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시인 “‘최선’과 ‘대충’ 사이 어물쩍, ‘준 최선’으로 살아가길”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문보영 시인 “‘최선’과 ‘대충’ 사이 어물쩍, ‘준 최선’으로 살아가길”
  • 김효인 기자
  • 승인 2019.06.25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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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웨그’ 넘치는 유쾌한 시인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펴내
일상을 다정히 공유하는 밀레니얼세대 시인
솔직하게 나를 까발릴 때 카타르시스 느껴져
신선한 1인 문예지 ‘오만가지 문보영’ 주목
시인 문보영 ⓒ씨즈온
시인 문보영 ⓒ씨즈온

【투데이신문 김효인 기자】 ‘애증’이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에서는 ‘사랑과 미움을 아울러 이르는 말’이라는 설명이다. 사랑과 미움이 한 데 붙어 언뜻 기이하기도 하다. 그러나 지나 버린 사랑을 돌이켜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연 미움이 없다면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 신간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에서 애증의 감정을 감각적이면서도 간결하고 솔직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문보영 작가.

문보영 작가는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지 일년 만에 역대 최단기간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해 문단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김수영문학상은 젊은 시인들이 자신의 작품 50편 이상을 묶어 민음사에 투고하는 방식이다. 이는 신인들 사이에서는 간절히 바라는 등용문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 시절 오태환 시인의 수업으로 처음 시를 접했다. 첫번째 시집인 <책기둥>에 이어 최근 20대 이후 쓴 일기를 엮은 첫 산문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을 출간했다. 책은 단순한 일상적 기록의 한계를 벗어나 파격적인 솔직함으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자유분방하면서도 어딘가 아린 슬픔을 재치 있게 써 내려가는 그야말로 아픈 성장의 일기다.

문 작가는 밀레니얼세대 시인으로서 현재는 일상 브이로그를 찍어 올리는 유튜버이기도 하다. 동시에 힙합댄스를 사랑하고, 1인 플랫폼으로 문예지 발행까지 맡고 있다. ‘시작한 적도 끝낸 적도 없다’는 그림 또한 수준급 실력이다. 이처럼 시를 쓰며 스펙타클한 일상을 담담하게 공유하는 시인 문보영의 다정하고도 독특한 활동에 독자들이 연일 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18일 여의도 한 카페에서 문보영 작가를 만나 그의 일상과 삶의 태도, 그리고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일기는 작은 창을 매개로 한 진정한 의미의 소통”

Q.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의 책 소개를 부탁드린다.

블로그에 올렸던 20대 초반의 울퉁불퉁한, 다듬어지지 않은 일기 형식의 이야기다. 일기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장 자유로운 글쓰기라고 본다. 때문에 꾸미지 않은 날것의 감상을 전달하고 싶었다. 다소 역설적인 제목을 붙이게 된 이유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순간에도 어느 정도는 기본값으로 다정함이 존재하고, 반대로 다정한 순간에도 어느 정도의 적당한 미움의 값이 함께 존재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게 건강한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과거 연인들과의 추억부터 사랑에 대한 단상, 우울증을 앓았던 경험 등이 실려 있다. 

Q. 첫번째 시집 <책기둥>에 이어 두 번째 책으로 시집이 아닌 산문집을 냈다. 그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지.

산문은 시와는 또 다른 장르다. 특별히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산문집을 내고 나니 시를 안 읽는 친구들에게도 이해받아 좋은 점이 있다. 시집이 나왔을 때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았다. 어려워하니까. 그저 읽고 싶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찾아 읽는 식이었다. 그런데 산문집이 나오고 나니 갑자기 사람들이 일 년이 지난 시집을 찾아보기 시작하는 거다. ‘이런 사람은 어떤 시를 쓸까’ 하는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것 같다. 우연히 읽고 정말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고, ‘현대시가 이렇게 바뀌었어?’ 하는 사람도 있다. 요즘 들어 시에 대한 관심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 같아 신기하다. 

Q. 일기를 엮어서 책을 냈다. 작가만의 비밀일기가 있지는 않은지.

내게 일기는 이미 습관이 됐기 때문에 비밀일기라는 게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 일기는 친구들에게서 시작된다. 친구들이 나를 웃겨주기 때문에 그에 답하기 위해 나는 일기를 써서 그들을 웃긴다. 누군가를 웃기고 싶어 하는 개그본능이 기저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공적인 일기와 사적인 일기의 간극이 크지는 않다. 블로그에 일기를 처음 올릴 때도 그냥 스스로 읽으려고 시작하게 된 건데 우연히 문학회 친구들이 그걸 읽게 됐다. 그걸 계기로 내 안의 것들을 모두 폭로해 버리는 일기에서 재미를 느꼈다. 나는 그걸 즐기는 것 같다. 마치 노출증처럼 나를 까발렸을 때 나도 통쾌하고 보는 사람도 통쾌한 거다. 우리 모두 겪고 있는데, 다 아는데 그걸 말하지 않아서 답답한 순간이 있다. 그 순간 우스꽝스런 구멍이 딱 생긴다면 작가로서 기분이 좋다. 

Q. 일기가 독자들과의 소통 창구가 되는 건지.

그런 것 같다. 다만 서로 주고받는 편지와는 결이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방안에서 혼자 뭔가 주물럭거리고 있는데 작은 창을 통해 밖에서 누가 들여다보는 느낌인 거다. 블로그의 좋은 점이 댓글과 ‘좋아요’ 기능을 다 삭제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일기에 그런 기능들을 모두 삭제한 이유는 내면성을 최소한으로 가지고 가기 위해서다. 스스로는 딱히 누가 보고 있다는 인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독자들이 내 글을 보고 댓글을 달거나 ‘좋아요’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스쳐 지나가듯 글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어쩌면 댓글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진정한 소통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부러 에고서치(인터넷 상에서 자신의 평가를 확인하는 행위)를 하지는 않지만 인스타그램에서 내 이름을 태그하면 알람이 뜨니 그런 건 보는 편이다. 어느 날 어떤 독자가 동영상을 올렸다. 큰 똥처럼 생긴 애벌레가 도로에서 방황하는데 내 시집을 이용해 풀밭으로 돌려보내주는 내용이었다. 동영상의 제목은 ‘생명을 살리는 시집’이었다. 유쾌했다.

시인 문보영  ⓒ씨즈온

“불안에 잠식됐던 과거, 다양한 활동은 나만의 안전장치”

Q. 화려하게 등단해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 그러나 글의 깊이를 보면 겪어 낸 고통과 시련, 실패가 고스란히 느껴지는데 인생의 명암을 구분해 본다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행복한 순간은 지금인지도 모르겠다. 그전에는 특별히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힘들었던 기억들이 많다. 나의 유년기부터 학창시절은 항상 전쟁이었다. 어린 시절이 즐거웠다는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괴리감이 든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서울로 일찍 올라오게 됐는데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사회에 던져지는 게 유치원이지 않나. 학기 초마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단짝을 만드는 게 내게는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었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소외당한 경험을 하고 나서 그때부터는 도미노처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항상 불안에 시달렸다. 또 학업 스트레스도 한몫했다. 그 당시는 문학을 할 때도 아니었기 때문에 나를 위로해 줄 존재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예전에는 끊임없이 뭔가를 증명했어야 했다. 요즘 행복한 것은 굳이 나에 대해 설명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이다. 독자와 서로 잘 모르더라도 일기를 매개로 내적 친밀감이 존재하는 것 같다. 또 낭독회 등 독자와의 만남에서 활력을 받기도 한다. 불행했을 때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 문학을 포기할 지경까지 이르렀을 때다. 글이 써지지 않아서가 아닌 외부적인 요인으로 트라우마가 생겼다. 문단과 지면, 그리고 내가 서 있는 이 무대가 무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에 일년 반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침대에만 있었다. 사실 지금도 이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볼 수는 없다. 트리거가 생기면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정신과 약은 어떤 디딤판의 역할을 했다. 심신이 완전히 망가진 상태에서 가능성 하나를 준 느낌이다. 당연하겠지만 약만으로는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Q. 그림을 그리고 브이로그도 찍는다. 특히 춤을 춘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시인이나 작가의 이미지는 보통 정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역동적인 활동으로 영감을 얻는 편인지.

내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것은 앞서 말했던 문학을 포기했었을 때의 불행한 경험으로 인한 것이다. 난 그저 문학밖에 모르는 머저리였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문학을 뺀다면 너무 쉽게 망가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들었다. 그래서 여러 활동을 하는 방식으로 분산시키면 편협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무너졌을 때 일으켜 줄 것들이 생긴다는 결론이 났다. 말하자면 위험상황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안전장치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활동으로 글 쓰는 영감을 받지는 않는다. 나 같은 경우는 정적인 것,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조용히 책을 읽는 행위 등에서 영감을 받는 편이다. 오히려 다른 활동들은 시를 머릿속에서 지우는 역할을 한다. 

“작가에 대한 환상 없이 시 쓰다 보니 수순대로 등단”

Q.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일년 만에 2017년 제36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25세의 나이로 집약적인 성과를 이뤄 여러 감정이 들 것 같은데. 

‘내가 이 원고를 더 이상 갖고 있으면 안 되는데 어떡하지?’ 하는 위기감이 있었다. 끌어안고 자꾸 손보면 이 시는 더 망가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글을 쓰다보면 스위치를 딱 눌러서 탈고를 하는 시점이 있다. 그래서 ‘이걸 50편 묶어서 던져버려야지’하고 던졌다. 타이밍이 왔을 때 뒤돌아보지 않고 다른 원고를 빨리 쓸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졌던 거다. 수상할거라는 예감은 전혀 안했다. 팔랑귀라서 남의 말을 잘 듣기 때문에 아무한테도 안보여 줬던 그 시들을 심사위원들에게 처음 보이는 거였다. 일단 내가 쓴 걸 과연 시라고 말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상태에서 처음으로 인정을 받게 돼 용기를 얻었다.

Q. 요즘 세대는 책을 잘 읽지 않는 세대인데 문 작가는 글에 조예가 깊다. 평소에도 독서를 좋아했는지.

대학생이 되기 전에는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었다. 딴생각 천재였다. 학창시절에도 멍 때리기와 공부만 했던 것 같다. 대학 진학 후에는 축제도 잦고 술자리가 많았는데 외향적이지 않았던 나에게는 정말 고역이었다. 수업도 잘 안 나가고 학교에서 겉돌던 와중 우연히 도서관에 갔다. 재미있는 책을 발견해 필사하고 혼자 작가와의 내적 친밀감을 가져보기도 하며 책과 가까워진 것 같다. 나는 거머리 같은 인간이다. 좋은 책이든 아니든 그 책에서 뭔가를 뽑아내는 건 내 몫인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책을 가리지 않게 됐다. 마치 재료처럼 뭔가를 끄집어내서 쓰기도 한다. 이해하기에 한계가 있는 수학이나 과학, 의학 서적 같은 것들을 좋아한다. 딱딱한 설명문 등 문학에서는 잘 쓰지 않는 문체로 씌어져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집중이 안 되고, 그래서 딴생각을 한다. 그 딴생각은 거기서 촉발되는 생각이다. 상상을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책도 느리게 읽는 편이다. 영향 받은 작가는 에르베 기베르인데 우리나라에 소개된 지 얼마 안됐다. <내 삶을 구하지 못한 친구에게> 라는 소설이 있는데 마치 일기 같다. 일기인데 소설임을 스스로 증명하는 책이다. 

Q. 작가를 꿈꾸게 된 시점은.

작가에 대한 환상이나 꿈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나에겐 그런 게 없었다. 시가 좋아서 쓰다 보니 자연히 주변에 시에 미친 친구들이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이라는 것을 알게 돼 이것이 자연스런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등단을 해서 문예지에서 청탁을 받아 시를 발표하고 그러면서 점차 자신을 알린다는, 그런 수순을 따랐던 것 같다. “어련히 등단하겠지, 안 되면 뭐”라고 생각했지만 원래 중요한 문제에 외면을 잘하는 편이다. 안 되는 경우는 무시했다. 괜히 등단에 스트레스를 받아 글 쓰는 게 싫어져 버리는 걸 방지하려고 투고를 많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스스로 준비가 됐을 때 투고를 시작했다. 그게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에 당선됐다.

Q. 전공자가 아니라서 등단에 힘든 점은 없었는지.

문예 창작 관련 전공자가 아닌 것이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만 수업을 동경했던 적은 있다. ‘내 전공 과목처럼 지루하진 않겠지, 얼마나 재밌을까’ 이런 정도였던 것 같다. 문학회에 굉장히 늦게 들어갔다. 등단 1~2년 전에 처음 또래를 만났고 그 전엔 혼자서 시를 썼기 때문에 많이 외로웠다. 처음 시를 쓰는 또래 친구들을 만났을 때 말 그대로 ‘되게 다정하고, 되게 미워했다.’ 글 쓰는 친구들이라 다들 까칠하고 예민했고, 견제를 많이 했다. 물론 나도 질 수 없었기 때문에 시를 보여 달라고 졸라도 안 보여줬다. 그 친구들이 너무나도 진지하게 문학을 다루는 모습을 보니 문학이 더욱 멋지고 힙해 보였다. 나도 그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사랑받고 싶었다. 그게 시를 쓰게 된 큰 동력이 됐다.

“단 한 사람의 손만 잡으면 시의 세계로 갈 수 있어”

Q. 1인 플랫폼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날로그적 감성이 느껴진다. 펜팔 경험이 있는지.

나는 누군가와 교환일기를 쓴다거나 한 적도 없고 연애하면서도 편지를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 하는 것들 중에 ‘일기 딜리버리’는 메일서비스인데 첫 번째랑 마지막 원고는 우편으로 보내는 것이다. ‘오만가지 문보영’은 시, 가사, 만화, 소설 등 여러 가지 장르들을 문예지로 만들어서 우편으로 보낸다. 여러 가지 글의 종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스스로 장르를 구별해보고 싶어서 해 봤고, 그러다 보니 오만가지 글이 됐다. 그래서 이름이 ‘오만가지 문보영’이다. 지금은 이것들이 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포장 등의 크고 작은 일들을 혼자서는 못하기 때문에 날을 정해 가족들이 동원된다. 그 날이 가장 행복한 날이다. 파티처럼 음악 틀고 짜장면이나 피자시켜먹으면서 하루 종일 가족들과 즐겁게 작업한다. 

Q. 시를 쓰는 밀레니얼 세대로서 중견시인과는 다른 부분이 있다면.

특별히 다른 부분이 있다기보다는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래파는 2000년대 중반 논란이 됐던 난해하고 도발적인, 그 당시 젊은이였던 7,80년대 생들을 지칭한다. 미래파는 실험적인 시를 굉장히 많이 시도했고 그들의 등장은 문단에서 한 사건처럼 여겨졌다. 그때의 시에 비하면 오히려 지금의 시가 덜 어려워진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미 그들과 그 전의 전통 서정시를 쓰던 문인들의 커다란 담론이 끝난 상태에서 우리는 또 새로운 것들을 써 내려가고 있다. 시를 멀리했던 독자들은 내가 쓰는 것들이 독특하거나 새롭다고 생각하겠지만 문단 선배들도 이미 새로운 시도를 했었다. 우리 세대 또한 그들의 용기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시도들을 생각해 보면 사람들이 시를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Q. 쓰고 싶은 글과 이해받는 글의 균형에서 고민되는 지점이 있는지.

그 둘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생각한다. 항상 보편성과 특수성에 있어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자폐나 자기만의 세계가 있지는 않다. 시를 쓰는 바닥에서는 한 번도 내 시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쉽게 읽힌다는 얘기를 한다. 시를 접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시 자체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Q. 시에 대한 문 작가의 생각이 궁금하다.

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한번 ‘모드전환’이 되면 빠져나올 수 없는 매력이 있다. 한 사람의 손만 잡고 가면 되는 것 같다. 소설 <해리포터>에서 해그리드가 해리포터를 데려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듯이 누군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시인 문보영 ⓒ씨즈온

“‘최선’이 나간 자리에 여유와 롱런을 채우길”

Q. 최근 사랑이 사치라고 느끼는 회의적인 시선이 많고 비혼주의도 만연한데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어떤지.

엊그제 <그로칼랭>이라는 소설을 읽었는데 그 소설에도 ‘사랑을 받지 못할지언정 사랑할 대상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구절이 나온다.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하게 여기지만 나에게 있어 사랑은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이 없다면 인생이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 

Q. 사랑하는 것을 너무 미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는 바람은 혹시 연애를 뜻하는 것인지.

연애도 그렇지만 시에서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완벽하게 사랑만 한다는 것은 결국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아 보인다. 사랑에 미움이 일정부분 있어야 된다면 너무 미워하지는 않고 싶다는 얘기다. 다정과 미움의 비중에서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커지는 순간 삶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Q. 작품을 보면 상처든 기쁨이든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꾹꾹 눌러 담아 글로 남긴 느낌이다. 삶에 대해 고민하는 청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에 내가 하고 다니는 말 중에 ‘준 최선’이라는 말이 있다. ‘최선’과 ‘대충’ 사이에서 어물쩍 살아가는 개념이다. 최선을 다하는 건 아무래도 다른 걸 위해 자신을 내팽개치는 느낌이 든다. ‘최선’은 관성이 될 수 없다. 관성을 깨는 게 최선이라는 거니까. 근데 ‘준 최선’은 계속하다 보면 관성이 돼서 그냥 하다보면 아무렇지 않게 한다. 물론 일정 부분은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완벽한 최선’은 아니기에 ‘최선’이 물러난 자리에 ‘롱런’도 들어올 수 있고 ‘여유’나 ‘친구’, ‘평온함’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다. 나는 내 능력의 최대치로 몰아붙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청춘들은 이미 모두들 ‘존버’(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버틴다는 뜻의 속어)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Q. 끝으로 작가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문단의 현실은 여전히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정기구독료로 원고료를 대체하는 문예지들부터 소정의 원고료를 내세워 페이를 제대로 주지 않는 곳, 그리고 아예 주지 않는 곳까지 있다. 글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아 일기 딜리버리와 1인 문예지인 ‘오만가지 문보영’을 발행하고 있는데 이게 잘 됐으면 좋겠다. 어쩌면 다른 작가들도 개인 플랫폼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바로 한국을 벗어나는 것이다. 대중교통이 너무나 괴로워 ‘대중고통’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마지막 바람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두 번째 시집을 내고 싶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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