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투자업체들의 금융사기 기승
2013년 83건에서 2016년 445건
유죄판결에도 투자금 회수 어려워 
형사‧민사 이어지며 장기화 다반사
부패재산몰수법 등 제도정비 돼야

ⓒ게티이미지뱅크
정상적인 업체처럼 교묘하게 속여 투자자를 모집하는 불법금융사기 사례가 매년 급증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불법투자업체의 사기에 휘말린 피해자들은 기댈 곳이 없다. 증거를 수집해 수사기관에 넘겨도 빠른 진척을 보이는 경우가 드물고 가해자를 재판대에 서게 하는 건 더욱 쉽지 않다. 운이 좋게 유죄 판결을 받아내도 투자금 회수의 길은 요원하다. 형사재판을 근거로 개별 민사소송을 진행하며 보내는 한세월 동안, 빚을 끌어다 쓴 피해자들의 가정은 파산이나 파탄의 길을 걷는다. 높은 투자수익을 노린 욕심의 대가라고는 하지만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교묘하게 접근하는 사례도 늘어나는 만큼 사회적 구제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불법투자업체들의 사기 중 대다수는 유사수신이나 폰지사기로 이뤄진다. 유사수신이란 기본적으로 은행법 등의 인가를 받지 않은 채 불특정 다수로부터 출자금 전액 또는 이를 초과하는 금액의 지급을 약정하고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말한다. 폰지사기는 돌려막기식 불법피라미드 금융사기를 일컫는다. 이 업체들은 기존 투자자들에게 약속한 이자나 배당금을 새로운 투자자의 돈으로 지급하며 사업체를 유지해 나간다.  

상당수의 불법투자업체들은 이 두 가지 방식을 함께 이용하는데 그 증가폭이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금융위원회에 접수된 유사수신행위 신고건수는 2013년 83건에서 2014년 133건, 2015년 253건, 2016년 445건 등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났다. 투자사기, 유사수신, 금융피라미드 등 불법금융 피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는 1조원 이상의 피해가 예상되는 사례가 5건, 1000억원 이상 피해가 예상되는 사례는 30여건이나 됐다. 

사기의 유형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범죄자들은 FX마진거래, 핀테크 등 생소한 용어를 사용하며 막대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는가 하면 비트코인이나 가상화폐, 비상장주식 거래, 검증되지 않은 제조업 기술, 쇼핑몰‧상품권‧특수작물 등의 실물을 미끼로 투자자를 모집했다. 

VIK 전 대표 및 법인 등에 대한 법원이 1심 판결. ⓒVIK피해자 제공
VIK 전 대표 및 법인 등에 대한 법원의 1심 판결. ⓒVIK피해자 제공

기소 3년만에 유죄 인정된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밸류인베스트코리아(이하 VIK)는 미인가 투자업체를 차려 수천억원의 투자금을 모은 대표적인 투자사기 사례로 꼽힌다. VIK 피해자들은 지난 2015년 이들의 투자사기 사기행각을 인지하고 유사수신 및 자본시장법 위반으로 이 회사의 대표 및 임원들을 고소했다. 피해금액은 개인당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억원대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기소금액은 7000억원에 달했다. 다만 피해자들은 기소하지 않은 피해자들도 있어 사법당국에서 파악한 액수를 크게 웃돌 것이라고 주장한다. 

VIK는 보험대리점에서 출발했다. 법원의 증거기록에 따르면 이 회사의 A 전 대표는 2007년 금융상품 중개 및 판매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를 설립해 보험 상품을 판매하는 보험 대리점 영업을 하다가 2011년 상호를 변경했다. 투자모집은 같은해 9월부터 이뤄지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인투자조합 6개 종목, 익명투자조합 64개 종목, 비투자조합 49개 종목 등 여러 투자 대상을 조합한 종목 100여개를 만들어 투자를 모집했다.

기소가 이뤄진지 3년여의 시간이 흐른 끝에 지난 2018년 법원은 무인가 금융투자업, 투자금 돌려막기 등을 포함한 이들의 유죄를 인정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이 회사의 전 대표 A씨에게 사기 및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8년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이밖에도 이 회사의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3년 이하의 징역형이 선고됐고 법인에게도 벌금 2억원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금융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집합투자업을 영위하면서 투자자들로부터 모집한 투자금을 하나의 계좌에 통합해 회사의 운영비와 혼합해 사용했다”라며 “새로운 투자종목의 투자금으로 모집된 금원으로 기존 투자 종목의 투자자들에게 수익금을 지급하면서 수익 발생을 가장한 후 수익금을 지급하고 다시 새로운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투자자들을 기망했다”고 밝혔다. 

ⓒVIK 피해자 제공
VIK피해자가 제공한 모집책과의 대화 녹취록. ⓒVIK피해자 제공

“원금 플러스 이자를 드려요”

이에 피고인들은 항소에 나섰지만 2심에서의 형량은 더욱 높아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항소3부는 지난달 4일 열린 선고공판에서 A 전 대표에게 1심판결보다 4년이 늘어난 12년 형을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 전 대표가) VIK 업무를 총괄하면서 모든 범행을 기획해 조직하고 주도적으로 수행해 거액의 급여를 지급받는 등 범행으로 거액의 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며 형량 가중을 결정했다. 

다만 재판부는 유사수신에 대해서는 모집책들의 원금보장 발언만으로는 이에 대한 약정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유사수신행위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확정 수익 추구형’ 종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실제로는 투자자들에게 원금 및 일정 수익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투자금을 모집했다”라는 1심 판결의 내용을 뒤집은 것이다. 

그렇다고 항소심 재판부가 해당 영업행위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법원은 원금과 수익 보장 등을 미끼로 일부 영업이 이뤄졌다는 점은 검찰 진술 등에서 확인되지만 그것이 곧 계약 내용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이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한 피해자 역시 이와 관련 모집책과의 녹취록을 본지에 보여주며 VIK의 유사수신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제보자의 녹취록에 따르면 이 모집책은 “우리가 총 진행한 게 104개 종목이다. 104개 종목에 6000억원 정도, 1800억 원정도 했는데 손실 난 종목은 한 개다”라며 “걱정하시는 것처럼 투자를 했는데 이게 계획대로 사업이 흘러가지 않을 때 저희가 이거를 가져올 수 있게끔 장치를 해놓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원금 플러스 기다린 기간만큼의 이자를 드려요”

대법원 상고, 개별 민사소송 등 갈 길 멀어

법원의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이 금전적으로 구제받기 까지는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개별적 민사재판이라는 험난한 과제가 남은 것은 물론 유사사례에서 비춰 보건데 민사에서 승소하더라도 회수할 돈이 없으면 피해금의 보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최근 한 민사소송에서 투자금 회수의 실마리가 열리긴 했다. VIK 투자 피해자 등 31명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이 나온 것이다. 이들은 VIK의 유사수신 및 사기행위로 손해를 봤다며 지난해 초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8억원 가량의 배상을 결정했다. 

다만 이번 결정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 추산 피해자 3만여명, 피해금액 7000억원의 사건에서 아주 일부에게만 구제의 기회가 마련됐을 뿐이다. 또 VIK는 여전히 형사재판 결과에 대해 불복하고 상고에 나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VIK는 항소심 판결과 관련한 입장문을 통해 “당사는 무고함을 밝히기 위해 수많은 증거자료를 제출하고 항변했으나 아쉽게도 안타까운 결과를 받게 됐다”라며 “법원의 판단은 존중돼야 마땅하지만 오랜 시간 믿고 기다려 주신 투자자 여러분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당사는 포기하지 않고 저희의 떳떳함을 입증하기 위해 변호인과 합의해 상고 절차를 밟아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불법금융사기 순수피해자 연대
불법금융사기 피해자들은 경영진들의 처벌과 유사수신 등의 피해방지를 촉구하며 길거리로 나서고 있다. ⓒ불법금융사기 순수피해자 연대

“누구나 피해자 될 수 있어…법적 제도 절실”

피해자 구제의 한계는 IDS홀딩스 사례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불법피라미드 유사수신으로 대표 등에게 실형이 선고된 IDS홀딩스 사태는 정계는 물론 학계, 언론까지 사건 은폐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최근 다시 수면위로 올랐다. IDS홀딩스는 범행의 규모와 범위에 있어서 과거 국내 최대의 불법 다단계 금융사기를 벌인 조희팔 사건과 종종 함께 언급된다. 

IDS홀딩스는 FX마진이라 부르는 해외통화선물 거래를 첨단금융기법이라고 소개하며 ‘1년 후 원금지급, 연 24%의 고수익’을 보장하는 등 불법 다단계 영업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수년에 걸친 재판 결과 이 회사의 B대표는 지난 2017년 12월 대법원에서 징역 15년의 판결을 받고 복역 중이다. 투자자 1만여 명에서 1조원 가량을 받아 가로챈 혐의가 인정된 것이다. 최근에는 이 회사의 간부에게도 징역 7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투자금 회수는 역시 쉽지 않다. B대표의 파산선고 후 설립된 IDS홀딩스 파산재단은 7700명에 약 516억원을 배상한다고 밝혔지만 이는 신고 된 채권액의 8.6%에 불과하다. 유사수신 피해자들 상당수가 투자금액에 맞먹는 대출을 끼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부 변제만으로는 자금 여건이 좋아질 수 없는 상황이다. 

더욱이 변제 대상 중에는 모집책 등 적극적 가담자들도 포함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명확히 구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수익을 올렸을 가능성도 있는 가해자까지 보전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다. 

VIK나 IDS홀딩스처럼 가해자를 재판에 세울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대표가 투자금을 들고 해외로 잠적한 경우에는 이들을 재판에 세우는 것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수사가 장기화 되면서 경찰의 관심에서 멀어져 검거 자체가 요원해지는 것을 걱정한다. 

특히 이 같은 경우 업체는 도주한 대표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법인이나 직원에 대한 고소고발을 적극적으로 만류한다. 이 과정에서 몇몇 업체들은 피해 복구를 미끼삼아 추가 투자 유치를 내세우고 있어 2차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현재로서 불법금융사기 피해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언론에 제보하거나 길거리에 나와 호소하는 것뿐이다. 불법금융사기 순수피해자 연대는 수시로 불법업체 경영진 및 책임자들의 구속과 유사수신 척별 등을 주장하기 위해 법원 앞으로 나선다. 이들은 하루 평균 사기범죄가 600여건에 달한다며 대한민국 서민들이 사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토로한다. 

사기범죄 수익금을 형사재판 후 피해자에게 돌려준다는 취지로 제안된 ‘부패재산몰수법 개정안’은 1년째 계류 중이다. 이 법안의 통과는 범죄수익 추징금이 2%대에 머물러 있는 현재 상황을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언제쯤 현실화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 피해자는 “금융사기 피해자들이 그로 인한 가정파탄과 금전적, 정신적 고통을 받다가 인생을 비관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라며 “피해자들이 그저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아니고 우리 주변 누구나가 될 수 있고 이렇게 허망하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들의 부주의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살인과 같은 범법행위를 하는 사기꾼들을 엄중히 다스려 다시는 이와 같은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는 법적 제도를 구축하는 데 힘써 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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