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염물질, 여수산단 조작이어 제철소 무단배출
구멍난 행정 관리, 허점 노출한 제도…개선요구↑
기업은 솜방망이 처벌, 후속 대책은 답보 상태
환경단체, “철저한 수사, 책임 있는 사과” 요구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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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연이은 국내 굴지 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문제로 산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 4월 여수 지역 공장에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사건에 이어 국내 주요 철강기업의 오염물질 무단 배출 위법 논란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강조해왔던 친환경 경영에 대한 신뢰도 크게 타격을 입었다. 이와 관련해 지자체와 환경부, 사정당국까지 나섰지만 국내 공장 오염물질 배출 사고와 관련된 처벌은 물론 개선 대책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일관되지 않은 규제 적용과 중앙정부 차원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으면서 지자체와 기업, 시민과 정부의 불신과 갈등이 깊어질 것으로 우려가 나온다.

제철소 오염물질…산업논리와 부딪힌 환경

국내 최대 철강기업인 현대제철과 포스코는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용광로) 정비 과정에서 안전밸브 역할을 하는 가지배출관, 일명 브리더(Breather)를 개방해 대기오염물질을 무단으로 배출해 각 지자체로부터 제재 대상이 됐다.

문제는 브리더 개방 시 잔여 가스에서 유해 물질이 배출된다는 점이다. 잔여 가스에 먼지, 황화수소,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납, 아연, 망간 등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물질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이를 정화하지 않고 그대로 배출했다는 것이다.

현행 대기환경보전법에는 방지 시설을 거치지 않고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공기 조절 장치를 설치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다만 화재나 폭발 등의 사고를 예방할 필요가 있어 시도지사가 인정하는 경우에는 예외를 두도록 했다. 하지만 두 업체의 경우 ‘임시’가 아닌 ‘임의로 개방’해왔다는 게 지자체의 판단이다.

이에 전남도는 지난 4월 8일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조업 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사전 통지했다. 오는 18일 행정처분 청문회를 열고 제재를 최종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초 충남도 또한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대기환경보전법 위반을 확인하고 조업정지 10일의 행정처분을 확정했다.

1차로 10일의 조업 정지 처분 후 개선명령 불이행 시 30일의 2차 조업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다. 이후에도 개선명령 이행 조짐이 없을 시 사업장 폐쇄 및 허가 취소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술적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이번 제재에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번 제재 당사자인 현대제철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처분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포스코도 조업 정지 처분을 받게 되면 법적 대응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철강업계는 블리더 개방은 폭발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이고 10일간 고로 가동을 중단하면 쇳물이 굳어 정상가동을 위해 최대 6개월의 시간과 수조원의 매출 손실이 발생한다며 맞서고 있다.

또 배출물질의 위해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철강업계는 잔여 가스의 대부분은 수증기로, 미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입장이다. 잔류가스는 2000cc 승용차가 하루 8시간 운행 시 10여 일간 배출하는 양에 불과하며, 성분은 현재 국립환경과학원 주관으로 측정이 진행 중이라는 설명이다.

또 업계에서는 브리더에 의한 대기오염 방지 설비 기술을 보유하지 못해 당장 개선할 방법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는 전 세계 어느 곳도 마찬가지라는 설명이다. 산업계에서는 이번 조치가 산업환경과 기술 등을 고려하지 않은 대안 없는 조치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역민과 시민단체는 해당 제철소가 배출한 물질이 대기오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충남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충남은 미세먼지 배출량 전국 1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는 단일 사업장 중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전국 1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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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제철소 대기오염물질 무단배출 사태 대응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산업계 반발, 갈팡질팡 허둥대는 행정부

환경단체들은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대기오염물질 무단배출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경운동연합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갖고 “철광석을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에서 방지 시설 없이 대기오염물질을 배출한 것”이라며 “하지만 제철소들은 대기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책임이나 주민 피해에 대한 사과는 일언반구 없이 변명만 늘어놓고 있어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적발 업체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현대제철과 포스코에 예정된 조업 정지 조치의 경우 고로 1기당 과태료 6000만원을 납부하면 가동중단 없이 조업을 계속할 수 있다.

행정당국의 사업장 관리·감독 부실과 제도에 대한 비판도 어김없이 제기됐다. 특히 앞선 여수산단 사태와 마찬가지로 오염물질 배출 항목신고 시에 자가측정 방식에 대한 제도적 허점은 이번에도 지적됐다.

지난 2002년 이후 대기오염물질 배출 사업장 관리·감독 업무는 환경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넘어갔다. 하지만 부족한 일력으로 실시간 감시망을 구축하기가 어렵다 보니 정부는 기업 스스로 또는 전문업체에 맡겨 측정토록 하고 자체 개선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마련했다. 사실상 면밀한 감시가 불가능한 구조라는 비판이 나온다. 기업이 대행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 측정값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이와 함께 행정당국이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반복되고 있다. 환경 규제 필요성과 산업계의 반발 사이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최근 환경부는 이번 고로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 시민사회와 지자체, 전문가 등이 동참하는 ‘민·관 거버넌스’ 운영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오염물질 배출에 대한 해결방안을 2~3개월 내에 결론 내리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사실상 조업 정지 처분이 최대 3개월 동안 집행이 연기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환경부가 해당 제철소에 대한 행정처분을 사실상 유보해달라고 지방정부에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산업계 반발에 적극적인 규제보다는 소극적 대응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시선도 뒤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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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오후 전남 여수시청 현관에서 여수국가산업단지 공장장협의회 소속 공장장들이 산단입주기업의 대기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해 지역사회 여러분께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심려를 끼쳐드렸다면서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달 넘어가는 여수산단 사태…시민 불안 여전

명쾌한 해답은 내놓지 못해 시민의 우려가 해소되지 않은 건 두 달 전 불거진 여수 산업단지 대기오염물질 조작 배출 사태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환경 여수 산업단지에 있는 주요 대기업 공장에서 오염물질을 조작해 배출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환경부와 영산강유역환경청이 지난 4월 17일 주요 대기업 공장에서 미세먼지 원인 물질인 먼지, 황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 측정치를 조작해 배출해온 사실을 적발했다. 적발된 업체만 무려 235곳에 달했다. 여기에는 LG화학, 한화케미칼 등 여수산단 입주기업 외에도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GS칼텍스,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 등 주요 대기업이 포함돼 충격을 줬다.

이들은 기업들은 오염물질 배출 측정을 대행업체에 맡겨왔다. 하지만 이들 대행업체가 배출량 측정치를 속여온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4곳의 측정대행업체가 여수산단 등에 위치한 사업장으로부터 대기오염물질 배출농도 측정을 의뢰받아 4년여간 1만3096건의 측정기록부를 조작하거나 허위로 발급해왔다. LG화학의 경우 염화비닐 등 유해성이 큰 대기오염물질의 배출 허용 기준치를 최대 15배 가량 초과하고도 마치 문제가 없는 것처럼 꾸몄다.

이번에 적발된 사업장 일부에서는 대행업체에게 측정값을 조작해달라고 주문하는 등 조작 공모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환경청은 지난 4월 LG화학과 한화케미칼 등 사업장 8곳과 측정대행업체 4곳을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고 관할 지자체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하지만 오염물질 배출량 축소·조작 사건이 벌어진 지 50일째가 됐음에도 마땅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에서 내린 조치는 솜방망이 처벌 논란으로 이어졌다. 전남도는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업체에 과태료 200만원, 측정대행업체에 6개월 영업정지를 각각 통보했다. 관련 규정은 최고 500만원까지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1회 위반업체에 대해서는 200만원만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측정대행업체에 대해서도 두 차례 위반이 적발돼야 면허 취소가 가능하다. 위반업체 대다수가 매출이 수조원에 달하는 대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제재라고 보기 힘든 수준의 처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행정처분과 별개로 조작과 허위보고 등의 혐의에 대한 처벌은 검찰의 수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초 삼성전자 광주사업장 등 업체 4곳, 6건의 혐의를 추가로 건네받아 이들 업체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이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최근 측정대행업체 관계자 3명에 대해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 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 이 중 1명을 구속했지만 배출업체와의 공모 여부를 밝혀 실제 형사처분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상황이다. 사실상 지금까지 배출업체가 받은 처벌은 과태료가 고작인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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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광주지검 순천지청 앞에서 여수산단유해물질불법배출범시민대책위원회 등 시민단체 회원이 기자회견을 갖고 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기준 초과 및 측정대행업체의 측정값 조작에 대한 수사를 요구하고 있다.ⓒ뉴시스

허술한 처벌, 허점투성이 제도 여전

일각에선 그동안 감시 감독 소홀로 과거 위반 행위를 적발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남도의회 강정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8년까지 3년간 전남도의 도내 측정대행업체 지도·점검 횟수는 52번으로 행정처분은 과태료 50만원 부과(2회), 경고조치(6회)로 나타났다. 2017년과 2018년은 한 건도 적발하지 못했다. 사실상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졌다고 보기 힘든 수치다.

특히 자가측정 방식의 관리 방식은 당시 사태에서도 핵심 문제로 거론됐다. 스스로 검사하고 보고하는 구조로 사실상 기업이 대행업체와 짜고 대기오염물질 배출 측정값을 얼마든지 속일 수 있는 제도인 셈이다. 또한 배출업체에 대해 측정대행업체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갑을’ 관계도 이번 사태의 주요한 구조적 문제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구조적 문제점 개선에 대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환경부 발표에는 적발 사실과 이에 대한 고발 조치 사항만을 알렸을 뿐 측정치 조작으로 인한 환경오염 평가나 구체적인 주민 대책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지자체 차원에서는 민관 합동으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전남도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위원회를 구성, 위반기업체가 상시 감시가 가능한 굴뚝자동측정기기(TMS) 설치 등 환경 분야 설비 확충에 5200억원 규모 투자하는 방안 등을 끌어냈다. 또 앞으로 진행될 조사에 대한 협력, 책임있는 사과 수용 등에 합의했다. 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관리와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 요구에는 만족시키기 어려운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축소·조작 사건이 벌어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시민들이 이해할 만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 불안 또한 여전하다.

여수환경운동연합 등 40여 개 시민사회단체는 지난달 14일 ‘여수산단 유해 물질 불법 배출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법규 및 제도 개선을 비롯해 기업의 윤리경영과 사회 책임 실현, 유해 물질 배출 저감 등 여수산단 환경안전 대책 마련 등을 지속해서 요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통해 “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불법 배출과 측정대행업체의 수치 조작이 알려진 지 2달이 됐으나 시민들은 환경과 건강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조차도 알지 못해 불안해하고 있다”며 “철저한 수사에 이은 대책 마련, 책임 있는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중앙정부 차원의 대기오염물질 배출 관련 종합대책은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3일 대기오염물질 측정치 조작사건과 관련해 “미세먼지로부터 국민의 건강권을 보호하고 사회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내년부터 미세먼지를 획기적으로 감축시키는 데 투자를 확대할 방침이다. 정부의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2020년도 예산안 편성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을 발표했다. 다만 이번에 연이어 논란이 된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에 대한 강화 계획 등에 대해서는 찾아보기 힘들어 중앙정부 차원의 근본적 대책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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