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에서 활동하는 중국작가 오진환吳震寰 작품의 특징은 무엇보다 대륙적이고 동양적이라는 데에 있다. 대륙적이라 함은 그의 대다수 작품이 100호가 넘는 대작으로 거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거대한 화폭을 가질 수 있는 배경과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가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일에 아무런 선입관을 가지지 않고 화폭을 만난다는 점이다. 동시에 이것은 그가 피사체를 바라보는데 어떠한 것도 거침이 없는 시선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미술이 무엇인가라는 것을 알기 이전에, 그림은 하나의 자연을 담아내는 일이란 정신과 표현임을 먼저 체득했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독학으로 습득한 그림과 서예, 전각과 동서고금의 예술세계를 다룬 책들을 접하면서 그는 당대의 미술과 회화 정신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는 그림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 이전에, 예술은 인간의 인간에 관한 정신 그 하나의 표현이란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사실이다.

고등학교 때 서양 예술을 접한 뒤, 독학으로 서양 예술을 배우기 시작한 그의 예술적 과정은 그래서 독특했고 독창적일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동양예술에 푹 빠져 있던 그에게 서양 예술의 발견은 동양예술이 가지고 있는 사유와 사색의 차원을 더욱 차원 높게 고무시켰으며, 매혹적인 서양미술을 받아들이는 중요한 전환의 계기가 됐다.

그러한 서양미술의 영향은 지금도 그대로 그의 작품 속에 투영되고 흐르고 있다. 그의 초기에서 현재에 이르는 무수한 작품들을 보면 특히 표현적이면서 관념적인 것에 이르는 폭넓은 작품세계가 그의 예술세계의 단면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기본적으로는 구상적이면서 때로는 미니멀한 작품까지 형상에서 개념의 표출까지 광범위한 전개가 이를 증명한다.

오진환은 풍경과 인물의 표현에서도 그 과감하고 생략의 결기가 넘치도록 화면에 충만하다. 그뿐만 아니라 실제 묘사에 그치지 아니하고, 그 대상들을 단순화하며 그 특징만을 담아내는 대담함을 단순미로 승화시킨다.

이런 필법들이 그의 모든 회화 속에 일관되게 관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예술세계는 역사적이고 통시적이다. 본질에서 오진환 작가는 묘사보다는 사물의 의미를 파악하고, 특징을 포착하는 간결함이 주는 형태미로 회화의 본질에 충실한 빼어난 통찰력에 뛰어나다.

그가 최근 들어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작업하는 그 내용과 형식에는 이 동서양의 정신이 함께 만나서 융합하는 공간에 대한 해석이 매우 뛰어나게 강조된다.

거의 직관으로 시작해서 직관으로 완결되는 이것을 그는 공상화(空像畵)로 부르는데, 여기에는 그가 수년 동안 고뇌하고 작업해 온 동서양의 만남과 조화가 가장 이상적인 예술의 형식에 도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그가 긴 시간 고민하면서 얻은 진실은 그 어느 것도 대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예술은 좋은 것과 나쁜 것 그 자체일 뿐 동서양의 구분은 없다는 결론에서 다시 출발한다.

이번 금보성 아트센터에서 보여준 거대한 벽면에 단순화된 형태의 압축과 생략의 미, 창원전시에서 보여주는 개념적인 작품들은 그의 철학 정신이 어떻게 시작하고 완결되는가를 명확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마치 하나의 기호처럼, 하나의 암호처럼, 하나의 상형문자처럼, 하나의 말처럼 그의 회화는 단순미의 절정에 오르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이탈리아의 미술사학자 빙켈만이 정의한 바 있는 “고귀한 단순과 조용한 위대”라고 오진환의 미술을 명명하고 싶다. 

그리고 여기에는 어쩌면 노자가 말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라는 철학이 그에게 뿌리깊게 내재하고 있음을 지시한다. 즉 도를 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진짜 도가 아니다.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이름이 아니다.

또한, 그가 자술하듯이 물질적인 세계와 평등 무차별한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음을 뜻하는 “색불이공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이며, 이는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라는 그의 평소의 예술관을 그대로 노출한것이라 판단된다.

특히 고독한 창작과 상념에 몰두한 나는 모든 것이 구분이 없으면서도 구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작가의 고백은 그가 얼마나 동양적이고 노자적인가를 드러내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불교의 공(空)과 색(色)처럼 둘이 아닌 하나였다는 그의 다음 말에 주목한다. “산이 산인 것을 보고 그 다음엔 산이 산이 아닌 것을 본다.” 이 두 가지의 철학들이 오진환 작가의 작가정신이자 회화를 제작하는 뿌리라고 본다. 

이러한 비어있는 공간을 채워나가는 이미지의 힘이 바로 그가 주창하는 즉 공상화(空像畵)의 실체이다. 결국, 오진환에게 공상화란 인간의 생명과 존재의 모든 드러냄이자 세상을 향한 발언이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우리는 그가 공상화를 제작하는 방법과 순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공상 회화를 만드는 몇 가지 구체적인 방식을 기술하고 있는데 이것을 보면 먼저 붓으로 한 획을 터치해 공백 화면으로 만들고, 모든 과정은 필법과 그 용도의 법도를 엄격하게 따라야 하며, 빈 공간인 여백의 화면에 추상화를 그리는 것이다. 여기에 그는 기운생동의 생기를 불어넣어 그림의 생명을 담아 놓는데 그곳에 중요한 것은 바로 작가의 감정을 담아 놓는 일이다. 다시 한번 필치로 그는 비어있는 공간의 화면을 통해 화면을 고요하게 돌려 백색의 공간으로 공백을 되돌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마치 오진환이 노자처럼 우주와 자연과 사회와 우리의 인생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모든 근원을 찾아 떠나는 도의 수행자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것이 바로 오진환 공상화 예술의 본질이자 동양성이 밝게 빛나는 중국별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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