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못가” 방광염에 시달리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
“화장실조차 마음대로 못가” 방광염에 시달리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6.10 18:53
  •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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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면세점 고객용 화장실 제한 만연
제때 화장실 못가 방광염에 시달리기도
고객용 화장실 사용 제한, 법적 근거 없어
노동자 화장실 이용 문화 인식개선 우선돼야
<사진 제공 = 서비스연맹>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우리도 화장실에 가고 싶습니다!”

지난 4월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이 국가인권위원회 앞에 섰다. 이들은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제한받아 노동자들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호소했다.

실제로 많은 백화점·면세점에서는 고객이 불편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고객용 화장실과 직원용 화장실을 구분해 놓고 있다. 비교적 가까운 곳에 위치한 고객용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게 하다 보니 제때 화장실에 가지 못한 노동자들은 방광염에 시달리고 생리대 교체도 자주 하지 못해 피부병에 걸리는 등 건강상의 문제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 같은 문제는 수년째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개선은 기대할 수 없었다.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이번에야말로 고객용 화장실과 직원용 화장실을 구분해 유통업계의 잘못된 문화를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다지며 지속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사진 제공 =서비스연맹>

참고 참고 또 참고

# 백화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고객 응대 등의 이유 때문에 제시간에 화장실에 가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게다가 매장에서 가까운 화장실은 고객용 화장실이기 때문에 이 같은 이유로 회사에서는 직원들의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불가토록 했습니다. 직원용 화장실은 근무지와는 다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화장실을 제시간에 잘 가지 못하기 때문에 판매직 노동자들은 방광염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생리대를 자주 갈지 못해 피부염에 걸리기도 합니다. 임신 중이라고 해서 화장실 사용을 배려 받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14년 차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

# 면세점도 백화점과 다를 게 없습니다. 고객이 불편해한다는 이유로 고객용 화장실과 직원용 화장실을 구분해놓고 직원들의 고객용 화장실 이용을 제한합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직원용 화장실의 개수가 근무하는 노동자 수와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부족합니다. 각 층마다 수십 개의 매장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원용 화장실은 층별로 남녀 각각 한 칸뿐인 곳이 대부분입니다. 매장별 직원 수를 한명으로 가정하더라도 수십 명이 단 한 칸의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어떤 면세점의 경우 휴게실과 화장실이 나란히 위치해 있어 마음 편히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해 결국 지하 창고 옆 화장실을 사용하기도 하며, 매장이 있는 층에 직원용 화장실이 없어 다른 층으로 멀리 다녀와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6년차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지난 4월 22일에 열린 ‘인간의 기본권 보장도, 노동부 권고도 무시하는 유통재벌 규탄 및 국가인권위 진정서 제출 기자회견’ 현장 증언>

지난해 10월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보건과학과 김승섭 책임연구원이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직 노동자 28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명 중 8명은 사측으로부터 고객용 화장실 사용 금지를 교육받은 경험이 있으며, 화장실 거리가 멀거나 사용 제한 등을 이유로 근무 중 화장실을 가지 못한 노동자도 절반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고객용 화장실 사용 금지 교육 경험’에 대한 설문응답은 ‘예’ 2173명(77.4%), ‘아니오’ 633명(22.6%)으로 10명 중 8명은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직종별로 살펴보면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816명 중 422명(51.7%)이 ‘예’, 394명(48.3%)이 ‘아니오’라고 답했다.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의 경우 전체 응답자 1990명 중 ‘예’ 1751명(88.0%), ‘아니오’ 239명(48.3%)으로 조사됐다.

근무 중 화장실을 가지 못한 경험에 관한 질문에는 ‘예’ 1677명(59.8%), ‘아니오’ 1129명(40.2%)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중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는 ‘예’ 503명(61.6%), ‘아니오’ 331명(38.4%), 백화점 판매직 노동자는 ‘예’ 1174명(59%), ‘아니오’ 816명(41%)으로 확인됐다.

뿐만 아니라 10명 중 2명꼴로 화장실 사용 제한에 따른 방광염과 피부염 등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광염을 앓고 있는 노동자는 20.6%(578명), 이중 면세점 비율이 15.1%(124명), 백화점 비율이 22.9%(455명)으로 집계됐다. 6.5%(5387명)인 일반인 집단(응답자 8만2689명)의 3배에 달한다.

근무 중 생리대 교체를 제때 하지 못해 피부 질환이나 염증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있다.

6개월간 제때 생리대 교체를 하지 못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1081명(39.9%)이 ‘예’라고 응답했다. 직종별로는 면세점 302명(38.3%), 백화점 779명(88.0%)이다.

생리대를 교체하지 못해 피부 질환 혹은 염증 경험이 있었는 지에 관한 질문에는 466명(17.2%)이 있다고 답했다. 직종별로는 면세점 108명(13.7%), 백화점 358명(88.0%)이다.

수년째 관례처럼 자리 잡은 고객용 화장실 사용 제한으로 신속한 생리현상 해결이 어려워지고, 매장을 오랜 시간 비우기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화장실 이용 빈도까지 줄이게 되는 결과가 초래돼 결국 판매직 근로자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게 노조의 주장이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근거 없는 이용 제한

현행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공중화장실을 ‘공중이 이용하도록 제공하기 위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법인 또는 개인이 설치하는 화장실’을 뜻한다. 동법 제3조 4호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르면 대규모점포 또는 임시시장, 상점가 전문상가단지에 설치된 화장실은 공중화장실로 정의된다. 다시 말해 대규모 점포인 백화점 화장실은 공중화장실로 봄이 마땅하다. 또 면세점도 ‘공중화장실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을 기초해 공중화장실로 분류된다.

실제 백화점 등의 화장실이 중앙행정기관의 장 혹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설치 명령에 따라 공중화장실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사측의 일방적인 방침에 따라 고객용과 직원용의 구분 기준을 만들어 판매직 근로자들은 일반 상식에 어긋나게 그 사용을 제한받고 있다는 게 현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다.

백화점·면세점 등에서는 고객들이 불편해하기 때문에 고객용과 직원용 화장실을 분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또한 백화점·면세점이 자행한 결과라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강병찬 조직국장은 “실제 고객에게 직원들의 고객용 화장실 사용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화장실이 나눠져 있는 거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직원의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불편해하는 고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분들도 처음부터 이를 불편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직원을 위한 별도의 화장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객용을 사용한다고 하니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고객용과 직원용 화장실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낸 건 사측이다. 사측이 그런 생각을 몰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지난해 10월 백화점·면세점 등 업계에 화장실 이용을 제한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화장실 사용문제는 기본 생리현상과 연관됐기 때문에 노동자의 건강 및 인권과 직결된 사항임에도 최근 백화점·면세점 내 판매업무 근로자들에 대한 화장실 부족과 사용불편에 따른 건강침해 문제가 계속 사회적으로 이슈되고 있다. 관내 백화점 및 면세점(또는 지점) 등을 대상으로 판매직 노동자가 고객용 화장실 사용에 제한을 받거나 화장실 사용이 불편해 건강장해가 초래되지 않도록 붙임공문을 발송하고 화장실 사용실태를 지도해 주길 바란다”는 취지의 권고사항이 각 지방관서에 발송돼 해당 내용이 각 백화점 등에 통보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법적인 강제성이 없고 말 그대로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보니 크게 달라진 바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서비스연맹에서 백화점·면세점 등에 이와 관련 공식적인 답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어떠한 답변도 듣지 못했다. 

한국시세이도노동조합 김수정 사무국장은 “고용부의 권고 이후 대놓고 고객용 화장실을 사용을 금지하진 않는다. 눈치를 주는 것도 많이 사라져 마음 자체가 편해졌고, 노동자들 스스로도 권리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게 됐다”며 “다만 여전히 편하게 화장실 이용을 못하는 노동자가 대부분이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관례이기 때문에 더 구체적인 개선사항들이 필요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비스연맹과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은 지난달 2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백화점과 면세점의 화장실은 법률에 근거해 공중화장실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용을 제한하는 것은 법에 위배된다는 취지의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화장실 사용 제한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건강권을 침해하는 행위는 대한민국 인권지수의 민낯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즉각 시정조치 돼야 한다”며 “매장 판매직 노동자에 대한 고객용 화장실 사용 제한 조치는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또 “대한민국 인권을 올바르게 잡을 책임이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이날 제출하는 진정서가 한국 사회의 인권지수를 높이는 데 이바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조치해주실 것을 다시 한 번 간절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화장실 이용 문화 인식개선 우선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로 관련법 미비가 거론됐다. 앞서 설명처럼 노동부의 권고사항 등에 법적인 강제성이 없고 말 그대로 권고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한편에서는 법적인 기준을 명확하게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장실 이용에 관한 사측의 문화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수정 사무국장은 “사실 화장실 이용뿐만 아니라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 등에서도 다양하게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며 “백화점·면세점 판매직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법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나라에서 하지 말라는데 누가 할 수 있겠느냐. 그것이 노동자로서 소망이자 바람이다”라고 전했다.

강병찬 조직국장은 “관련법 자체가 미비한 건 사실이기 때문에 처벌규정이 강화될 필요성은 느낀다”면서도 “사측이 백화점·면세점 노동자들을 비인격적인 대상으로 보는 것이 무엇보다 문제다. 이들도 근무복을 벗고 밖에 나가면 똑같은 시민이다. 법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장실 이용에 관한 문화 인식 개선 문제가 더욱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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