 책의 인세를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가 설립한 ‘안나의집’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안나의집’은 알베르토가 종종 봉사활동을 위해 찾는 곳으로, 노숙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는 복지단체다. 알베르토의 기부금은 가출 청소년 등 어려운 형편에서 살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사용될 예정이다.

‘유일한 행복은 기대하는 것’이라고 밝힌 알베르토는 어떤 행복을 품고 한국에 왔으며 지금은 어떤 기대를 품고 살아가고 있을까. <투데이신문>은 지난 20일 그를 만나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와 인생관에 대해 들어봤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박수빈 인턴기자

청소년 위한 기부…‘안나의집’과의 인연

Q. 최근 책 <널 보러 왔어>를 출간했다. 책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린다.

이전에 이탈리아 문화를 소개하는 <이탈리아의 사생활>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독자들의 반응이 좋았다. 그 책을 출간한 뒤 사람들이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책을 써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알베르토가 본 한국의 사생활’을 콘셉트로 책을 쓰게 됐다. 그런데 책을 쓰다 보니 나보다 한국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한국을 소개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았다. 또 한국 사람에게 한국문화를 말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다. 하지만 문화에 정답은 없는 것 아닌가. 그래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내가 한국에 오게 된 계기, 지금은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추가하면서 원치 않게 자서전처럼 나왔다. 사실 내가 엄청 유명하다면 자서전을 내도 될 텐데, 나는 자서전을 내고 싶은 마음도 없을뿐더러 그럴 상황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출판사 대표님과 고민을 하다가 성장 에세이로 방향을 잡았다.

Q. 책 제목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중국에서 유학하던 시절 가장 친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었고, 아내도 거기서 만났다. 유학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갔다가 ‘한국으로 가자’고 결심을 했다. 내가 한국에 온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아내(당시 애인)를 다시 보고 싶었다. 또 하나는, 나는 이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중국에서 만난 한국인들과 굉장히 잘 어울려 지냈다. 이탈리아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래서 그대부터 한국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그래서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고 싶었다. 책 제목은 아내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지만, 한국에 전하는 말이기도 하다.

Q. <널 보러 왔어>의 인세를 전액 ‘안나의집’에 기부하겠다고 했다. ‘안나의집’은 어떤 곳인가. ‘안나의집’과는 어떤 인연이 있는지.

안나의집은 복지단체인데, 주로 노숙인분들을 위한 무료급식 사업을 한다. 직원, 봉사자들이 하루 500여명의 노숙인들에게 매일 식사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을 위해 쉼터를 운영한다. 이곳에는 가출청소년, 빈곤청소년들이 생활한다.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지내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는데, 학교를 다니거나 일을 해야 한다. 학업을 마치거나 직업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또 금요일마다 버스를 타고 형편이 어려운 지역의 학생들을 방문해 음식을 나눠주는 일도 한다. 사실 젊은 사람들은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어도 부끄럽거나 민망해 먼저 찾아가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안나의집에서는 푸드트럭 같은 느낌으로 청소년들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그렇게 빈곤청소년, 가출청소년들이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 복지, 법률,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한다. 이 단체를 운영하시는 분은 이탈리아 출신 김하중 신부님이다. 김 신부님은 TV를 통해 수차례 소개되신 적도 있는 분인데,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던 시절 김 신부님을 알게 됐다. 그때 신부님께서 ‘시간 되면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그때부터 안나의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안나의집 활동 중 노숙인분들을 돕는 일도 너무 좋지만 청소년 쉼터에 기부하기로 한 것은, 우선 책을 보는 것 자체가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하고 또 <널 보러 왔어>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청소년, 청년들에게 더 잘 맞기 때문이다. 아무튼 봉사활동을 가서 청소년들을 만난 경험은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삶을 살다가 쉼터에 들어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똑똑하고 바른 청소년들이 많다.

Q. 안나의집에서 만난 청소년들은 어떤지.

내가 안 쓰는 옷을 기부하기도 하고 자주 찾아가 봉사활동도 한다. 강연보다는 가서 청소년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한다. 청소년들이 처음에는 거리를 두다가 점점 친해져 이제는 잘 대해주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쉼터의 청소년들은 보통 청소년들과는 다르다. 어렵게 살거나 심지어 길거리에서 살기도 하고 일을 일찍 시작한 청소년들도 있어서 다들 경험도 많고 아는 것도 많다. 어른 같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대단한 아이들이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박수빈 인턴기자

“선택한 일에 후회는 없어”

Q. 대사관 인턴, 이탈리아어 강사, 연구원, 맥주/자동차 회사 영업직, 방송인 등 그간 거쳐 온 이력이 상당히 흥미롭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한 것 같다. 나는 이른 나이인 열다섯살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여름방학은 6월 초에 시작돼서 9월 중순까지 3개월 반이나 된다. 그래서 보통 부모님들은 방학이 되면 자녀들에게 알바를 하라고 권한다. 나는 알바도 굉장히 다양하게 했다. 워터파크, 플라스틱부품 공장, 대형마트, 레스토랑, 세탁공장, 철물점, 백화점 입구에서 수박 자르는 일도 했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다양한 일을 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이탈리아의 대학에서 동아시아문화를 전공했는데, 사실 동아시아문화 전공은 취업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일이 들어오는대로 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지원했던 회사들은 모두 떨어졌고, 오히려 내가 일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제안이 들어오는대로 일을 했다. 조세연구원, 맥주회사, 자동차 회사, 지금 하고 있는 방송까지 내가 했던 일들이 모두 그렇다. 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제안은 결국 사람을 통해 들어오지 않나. 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인맥을 만들 수 있는 능력, 성격이 있는 것 같다. 또 나는 모르는 일을 시작하게 되면 다른 사람 밑에서 배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비정상회담>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출연진들 중 말이 가장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배우기 위해 많이 듣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듣고 배우다 보니 나중에는 말을 많이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내가 대단해서 그런 게 아니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Q. 다양한 직업을 거쳤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직업이 있다면.

맥주회사 영업직이 제일 재미있었다. 나는 그 회사에서 한국 시장에는 없었던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서 브랜드가 성장해 나가는 걸 매일매일 지켜보면서 아기가 크는 걸 보는 것처럼 뿌듯함과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일한 만큼 성과가 돌아와 굉장히 좋았다. 또 맥주를 판매하는 건 단순히 주류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즐거움, 문화를 판매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행사도 많이 했다.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나한테 잘 맞는 일이었고 재있었다.

Q. 미래나 진로를 결정할 때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중요한 조건으로 선택하는 것 같다. 여태까지 했던 중요한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는지.

나는 ‘못한 일 때문에 후회할 수는 있지만 이미 한 일 때문에 후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인생은 처음 겪는 일의 연속 아닌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거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하는 생각도 사실 다른 선택으로 어떤 결과가 생겼을지 모르는 것 아닌가. 후회되는 선택은 없다.

Q. 직장을 그만두고 방송일을 선택한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이 같은 결심을 하게 됐는지.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당시 아내와 많은 대화를 하면서 결정을 내렸다. 방송을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고 우연히 하게 됐는데 잘 됐다. 나를 섭외했던 작가님도 “어차피 파일럿 프로그램이니 한두번 하고 끝날 거예요. 너무 고민하지 말고 나와주세요”라고 했었다. 사실 처음엔 뭔지도 잘 몰랐다. 외국인들은 한국 TV를 잘 안 보니까. 당시 한국 연예인도 아무도 몰랐다. 방송계 시스템 자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한두달 정도 갈 줄 알았다. 또 아내도 ‘인기보다 빨리 사라지는 건 없다. 인기 좇지 말고 그냥 일 열심히 해’라고 말했다. 길어야 여섯달 정도 할 거라고 생각하고 회사 다니면서 주말 동안 방송을 했다. 그런데 계속해서 방송이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거의 2년 동안 회사 일과 방송을 병행했다. 회사 일과 방송을 같이 하면 좋은 점은 돈을 많이 번다. 하지만 내 시간을 가질 수가 없었다. 거의 쉰 날이 없었다. 방송이 점점 잘 되니 이후엔 회사 쪽에서 편의를 봐줬지만 내가 아침에 일어나면 아내는 자고 있고, 일 끝나고 밤에 들어가도 아내는 자고 있었다. 주말에는 방송을 해야 했다. 아내의 자는 모습만 보고 살 수는 없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필요해 방송 일을 하기로 선택했다. 아내는 “방송 일 재미있어하고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하니까 열심히 하고, 일이 없어지면 다른 거 하면 되지 뭐”라고 말해줬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하고 있다. 솔직히 방송 일을 선택하고 나서는 굉장히 불안하다. 나는 코미디언, 가수, 배우처럼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수입이 불안정하다. 또 알려진, ‘공인’이 되면서 많은 제약이 생긴다. 맘대로 할 수 없는 일들도 많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틈새책방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씨즈온

“헬조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

Q. TV 속에서 한 얘기들을 보면, 그간 많은 직업을 거치면서 한국 사회에 많이 적응을 한 것 같다. 그럼에도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한국 문화는 무엇인가.

동료들끼리 식사를 같이하면서 말을 하지 않는 게 제일 힘들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친한 동료끼리 밥을 먹으면 대화를 많이 하는데, 상사나 안 친한 사람들끼리 식사를 하면 밥만 먹고 얘기를 안 한다. 나는 그런 자리에선 밥이 잘 안 넘어간다. 이탈리아에서는 사장님이랑 밥을 먹어도 편안하게 대화하고 천천히 즐겁게 밥을 먹는다. 한국에서는 특히 아저씨끼리 밥을 먹으면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 없이 정말 밥만 먹는다. 그런 게 조금 불편하다. 또 갑자기 술자리로 불러내는 것도 힘들었다. 유럽에서는 보통 미리 약속을 잡는다. 아무리 상사더라도 미리 약속되지 않은 자리라면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상사가 미리 약속되지 않은 술자리에 부르는 경우도 많았다. 주말에 갑자기 연락이 오거나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불편하더라도 나가주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기기도 하고, 또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나. 그러나 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거절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옛날엔 무조건 다 나갔는데 아내, 아이와 함께 있고 싶거나 다른 할 일이 있으면 깔끔하게 거절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

Q. 사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사직서를 품에 안고 다닌다. 본인도 그러했나.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무엇이었나.

회사일은 돈을 받고 하는 일이지 않나. 사생활과 회사일이 잘 분리돼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내가 이만큼의 돈을 받으니 이만큼의 일을 하겠다’는 건 계약돼 있는 것 아닌가. 개인적인 일은 사실 해줄 의무가 없다. 그런데 가끔 상사들이 개인적인 일을 요청하거나 술을 마시자고 한다. 주말에 엠티나 등산을 가자고 한다든지. 직장인들은 마음속으로는 ‘내가 안 해도 될 일인데’ 하면서도 서열문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그럴 때 스트레스가 시작된다. 이를 거절하면 회사에서 불이익이 있을까봐 불편하고, 거절하지 못하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해서 불편하다. 그래도 요즘은 상황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런 문화에 반감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상사가 되면서 부하 직원에게 불편한 부탁을 하지 않고, 술 문화도 많이 바뀌고 있지 않나.

한국 직장인들이 단점으로 꼽는 서열문화에 장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부하직원이 힘들지만 팀이 굉장히 친해져 한 팀으로 갈 수 있다. 또 상사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니까 의사결정이 굉장히 빠르다.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고 말하는데 사실 모든 나라에서 자국을 그렇게 느낀다. 이탈리아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이탈리아가 굉장히 좋은 나라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살기 좋지 않은 나라라고 한다. 어느 입장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반은 맞는 말이고 반은 틀린 말이다.

Q. 책에서 한국의 ‘열심’, ‘노력’ 문화에 대해 ‘한국 사회를 역동적으로 이끄는 중요한 힘’이라고 평했다. 반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이런 문화의 부작용을 느끼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한국이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많은 나라라고 생각하는지.

내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면, 유럽보다 한국이 더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열려있다고 본다. 나는 27세 때 주류회사에 취업해 브랜드를 론칭했다. 회사에서 내게 1년 예산을 주고 브랜드 론칭을 맡긴 것이다. 당시 우리 팀에는 나를 포함해 나보다 세 살 어린 한국 여성까지 두 명이었다. 20대의 젊은이들에게 엄청나게 큰일을 맡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 팀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매일 12~14시간 동안 일하면서도 ‘내 브랜드’라는 마음에 즐거웠다. 이는 40대 중반이 돼야 큰일을 맡기는 유럽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책임질 일을 잘 안 준다. 자동차회사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자동차회사는 젊은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을 많이 시킨다. 단점은 일이 많고 힘들다는 것이다. 반면 장점은 일을 많이 배울 수 있고 보람도 느낄 수 있다. 이탈리아와는 정반대인 상황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일이 힘들지 않지만 보람이나 뿌듯함을 느끼기 어렵다. 그래서 내 경험상 한국은 ‘젊은 사람들을 믿어주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한국에서는 임원이 되지 못하면 회사에서 잘린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는 거의 은퇴할 때까지 계속 일할 수 있다.

취업이 어렵지 않은 나라는 거의 없다. 일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인구 5000만명이 넘어가는 나라는 대부분 그렇다. 상황이 바뀌고 있다고 봐야 한다. 옛날에는 열심히 준비해서 취업하면 ‘평생직장’이었다. 그런데 요즘 평생직장이 어디 있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많다. 결론은 먹고살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다르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젊을 때 사회적 지위, 명함에 새겨진 회사 이름,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기보다는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남들이 꺼리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창업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까. 그다음에 행동에 옮기는 게 중요하다. 일단 뭐라도 시작하면 기회는 생긴다.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가 지난 20일 서울 송파구의 한 카페에서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박수빈 인턴기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Q. 한국인들이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많지 않는가. 단일민족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외국인에 대해 굉장히 배척하는 부분이 많다. 한국인 여성과 ‘국제결혼’을 했는데, 결혼 과정에서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선입견, 편견은 전 세계적으로 다 있는 것이다. 상황을 깊이 있게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입견이 생긴다. 결혼을 결정하면 장인장모께 인사를 드리러 가지 않나. 나는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리기 전부터 외국인 친구라고 하면서 아내의 집에 자주 갔기 때문에 장인어른, 장모님과 이미 친했다. 결혼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장인어른께서는 별다른 걱정을 안 하셨는데 장모님께서 걱정을 하셨다. 그런데 8년이 지나고 올해 설날에 가족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던 중 얘기를 들은 게 있다. 장인어른께서 교회 사람들에게 “이탈리아 사람들은 다 바람둥이니까 조심하라”는 얘기를 듣고 걱정을 하셨다고 하더라. 그런데 이탈리아인이라고 다 바람둥이겠나. 일반화하는 것이다. 바람둥이들도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선입견이라는 게 다 있을 수밖에 없고, 조금만 더 깊이 있게 알려고 노력한다면 사라질 것이다.

Q. 이탈리아인으로서 한국에서 부딪힌 차별이나 편견은 어떤 것이 있는지.

기분 나쁘지 않은, 작은 선입견들이 많았다. 이탈리아 사람들도 매운 음식이나 회를 많이 먹는다. 그런데 ‘매운 것 먹을 줄 아냐’, ‘회 먹을 줄 아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아마 한국 사람이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 간다면 똑같은 질문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당연히 영어를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영어로 말을 걸거나 부자라고 생각하는 등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 ‘백인’에 대한 편견을 겪기는 했다. 큰 차별이나 편견은 겪지 못했다. 솔직히 백인은 어딜 가도 괜찮게 대우를 받는다. 사실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해야 하는데 백인이라고 해서 잘 대한다는 게 더 기분이 나쁘다.

Q. 방금도 얘기했듯 한국에서 잘 정착해 살 수 있었던 데는 유럽 출신 백인 남성이라는 점도 이점으로 작용했을 것 같은데.

도움이 안 된다고는 말할 수 없다. 백인이면 도움이 되는 점이 있다. 물론 가나 출신 샘 오취리나 인도 출신 럭키처럼 잘 정착해 사는 친구들도 많긴 하지만, 만약 내가 파키스탄이나 인도 사람 또는 흑인이었다면 한국에서 정착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종이나 민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태도다. 내가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배우고 싶어 하는 태도가 가장 컸다고 본다. 또 나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한국의 문화와 예절을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이렇게만 하면 인종과 상관없이 어디를 가도 잘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Q. 젠더이슈를 언급하며 이탈리아의 문화를 들어 ‘남녀가 친구로 함께하는 시간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경우 한국과 같은 젠더이슈가 없는지.

유럽과 미국은 수십년 전 이미 겪은 일들이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겠지만 참정권, 낙태, 이혼 등 그때부터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됐다. 그 이전에는 학교도 남성과 여성이 따로 다녔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다. 그렇게 되면서 지금은 엄청 많이 변했다. 유럽에서는 남성과 여성이 ‘친구’로 지내기 때문에 남성들도 ‘여성의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다. 여성혐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럽 사회가 한국과 같은 일들을 겪으면서 성평등을 향해 나가고 있는 것처럼 한국도 지금의 젠더이슈들을 겪으면서 성평등 사회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틈새책방
이탈리아 출신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 ⓒ씨즈온

아이와 아내가 가장 큰 행복

Q. 방송에서 1형 당뇨를 앓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병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도움이 된 것은 무엇이며,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처음 진단을 받았을 때는 ‘왜 내게 이런 병이 생겨야 하나’하는 마음에 엄청 상심했다. 유명한 아티스트 중에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찾아본 게 도움이 됐다. 결국 사람마다 자신만의 문제, 장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기로 했다. 또 당뇨를 병이라기보다 ‘같이 살아갈 친구’라고 생각하게 됐다. 고통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도 많이 있지 않나. 너무 고통 없이 살면 에너지가 생기기 어려운데 힘들거나 아플 때 오히려 에너지를 얻을 수도 있다. 당뇨는 사실 안 좋은 병이긴 하지만 관리를 잘하면 아무것도 아닌 병이다. 물론 병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웃음)

건강관리는 최대한 운동을 많이 하려고 한다. 회사 다닐 때도 아침마다 달리기를 했다. 운동을 많이 하면 혈당 조절이 잘 된다. 또 독한 술이나 단 음식 등 먹으면 안 되는 것들은 최대한 안 먹으려고 한다.

Q. 그간 많은 곳을 여행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어디인가.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면.

나는 천주교 신자이지만, 한국의 불교문화를 좋아한다. 이는 한국의 엄청난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아름다운 절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전남 화순의 운주사를 매우 좋아한다. 또 추천하자면 춘천의 청평사, 영주 부석사, 여수 향일암, 부산 삼광사, 남해 보리암을 꼽고 싶다. 이곳들은 건축물도 아름답고 자연과 잘 어우러져 경치가 굉장히 훌륭하다. 한국은 사실 휴가를 길게 낼 수 없어 관광사업이 잘 이뤄져 있지 않다. 관광사업을 시작한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나는 베트남 하롱베이보다 통영이 더 예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통영보다는 하롱베이가 더 유명하다. 이런 점이 아쉽다. 조금 더 관광사업이 발달하면 유명한 관광지가 늘 것이다.

Q. 책에서 ‘유일한 행복은 기대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 기대를 하고 살아가는지.

요즘 가장 큰 행복은 가족이다. 아이랑 아내 덕분에 행복을 가장 많이 얻는다. 또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은, 이탈리아에 한국을 더 많이 알리고 싶다. 최근 이탈리아의 유명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는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는 보통의 이탈리아 사람과 비교할 때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훨씬 많다. 그래서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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