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 = 변재원씨
지난 16일 장애인고용포털에 올라온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채용공고. <사진제공 = 변재원씨>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국책연구원인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장애인 채용공고를 내면서 장애 정도를 기준으로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둬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됐다.

여성정책연구원은 지난 16일 장애인고용포털에 사무보조원 모집 공고를 냈다. 회의지원, 문서정리 등 행정업무 사무보조를 하는 사무보조원 지원자격에는 ‘심하지 않은 장애(경증)’가 명시돼 있었다.

지난 1일부터 기존 1~6급으로 구분되던 장애등급제가 폐지돼 장애인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 기존 1~3급)과 경증(기존 4~6급)으로 구분된다.

이 같은 채용공고를 본 변재원씨는 “장애인 지원자의 업무 능력과 세부적인 장애 정도를 고려하지 않고, 장애의 특성을 단정 짓고 노골적으로 판단해 업무로부터 배제시키는 장애인차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장애의 중증·경증 여부와 별개로 장애 특성에 따라 사무보조원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씨의 진정과 관련해 여성정책연구원 인사총무팀 측은 “공단(장애인고용포털) 측에 채용공고를 요청할 당시 해당 직무에 대한 설명은 있었으나 중/경증 여부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공단 측이 공고를 올리는 과정에서 해당 내용이 추가돼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문제제기가 된 이후에는 즉각 시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진정에 대해 조사가 진행된다고 해서 공단 측에 공고를 요청한 공문을 준비해 놓은 상황”이라며 “지금까지는 공단에 공고 요청을 하고 이력서만 전달받는 형식이어서 공고에 대해 인지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차후에는 여성정책연구원이 요청한 공고에 대해 확인을 거칠 예정이다”라고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일 것을 밝혔다.

장애인고용포털의 해당 공고 담당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원자격에 중/경증 제한을 두지는 않지만, 기존에 상담을 했던 분들 중 해당 직무가 가능한 분들에게 취업을 알선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경증 장애인 위주로 알선해 달라’고 했다”며 “다만 외부에 이를 공고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공유된 사항을 삭제하지 못하고 올린 것은 잘못이 맞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 공유할 때 ‘경증’이라고 표현을 해도 중증 장애인 분들 중 해당 업무가 가능한 분들이 있다면 그 분들에게도 알선을 해드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변씨의 문제제기 이후 지원자격 항목은 해당 공고에서 삭제된 상황이다.

19일 현재 재공고 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채용공고에는 지원자격 항목이 삭제돼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인사총무팀 측은 “양식변경은 장애정도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출처 = 장애인고용포털 홈페이지 캡처
19일 현재 재공고 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채용공고에는 지원자격 항목이 삭제돼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인사총무팀 측은 “양식변경은 장애정도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사진출처 = 장애인고용포털 홈페이지 캡처>

장애인고용공단 “공고 게시과정서 실수”
형용사형 2분법 장애 구분체제 큰 문제

변씨는 기자와의 메신저 대화에서 “장애인 채용공고에서는 장애등급(정도)이 아닌 ‘사무 수발이 가능한 자’, ‘컴퓨터 타이핑이 가능한 자’와 같이 업무에 필요한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의 장애등급제 폐지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심하지 않은 장애인’으로 구분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도가 심한’과 ‘정도가 심하지 않은’이라는 형용사로 표현되는 2분법 장애 구분체제가 더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변씨는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라고 말하면 업무능력에 대해 상상하게 되는데, 반대로 ‘3급 장애인’, 또는 ‘4급 장애인’이라고 하면 감을 잡기가 어렵다”며 “정도가 심한/심하지 않은 이라는 이분법으로 장애유형을 단순화 한 것과 형용사형으로 바뀐 것은 장애인을 단정 짓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또 “(이 같은 구분으로) 직무 면접을 봐야 하는 것은 사회적 낙인을 낳을 우려가 있다. 지원자의 자격과 업무능력을 보지 않고 단지 ‘건강한 사람과 건강하지 않은 사람 중 누굴 뽑겠느냐’와 같은 질문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