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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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부천시 성평등 기본 조례 개정조례안(성평등 조례)이 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에서 수정의결 됐습니다.

수정된 부분은 ‘성평등전문관 신설’로, 시의회는 이를 삭제해 의결했습니다. 성평등 조례의 핵심 내용인 성평등전문관이 삭제돼 ‘속 빈 강정’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부천시(장덕천 시장)은 지난 9일 “시의 성평등 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성평등전문관 운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며 성평등 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성평등전문관은 △성인지 강화 계획 수립 및 성평등 정책 발굴 △주요사업 계획수립 시 자문 및 협의 △주요사업 추진실적 평가, 환류 및 보고서 작성 등을 업무범위로 하는 직책으로, 시정 전반에 성인지 강화 및 성주류화(性主流化. 모든 정책·분석에 체계적으로 성평등 관점을 반영하는 과정) 확산을 위해 성평등 정책을 전담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는 당초 ‘젠더전문관’이라는 명칭으로 제출된 성평등 조례 개정안을 다시 한 차례 수정한 것입니다. 시는 “입법예고 기간 제출된 의견을 수용해 내용을 명확히 하고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성평등전문관’이라는 명칭으로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후 17일, 시는 시의회에 다시 한번 성평등 조례 개정안 수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제출합니다. ‘성평등전문관’을 ‘양성평등전문관’으로 수정한다는 것입니다.

시는 “부천시기독교총연합회(부기총) 등 65개 단체가 집회 및 1인 시위 등을 통해 전문관 명칭 변경을 요구했다”고 사유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부기총 등은 지난 18일 ‘젠더’, ‘성평등’이라는 용어에 대해 “동성애를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며 명칭 개정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젠더 전문관이나 성평등 전문관이나 명칭만 다를 뿐이지 본질상 다를 바 없다”며 “젠더를 성평등으로 바꾼 것은 의도를 강화하는 의미가 있을 뿐, 남녀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시 여성정책과에는 성평등 정책팀이 있는데 성평등전문관을 추가로 신설하겠다는 의도에 의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밖에도 시의 젠더정책에 대해 이목을 끄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부기총 등은 “시 여성정책과에는 성평등 정책팀, 여성 친화팀, 아기환영 정책팀, 다문화 가족팀 등 총 16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성평등 기본법에 의해 만들어진 부서에 남성 친화팀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양성 평등법 취지를 위반하는 것이 아닌지 묻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001년 여성부가 처음 만들어질 때도 비슷한 주장이 있었죠.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다문화 가족팀은 있는데 왜 한국문화 가족팀은 없느냐’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사회에서 ‘한국문화 가족팀’을 만들라고 요구하는 것은 인정되기 힘들 겁니다. 한국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점이 많은 이주민들을 지원하기 위해 ‘다문화 가족팀’을 만든 것이죠.

마찬가지로 남성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의 권리를 증진·보장하기 위해 여성 친화팀이 필요한 겁니다. 굳이 남성 친화팀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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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지난 19일 시의회 행정복지위원회에서 성평등 조례 개정안은 ‘성평등전문관’이 삭제된 채 통과됐습니다.

<부천매일>에 따르면 시는 보수 개신교의 압박에 부딪쳐 ‘젠더전문관’의 명칭을 변경했다고 인정했습니다.

권광진 부천시 여성정책과장은 행정복지위원회에서 “입법예고 기간에 3600여명이 젠더전문관에 대한 반대 의견을 냈고, 기독교 등의 집회 등으로 조례규칙 심의를 거쳐 성평등전문관으로 변경해 조례안을 올렸다”고 밝혔습니다.

또 정재현 행정복지위원장은 반복된 시의 전문관 명칭변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부기총과 (명칭에 대해) 양성평등 전문관으로 합의한 게 맞느냐”고 물으며 시민들이 자신에게 보낸 조례안 통과 반대 문자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정 위원장의 SNS를 통해 공개된 문자 중에는 “남녀 외에 수십가지 다양한 성을 말하는 성평등(젠더)정책 철회하세요”, “교묘하게 명칭만 바꾼 ‘부천시 성평등 기본 조례’”, “생물학적 성은 남, 여뿐입니다. 수많은 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거짓입니다”라는 등 성평등 조례 개정안 통과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정 위원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위원회 내에 3가지 안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원안대로 성평등 혹은 젠더 전문관으로 하자는 의견이었고 두 번째는 양성평등전문관으로 하자는 의견, 세 번째는 논란이 되는 상황이니 추가소통이 필요해 삭제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세 번째 안이 합의된 상태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고 밝혔습니다.

종교계의 압박에 밀려 인권을 유보하는 아쉬운 결정입니다. 시와 시의회가 향후 이 사안을 어떻게 처리할지 주목되는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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