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는 수술 중 의료사고·대리수술 논란
의무화 둘러싼 환자계·의료계 갈등 심화
환자 안전이냐, 의료인 인권이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최근 수술 중 발생하는 의료사고나 무자격자의 대리수술 등 불미스러운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자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관심만큼이나 수술실 내 CCTV 설치에 대한 찬반 논란도 심화되고 있다.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둘러싼 논쟁은 故 권대희씨 사고를 계기로 촉발됐다. 2016년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던 권씨는 과다출혈로 사망했는데, 의료진의 과실로 발생한 사고임이 수술실 내 설치돼있던 CCTV를 통해 밝혀졌다. 이후 같은 해 분당차병원에서 신생아 분만 중 발생한 의료사고를 병원 측에서 은폐하려 한 정황이 뒤늦게 드러나며 수술실 내 CCTV 설치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를 계기로 환자단체는 1인 시위까지 불사하며 숙원이던 대리수술, 의료진 과실, 환자 안전 등을 고려한 수술실 내 CCTV 설치 의무화를 강력히 촉구했다. 이에 대해 의사단체는 수술실 CCTV 설치가 환자단체가 우려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지난달 14일 CCTV를 활용한 수술실 환자 안전과 인권 보호,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방안 등의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이른바 ‘수술실 CCTV 설치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그러나 돌연 하루 만에 공동발의자 절반이 철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15명의 의원이 공동발의에 동의하며 재발의 된 상황이지만 병원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둘러싸고 환자단체와 의사단체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사진 출처 = 청와대 청원 게시판 캡처>

CCTV가 없었더라면

지난달 21일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는 故 권대희씨의 유가족이 쓴 청원글이 게재됐다.

유가족에 따르면 권씨는 2016년 9월 강남 소재 성형외과에서 사각턱 절개 수술을 받던 중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유족이 확인한 수술실 내 CCTV 영상의 내용은 경악스러웠다. 마치 물건을 찍어내는 공장을 연상케 하듯 여러 개의 수술실 문을 개방해둔 채 다수의 환자 수술이 동시에 진행됐다. 권씨 수술을 담당한 의사는 중간에 사라지고 다른 의사가 대리수술을 하기도 했으며, 무면허의 간호조무사가 의료행위를 한 모습까지 포착됐다. 간호조무사는 피를 흘리는 권씨를 앞에 두고 휴대폰을 만지거나 눈 화장을 하기도 했다.

게다가 의료진이 수술 과정에서 대량 출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권씨는 수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대학병원으로 이송됐고, 끝내 한 달여 만에 목숨을 잃었다.

유가족은 “병원의 실체를 CCTV 영상을 통해 알고 나니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위해 수술실 내 CCTV 설치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제 아들의 인권은 처참하게 유린당해 억울하게 죽었지만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지난겨울 엄동설한에도 5개월 동안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설치법 발의 1인 시위를 벌였다”고 밝혔다.

권씨의 죽음을 밝혀내는 데 수술실 CCTV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수술 중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이 사고의 원인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사진 출처 = 국회 의안정보시스템 캡처>

‘산전수전’ 수술실 CCTV 설치법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해 환자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수술이 이뤄지기 때문에 일부 환자 인권이 침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환자 입장에서 답답하고 불안한 부분이 있었다며 도립의료원 수술실 내 CCTV 설치를 추진했다.

이 지사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하에만 선택적으로 촬영하고. 정보보호 관리책임자를 선임해 환자의 개인정보를 최우선으로 수술 영상은 30일 동안 보관했다가 그 뒤엔 영구 폐기되는 방향을 제시했다. 이를 토대로 경기도의료원 안성병원에서 지난해 10월 1일부터 연말까지 수술실 내 CCTV를 시범운영했다.

그 결과 시범운영이 시작된 날로부터 10일 동안 54건의 수술 중 24건의 수술에 대해 CCTV 촬영이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그리고 올해 도내 6개 의료원으로 수술실 CCTV 설치가 전면 확대됐다. 경기도는 긍정 여론에 힘입어 ‘국공립병원 수술실 CCTV 확대 설치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을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도 지난달 14일 공동발의자 10명의 동의를 얻어 수술실 CCTV 설치법, 이른바 ‘권대희법’을 대표 발의했다.

권대희법의 핵심은 CCTV를 활용한 수술실 환자 안전과 인권 보호, 무자격자 대리수술 근절 등이다.

권대희법에 따르면 의료기관의 장이나 의료인은 의료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은 수술 등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 의료행위를 할 경우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의료행위를 하는 장면을 영상정보처리기기로 촬영해야 한다. 또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행위에 대한 촬영을 요구했을 때 정당한 사유 없이 이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안 의원은 “의료분쟁 관련 재판 중 약 30%가 외과적 시술을 수반하는 의료행위에서 기인하고, 의사면허가 없는 자의 불법 대리수술 적발 사례도 빈번하다”며 “그러나 이 같은 의료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인과관계를 규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환자 또는 보호자가 수집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CCTV 설치가 필요하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라고 설명했다.

<사진 제공=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환자계와 의료계

수술실 CCTV 설치법 발의 하루 만에 해당 법안을 공동 발의한 의원 5명이 돌연 발의를 철회했다. ‘국회의원 본인과 관계없이 보좌관이 결정했다’,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검토가 더 필요하다’, ‘의사의 항의가 있었다’ 등의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공동발의자 최소 10명 기준을 넘지 못하며 폐기되는 듯했으나 6일 만에 15명의 국회의원이 동의하면서 재발의 된 상태다. 

이후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둘러싼 환자단체와 의사단체의 이견은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갈등이 점점 고조되고 있다.

환자단체에서는 수술실 CCTV 설치는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고 무자격자의 대리수술을 근절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이하 환자단체연합) 최성철 이사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수술실 CCTV 설치는 수술실에서 발생하는 불법행위를 막기 위한 대안은 아니다. 이것이 설치된다고 해서 무자격자의 대리수술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라며 “의료계에서는 CCTV 설치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요구하는 CCTV는 원거리에서 수술실 전경을 촬영하는 수준이지, 개인을 식별하거나 수술의 적정성을 판단하는 자료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료소송에서는 시간과 진료기록이 판단의 근거가 된다. CCTV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언제 수술이 시작됐고, 어떤 의료인이 참여했는지를 확인하고 이를 진료기록과 비교하는 참고자료 정도다”라고 부연했다.

최 이사는 “이미 많은 대학병원에는 다양한 이유로 CCTV가 설치돼있기 때문에 의료진이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은 변명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의료진의 촬영 동의를 구하는 방향도 제시됐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심하지만 국민 여론을 수렴했을 때 수술실 CCTV 설치 의무는 법제화돼야 한다. 이번 법안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하더라도 단체 차원에서도 다른 방안을 계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료계는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료 왜곡과 질 저하, 환자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야기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한편 대리수술 근절, 의료사고 활용 등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 강봉수 부회장은 본지에 “수술실이 환자의 입장에서는 밀폐된 공간이지만 의료진에게는 일터다. 의료진의 입장에서는 근무 중 감시당하는 거라고 느낄 수 있는 문제가 가장 크다”며 “의료진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CCTV가 설치되면 집중을 못 할 것 같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이는 환자에게 직결되는 문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 단체에서 의사회원 8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수술실 근무 의사의 77.8%와 수술실 비근무 의사의 68.2%가 수술실 CCTV 설치에 반대했다. 반대하는 이유로는 ▲근로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부당행위(82.5%) ▲환자의 개인정보 침해(67%) 등이 꼽혔다. 특히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60%는 집중력을 저하시켜 수술 결과와 환자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강 부회장은 “(이미 많은 대학병원에서 CCTV가 설치돼 있다는 주장과) 의무화는 다른 얘기다. 대학병원은 교육병원이기 때문에 이를 목적으로 CCTV를 설치하는 경우가 있다. 수술 집도의가 스스로 교육목적으로 필요에 의해 촬영하는 것과 의료진을 불신해 감시하겠다는 목적으로 촬영하는 것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의무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수술실 CCTV 설치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 의료진 대다수가 치료에 있어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법안을 진행하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만약 정말 필요하다면 설득해 풀어야 하는 문제지, 마치 범죄를 숨기려고 반대한다며 감시하려는 식은 잘못됐다”며 “아주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해 사회적으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 반드시 막아야 할 문제”라고 전했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의견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20대 국회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