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세 아동 성폭행한 보습학원 원장, 2심서 징역 8년→3년 감형
충남 천안 C 초등학교 L 교감, 학생 성추행 혐의 1심서 무죄
두 사건 모두 상급심으로…“성인지 감수성 부합한 판단 기대”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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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최근 법조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성인지 감수성’이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성별 간의 권력 불균형을 인식하고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대법원 최초로 ‘성인지 감수성’을 언급한 권순일 대법관은 지난해 4월 모 대학 교수가 학생들을 성희롱·성추행했다는 이유로 해임되자 이에 불복해 제기한 해임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며 “피해자의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해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성범죄 판결에 있어 성인지 감수성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그런데 최근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 판결에서 법원이 가해자에 대해 ‘무죄’, ‘감형’ 판결을 내린데 대해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미성년자 강간 혐의 30대 ‘감형’

10세 아동에게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30대 보습학원 원장의 형량이 2심서 감형되자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대한 국민의 법감정과 법원 판단의 괴리가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한규현)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강간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35)씨의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4월 24일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알게 된 C(당시 10세)양을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음료수를 탄 소주 2잔을 먹인 뒤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보습학원을 운영하는 A씨는 평소 채팅앱을 통해 여성들을 만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재판 과정에서 ‘키가 160cm에 달하는 B양이 만 13세 미만인 줄 몰랐으며,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하며 혐의를 부인했다.

1심 재판부는 “보습학원 원장으로 학생들을 자주 접하는 A씨가 B양과 2시간가량 술을 마시면서 10세에 불과한 아동을 성인으로 착각했다고 보기 힘들다”며 징역 8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폭행·협박에 의한 강제 간음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다만 미성년자를 간음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고 징역 3년과 5년간 신상정보 공개 및 보호관찰,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취업제한을 명령했다.

2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자신보다 무려 23살이나 어린 피해자를 간음한 것으로 죄질이 불량하다”면서 “사회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출 아동을 성적 도구로 삼아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시했다.

A씨의 형량이 크게 줄어들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아동 성폭행을 감형한 판사를 파면하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자는 “미성년자를 상대로 강간한 가해자를 강력히 처벌해도 모자란데 오히려 합의에 의한 관계, 피해자 진술 신빙성 없음을 이유로 감형을 한 판사를 파면시켜 달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에는 20일 오후 4시 기준 11만5561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같은 비판이 이어지자 재판부는 17일 의견서를 통해 “이 사건 공소사실은 피고인이 손으로 피해자의 양손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는 방법으로 폭행을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직접 증거는 영상녹화물에 포함된 피해자 진술이 유일하다”며 “영상녹화물만으로 피해자가 반항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협박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 진술증거가 부족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피해자 변호사가 출석이 힘들다는 의사를 전해 증인 신문이 이뤄지지 못했다”면서 “형사소송법은 원 진술자가 사망 등에 준해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1심은 이를 간과해 피해자 어머니 진술을 유죄 근거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소사실이 인정되지 않으면 공소장 변경 신청이 없는 한 무죄를 선고해야 하나, 형사소송 목적에 비춰 현저히 정의와 형평에 반하는 것이라 판단해 미성년자의제강간을 유죄 판결했다”면서 “피해자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본 것이 아니라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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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 성추행한 교감에게 내려진 ‘무죄’ 판결

이보다 앞서 지난 4월 17일,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원용일)는 자신이 근무하던 학교에서 학생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충남 천안 C 초등학교 L 교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15년 당시 천안시 동남구의 C 초등학교 교감으로 근무하던 L씨는 따돌림 등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던 당시 5학년 순수(가명)양을 상담해주겠다고 불러내 수차례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순수 양의 어머니 손모씨에 따르면 당시 손씨는 딸의 학교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된 뒤 학교 측에 가해학생들에 대한 지도와 훈계를 요구했다. 그러던 중 L 교감이 C 초등학교에 새로 부임했고, L 교감은 손씨에게 자신이 책임지고 가해학생들을 지도하겠다고 했다. 이후 L 교감은 상담을 핑계로 순수 양을 불러내 교내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했다. 그러나 순수 양은 어머니에게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이후 2016년 6~7월경 학폭위를 열기 위한 증거를 찾던 손씨는 변호사·행정사의 조언에 순수 양의 소지품을 살펴보게 됐다. 이 과정에서 손씨는 순수 양이 기록해 둔 글과 그림을 발견했다.

순수 양이 5학년 시절 사용했던 알림장, 일기장 등에 남긴 기록에는 ‘교감선생님이 날 만지고 또 만졌다’, ‘수치심이 들고 무섭다’, ‘도와주겠다고, 친구들이 괴롭히는 것을 다 혼내주고 막아주겠다고 약속해 놓고선 지키지 않고 오히려 날 계속 주무르고 온 몸을 다 만지는 나쁜 뱀 인간’이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이걸 엄마께 말씀 못 드리는 난 바보다. 내가 엄마께 알리고 동남경찰서에 신고하면 교감선생님이 날 죽일지도 모른다’며 두려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L 교감의 반복되는 범행에 순수 양은 성추행 상황을 몰래 녹음하기도 했다. 순수 양의 메모에는 ‘내가 혹시 죽으면 이 녹음기가 증거가 돼 무섭고 징그러운 뱀 교감선생님이 감옥에서 벌을 받을 것’이라는 글이 담겨 있기도 했다.

순수(가명) 양이 L 교감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남긴 메모. ⓒ투데이신문
순수(가명) 양이 L 교감에게 성폭력을 당한 뒤 남긴 메모. ⓒ투데이신문

피해자 정보 가해자 측에 넘겨준 법원

결국 L 교감은 지난해 7월 13일 재판에 넘겨졌다. L 교감은 기소되자마자 변호인을 통해 사실조회 촉탁을 신청했다. 이를 통해 L 교감은 학교안전공제회, 국민건강보험공단, 충남도청,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순수 양이 다닌 초등학교, 천안시교육청 위(wee)센터 등에서 병원진료 및 심리상담 기록, 생활기록부 등 학교 생활자료, 학교폭력 사건 당시 제출한 자료 등 순수 양과 관련된 자료를 모두 받아갔다.

손씨가 법원을 통해 L 교감 측에 넘어간 순수 양의 자료를 확인한 결과 L 교감 측은 전 학년의 생활기록부, 순수 양이 학교폭력 피해 상담 과정에서 진술한 심리상태, 생일날 친구들이 써준 축하 카드, 학교 글짓기에서 작성한 글, 일기장에 써 놓은 시까지 포함돼 있었다. 특히 순수 양의 휴대전화 번호와 생년월일 등 개인정보가 가려지지 않은 상태로 제공됐다.

손씨는 L 교감 측이 순수 양이 수년간 다닌 병원들에 사실조회서를 발송하고 ‘순수 양은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학생’이라는 것을 누설했다고 주장했다. 또 ‘순수 양이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상담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고도 했다.

L 교감 측의 피해사실 누설에 대해 손씨는 “천안은 좁은 지역사회다. 누가 병원에서 성추행 피해 사실을 말하겠나. 증상을 말하고 치료를 받았을 뿐”이라며 “순수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제3자들에게 유포해 심각한 2차·3차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피의자는 방어권 차원에서 피해자에 대한 사실조회촉탁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을 이유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2차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손씨는 “사건과 관련 없는 정보까지 L 교감 측에서 모두 받아가 2차 피해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법원에서 이 자료들을 L 교감이 볼 수 있도록 허가해 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피해아동의 진술은 자신이 경험한 피해내용을 진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아동·장애인 성폭력 사건 전문가 전모씨의 순수 양 진술분석 평가 의견서. ⓒ투데이신문
“피해아동의 진술은 자신이 경험한 피해내용을 진술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한 아동·장애인 성폭력 사건 전문가 전모씨의 순수 양 진술분석 평가 의견서. ⓒ투데이신문

가해자 주장만 인용한 법원 심리분석위원

순수 양은 이미 경찰과 검찰 조사과정에서 2차례 진술분석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은 재판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 허모씨를 심리위원으로 선정하고 순수 양의 심리분석을 재차 의뢰했다.

허씨는 “순수 양의 진술 신빙성이 낮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앞서 조사과정에서 진행된 아동·장애인 성폭력 사건 전문가 전모씨의 “피해아동의 진술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의심스러운 부분이나 피해자의 기억에 영향을 미칠만한 요인도 확인되지 않았다”는 분석 내용과 정반대의 분석이 나온 것이다.

허씨는 학교폭력 피해 사실은 밝히면서도 성폭력 피해 사실은 숨긴 이유에 대해 “(L 교감이) 가족들을 다 죽일 것 같았고 나를 납치하거나 더 끔찍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말할 수 없었다”고 말한 순수 양의 진술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고 신빙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또 ‘공포감, 수치심, 모욕감, 방관, 훈육, 성추행, 진실 모면’ 등 또래 아동들에 비해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는 등 어휘 수준이 나이에 비해 높다는 점 등을 이유로 어머니 손씨의 영향을 받아 거짓 진술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초등학생인 순수 양이 교감에게 당한 성폭력 피해사실을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마인드맨션원장은 “수많은 성폭력 사건이 사회의 성도덕이나 순결 이데올로기, 피해자의 공포나 외상으로 인해 빨리 이야기되지 못하고 나중에야 말하게 된다”며 “허씨의 의견서는 성폭력 피해자의 처지에서 사안을 살피는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고 성폭력 피해자의 심리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또 순수 양의 어휘력에 대해서도 “어휘력은 개인마다 편차가 있다”며 “이를 근거로 진술에 어머니가 영향을 끼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안 원장은 허씨의 의견서 구성비율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허씨는 의견서의 60% 이상을 이 사건과 관계 없는 순수 양의 학교폭력 피해 내용에 할애했다. 반면 전씨의 의견서는 학교폭력 내용이 언급돼 있지 않으며 순수 양의 진술 태도 등 심리상태, 언어 및 인지 특성 등을 분석해 진술 내용의 신빙성을 중심으로 작성됐다.

안 원장은 “순수 양과 친구들 간의 갈등, 이에 따른 손씨와 각 학년 담임 등과의 상호작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는 것 자체는 필요하다”면서도 “이 내용이 전체 감정문에 비해 너무 길고 비중이 높다”고 비판했다.

또 손씨는 “L 교감이 충남 교육공무원 일반징계위원회(징계위)에서 주장한 내용과 허씨의 의견서가 똑같다”고 말했다.

L 교감은 징계위에서 “학폭위 결과에 불복한 학부모가 성추행 피해를 주장해 촉발된 사안으로 혐의가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허씨는 의견서에서 “학폭위에서 순수 양이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자 손씨와 순수 양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본 사건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술했다. 피해자의 입장을 배제한 채 가해자의 입장만을 인용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는 대목이다.

손씨는 “이미 학폭위에서 2차례 피해자로 인정됐고 C 초등학교는 학교폭력 은폐로 행정처분까지 받은 상황”이라며 “‘학폭 피해자로 인정이 안 돼 L 교감을 모함했다’며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까지 모함하고 누명을 씌워 2차 가해를 저지르고 있다”고 울분을 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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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성인지 감수성 부족으로 인한 ‘법 감정 괴리’

검찰은 지난 3월 25일 L 교감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맡은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원용일)는 지난달 17일 선고공판에서 L 교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탄원서 등을 모두 검토해 판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피해자의 수사기관과 법정 진술, 수사관 면담 진술 등을 모두 검토했고 법정에서는 간략하게 요지만 다루겠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 입증 책임은 검사에게 있으며 유죄 인정은 법관의 합리적 의심이 분명한 것이라는 공소사실 진실과 증명에 있다”며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모친의 영향을 받아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과장하거나 사실과 다른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서 말한 합리적 의심 역시 공소사실을 공증하기에 부족하다 판단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L 교감과 A씨의 판결은 모두 법원의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민들이 느끼는 법 감정과 법원의 판단의 괴리가 크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변호사회는 A씨의 판결 이튿날인 지난 14일 성명을 통해 “징역 3년형은 법정형 중 가장 낮은 형량”이라며 “(이번 판결은) 일반인의 건전한 상식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실관계와 법리검토에 충실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양형의 단계에서 일반인의 상식에 수렴하려는 노력을 통해 법과 사회와의 괴리를 최소화해야 할 것인데 이 같은 결과는 매우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마지막 정의의 보루인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도 피해아동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이러한 현실을 고려해 추후 상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부합하는 판결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손씨도 L 교감 사건 1심 재판부가 피해자의 진술과 증거를 무시하는 등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A씨 사건에서 A씨와 검찰은 모두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손씨도 1심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한 상태다.

두 재판의 상급심에서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 판단을 내릴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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