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눈이 부시게’ 살아가는 화가 ‘홍미림’
평범한 일상을 ‘눈이 부시게’ 살아가는 화가 ‘홍미림’
  • 박애경 발행인
  • 승인 2019.06.2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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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과 내가 꿈꾸는 일들이 큰 그릇 속에 얼기설기 담겨 삶의 맛을 맛깔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바라는 것은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잘 다루는 일이죠.”
동양화가 홍미림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얼마 전 종방한 JTBC드라마 ‘눈이 부시게’의 엔딩 내레이션 중 한 구절이다. 이 드라마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한 주인공 김혜자 씨가 수상소감에 인용하면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먹먹하게 한 구절이기도 하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다’며 누군가의 엄마이자, 누이이자, 딸일 수 있는, 그리고 ‘나’인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필자는 자신의 삶을 ‘눈이 부시게’ 채워가는 동양화가 홍미림을 만났다. 초등학교 5학년 딸과 2학년 아들을 둔 홍미림 작가의 아침 풍경은 여느 가정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남편 출근과 아이들 등교 준비를 돕느라 주방과 욕실, 그리고 방방마다 발걸음을 동동거린다. 남편과 아이들이 빠져나가며 두고 간 흐트러짐, 고요함, 그 위에 내려앉은 아침햇살, 깊은 호흡과 힘찬 기지개... 등등. 비로소 ‘나’로 돌아온 홍미림의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는 괘종시계가 된다.

‘화가이자 교수’ 홍미림의 시간은 자신만의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집 근처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공간을 마련했다. 가족들의 배려 덕분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저에게 남편은 든든한 조력자에요.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고,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아요. 항상 감사하죠.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것도 남편 덕분이에요. 작은 공간이지만 생활공간과 분리되어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어요. 작업실은 둘째아이 4살 때 마련했어요. 이전에는 아이들이 어려 제가 보살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집에서는 작업에 열중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어요. 방 한 칸을 작업 공간으로 활용했는데, 아이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며 화구를 어지러트리기도 하고, 이것저것 해달라는 것도 많아 챙겨주다 보면 붓 한번 잡지 못하고 하루가 훌쩍 가버리기 일쑤였어요. 아마 제 지인들 중 결혼한 화가들도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할 거에요. 창작활동보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하는 것이 우선순위가 될 거에요. 그러다보니 꾸준히 작품활동 하기가 녹녹하지 않아요. 다행이 저는 그림도 그리고, 강의 준비도 할 수 있는 저만의 공간도 있고,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어 너무 행복하고 좋아요.

가족이야기를 할 때 홍 작가의 얼굴은 행복한 미소로 가득했다. 어쩌면 화가와 교수로서의 자신보다 엄마와 아내로서의 자신을 더 사랑하는 듯 했다. 그래서일까? 홍 작가의 작품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요소요소에 들어있다. 아이들이 놀다가 늘어놓은 장난감과 가족과 함께 하고픈 여행과 함께 가고픈 동화세계를 자신의 화폭에 담았다. 이것은 지난 2016년에 가진 개인전 <삶의 그릇>에서 잘 드러난다.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여자이자 엄마로서 제 눈앞에 펼쳐지는 세상을 이전과는 많이 달랐어요. 집안은 이름도 잘 모르는 장난감들이 뒤섞여 어질러져있고, 신제품이 출시되면 손에 꼭 넣고 싶어 조르는 아이들과의 실랑이, 칭찬스티커로 갖고 싶은 장난감을 얻게 된 아이들의 환호소리, 반복된 일상이 지루해질 때쯤 생각나는 가족여행, 저는 이런 것들로 제 삶의 그릇을 채워나갔죠. 그러면서도 가끔씩 나만의 유토피아를 꿈꾸곤 해요. 높고 푸른 산, 활짝 핀 모란과 연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연으로 제 마음을 담아 표현하기도 합니다. 결국 소소한 일상과 내가 하고 싶고 생각하는 일들이 큰 그릇 속에 얼기설기 담겨 삶의 맛을 맛깔나게 하는 것 같아요. 그저 제가 바라는 것은 그릇이 깨지지 않도록 잘 다루는 일이죠.

제목: 삶의 그릇 - The Bowl of Life재료: 한지에 먹과 채색, Coloring on Korean paper사이즈: 130×162cm2016년
제목: 삶의 그릇  The Bowl of Life
재료: 한지에 먹과 채색, Coloring on Korean paper
사이즈: 130×162cm / 2016년

이제 ‘화가’로서의 홍미림을 만나보려 한다.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강사, 한국미술국제교류협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홍 작가는 동양화의 전통 색채와 먹을 이용한 화려하면서도 진중한 표현으로 동양채색화의 현대화를 열어가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다. 개인전 15회와 단체전 220여회를 개최한 저력 있는 작가이다. 2001년 제20회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의 입선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대한민국미술대선 특선, 2010년엔 대상을 거머쥔 후, 2016년에는 首屆中國國際茶文化書畵藝術大展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해 국제무대에서도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2018년 제38회 올해의 최우수 예술가 시상식에서 ‘올해의 주목할 예술가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2016년 개인전 <삶의 그릇>에 이어, 홍 작가의 최근작과 근작들로 구성된 개인전이 지난 6월 12일부터 18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 H'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작품에도 작가의 일상과 꿈꾸는 유토피아가 발랄하면서도 은은하게 담겨있다. 작품 <여행> <행복> <꿈속에서> <휴식> 등 제목에서도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다고 홍 작가는 혼자만의 유토피아를 바라지 않는다. 작품 <우리 함께>의 제목처럼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세상에는 항상 가족이 함께한다.

전시를 며칠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홍 작가는 필자에게 초대인사와 함께 팸플릿을 건넸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적은 작가노트 내용 중 딸아이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질문을 던졌다.

딸아이가 5학년이에요. 그림을 좋아하고, 곧잘 그리기도 해요. 특별한 도구 없이 프린터에서 A4용지를 꺼내 볼펜으로 사람과 사물을 그리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즐겨 해요. 지워지지 않는 볼펜으로 한 번에 유려한 필선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 신통방통하기도 하고, 이름을 불러도 모를 만큼 그림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그림을 꽤나 즐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아이가 그림을 놀이처럼 즐기는 것을 보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실적도 올려야하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전시회도 열어야한다는 의무감과 압박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되었지요. 아이처럼 그림을 놀이처럼 즐겨야하는데, 제 마음에 너무 많은 욕심들이 들어있었나 싶었죠. 이 욕심들이 때로 저를 힘들고 지치게 할 때가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제 딸이 저와 같은 길을 가지 않았으면 했어요. 힘든 길인 것 같아서요. 하지만 지금은 딸아이가 하고 싶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것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인생이니까요.

제목: 행복 _ Happiness재료: 한지에 채색, 혼합재료.  Coloring on Korean paper사이즈: 30×30cm,   2017년
제목: 행복  Happiness
재료: 한지에 채색, 혼합재료. Coloring on Korean paper
사이즈: 30×30cm / 2017년

홍 작가는 4~5년 전에 심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고 했다. 든든한 지원군인 남편과 부모님, 그리고 사랑스럽고 건강한 아이들... 누가 봐도 홍 작가는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화가로서의 길을 힘겨워했다. 화나고 슬프고 짜증나는 마음이 불현듯 머리를 쳐드는 슬럼프에 빠졌다.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했다.

언젠가 즉문즉설로 유명하신 법륜스님께 저의 힘든마음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6개월 동안 그림그리기를 멈추고 쉬어봐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말해줄 거다. 미치도록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면 계속 그림을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그만두라’고 답을 주셨어요. 스님 말씀대로 붓을 놓아 버렸죠. 하지만 6개월까지 갈 필요도 없었어요. 붓을 놓은 지 3~4개월 즈음에 뭔가 불안한 마음이 들고 안절부절 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이미 그림은 제 몸에 베인 습관처럼 삶의 일부가 되어 버린 거예요. 이후 마음을 다스리는 연습을 많이해요.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스스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객관적일 수 있게 멀찍이 떨어져서 나를 보곤 해요. 그러다 보면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죠. 남에게 인정받지 않더라도 묵묵히 화가로서의 길을 갈 것이고, 아울러 엄마로서 아내로서의 나의 삶을 잔잔히 이어가려고 해요.

화제를 전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갔다. 마음다스림 덕분인가? 홍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한 작업과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털어 놓았다.

하얀 종이에 무엇인가를 그려낸다는 생각은 가끔씩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한다. 무엇을 그릴지, 내가 가진 생각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결국 나에게 가장 익숙한 것들을 그리기 시작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 좋아하는 색깔들을 종이 위에 풀어내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 내 마음에 쏙 들고, 누구나 칭찬해 줄 만한 좋은 작품이 나오지 못할지라도, 20여 년 동안 붓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와준 나에게 대견하다고, 힘든 과정이지만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오늘이다.    

-2019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제목: 우리 함께 _ Together재료: 한지에 먹과 채색, 혼합재료. Coloring on Korean paper사이즈: 53×45.5cm,   2018년
제목: 우리 함께  Together
재료: 한지에 먹과 채색, 혼합재료. Coloring on Korean paper
사이즈: 53×45.5cm / 2018년

마지막으로 홍 작가의 향후 계획에 대해 물었다.

전시회는 꾸준히 준비할 거예요. 그동안 단체전은 1년에 보통 10건 정도 참여했고, 2년마다 개인전을 열었는데, 앞으로도 지금까지 했던 대로 이어갈 거예요. 작품 활동 뿐 아니라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요즘 제 삶의 에너지 중 하나가 바로 강의하는 일이에요. 할 수 있다면 오래도록 강단에 서고 싶어요.

필자가 만난 홍미림은 예술가로, 후학을 양성하는 교수로, 그리고 한 남자의 아내로, 두 아이의 엄마로, 세상에 있게 한 부모님의 딸로, 주어진 삶을 평범하게 그리고 눈부시게 살아내고 있었다. 필자 또한 그런 그녀에게 대견하다고 칭찬해 주고 싶은 오늘이다. 그녀의 삶의 여정에 갈채를 보낸다.

 

제목: 여행 Travel재료: 한지에 채색, Coloring on Korean paper사이즈: 113×162cm,   2019년
제목: 여행 Travel
재료: 한지에 채색, Coloring on Korean paper
사이즈: 113×162cm /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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