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퀴어문화축제 20주년 맞아
사상 처음으로 광화문 앞 행진

1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스무 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라는 슬로건으로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이하 조직위)는 “정부는 평등한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야 할 가장 중요한 주체임에도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며 무책임한 태도로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며 “이번 슬로건을 통해 정부에 직접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지난 5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핑크닷’에서 참가자들이 분홍 불빛을 켜고 환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지난 5월 3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핑크닷’에서 참가자들이 분홍 불빛을 켜고 환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앞서 전날 서울광장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전야제 행사인 ‘서울 핑크닷’이 열렸다. 핑크닷은 2009년 싱가포르에서 처음 시작된 행사로, 성적 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이들의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향한 열망을 상징한다.

핑크닷이 한국에서 진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핑크닷에 참여한 시민들은 서울광장을 분홍빛으로 물들이며 서로를 향한 연대와 평등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날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에도 수많은 시민들이 참여했다. 참가자들은 무지갯빛으로 치장하고 시청을 아름답게 물들였다.

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중구 서울광장의 주한호주대사관 부스에서 코알라 탈을 쓴 참가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 중구 서울광장의 주한호주대사관 부스에서 코알라 탈을 쓴 참가자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이날 퍼레이드는 오전 11시 부스행사로 시작됐다. 서울광장에 설치된 74개의 부스에서는 다양한 후원 굿즈와 각종 이벤트가 진행됐다. 태국정부 관광청, 캐나다·프랑스·뉴질랜드·호주·덴마크·핀란드 대사관, 주한EU대표부 등이 부스행사로 참여했으며 구글, 러쉬코리아 등 글로벌 기업들도 지난해에 이어 부스를 열었다.

이밖에도 ‘사회적소수자와 함께하는 성공회 교회들’, ‘로뎀나무그늘교회,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등 종교계도 참여해 평등을 위한 목소리를 냈으며 홍콩 프라이드 퍼레이드, 도쿄 레인보우 퍼레이드 등 해외의 성소수자 단체들도 참여해 20주년의 의미를 더했다.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쿠시아 디아멍, 보리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쿠시아 디아멍, 보리가 공연을 펼치고 있다. ⓒ투데이신문

또 오후 2시부터 4시까지는 퍼레이드에 앞서 참가자들을 환영하는 ‘환영무대’가 이뤄졌다. 일렉트로니카 레이블 렡츠랱츠(LetzRatz), 쿠시아 디아멍, 보리, 퀴어연극제 드래그(고정된 성 역할에 따라 정해진 옷과 행동 등을 다른 성에 맞춰 바꾸는 것)공연팀 바게트, 붉은나비합창단, 래퍼 제리케이 등이 음악과 춤으로 참가자들의 열기를 더했다.

환영무대 후 오후 4시부터는 메인 행사인 ‘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됐다. 20주년을 맞아 사상 처음으로 세종대로를 걷게 된 행렬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소공로-한국은행 앞 사거리-남대문로-을지로입구 사거리-종각역 사거리-세종대로 사거리-종각역 사거리-을지로입구 사거리-시청삼거리를 지나 다시 서울광장을 돌아오는 약 4.5km 코스로 진행됐다.

1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무지개깃발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무지개깃발 행렬이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다. ⓒ투데이신문

퍼레이드의 선두에서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퀴어·앨라이(Ally, 퀴어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들로 구성된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모터바이크를 타고 행렬을 이끌었으며, 50m짜리 대형 무지개 깃발과 공연차량 10대가 뒤를 이었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공연차량의 음악에 맞춰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서울시내를 행진했다.

이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이탈리아 출신 쥴리아(Giulia)씨는 “이탈리아에서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한국 퀴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면서 “한국 사회는 조금씩 바뀌고 있기 때문에 포기하지 말고 스스로의 모습을 찾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면 좋겠다”고 성소수자들을 격려했다.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 에디(왼쪽)씨와 쥴리아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퍼레이드에서 참가자 에디(왼쪽)씨와 쥴리아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쥴리아씨와 함께 퍼레이드에 참여한 영국 출신 에디(Eddie)씨는 “퀴어문화축제에 처음 참여하는데, 이곳에서 내 자신의 모습을 찾는 자유로움을 느낀다”며 “커밍아웃을 한 사람이나 커밍아웃을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스스로를 격려하고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독일 호스피스의 대모’이며 레즈비언으로 알려진 김인선씨도 이날 퍼레이드에 참여했다. 그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회가 됐다니 놀랍다. 한국 젊은이들의 열정적이고 순수한 축제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한다”며 “나이드신 분들 중에서도 퀴어들이 있을텐데, 그 분들도 이런 축제의 자리에 나와서 젊은이들에게 조언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기존의 교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성소수자들을 혐오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입장에서 반성을 해야 할 것이고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장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독일 호스피스의 대모'로 알려진 레즈비언 김인선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1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독일 호스피스의 대모'로 알려진 레즈비언 김인선씨가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행렬이 서울광장으로 돌아온 후에는 퀴어풍물패 ‘바람소리로 담근 술’, 퀴어 댄스팀 큐캔디, 랩 그룹 2LP 등의 축하공연이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이들의 춤과 노래로 자긍심을 고취시키며 축제의 기쁨을 누렸다.

한편 지난 5월 21일 연속강연회로 시작된 서울퀴어문화축제는 이달 5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는 한국퀴어영화제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