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대표 자료 삭제 지시·인체유해 민원 90건 모르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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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홍세기 기자】 애경산업의 ‘가습기 살균제’ 책임론이 점점 커지고 있다. 애경산업 대표가 직원에게 불리한 자료를 삭제할 것을 지시한 증언이 법정에서 나왔다. 또 ‘가습기 메이트’를 사용하던 소비자 중 민원을 제기한 사례를 분석한 결과 인체 유해 민원만 90건이 넘었던 것도 드러났다. 

먼저 가습기 살균제 관련 내부 자료를 폐기·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애경산업 전 상무가 고광현(62) 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직원들을 통해 컴퓨터의 자료를 영구삭제했다는 취지로 법정 증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4단독(판사 홍준서)은 지난 22일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를 받은 고 전 대표, 양모(56) 전 전무, 이모 전 팀장 등 3명에 대한 3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피고인인 양 전 전무는 증인으로 나서 지난 2016년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을 꾸려 본격 수사에 나섰을 당시 상황을 설명했고 이 과정에서 대표의 부적절한 지시를 증언했다. 

양 전 전무는 “2016년 1~2월의 상황을 2019년에 디테일한 워딩(단어)을 답변하기 힘들다”면서도 “(고 전 대표가) 정황상으로 ‘회사에 불리한 자료들은 어떻게 좀 했으면 좋겠다’라고 했다”고 밝힌 것.

그는 검찰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예를 들자면 ‘회사의 불리한 자료는 안 보였으면 좋겠다.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식의 단어였다고 생각한다”면서 “3년 전 일이라 정확히 어떤 단어로 지시했냐고 물어보면 답변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어 양 전 전무는 ‘고 전 대표에게 자료 삭제와 관련된 포괄적 지시가 있었냐’는 검찰의 질문에 “포괄적 지시는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 전 대표의 지시에 따라 자신이 직원들에게 애경산업과 애경연구소 직원들의 업무용 PC와 노트북에 가습기 살균제 자료를 검색해 영구삭제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반면, 고 전 대표의 변호인 측은 양 전 전무의 기억이 불확실하다며 증언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고 전 대표의 변호인 측은 양 전 전무에게 애경 법률팀 직원 최모씨가 당시 가습기 살균제 특별수사팀 담당 부장검사를 만나고 와서 보고를 했는지를 물었다.

이에 대해 양 전 전무는 “최씨가 부장검사를 만나고 와서 하는 말이 ‘부장검사가 옥시에 대해서만 주로 수사하고 애경에 대해서는 수사할 의사가 있지는 않아보였다’고 했다”고 언급했다.

이를 고 전 대표에게 보고했냐는 질문에는 “아마 했을 것”이라며 “(언제인지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또 보고 후 고 전 대표의 반응에 대해서도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했다.

앞서 고 전 대표 등은 2016년 검찰 수사 개시 직후 애경산업 및 산하 연구소 등 직원들이 사용하는 업무용 PC와 노트북에서 가습기 살균제 관련 파일을 삭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같은 해 10월 국정조사가 종료된 후 가습기 살균제 관련 자료를 폐기하고 핵심 자료들을 은닉하는 등의 행위를 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인체 유해 민원만 94건…무성의 답변 논란

또 정의당 이정미 의원실에서 공개한 ‘가습기메이트/이플러스 가습기 살균제 상담내역’도 애경산업의 책임론을 더욱 부각시켰다. 

상담내역은 총 981건이며, 이는 2003년 5월 12일부터 2011년 8월 30일까지 접수된 문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중 인체 유해와 관련된 문의는 94건에 달했으며, 이중 상당수가 ‘아이와 임산부에게 안전하냐’라는 민원이 차지했다. 

앞서 애경산업은 지난해 2월 ‘가습기 메이트’ 표시광고법 위반 공정위 전원회의 심의에서 인체 유해성 민원을 7건 받았다고 보고한 바 있다. 

또 2016년 국회 가습기 살균제 청문회 당시 2004~2009년 사이 상담한 내역 중 인체 유해와 관련된 내용없이 ‘거품이 인다’, ‘갈색빛이 돈다’ 등의 내용만을 제출해 불리한 내용을 숨겨온 것이 이번 공개된 상담내역에서 드러났다. 

이에 애경산업 측은 단순 상담을 제외한 인체 유해와 관련 해결책을 요구한 ‘클레임’만 보고한 수치라고 해명했다.

아울러 민원인들에 대한 무성의한 답변과 치약 등으로 민원을 마무리 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아이와 남편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이후 호흡기가 불편해졌다는 민원인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 이후 목과 눈이 아파 아이를 키우는데 걱정이라는 민원인에게도 치약을 제공했다. 

특히, 민원인이 성분 문의를 반복적으로 하자 ‘좀 모자라는 듯’이라며 민원인을 무시하는 듯한 내용을 적어놓기도 했다.

또 가습기 메이트 사용 이후 가족 모두가 폐렴 기운이 있다며 성분 분석을 요청하자 SK케미칼은 ‘억지’라면서 “성분이 바이러스를 만들어 낸다는 연구 결과는 인류 역사상 나오지 않은 상태”라고 답하는 등 인체에 유해성을 의심한 민원에 대해 무성의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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