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게임장애 질병코드 도입, 과잉 의료화 논란
“의료화, 원인규명보다는 치료에 관심 갖게 해”
이상적인 모습에서 동떨어진 사람, 환자로 규정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는 낮과 밤의 경계와 같아
반대입장도 팽팽 “의료화, 고통 받는 환자 위한 것”
심각한 중독 질병 관리를 과잉 의료화로 봐선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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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장애 질병코드 도입 논란이 불거지면서 정신보건분야의 과잉 의료화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10여년 전 미국에서는 우울증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약물로 치료해야하는 정신질환은 분명 존재하지만, 일상에서 관리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까지 질환으로 간주해 불필요한 약물의 처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지적이었다. 만들어진 우울증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이 같은 현상을 정신보건분야의 과잉 의료화(Medicalization)라고 비판했다. 최근 국내에서 촉발된 게임장애 질병코드 도입 문제도 의료화 논쟁을 포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5월 25일 스위스 제네바서 열린 세계보건총회(World Health Assembly)에서 게임장애의 질병코드를 도입하기로 했다. 국내외 의학계에서는 게임중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의 근거가 생겼다며 WHO의 판단을 환영했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국무조정실 주관으로 게임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 협의를 위한 민관협의체가 구성되고 있다. 협의체는 정부기관 관계자를 포함한 20여명의 전문가 집단으로 이뤄질 전망이며 오는 7월 경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게임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이 같은 현상이 과잉 의료화의 전형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은 질병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거나 일상적인 수준에서 관리가 가능한 영역을 치료의 대상으로 만들어 불필요한 환자를 양산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관련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윤태진 교수는 “기술과 과학의 발달로 ‘약’과 ‘수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손쉬운 치유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모든 문제에 있어서 원인규명 보다는 치유방안에만 관심을 갖게 됐다”라며 “(게임중독의 의료화는) 게임을 오래 하는 아이의 부모가 교육의 모자람을 스스로 탓할 필요도 없고 아이가 그저 게임이라는 병인에 손을 댔다고 믿으면 된다. 의사도 어려운 처방 필요 없이 게임을 만병의 근원이라고 설명하면 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자신의 칼럼을 통해서도 미국의 의료사회학자 피터 콘래드(Peter Conrad)를 인용하며 의료화로 인해 탈모가 시작된 사람, 가슴의 크기가 작은 사람, 키가 작은 사람, 성욕이 상대적으로 적은 사람, 학습 능력이 부족한 사람 등 표준화된 이상적 인간의 모습에서 동떨어진 사람들은 환자라는 이름표를 갖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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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는 명징한 진단이 어려운 만큼 연령, 시대, 사회문화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티이미지뱅크

정신장애는 엑스레이처럼 명확하게 진단되지 않는다

주지하듯이 과잉 의료화 쟁점은 게임중독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가령 우리는 사춘기 청소년은 환자로서 바라보지 않지만 갱년기에 접어든 중년은 약물 등을 통해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 간주한다. 환자의 범주는 의학이 어떤 부문을 치료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규정하는 가에 따라 달라진다. 

정신보건분야에서의 의료화가 쟁점이 되는 이유는 진단의 명징성 여부 때문이다. 어디까지 정상의 범주에 들어가고 어디부터 병적인 증상으로 간주할 것인지, 생물학적 병인이 확실한 질병처럼 명확하지가 않다. 

게임장애를 예로 들면 게임 이용시간을 근거로 대상에 대한 몰입과 병적인 중독의 경계를 구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가령 게임장애 연구에는 인터넷 중독 테스트(IAT, Internet Addiction Test)가 활용되는데, 다수의 질문들이 게임장애와는 무관한 것으로 이뤄져 상관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건국대학교가 함께 진행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에서도 청소년의 게임 이용시간과 과몰입 정도는 매년 달라졌으며, 5년 내내 과몰입 집단에 남아있는 경우는 1.4%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게임이 중독현상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닐 수 있다는 논거로 자주 활용된다. 

건국대학교 신경정신과 하지현 교수도 자신의 저서와 칼럼을 통해, 정신질환의 진단이 반드시 ‘똑’ 떨어지는 건 아니라고 설명한다. 연령, 시대, 사회문화적 영향에 따라 이상행동에 대한 규정이 달라지고 객관적 검사법도 엑스레이 사진 같은 확실한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에 대한 논쟁은 오래전부터 이어온 것이라는 점을 거론하며 정상의 범주는 낮과 밤의 경계를 규정하는 고민과 같은 일이라고 말한다. 

하 교수에 의하면 정신보건분야의 의료화는 일상적인 심리적 불편이나 성격적인 특성을 질환 또는 적극적인 치료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는 “현대사회에서는 일상의 스트레스로 인한 삶의 문제, 증상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문제, 삶의 큰 흐름 속에서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정상적 발달과제로 인한 주관적 불편함을 질환의 범주로 놓고 의사와 상담하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 연간 추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내 우울증 진료 환자 연간 추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환자의 증가는 치료 대상이 늘어났다는 의미일까

실제로 국내 정신보건분야 환자는 매년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국내 우울증 환자의 수는 2014년 58만명에서 2015년 60만명, 2016년 64만명, 2017년 68만명, 2018년 75만명으로 급증했다. 

이밖에 불안장애 진료 환자의 증가추이도 2014년 53만명, 2015년 55만명, 2016년 59만명, 2017년 63만명, 2018년 69만명으로 우울증과 유사한 변화를 보였다. 

문제는 진료환자의 증가가 곧 집중적 치료 대상의 확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정신보건분야의 의료화는 정신분열‧공황장애 같은 핵심 정신질환이 아닌, 감정적 고통의 문제까지 처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의 대상으로 지목된다. 

윤태진 교수가 인용했던 피터 콘래드 역시 저서 ‘우리는 어쩌다 환자가 되었나’ 한국판 서문에서, 국내의  ADHD(과활동성 주의력 결핍장애)의 급격한 의료화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한국에서 ADHD의 의료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에서) ADHD 관련 정신의학과 진료 건수가 2002년 1만6266건에서 2011년 5만6951건으로 10년 사이에 350% 증가했다”라며 “현재 학령기 인구의 4~7%가 ADHD 진단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증가세는 정신질환과 이에 따른 약물 치료를 부정적인 것으로 여기는 한국에서 매우 눈에 띄는 현상이다”라고 주장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지적은 이어진다. 2017년 가디언지는 영국 NHS(National Health Service) 연구를 인용하며 우울증 약 SSRI(선택적세로토닌재흡수억제제)류의 처방이 지난 10년 간 두배로 늘었음을 지적했으며 저명한 정신 약물학 교수 이비드 힐리(David Healy의 입을 빌려 과도한 처방이 이뤄지고 있음을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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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레인 등 미국의 정신의학자들은 새로운 시장 형성을 위해 새로운 질병이 만들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에서 촉발된 ‘만들어진 정신병’ 논쟁

정상범주의 사람들을 정신장애 용의자로 지목한다는 의료화 비판은 과잉 약물처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의료계와 제약업계의 유착 의혹에까지 논의를 확장해 간다. 새로운 질병의 탄생과 환자군의 형성이 새로운 수요 창출을 위한 의료 산업계의 작품이라는 시각이다. 

미국의 정신약물학 및 윤리학자 크리스토퍼 레인(Christopher Lane)은 자국 내에서 벌어진 이 같은 유착관계를 신랄하게 꼬집는다. 그는 저서 ‘만들어진 우울증’에서 제약회사 스미스클라인비첨 사(SmithKline Beecham plc)가 SSRI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며 새로운 시장 형성을 위해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크리스토퍼 레인에 따르면 당시 스미스클라인비첨은 팍실(Paxil)이라는 SSRI를 개발했는데 프로작(Prozac)과 졸로프트(Zoloft)가 이미 시장을 점유하고 있어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 필요하다고 판단, 의료 및 언론‧고객들에게 수줍움을 병으로 재인식시키기 위해 고심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말 대대적인 홍보 캠페인이 진행됐다. 이른바 ‘사람 관계에도 알레르기가 있다’는 관념의 마케팅이었다. 이들은 사람 사이에 발생하는 긴장, 불안 등이 일종의 알레르기와 같아 약을 통해 치료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이 캠페인은 미국불안장애협회(ADAA)의 후원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광고에는 1000만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사회적 불안증’에 시달리고 있다며 타인과 있을 때 발생하는 당혹감과 수치심은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한 질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스미스클라인비첨의 팍실은 사회불안장애 치료제로 FDA(미국식품의약국)의 허가를 받은 이후 2000년 초반 들어 연간 처방건수가 2500만 건을 넘어서는 급성장을 기록했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도 유사한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에서 DSM(정신 장애 진단 통계 편람) 작성 작업을 이끌었던 그는, DMS에 대한 맹신, 부주의한 진단, 정신장애 판매에 나선 제약업계 등을 통해 거짓 정신병이 유행하고 있다며 현대인들이 무분별한 정신장애에 노출돼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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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증상으로 치료가 절실한 환자들과 질병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위해 질병코드 도입을 통한 의료화는 매우 중요하다는 입장도 제기된다. ⓒ뉴시스

치료 근거 마련의 중요성 “의료화는 국민건강을 위한 것”

하지만 적정한 수준의 의료화를 통해 치료의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증상에 의한 고통을 받고 있는데 근거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그 역시 심각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 이해국 교수는 “WHO 자체가 의사 이익단체가 아니다. 관련 산업관계가 얽히니까 새로운 병이 등재될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제가 볼 때는 업자적 이해를 숨기기 위해 업자적 이해를 공격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라며 “(의료화를 통한) 질병 등재는 환자를 많이 오게 하려는 게 아니고 이미 오고 있는데 코딩을 못하니까 등재하자는 것이다. 의료화를 끌어들이는 건 비판을 위한 비판 이상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질병코드를 도입하면 실존하는 문제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는 게임장애를 사회문화 부작용 정도로만 취급했다면 보건의료 서비스 도입을 통해 다양한 활동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정신보건은 기본적으로 공공서비스다. 정신질환의 수가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의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이라며 “(정신보건 분야의 과잉 의료화 지적은) 정신과 의사집단과 의료산업 전체를 폄하하는 문제다”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 역시 질병코드 등재 등 의료화 과정은 환자에 대한 의료 서비스 접근성 확대에 기여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인식 개선 등을 통해 정신보건 분야 질병에 대한 관점이 환기돼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 환자가 늘어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며 “의료환자로 등록돼 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병이 있어도 진단을 못 받은 사람들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보건의료계 관계자도 “수가 적용이라는 부분이 있어 외부에서 이해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수 있는 건 맞다”라면서도 “질환으로 등재됨으로써 의료적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해당 증상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분명 희소식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모든 의료화가 자본논리에 기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게임장애 문제를 촉매제로 한 정신보건분야의 과잉 의료화 지적은, 그동안 일부 사회학 부분을 제외하고는 구체적으로 논의되지 않았던 만큼, 한국사회가 수면 위로 끌어올려 깊이 있는 논의를 이어가야 할 여지가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학자는 이와 관련 의료화와 탈의료화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필요에 따라 전환될 수 있다는 보다 심층적인 견해를 내놨다. 

그는 “우울증을 예로 들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 요인이 생물병리학적 요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개인을 둘러싼 환경, 심리적 요인이 복합돼 있는데 확인 되는 증상에 대해서만 이뤄지는 처지는 제한적인 해결방법이다”라며 “(과잉 의료화는) 정상 범위에 있는 사람까지 환자군에 포함시켜 치료의 대상을 늘리고 환자를 과잉산출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의료화는 분명이 필요하다. 술도 일상적인 수준에서는 통제하지 않고 사회적으로 수용하지만 중독에 대해서는 의료의 범주에 넣어 관리를 해야 한다”라며 “이는 과잉 의료화로 볼 수 없다. 의료적으로 처치가 필요한 사람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마찬가지로 정신보건분야에서 모든 영역에 의료화가 진행되고 의산업복합체에 의한 자본논리만 강조된다고 볼 수 없다”라며 “논의해야 할 것은 질병코드 도입 자체가 아니라 의료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환자의 과잉산출 여부다”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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