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심의, 법정기한 넘기며 결국 파행
사용자, 취약업종 최저임금 차등 적용 요구
노동계, 저임금 상태 고착...제도 취지 훼손
노사 양측 상생 위한 정부 후속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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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심의 법정기한인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불참한 사용자 위원들의 자리가 텅 비어 있다.ⓒ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내년도 최저임금이 심의 법정기한을 넘기면서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사용자와 노동자간 현격한 입장차 때문이다. 본게임라고 할 수 있는 최저시급 요구액 제시되지도 않아 논의에 오르지도 못했다. 최저임금 적용 방식을 두고 격론이 끝에 파행이 거듭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측과 노동자 측 모두 과거보다 다양한 목소리가 제기돼 왔다는 점에서 앞으로 최저임금 최종 결정까지 변수는 남아 있다.

지난 27일은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법정기한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 최저임금위원회는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전원회의를 열었지만 합의의 한 축을 구성하는 사용자 측이 불참하면서 회의는 1시간 만에 끝났다. 최저임금위는 공익위원과 노동자 위원, 사용자 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전날 보이콧을 선언한 사용자 위원 9명이 불참하면서 회의가 진행되지 못했다. 최저임금 협상의 출발이라 할 수 있는 노사 최초 제시안도 꺼내 놓지 못한 채 결국 내년도 적용할 최저임금은 법정기한 내 의결하지 못했다.

다시 꺼내는 ‘차등적용’ 카드, 재현된 파행

의결 법정기간이 지났지만 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을 고시하는 8월 5일로부터 20일 전까지인 합의하면 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결국 다음 달 16일이 실질적인 마지노선인 셈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다음달 2일 제7차 전원회의를 열기로 했지만 사용자 측은 여전히 불참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논의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저임금 심의는 쟁점은 크게 최저임금 결정단위, 업종별 구분 적용, 최종적인 결정 금액이다. 

그중에서도 업종별 차등적용 여부를 두고 크게 격돌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법정기한 하루 전인 26일 열린 제5차 전원회의에서 사용자 측이 요구한 내년도 최저임금의 차등 적용 안건을 표결에 부쳤다. 하지만 재적 위원 27명에 찬성 10명, 반대 17명으로 부결됐다. 경영계 찬성, 노동계 반대의 구도 속에 캐스팅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이 대부분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반발한 사용자 측이 다음날 회의에 불참하면서 파행으로 이어진 것이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은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 측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큰 취약업종에 대해서는 최저임금 수준도 낮게 적용하자며 꺼내든 카드가 ‘업종별 차등적용’ 카드다.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문제는 해마다 사용자 측에서 제기해왔던 이슈다. 지난 2017년, 2018년에도 사용자 측은 업종별 차등 적용을 요구했다. 당시에도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용자위원이 전원 퇴장해 파행되는 상황이 반복됐다.

실제로 최저임금을 도입한 첫해인 1988년 3개 업종을 대상으로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이후 모든 업종에 동일한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최저임금 인상폭이 커지면서 경영계의 요구도 커졌다. 경영계는 업종별로 임금 지불 능력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현실을 감안해 사업 종류별 구분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음식‧숙밥업과 도소매업 등 최저임금 인상에 취약한 업종의 최저임금을 낮게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업종의 고용 축소를 완화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호할 수 있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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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상공인연합회 노동·인력·환경 분과위원회는 17일 서울 동작구 소상공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최저임금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소상공인연합회

영세사업장만이라도...규모별 차등적용 공론화  

다만 사용자 측의 최저임금 차등적용 요구도 세부적으로는 결을 달리하고 있다. 현재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규모별’ 차등적용이다. 이는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기업단위 단체에서 논의되고 있는 ‘업종별’ 차등적용과는 엄밀히 말해 다른 개념이다. 업종보다는 규모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취약근로자들이 많은 영세사업장에 한해서라도 최저임금을 낮게 적용하면 역으로 근로자와 사업주가 ‘상생’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지난달 28일 가진 기자회견에서 “취약 근로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면 저희는 최저임금 인상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나 대기업 노조만 혜택을 보는 최저임금 인상에는 반대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미 최저임금이 많이 올라 있는 만큼 최저임금 ‘동결’ 여부나 인상률 보다 차등적용 관철 주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하지만 현행법상으로 규모별 차등적용은 어렵다. 현행 최저임금법 제4조 제1항에 최저임금을 ‘사업의 종류’에 따라 차등 적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소위 말하는 ‘업종별 차등적용’은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규모별 차등적용이 이뤄지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노동계는 업종별이든 규모별이든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하는 것이 저임금 노동자 보호라는 제도 본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사용자 측이 요구하는 음식숙박업 등 임금 인상에 취약한 업종일수록 저임금 노동자가 집중돼 있다. 그렇다보니 이들 임금을 낮게 정하면 저임금 상태가 고착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측이 주장하는 규모별 차등도 법적 근거도 없는데다 형평성 문제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정부도 규모별이든 업종별이든 차등적용에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정부는 그동안 최저임금 차등적용 문제가 거론 될 때마다 업종별 차등화를 위한 합리적 판단 기준이나 통계 인프라 부재 등을 이유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다만 ‘최저임금 1만원’을 목표로 삼고 있는 노동계도 지난 2년간 두 자릿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부작용 여론으로 속도조절론이 부상하는 등 수세에 몰린 상황이다. 이에 노동계는 최저임금 차등적용, 최저임금 결정단위를 시급으로 정하고 월 환산액 표기 여부 등의 문제보다 불공정 거래 관행 등에 대한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자 위원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이성경 사무총장은 지난 19일 열린 제3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으로 소상공인, 자영업자가 타격을 입은 것은 인정하지만 대기업, 중견기업 이상은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영향에서 벗어났다‘며 "최저임금으로 경제가 나빠진다는 주장은 용납이 안 된다”고 밝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이주호 정책실장도 “많은 분들 어렵다고 얘기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이 사회적 약속이고 가야할 목표기에 그걸 중심으로 최저임금 논의가 진행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불공정 거래 관행 개선이 먼저

최근에는 불공정한 시장 환경 개선을 공동 목표로 노동계가 소상공인들과 연대에 나서기도 했다. 사실상 최저임금 여론이 ‘을’과 ‘을’의 갈등으로 왜곡 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을’들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소상공인 단체인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한상총련)는 지난 17일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최저임금연대와 함께 경제민주화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초대형 복합쇼핑몰의 골목상권 파괴, 프랜차이즈 본사의 불공정거래, 카드사의 불공정 수수료 등을 비판하면서 소상공인의 어려운 현실의 원인으로 최저임금만을 탓해선 안 된다고 노동계와 한 목소리를 냈다. 노동계는 소상공인과의 연대를 강화해 경영계의 최저임금 동결론에 대응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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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최저임금위원회 제5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 위원이 청년유니온 김영민 사무처장이 닷새동안 거리에서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은 엽서를 책상위에 올려 놓고 있다.ⓒ뉴시스

하지만 심의 과정에서 최저임금위 소속 주류 소상공인과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최저임금 차등 적용안이 무산되자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은 반발하고 나섰다. 지난 27일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 현안 기자간담회에서 “지불능력 없는 사람들에게도 최저임금을 같이 올리는 건 맞지 않다”며 “업종별 차등 적용안이 부결됐으니 단서조항이라도 달아서 가야한다는 게 우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소상공인연합회도 “소상공인 업종 산업규모별 최저임금 차등화, 월환산액 표기 삭제 등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외면당한 것을 강력하게 규탄하며 소상공인들의 분노와 저항을 모아나갈 것”이라고 비판했다.

최저임금 적용 방법론을 두고 사용자와 노동자 측 대립이 격화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협상 본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최초 제시안도 나오지 않은 시점이란 점에서 변수는 남아있다. 이번 파행이 본게임을 위한 전초전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사실상 이전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차등적용이 실현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최종 임금 수준을 두고 다시 줄다리기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직 전초전, 노사 합의 한계...정부 역할론 대두

노동계는 최초 제시안을 1만원(인상률 19.8%)로 제출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1만원을 목표로 작년과 마찬가지로 상한액을 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동결이나 인하를 요구할 것으로 점쳐진다. 경영계는 2009년 최저임금 심의에서 5.8% 인하를 요구한 바 있다. 이후 해마다 동결을 요구하다가 2017년 한 해만 2.4% 인상을 제출했고 지난해 다시 동결을 요구했다.

차등적용 부결에 대한 항의, 아예 첫 제시안을 내놓지 않으며 벼랑 끝에 최저임금 인하를 이끌어 낼 것이라는 과측도 나온다. 이번에 사용자 측이 집단 보이콧이라는 강수를 둔 것도 최종 단계인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할 때 경영계의 입장을 최대한 관철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결국 조만간 경영계도 심의 복귀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이번 차등적용 격론 과정에서 불거진 영세업자에 대한 부담과 저임금근로자 보호라는 과제는 단순히 노사간 합의로 해결되기 힘들다. 결국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등에 대한 대책도 뒤따라야한다는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번 최저임금 차등적용 부결 등 최저임금위원회 결정에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소상공인들이 최저임금으로 겪는 어려움을 해결될 수 있도록 정부가 직접 나서 대책을 내놓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난 27일 기자회견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는 등 소상공인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 해결될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면서 “이제는 정부가 이에 대한 대책을 직접 나서 내놓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다만 정부가 최저임금 심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노사 양측의 반발과 함께 사회적 합의라는 대전제에 벗어나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 이에 정부의 지원책을 최저임금 보완 대책을 차등화·다양화하자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그간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일자리 안정자금과 같은 최저임금 인상 대비책들에 대한 점검과 함께 보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귀를 귀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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