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박꽃은 더욱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뭇 꽃에 끼어서 봄철을 매혹적으로 만들지도 못하지만, 그 넝쿨은 멀고도 길게 뻗어 가며 박 한 덩이의 크기는 여덟 식구를 먹일 만큼 넉넉하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

못생긴 두 사람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중니(仲尼)는 공자(孔子) 자(字)다. 공자(孔子)의 제자 중에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정말 못생겼다고 한다. 첨에 공자한테 배우러 왔을 때 공자조차 ‘이건 좀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담대멸명은 제자가 된 뒤에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려 애썼고, 길을 다닐 땐 큰길만 고집했으며, 개인적으로 벼슬아치를 만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여러 제후들에게 정직한 사람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후 공자를 떠나 자신도 제자를 가르쳤는데, 따르는 사람이 3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공자는 탄식했다.

“내가 외모만을 보고 사람을 가렸다가 담대멸명에게 실수했다.”

이 일화는 사람을 취하거나 평가할 때 잘생긴 외모보다 심성이 더 가치 있다는 말을 할 때 자주 쓰이고 있다. 그러나 마음만 곱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는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방통(龐統)이라는 못생긴 사람의 일화가 나온다. 이 사람은 지략으로 제갈공명과 쌍벽을 이뤘던 사람으로, 둘 중 한 사람만 데리고 있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돌았을 만큼 방통의 명성은 높았다.

그런데 그는 들창코에 얼굴빛은 거무튀튀했고, 당시 남성의 인품을 상징하는 수염도 적어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처음에 방통은 손권(孫權)한테 갔는데 이런 생김새 때문에 퇴짜를 맞았다. 손권의 부하였던 노숙(魯肅)은 방통의 재능이 아까워서 이 사람더러 유비(劉備)한테 가라고 권유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추천장을 써 주었다.

방통은 유비에게 갔지만, 일부러 노숙의 추천장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자 유비 역시 손권이 그랬던 것처럼 방통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이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다만 내보내지는 않고, 뇌양현(耒陽縣)이라는 작은 동네의 사또로 임명해 버렸다. 뇌양현에 부임한 방통은 고을의 일을 돌보지 않으며 매일같이 술만 마셨다. 이 소문을 들은 장비(張飛)는 씩씩거리며 방통을 찾아가서는 방통에게 왜 일을 하지 않느냐며 다그쳤다. 술에 취해 비스듬히 앉아 있던 방통은 부하에게 일거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더니 며칠 동안 쌓인 일을 반나절 만에 깔끔히 처리했다.

유비는 방통을 불러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제야 방통은 노숙이 써 준 추천서를 유비에게 건넸다. 나중에 이 일을 알게 된 제갈공명이 웃으며 말했다.

“방통은 겨우 백 리의 좁은 땅을 다스릴 만큼 작은 인재가 아닙니다.”

이 일화 역시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만 봐선 안 된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꽃이 크다고 해서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사람을 평가할 때 외모를 중시한다. ‘용모 단정한 분’을 원한다는 구인광고의 평범한 말속에는 ‘이왕이면 빼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으면 좋다’는 의미까지 들어 있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다. 이래서일까? 언젠가 대학에 다니고 있는 맏딸 가진이가 성형 수술을 하고 싶다고 한 적이 있다.

“아빠는 성형 수술하는 건 반대야.”

“왜?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도 있는데, 수술해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그래. 꼭 해야겠다고 한다면 말릴 수는 없는데, 수술을 하면 아프잖아. 그리고 이후에 맘에 안 들면 또 하고 싶어 할 지도 모르잖아. 그럼 어떡할 거야?”

“예뻐질 수 있다면 그만한 고통은 감수해야지.”

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진 않았지만, 굳이 더 묻지는 않았다. 게다가 고통을 감수하겠다고 하는데 거기다 대고 딱히 잔소리를 할 수도 없었다. 이 때 옆에서 듣고 있던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당신은 이 문제에 대해선 참 보수적이네.”

그렇다고 인정했다. 말릴 생각은 없지만, 굳이 하라고 권하고 싶지도 않다. 딸아이한테 말한 것처럼 수술 이후의 모습이 맘에 안 들 수도 있고, 혹시 부작용이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수술이 잘 돼서 없던 자신감이 생기고, 이를 바탕으로 잘 살아가면 좋겠지만,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외모를 꾸미는 일은 결국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일 텐데 자기만족의 기준이 모호하고, 좋은 외모만으로 과연 자기만족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디쯤에서 타협을 해야 할까? 이 즈음에서 옛 글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군자가 화려한 꽃을 싫어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꽃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그 열매가 맺히는 것은 아니니 모란과 작약이 바로 그렇다. 모과의 꽃은 목련만 못하고, 연밥은 대추나 밤만 못하다. 심지어 박꽃은 더욱 보잘것없고 초라하여 뭇 꽃에 끼어서 봄철을 매혹적으로 만들지도 못하지만, 그 넝쿨은 멀고도 길게 뻗어 가며 박 한 덩이의 크기는 여덟 식구를 먹일 만큼 넉넉하다. 한 바가지의 박 씨는 백 이랑의 밭을 박 잎으로 뒤덮이게 할 만하고 박을 타서 그릇을 만들면 두어 말의 곡식을 담을 만하니, 꽃과 열매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박지원(朴趾源), 『연암집(燕巖集)』, 권1, 「이자후하자시축서(李子厚賀子詩軸序)」>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이 마흔여섯의 나이에 아들을 본 이박재(李博載, 1739-1806)에게 전하는 축하의 글이다. 박지원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내실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박재의 아들이 속이 꽉 찬 사람으로 성장해 주기를 바랐다. 나는 박지원의 생각에 대부분 동의한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인품과 실력이 더 중요하다

이처럼 옛 사람들은 외모보다 인품이나 실력을 중시했으며, 실생활에서 이런 생각을 실천하려 노력했다. 옛 사람들의 생각과 말을 모두 받아들일 필요까지는 없다. 외모를 꾸밈으로써 자신감을 얻는 등 내면의 안식을 얻고 있으므로 반드시 이를 나쁘다고 할 이유도 없다. 지혜로운 공자나 유비까지도 외모에 속았고, 현재에도 출중한 외모로 덕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를 아예 무시할 수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결국 사람은 인품과 실력이 있어야 인정받는다.

“잘하지 못해도 잘 생기면 용서된다”는 말은 농담일 뿐이다. 한 발 양보해서 한두 번 용서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잘하지 못하면 끝내 비참해진다. 좋은 외모를 갖고 있으면 그렇지 못한 남들보다 처음에 조금 유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전부다. 내 삶의 성패를 외모가 전적으로 좌우하지는 못한다. 가진이가 아빠의 마음을 헤아려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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