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한 대표 두 번째 구속영장 기각
삼성 측 “나라 경제가 이런데...” 언급
삼성家 ‘경영 위기론’ 활용 전력 주목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뉴시스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이사ⓒ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4조5000억원대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수사의 분기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검찰의 김태한 대표이사의 구속영장 청구가 결국 기각됐다. 이에 따라 검찰 수사도 차질이 불가피해 진 상황이다.

삼성바이오 수사는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수사다. 일각에서는 기업 상황 외면한 무리한 수사라는 한편 삼성이라는 높은 벽에 부딪힌 재판부 한계라며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이런 가운데 김 대표의 구속여부를 가르는 영장심사 과정에서 삼성 측이 ‘경제 위기론’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삼바 수사 분기점, 김태한 대표 구속 기각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청구된 김 대표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김 대표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로 “주요 범죄 성부(성립여부)에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을 내세웠다. 김 대표의 법 위반 혐의 등에 대해 더 분명한 소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지난 5월 1차 구속영장 기각 때와 달리 “증거수집이 돼 있는 점” 또한 영장 기각 사유로 제시됐다.

김 대표와 함께 삼성바이오 최고재무책임자(CFO) 김모 전무의 영장청구도 기각됐다. 김 전무는 검찰 수사가정에서 범행의 상당 부분 자백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 부장판사는 김 전무에 대해 ‘수사에 임하는 태도’를 감안할 때 구속의 사유가 없다고 봤다.

김 대표 구속 여부에 관심이 몰린 것은 삼바 수사의 본안인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사법부의 첫 판단이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김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사유는 증거인멸 혐의였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법원 판단을 엿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구속 수사는 분식회계 배경으로 지목된 삼성물산 합병 최대 수혜자인 이재용 부회장으로의 수사 동력이 될 수 있다.

영장심사 과정에서 김 대표는 자신에게 제기된 분식회계와 횡령 혐의 모두 “아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한 줄 알았다”며 부인했다. 반면 함께 심사를 받은 김 전무는 두 혐의 모두 “김 대표의 지시를 받았다”고 반박하는 등 서로 책임을 떠넘겼다.

다만 이번 심사에서 김 대표가 회계상 문제가 있었다고 인정한 것은 주목할 대목이었다. 삼성바이오의 지난 2015년 회계처리기준 변경이 삼성바이오의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김 대표 등은 영장심사에서 “부적절한 회계처리가 있었다 해도, 장부상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해 불가피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기존 ‘회계 문제는 없다’는 입장에서 벗어난 것이다. 검찰은 김 대표 등이 일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보고 보강 수사를 통해 구속영장을 재청구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혐의와 무관한 나라 경제 걱정 ‘왜?’

이런 가운데 영장심사 과정에서 김 대표 등 삼성바이오 측이 혐의와 무관한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언급한 것을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영장심사에서 삼성 측은 “일본 문제도 있고, 나라 경제가 이런데...”라며 일본과 갈등을 빚는 대외경제상황, 대통령이 지원하는 바이오 산업의 미래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법원이 정무적 판단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삼성 측이 ‘위기론’을 앞세운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는 지적과 맞닿는 대목이다.

이번 삼성바이오 수사의 정점으로 지목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작년까지 비공식 일정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최근 계열사 임원회의, 일본 출장 등 활발한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 수출 규제 등 악재를 대비한 비상경영 전략의 일환이라는 측면과 함께 재판과 수사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의 역할을 강조한 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시점과 검찰이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한 수사 시기가 겹친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삼성 측이 수사 상황과 맞물려 경영 위기론과 함께 이 부회장 등 경영인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결국 이번 심사과정에서의 경제 위기론을 언급한 것도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재판 및 수사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경제 위기 발언이 실제 영장 청구에 영향을 미쳤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삼성 총수일가를 상대로 벌인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경영 위기론이 불거지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 같은 경제 문제가 과거 이건희 회장의 법적 처벌에도 영향을 미친 바 있다. 과거 이 회장은 삼성 비자금 사건으로 유죄를 확정 받았지만 이 회장을 사면하라고 경제단체들은 정부에 탄원이 이어졌다. 체육계에서도 당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이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라는 점을 들어 사면 복권을 주장했다. 결국 지난 2009년 12월, 이건희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특별사면을 받았다.

위기 마다 부각되는 위기론

당장 이번 김 대표의 구속 위기를 맞아 경영 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김 대표가 수차례 검찰에 소환되면서 경영 차질을 빚고 있는 데다, 삼성바이오는 최대 바이오 위탁생산(CMO) 업체로서 입지를 넓혀야 함에도 공장 증설 등 중장기 투자계획을 실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 언급되고 있다.

당장 나올 경영 실적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삼성그룹 계열인 삼성증권은 지난 10일, 삼성바이오의 2분기 매출액을 지난해 동기 보다 29% 감소한 890억원으로, 영업손실은 적자전환한 184억원으로 전망했다. 목표주가는 직전보다 14% 내린 43만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경영 위기론이 법원에서 제기된 것과 관련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문제를 줄곧 지적해온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1일 입장문을 내고 삼성 측 경제 위기발언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날 박 의원은 “김태한 대표는 ‘일본과의 갈등’, ‘암울한 경제 상황’ 등을 강조했다고 한다”며 “재판부가 '경제가 어렵다'는 어설픈 논리에 영장을 기각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박 의원은 “얄팍한 논리로는 경제는커녕 삼성이라는 기업도 살리지 못한다. 경제 걱정 때문에 재벌과 대기업의 불법 행위를 눈감고 넘어가서는 안 된다”며 “대기업이 법과 제도를 무너뜨리고 무시하는 불법을 저지르고도 불합리한 특권과 반칙을 누리며 법망을 빠져 나가도록 둔다면,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또 박 의원은 “불공정, 필망국이다. 어설픈 경제논리, 얄팍한 애국이 경제도 나라도 망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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