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한국여성단체연합
<사진제공 = 한국여성단체연합>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서울지방노동위원회(서울지노위)가 한국방송(KBS)의 사내 성추행 가해 기자에게 내린 정직 6개월 징계가 부당하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린데 대해 여성단체들이 “직장 내 성희롱 발생 맥락을 무시한 판정”이라며 반발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이하 여성단체연합)은 8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지노위 앞에서 ‘서울지방노동위원회 판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노위의 판정은 직장 내 위계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희롱 발생의 전체적인 맥락을 철저히 무시하고 있다”고 규탄했다.

여성단체연합에 따르면 KBS 지역국 소속 기자 A씨는 지난 2014년경부터 지난해까지 총 6차례에 걸쳐 후배 기자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을 성희롱·성추행했다.

여성단체연합은 “A씨는 회식으로 노래방에 가게 되면 노래방에서 여성 기자들과 프리랜서 아나운서들에게 걸그룹 노래를 시키며 성희롱 발언과 불쾌한 신체접촉을 일삼았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A씨는 늦은 밤 다른 언론사 남성 기자와 각자 후배 여성 기자를 여성 접대부가 있는 유흥업소로 불러내 누가 더 빨리 오는지 내기를 하는가 하면 술에 취해 여성 기자의 블라우스 가슴 쪽에 지폐를 꽂아 넣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단체연합은 “피해자들은 이 같은 성희롱·성추행 피해를 당하고도 상급자인 가해자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수 없었다고 토로하고 있다”며 “모욕감과 불쾌감뿐 아니라 몇 년 후까지 고통을 느낄 만큼 트라우마에 시달리기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제기를 망설이던 피해자들은 미투운동의 흐름 속에서 지난해 사내 성평등센터에 공식적으로 사건을 접수했다. KBS 측은 자체 조사를 통해 6건 중 4건은 징계시효가 이미 지난 것으로 보고 나머지 2건만을 징계 사유로 삼아 지난해 12월 A씨에게 정직 6개월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A씨는 이에 불복해 서울지노위에 구제를 신청했고, 서울지노위는 지난 5월 “징계 사유는 인정되나 징계 양정은 지나치다”며 징계가 과도하다는 취지의 판정을 내렸다.

여성단체연합은 서울지노위 판정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판정”이라며 “직장 내 성희롱 발생과 유지의 맥락을 무시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곧 가해자에 대한 정직 6개월의 징계가 마무리될 것”이라며 “피해자들은 가해자의 복귀를 두려워할 것이다. KBS는 A씨 인사발령 시 ‘피해자-가해자 분리 조치’라는 기본적 매뉴얼을 반드시 지킬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KBS 내부 인사규정에 직장 내 성희롱 징계 시효가 2년으로 짧아 2014년부터 발생한 성희롱 사건은 징계시효가 지나 인정되지 못했다”며 “이 사건을 계기로 KBS는 성희롱 사건 징계시효를 재검토하고 실효성 있는 징계시효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김수희 활동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 피해자들은 지난 2014년부터 피해를 당해왔다. 지난해 신고를 했으니 4년이 지나서야 신고를 한 것이다”라며 “상급자에 대해 문제제기가 쉽지 않았기에 4년이라는 시간을 힘들게 지내왔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고 유지되는 맥락은 상급자가 피해자의 생존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라며 “불이익·보복 등 직장생활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피해자들이 문제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어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징계시효가 2년이라는 것은 너무 짧은 기간이다. 문제제기가 어려운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대해 징계시효가 과연 필요한지 논의를 해볼 수 있지 않나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와 관련해 KBS는 공식입장을 내고 “지난해 성평등센터를 설립하고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엄중대응 하고 있다”며 “지노위 결정을 성희롱 사건의 특수성과 해당 사건의 사실관계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해 불복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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