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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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자율형 사립고(이하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기존의 자사고가 무더기로 재지정에 낙마함에 따라 학부모는 물론이고 교육계와 정계 연일 뜨겁다.

법령상 의무로 규정된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 결과를 수용해야 한다는 게 교육계의 입장이지만, 학부모들은 지역 간 교육격차가 더욱 심화된다며 반발하고 있다.

자사고는 2002년 김대중 정부가 고교 평준화 교육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자립형 사립고’라는 이름으로 처음 도입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다양한 교육 수요 수용 차원에서 자율성을 넓게 확대해 지금의 자사고로 발전시켰다.

애당초 자사고는 교육의 다양성을 목표로 설립됐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이 공공연하게 이뤄져왔고, 상위권 학생을 독식한다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설립목적 달성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특목고·자사고 폐지를 국정 5개년 계획 중 하나로 삼았다.

그리고 교육부는 지난해 8월 ‘2022학년도 대학입학제도 개편방안 및 고교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자사고 등은 3단계에 걸쳐 일반고로 전환된다. 1단계로 자사고·일반고 고입을 동시에 실시하고 2단계로 재지정 평가를 통해 단계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각 교육청 교육감의 권한이다. 마지막으로 대통령 직속 행정위원회인 국가교육위원회가 주도해 고교체계 개편을 추진하겠다는 게 정부의 방침이다.

최근 전국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평가 대상인 24개 자사고 중 경희고·배재고·세화고·숭문고·신일고·중앙고·이대부고·한대부고·상산고·안산동산고·해운대고 등 11개 자사고가 재지정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들은 100점 만점 중 합격점인 70점에 미치지 못한 점수를 받은 학교다.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가 발표된 이후 교육계는 연일 시끄럽다. 특히 13개 자사고 중 8개 학교의 재지정 취소가 결정된 서울 지역의 후폭풍은 거세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평가 결과가 발표된 지난 9일 “재지정 평가는 공적 절차를 거쳐 합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견지를 토대로 평가위원들이 자율적으로 진행했다. 이번 평가 결과가 경쟁 중심의 고교교육과 서열화된 고교체제가 정상화되는 새로운 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히며 취소 자사고의 재학생과 신입생 모두 피해가 없도록 행·재정적 지원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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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자사고 폐지를 찬성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에 반발했다.

‘자사고 완전 폐지’를 주장하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는 같은 날 논평을 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가 매우 부족한 결과’라고 규탄했다.

전교조는 “서울시교육청의 13개 자사고에 대한 재지정 평가 결과 8개교만 재지정이 취소됐다. ▲입시 부정 ▲학폭 은폐 ▲선행학습법 위반 ▲재수생 양성 사관학교 등의 학사 비리가 밝혀진 학교들이 다시 자사고로 지정됐다”며 “조희연 교육감이 밝힌 ‘자사고 폐지는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결과인지 묻고 싶다.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 대통령과 조 교육감의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부족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이어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경쟁과 배제 그리고 분리와 특권의 가치를 거부하고, 협력과 배려, 공정과 정의의 가치가 존중받는 교육으로 변화하는 첫 단추다”라며 “정부는 시도교육청에 책임을 미루지 말고 자사고의 존립 근거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91조의 3) 조항을 없애라”고 강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이하 교총)는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 대해 “시도교육청의 임의적 평가이자 교육에 대한 정치‧이념의 과도한 개입과 중립성 훼손”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교총은 “자사고 존폐 논란은 학교 각각의 재지정 여부를 떠나 고교체제를 정권과 교육감의 성향에 따라 좌우하는 것이 원인”이라며 “고교체제라는 국가교육의 향배가 특정 정치 성향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학교 존폐가 반복된다면 이 같은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자사고 등 고교체제 구축은 학교 다양화와 선택권 확대, 4차 산업혁명시대라는 미래 교육 환경을 반영해 국가적 차원의 검토와 국민적 합의로 결정돼야 한다”며 “또 고교의 종류, 운영 등을 시행령이 아니라 법률에 직접 규정해 교육법정주의를 확립하고, 정부와 국회가 교육의 일관성과 안정성 회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제시했다.

누구보다 학교 측과 학부모들의 반발이 매우 크다. 학부모들은 주요 교육특구로 알려진 지역으로 학생들이 쏠리는 이른바 ‘강남 8학군 부활’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지 우려하고 있다. 자사고 측에서는 타당성과 신뢰성이 결여된 평가라며 집단소송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황이다.

서울 자사고공동체연합회는 “이번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는 애초부터 평가의 타당성과 신뢰성을 상실한 반교육적이고 부당한 평가이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무효이며, 학교평가를 빙자해 자사고을 없애기 위한 짜 맞추기식 위장 평가임이 분명하다”며 우리 서울 자사고 공동체 연합은 이러한 평가 결과를 결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자사고 폐지 기도를 소송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해 끝까지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한편 이번 평가를 통해 재지정에 탈락한 자사고는 교육부의 자체 심의를 거쳐 교육청의 결정에 동의할 경우 일반고 전환이 결정된다.

교육부는 다음달 초 서울·경기·전북·부산 교육청의 자사고 재지정 취소 결정에 대한 동의 여부를 발표할 예정이다. 때문에 재지정에 떨어진 자사고의 존폐 논란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법령 합치 여부를 가장 중점적으로 보겠다고 공언한 교육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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