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을 파는 사람’ 장인수 조인 대표이사 “작은 목표부터 해나가면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진심을 파는 사람’ 장인수 조인 대표이사 “작은 목표부터 해나가면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9.05.31 14:11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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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고졸신화 영업달인’ 장인수 전 오비맥주 대표이사
고졸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주류업계 대표이사까지 올라가
지난해부터 농업회사법인 조인의 대표이사로 새로운 시작
영업은 제품이 아닌 ‘나’를 파는 것 “마음을 빼앗아라”
오비맥주 부사장 취임 1년 8개월 만에 업계 1위 탈환
밀어내기 관행 없애고 내‧외부 신뢰 쌓은 노력의 결과
“좌절하지 말고 작은 목표 이뤄내며 성취하는 것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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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 영업사원으로 대표이사에 올라 샐러리맨 성공신화를 새롭게 쓴 오비맥주 전 장인수 대표를 만나기 위해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조인 본사를 찾았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얼어붙은 평원 툰드라에서도 식물들은 각양각색으로 살아남는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보라색이니 노란색이니 하는 빛깔로 피어나는 생명을 보면 조건은 그저 핑계인 것처럼 느껴진다. 

전 오비맥주 장인수 대표이사(현 농업회사법인 조인 대표이사)의 삶도 그러했다. 장 대표이사는 고졸이라는 불리한 조건으로 주류영업에 뛰어들어 결국 동종업계 정점의 위치까지 올라간 입지전적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고신영달’이라 불렀다. 고졸신화 영업달인이라는 뜻이다. 척박한 땅에서 스스로 움켜쥔 훈장 같은 별명이다.  

그는 모자랐던 삶의 조건들이 스스로를 부추기는 동력이었다고 말한다. 대학을 가지 못한 건 오로지 나의 탓이니 핑계를 대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장 대표이사는 사원 시절 한발 앞서 출발한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더 노력했고, 익숙함에 속지 않기 위해 영업이 어려운 격전지로 자진해서 근무처를 옮겼다. 모자람이 그를 더 행동하게 했고 결국 성취를 이끌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해부터 농업회사법인 조인의 대표이사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 조인은 1978년 강남 부화장으로 시작해 이제 1000여명의 직원을 둔 기업으로 성장한 국내 굴지의 계란유통 및 난가공 업체다. 새로운 업종에 뛰어든 만큼 녹록지 않은 도전이지만 그는 “누구나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는 브랜드로 키우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한다. 

<투데이신문>은 장 대표이사가 일군 성공신화와 그 과정에서 쌓아올린 삶의 가치관을 엿보기 위해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조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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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해부터 조인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장 대표이사는 많은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투데이신문

새로운 삶, 중소기업 대표이사로서의 1년

Q. 다양한 곳으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중소기업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

오비맥주를 자진퇴사한 이후 좀 쉬고 싶었다. 회사는 안 다니려 했는데 강연을 다니며 중소기업들을 만나고 후배들과 접촉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주류 업계에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갔지만 다른 건 접해보지 못했다. 중소기업에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많았다. 중소기업에서 인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는데 많은 젊은이들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부터라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Q. 농업회사법인 조인의 대표이사는 어떻게 맡게 됐나.

대기업, 중소기업할 것 없이 많은 제안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대표이사 얘기를 하면 전부 고사했다. 조인의 한재권 회장께서 대표이사 제의를 했을 때도 거절했다. 왜냐고 물으시길래 업종이 다른 분야의 대표이사를 맡는 건 자만인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처음에는 부회장으로 들어왔고 1년 정도 회사가 돌아가는 걸 지켜봤을 무렵, 회장께서 다시 제안해주셔서 받아들이고 대표이사를 맡게 됐다. 

Q. 주류업계와 농업법인 간 경영하는데 큰 차이는 무엇인가.

주류는 가격이 고정돼 있다. 근데 계란은 생산량에 따라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탄다. 회사 경영에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에는 다방면에 경영 초점을 맞췄는데 요새는 영업에 힘을 싣고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이사 사무실도 영업본부 옆으로 옮겨와 사실상 동고동락하는 중이다. 

Q. 조인 대표이사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조인이라는 회사가 계란 업계에서는 제일 큰 곳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함을 주면 ‘뭐 하는 곳이냐’고 묻는다. 대표이사가 되고 첫 조회 때 직원들에게 ‘조인의 명함을 주면 바로 누리웰 브랜드를 떠올리고 계란의 생산과 유통을 떠올리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오비맥주에서처럼 월요일에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싶은 건 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회사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게 우선 필요한 상황이다. 

장 대표는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제품이 아닌 ‘나’를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
장 대표이사는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선 제품이 아닌 ‘나’를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

영업인 장인수, 제품이 아닌 ‘나’를 팔았다

Q. 자타공인 영업의 달인이다. 그런데 첫 직장은 경리부에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영업에 뜻을 두게 됐나.

내가 태권도 공인 6단이다. 운동을 하던 성격이라 앉아서 있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는 게 체질에 맞다. 경리부에서도 특히 내가 일했던 재무파트는 은행업무를 봐야 하니 그래도 대표이사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대표이사님께 영업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지금 잘하고 있는데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사장님과 가까이 있으면서 성장할 수 있으니 옮기려고 안 할 텐데 난 영업이 하고 싶었다. 그러던 중 당좌수표 5000만원을 잃어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찾긴 했지만 그다음부터는 더욱 영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더라. 

Q. 그래서 진로에 지원하게 된 건가.

1980년 2월경 진로에서 사원을 모집했다. 당시 대부분 대졸 출신을 많이 뽑았다. 근데 진로는 전체 직원 80명을 선발하면서 영업직원 40명을 뽑았고 그중 12명을 고졸 출신으로 할당했다. 당시 채용에는 4000여명이 지원했다.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라 안정적인 직장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다행히 합격이 됐고 그해 5월 15일부터 입사해 영업을 시작했다. 

Q. 영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업이 뭐냐 물어보면 다 마케팅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론적으로 그렇게 배웠으니까. 물론 그게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영업은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뺏는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뺏기 위해서는 ‘나’를 팔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A브랜드 소주회사에 입사했다면 진정한 친구는 A소주를 마셔준다. 다시 내가 B로 옮기면 또 진정한 친구는 B를 마셔준다. 진짜 친구는 나를 따라와 준다. 제품을 판 게 아니라 사람을 봤기 때문이다. 거래선에도 자기 자신을 팔면 상황이 바뀌어도 나를 따라 옮겨올 수 있다. 

Q. 그러면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과학자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도전한다.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한 서비스도 항상 어떤 선에서 만족하면 안 된다. 상대의 마음을 뺏기 위해서는 이 정도면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서비스는 과학처럼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차별화를 계속 만들어내야 거래선에서도 우리 제품에 대한 호감을 가질 수 있다. 

Q. 예를 든다면 어떤 노력을 해볼 수 있을까.

일례로 전에 있던 우리 직원들은 대보름날 거래선들에게 부럼을 챙겨줬다. 주류업계는 대리점이 없다. 전부 다 도매사가 관리한다. 도매사에는 주류회사 영업직원들이 다 온다. 그런데 다른 회사는 빈손인데 우리만 부럼을 갖다 드리니 차이가 생기는 거다. 그다음 해에는 다른 곳에서도 부럼을 사 오지 않겠나. 그러면 이제 부럼으로는 안 된다. 우리 직원은 조금 더 돈이 들어가더라도 오곡밥을 가져갔다. 시장 방앗간, 떡집 가면 오곡밥을 맞출 수 있다. A라는 거래선에 가는데 직원이 20명이면 전날 20개를 만들어서 포장해간다. 그렇게 차별화가 생기는 거다. 차별화 없이는 감동을 줄 수 없다. 

Q. 그래도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선배님 한 분이 어느 날 저를 딱 앉혀놓고는 ‘자네가 지금부터 영업을 시작했는데 영업을 끝내는 날까지 진정한 거래선 2군데만 만들면 진짜 성공한 영업인이라고 자부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때 속으로는 내가 영업을 한두 해 할 것도 아닌데, 200군데도 더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생각건대 진정한 거래선은 한 군데도 못 만들어 봤다. 회사의 이익을 위한 영업과 개인사업을 위한 거래선은 서로 목적이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역에서 부산까지 이어지는 철도 레일과 같이 합쳐지지 못하는 평행선의 관계라 생각한다. 하지만 선배님의 말씀에 자극을 받고 진정한 거래선 2곳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결과가 영업의 달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했다. 

장인수 대표는 오비맥주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1년 8개월 만에 업계 2위로 밀려났던 회사를 선구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투데이신문
장인수 대표이사는 오비맥주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후 1년 8개월 만에 업계 2위로 밀려났던 회사를 선구기업으로 일으켜 세웠다. ⓒ투데이신문

오비맥주에서 세운 고졸신화

Q. 오비맥주로 회사를 옮긴 후 능력을 인정받아 2년 만에 대표이사 자리에까지 올랐다.

처음에는 2010년 영업총괄 부사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다양한 개선과 변화를 통해 1년 8개월 만에 업계 선두를 비공식적으로 재탈환했다. 당시 바로 발표하지는 않았고 시장점유율 55%가 되던 2012년 3월 공식화했다. 그리고 3개월 후 대표이사가 됐다. 하지만 주주들께서 대표이사직을 제안했을 때 사실 고사했다. 사람이 맞는 분야라는 게 있잖은가. 어느 곳에서는 잘하다가도 옮기면 잘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영업이 그랬다. 전문 분야인 영업은 자신 있는데 대표이사가 되면 관리‧생산 등 다방면을 잘 알아야했다. 또 영업출신이 대표이사가 된 사례도 많지 않아 내심 부담이 됐다. 아시다시피 좋은 스펙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조직생활을 이어오며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다행히도 취임 이후 대내외적으로 과분한 칭찬과 관심, 좋은 평가를 보여줘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Q. 오비맥주로 옮긴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인가.

처음 오비맥주에 들어갔을 때 동료 간, 거래선 간 불신이 생각보다 깊었다. 병명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의학에서처럼 병의 이름을 알면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다. 불신을 신뢰로 바꾸려면 변화가 필요했다. 현재 상태 그대로는 어떤 개선도 이뤄낼 수 없다. 하지만 변화는 위에서 지시를 내린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건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내부적인 소통, 외부적인 소통이 절실했다. 직원들끼리의 소통도 강조했지만 내 변화가 곧 회사의 변화라는 생각을 갖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   

Q. 밀어내기도 그런 차원에서 없앤 것인가. 

전임 대표와 주주들을 설득시켜서 주류업계 및 유통업계의 관행인 밀어내기를 과감하게 없앴다. 밀어내기에 대한 불협화음이 정말 많다. 거래처와의 월말 수금도 문제다. 우리가 밀어냈는데 또 가서 수금을 하니, 거래처에서는 우리가 물량을 달라고 했던 게 아니지 않냐며 불만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또 맥주는 살아있는 효모로 마시는 건데 (보관 기간이) 길면 길수록 김빠진 맥주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밀어내기 관행을 없애기 위해 주주들하고 전임대표를 장시간 설득했다. 밀어내기를 그만둔 후 직원들 역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다. 실적 때문에 고민하는 직원들도 밀어내기로 인해 거래선과의 불신이 깊어진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직원들도 긴가민가했는데 실제로 몇 달 동안 밀어내기를 안 하게 하면서 내부적 신뢰도 두터워졌다. 대내외적 인식변화가 생기고 제품의 레시피가 바뀌었냐고 할 정도로 신선도가 달라졌다. 서로 소통하고 훌륭하게 임무를 수행하면서 직원들의 사이에 쌓여 있던 패배의식도 사라졌다. 

Q. 생산직과 가진 릴레이 만남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가 생산을 잘 모르니, 대표이사 되고 나서 생산직 직원 800명과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 30명씩 6개월 동안 저녁에 만나서 4시간 동안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만나면 30명의 술잔을 한 잔씩 다 받고 직원들의 건의나 질문을 받았다. 그게 우리 직원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연차가 많은, 정년을 앞둔 직원들이 ‘지금까지 대표이사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게 처음이다. 이렇게 앉아서 술을 한잔하는 게 너무 좋다’고 말했다. 이듬해부터는 생산공장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방문해서 인사를 나누고는 했다. 그러고 나서 취임 1년 후에 3개 공장에서 선물을 받았다. 앨범이었다. 현장을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을 보내줬던 거다. 내 모습을 보니 직원들과 함께 술 취한 모습, 다 망가진 모습이더라. 사진 아래에는 댓글을 달듯이 글을 적어서 보내줬는데 참 뿌듯했다. 소통이라는 건 그렇게 돼야 한다. 소통의 제일 기본은 상대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진실한 대화를 할 수 있다. 800명의 직원들과 식사한다고 했을 때는 주변에서 다 말렸는데 그걸 6개월 동안 했던 것이 큰 의미가 있었다. 

Q. 인재채용 기준에도 변화를 준 것으로 안다. 이유는 무엇이었나.

지식과 지혜가 겸비된 사람이 들어오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바에는 지혜를 갖춘 사람을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1시간 정도 면접을 보고 사람을 뽑는다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짧은 시간에 사람을 선택하면 적성과 안 맞는데 뽑혀 들어오는 직원들도 생긴다. 지식이라는 건 지방대학을 나오든 서울에 있는 대학을 나오든 큰 차이가 없다. 그래서 도입한 게 3개월 인턴제다. 50명의 직원이 필요하면 100명을 뽑았다. 그리고는 100명에게 동등한 기회를 주는 거다. 인턴기간 동안은 정규직 직원과 똑같은 대우를 해준다. 인턴사원들에게는 밑바닥 영업을 시켰다. 한 지역을 주고 그 안에서 판촉활동을 시킨 거다. 상대의 마음을 뺏는 활동을 시켜보고 싶었다. 나중에 보면 절박한 친구들이 합격한다. 취업을 위해 정말 노력을 해도 실패해왔던, 어렵게 기회를 잡은 친구들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자생력을 쌓은 직원들은 지점에 발령된 후에는 날아다녔다. 

Q. 영업을 하다 보면 수많은 거절 속에 놓일 수밖에 없는데 사람이 싫어졌다거나 실망한 적은 없었는지. 

당연히 있었다. 많았다. 하지만 자녀들에게도 얘기하는 게 긍정의 마음이 중요하다. 나 역시 누가 싫은 소리를 하면 기분 나쁘다. 근데 곱씹어 본다. 상대가 싫은 소리를 하거나 기분 나쁜 말을 하면 왜 저런 말을 할까, 내가 왜 이런 평가를 받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다시 되받아서 고치려고 노력한다. 상대의 입장에서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그 자리에서는 기분이 나쁠지언정 변화하려고 노력했다.  

ⓒ투데이신문
장 대표이사는 큰 꿈보다는 작은 꿈을 가지라고 전했다. 그는 작은 목표를 좇다보면 어느 순간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투데이신문

자연인 장인수를 묻는다

Q. 누구보다 극적인 성공 스토리를 갖고 있지만,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나. 

내가 부족하다고 느낀 순간은 많다. 강의를 나가면 항상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자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무슨 의미냐면 진로에 처음 입사했을 때 대졸 동기 68명과 고졸 동기 12명은 사실 신분이 달랐다. 하지만 내가 68명에 속했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부족한 게 많으니 더할 수밖에 없다. 부족함이 더 많은 걸 할 수 있게 해줬다. 남 핑계 대지 않고 내 탓으로 삼았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 대학에 못 들어갔으니 남의 탓이 아니잖은가.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노력했다. 물론 노력해도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나 행운은 노력하고 준비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 

Q. 강의나 강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가깝게 지내던 동년배 대학교수께서 같이 소주 한 잔을 나누던 중 특강을 좀 다니라는 거다. 왜냐고 물으니, ‘장 부회장 같은 사람은 진짜 바닥서부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많은 것을 경험하지 않았냐. 젊은 후배들이나 중소기업하는 사람들에게 살아온 얘기만 해줘도 상당히 사회에 기여가 된다. 그게 재능기부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은 스스로의 인생을 돌아보니 직접 경험한 건 하나도 없는 인생을 살았고 후학들에게 남의 이야기만 들려준 것 같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엇인가를 나누는 사람들의 얼굴은 너무나 편안해 보이더라. 시간 없다며 핑계를 대다가 쉬면서 느껴지는 게 있어 그 무렵부터 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라도 내 강연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만큼 좋은 인생이 또 어디 있겠나. 근데 이게 재능기부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돈이 나왔다. 내 돈이 아닌 것 같아 집사람에게 기부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니 그것도 남의 돈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강의료를 받은 만큼을 더해서 기부를 했다. 강의료 더 적게 주는 데가 낫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한다. 가진 걸 나누면서 느낀 게 기부는 남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지금도 이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Q. 20대 샐러리맨 이후의 삶은 많이 알려졌는데,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어렸을 때 홍역을 앓았는데 거의 죽기 직전까지 갔다. 아버님께서 그걸 살리시려고 엄청 고생하셨다. 그때 생긴 손바닥 만한 흉터가 아직도 있다. 초등학교까지만 해도 머리를 기르면 잘 안 보였는데 중학교에 입학하고 까까머리를 하니 흉터가 보이는 거라. 사춘기 때 얼마나 혼란스러웠겠나. 초등학교까지는 공부를 잘했는데 중학교 와서 충격을 받고 공부에 취미를 잃었다. 방황까진 아니었지만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그때 삐뚤어지지 않은 건 운동을 했기 때문이다. 그때 태권도를 시작해 학창시절은 학교 다녀오면 체육관으로 직행했다.  운동에 심취한 시절이었다. 그 영향으로 1988년에는 직장 다니면서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Q. 가족에게는 어떤 아버지이자 남편인가.

가족들이 희생을 많이 했다. 우리 가족은 휴가라는 걸 몰랐다. 누가 가지 말라고 강요한 적도 없었는데 제 스스로 못 간 거다. 딸이 21살 되던 해에 네 가족이 정동진에 갔다. 그것도 8월 20일쯤 여름 휴가철 다 지난 다음에 1박 2일로. 모래사장을 딱 밟는데 우리 딸이 ‘어 모래다’라는 말을 했다. 무슨 소리인가 생각해보니 딸이 모래를 밟아 본 적이 없는 거였다. 가족여행도 못 가, 또 아빠가 보수적이라 통금시간까지 정해놓다 보니 그랬다. 아빠로서는 빵점이었다. 이듬해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휴가를 가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중요한 보직을 맡게 돼 지키지 못했다. 요즘엔 그래도 시간 여유가 있으니 자주 만날 수 있고 또 그러려고 노력한다. 

Q. 영업의 달인이나 대표이사로서가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말했듯이 가족과 많은 시간을 갖고 싶다. 며칠 전 월례 조회 때 5분 정도 되는 동영상을 봤는데 어떤 내용이었냐면 당신이 앞으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이 남았을까라고 묻는 것이었다. 그걸 보고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진짜 저게 맞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휴가를 가지 말라고 한 사람 하나도 없는데 내가 갇혀서 산 거지.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내 합리화고 결국 가족은 희생을 해야 했다. 남들 하는 걸 못하고 살았으니까.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Q. 작은 목표, 실현 가능한 꿈을 항상 강조해왔다. 영업인 또는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대부분 꿈을 크게 가지라고 하는데 난 그러지 말라고 한다. 너무 크게 가지면 그냥 꿈에 멈출 수 있다. 작은 꿈을 꾸면서 자꾸 조금씩 성취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뭐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고 그럼 언젠가는 더 큰 꿈을 꿀 수도 있는 거다. 처음부터 목표를 너무 크게 잡고 한 번 두 번 포기하게 되면 나중에 가서는 모든 것을 접게 될 수 있다. 처음에 내가 태권도를 할 때도 흰 띠인 내 눈에는 파란 띠만 보였다. 저거 언제 딸까 그거 생각만 하는 거다. 흰 띠에서 빨간 띠로 넘어갈 수는 없잖은가. 또 예전에는 파란 띠로 넘어가면 흰 띠를 버리는 게 아니라 그 위를 파란 천으로 덮는다. 검은 띠가 되면 지나온 족적을 다 갖게 되는 거지. 그렇게 작은 목표를 하나씩 격파해나가다 보면 자신감을 쌓을 수 있다. 나는 이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이 너무 좌절만 하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이뤄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분명 성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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