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조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얼마 전에 한 정치인에게 안동의 유림이 했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5월 13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안동을 방문해 경북북부지역 유림단체와 간담회를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유림의 대표가 황교안 대표를 치켜세운 것이다. 김종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은 “보수가 궤멸해가는 이 어려운 처지를 건져줄 우리의 희망의 등불이요, 국난극복을 해결해줄 구세주”라고 황 대표를 치켜세웠고, 박원갑 경북향교재단 이사장도  “100년마다, 1세기마다 사람이 하나 난다고 그러는데 건국 100년, 3.1절 100년(에) 나타난 것이 황교안 대표”라고 칭송했다.

이 사건이 있고 난 후 안동 지역의 다른 유림들을 비롯한 여러 단체와 개인의 반발이 있었다. 류성룡 선생의 14대손이라고 밝힌 류돈하(38)씨는 지난 21일 안동시 남부동 문화의거리에서 ‘김종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장과 박원갑 경북향교재단 이사장은 반성하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였다. 임재해 안동대학교 명예교수도 지난 17일 자신의 SNS에 ‘선비정신 내팽개친 안동유림의 황교안 우상화’라는 제목으로 “선비의 비판 정신을 내팽개친 것은 물론 권력에 아첨하느라 유림답지 않게 장로 황교안을 구세주로 우상화했다”고 비판했다.

이 사건 속에는 다양한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찾을 수 있다. 우선 “구세주”라는 표현이 눈에 띈다. 유림의 사전적 정의는 유학을 신봉하는 사람이나 그 무리를 뜻한다. 그런데 유학이나 유교에서 “구세주”라는 개념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구세주는 보통 유대교, 기독교 전통에서 등장하는 단어이며, 한국의 신종교, 즉 증산교단이나 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 등에서 등장하는 개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림 한 사람이 “구세주”라는 단어를 쓰면서 수구 진영의 대표를 칭송한 것은 이례적이다.

이러한 이례적 현상은 단지 이번 사건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 “종교(religion)”라는 말과 함께 이와 관련된 다양한 개념들이 들어왔다. 그 과정에서 한국에 존재하는 단어들 가운데 가장 비슷한 개념을 외국에서 들어온 개념과 짝을 이뤄 번역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서 영어 heresy라는 단어는 유학에서 쓰이는 이단(異端)이라는 말로 번역되었고, the Presbyterian Church라는 개신교의 한 교파의 이름에는 장로(長老)라는 불교에서 사용하는 단어로 번역되었다. 물론 그 이전부터 the God은 하느님이라는 단어로 바뀌었는데, ‘하늘에 있는 신’을 지칭하는 “하늘님”, 혹은 “ᄒᆞᄂᆞᆯ님” 등에서 하느님이라는 단어가 the God의 번역어가 됐다(개신교에서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경우 유일신이라는 것을 강조한 신조어라고 예상된다).

또 다른 맥락은 종교와 정치 사이의 정교분리에 관한 논란이다. 정교분리는 정치와 종교가 엄격하게 분리돼야 된다는 정치 원리이다. 이것 역시 유럽에서 들어온 개념이다. 유럽 중세 시대에 가톨릭의 교황이 왕이나 기사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가, 근대 이후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탄생한 개념이 정교분리이다.

한국의 전통시대에는 정교 분리라는 개념이 없었다. 삼국시대에 불교가 들어온 이후 불교는 고려 왕조 때까지 지배층 차원에서 숭상 받고 보호됐다. 그 이후 왕조인 조선시대에는 성리학이 국가의 사상적 근간으로 여겨졌고, 성리학의 확산을 위해 교육을 이용하고 지방과 가정의 의례에까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의례를 보급했다. 즉 국가 차원에서 성리학이 보급되고 확산된 것이다. 또한 지배층은 성리학에서 벗어나는 사상에 대해서는 이단이나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해서 탄압하는 일도 빈번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동학(東學)과 천주교였다. 이후 대한제국이 수립되었을 때 유교는 국교로 인정됐다. 그리고 일제강점기 직전 유림은 일제의 침략에 저항했던 세력과 유림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일제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부응한 세력이 공존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헌법부터 정치와 종교는 엄밀히 분리돼 지금에 이르렀다.

현대 사회에서 종교계가 정치에 개입하는 일은 이번 사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신교에서는 국회의원 선거 때 동성애 관련 오적(五賊)을 규정하고 이들에게 표를 주지 말 것을 이야기한 경우도 있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회장인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 전광훈은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장관직을 제안 받았다고 설교 시간에 이야기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불교 역시 조계종 측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설이 분분하다.

신앙의 자유, 정교 분리라는 개념을 비롯한 서구에서 들어온 각종 종교와 관련된 개념들은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드러나고, 다양한 현상을 일으킨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동성은 필자와 같은 연구자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의 문제는 종교가 없는 사람들이나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 엄격한 기준을 바탕으로 판단해야 할, 모든 국민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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