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복실 회장이 말하는 포부
OECD 최저수준인 韓 유리천장 지수·기업여성 임원비율 개선 목표
韓 사회 유리천장, 아래서 깨긴 어려워…최고결정권자의 의지 중요
여성들에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사회 제도적 노력 함께 이뤄져야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복실 회장 ⓒ이복실 회장 제공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복실 회장 ⓒ이복실 회장 제공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2002년 설립된 세계여성이사협회(WCD, Women Corporate Directors)는 조직 내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여성리더 육성을 목표로 코카콜라, HP, P&G, 월마트 등 세계적 기업의 이사회 여성임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이 WCD에 지난 2016년 74번째로 가입한 WCD 한국지부는 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인 유리천장지수와 기업 여성 임원비율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 의식개선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 WCD 한국지부 2대 회장으로 취임한 이복실 회장은 지난 20여년간 여성가족부에서 근무하며, 여가부 차관을 지낸 여성·가족정책 전문가다.

그는 OECD 최저 수준인 한국의 유리천장 실태를 지적하며 이를 깨기 위해서는 CEO나 최고결정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성들 역시 스스로의 한계에서 벗어나 그간 사회가 부여한 고정관념과 편견 등을 깨는 노력과 함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개선을 요구하는 강한 연대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투데이신문>은 이 회장을 만나 앞으로의 포부와 함께 한국사회의 유리천장을 깨기 위한 WCD 한국지부의 역할과 방안에 대해 들었다.

‘다양성이 생산성을 제고한다’…그 필요성에 목소리 높일 것

Q. 먼저 WCD와 한국지부에 대해 소개해달라

WCD는 기업이사회의 여성이사들로 이뤄진 글로벌 단체로, 2002년 미국에서 창립됐습니다. 본부는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으며, 유럽, 아시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에 약 80여개 지부, 3700여명의 회원들이 각국의 8500여개 이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16년 7월, 74번째로 가입했습니다. WCD 한국지부는 OECD국가 중 최저 수준인 유리천장지수와 기업 여성 임원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공공기관 및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이 확대될 수 있도록 사회의 의식개선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회원들의 역량개발·교육훈련·네트워크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WCD 한국지부 2대 회장으로 선출됐다. 포부를 밝힌다면

지난 2016년 봄, 협회 창립준비 모임에 나간 저는 참석하신 회원들의 헌신, 열정과 진정성에 크게 감명받았습니다. 저도 30년간 직장에서 여성정책을 했지만, 자기 현업이 있는 분들이 우리 사회를 바꾸기 위해, 또 우리 딸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함께 힘을 뭉치자고 말씀하시는데 너무 감명을 받고 같이 참여해야겠다는 마음이 진심에서 우러나왔고, 창립 이사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 날 거의 처음 만났지만, 사회를 바꾸기 위해 동참하겠다는 의지는 모두 똑같았습니다. 우리 협회의 자랑은 회원 한분 한분의 열정과 참여도가 높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여성의 이사회참여 확대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Q. 현재 한국사회의 유리천장 실태는 어떤가

CEO 스코어에 따르면 2018년 9월 30일 기준 30대 그룹 등기이사 1654명 중 등기임원인 여성임원은 21명으로 1.3%이며, 30대 그룹 사외이사 663명 중 여성사외이사는 13명인 2.0%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Q. 이처럼 한국 기업 내 여성임원의 비율은 전 세계 최저수준이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특수한 요인이 있나

한국의 경우, 여성 사회참여의 시작이 늦었던 것 같습니다.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들은 기업 공채에 응시하지 못했습니다. 지원조건이 군필자였기 때문입니다. 이후 1988년에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이게 불법이 됐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여성들은 특별채용, 특별임용으로 기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출발 자체가 늦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렇다보니 선구자적이거나 선도적인 위치에 있는 여성의 수가 적은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여성은 소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남녀를 떠나 소수자는 다수인 사람보다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습니다. 또 소수자에 대한 평가 자체도 가혹합니다. 소수자를 쓰는 이유는 보다 우수하기 때문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편견을 깨기 위해 여성들이 더 열심히 일했고, 그 역경을 극복하고 여기까지 오는 과정을 거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점점 숫자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확대되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를 해봅니다.

그렇지만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다양성 제고를 위한 여성임원은 계속해서 필요합니다. 소비자의 절반도 여성이며, 단일한 의사결정 속에서는 다양화된 생산성 있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연구결과도 많습니다. 그래서 다양성이 생산성을 제고한다는 논리가 글로벌 화두인 것 같습니다. 조직에서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그런 다양성 제고 측면에서 우수한 여성 인재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필요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려고 합니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선출된 이복실 회장이 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복실 회장 제공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으로 선출된 이복실 회장이 소감을 전하고 있다. ⓒ이복실 회장 제공

단일 의사결정서는 생산성 제고 어려워…다양성 갖춘 조직 필요

Q. 이 같은 한국의 유리천장 실태는 과거에 비해 개선되고 있나

유리천장의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유리천장을 깨는 건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유리천장 위에 있는 사람이 유리천장을 깨려면 망치 하나면 됩니다. 특히 초기에는 CEO나 최고결정권자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여성장관 30%’ 공약이 바로 유리천장을 위에서 망치로 두드리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업에서도 CEO의 의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 감동받은 사례가 롯데지주 황각규 부회장이 롯데 인재포럼에서 ‘롯데에는 유리천장이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지를 우리 사회 지도층, 기업에서 릴레이 캠페인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신선하게 들렸습니다. 사회에서는 여성들더러 유리천장을 깨라고 요구하지만, 여성들만의 힘만으로는 깨지지 않습니다. 이 사회의 근본적인, 제도적인 노력들이 더해져야만 유리천장은 깨집니다. 여성들에게만 유리천장을 깨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아울러 여성들도 스스로 갖고 있는 내면의 유리천장을 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의 한계를 벗어나 그간 여성들에게 부여된 고정관념, 편견을 깨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위에서 유리천장을 깨더라도 준비된 상황에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소수자인 여성들끼리 연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혼자서 이야기한다면 불평·불만으로 들리지만, 함께 이야기하면 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도개선을 바라는 목소리가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여성들의 조용하지만 강한 연대가 필요합니다. 그 연대의 한 축에 우리 협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을 개선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은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나

많은 나라에서 이미 여성임원 할당제를 법이나 지침으로 시행하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2003년부터 상장기업과 국유기업을 대상으로 40%까지 여성을 할당하는 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또 영국은 2020년까지 대기업 이사회 내 여성비율 33%를 목표로 하고 있고, 최근 영국의 자산운용사 리걸 앤 제너럴 투자운용(Legal & General Investment Management)은 영국 FTSE 350 기업 중 이사회 내 여성의 비율이 25%에 미치지 못하면 2018년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행사하겠다고 표명했습니다. 일본은 법은 아니지만,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지침으로 모든 상장기업에 최소한 1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도록 권고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주주총회에서 설명하도록 돼 있다고 합니다(원칙준수-예외설명, Comply or Explain). 그런데 구구절절 설명하기 어려우니 거의 모든 상장회사가 이를 지킨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우에는 2018년 캘리포니아주가 미국 최초로 ‘여성 임원 의무 할당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캘리포니아주에 본사를 둔 상장기업은 이사회 임원에 반드시 여성을 포함해야 합니다. 또 기존 상장기업들도 2019년 말까지 이사회에 적어도 여성 임원 1명을 두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며, 2021년 말까지 이사회 규모가 5명일 경우에는 최소 2명, 6명일 경우에는 최소 3명의 여성 임원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Q. 일본의 경우만 해도 한국에 비해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한국지부와 일본지부가 포럼을 함께 했습니다. 일본지부에 따르면 일본은 기업이사회에 참여한 여성임원 수가 한국의 2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도토리 키재기처럼 비슷했는데, 어느 순간 2배 차이가 난 겁니다. 어떻게 그리 갑자기 발전했느냐고 물었더니, 일본 정부에서 2015년 여성활약추진법을 제정하고, 이를 통해 정부가 목표 여성 임원의 숫자를 제시한 뒤 도달 과정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앞서 언급한 상장기업 이사회에 여성이 최소 1명 이상 들어가야 한다는 도쿄 주식거래소의 지침입니다. 이처럼 가이드라인을 설정해놓고 지키지 않을 경우에 그 이유를 설명하라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정부가 강제적으로 할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친화기업에 대한 투자나 가이드라인을 주는 방식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은 아직까지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 보다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Q. 한국의 경우에는 여성임원 확대를 위해 어떤 입법적 노력이 있나

더불어민주당 최운열 의원이 한 성별이 이사회의 3분의 2를 초과할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발의해 국회 정무위원회 제1소위원회에 계류 중입니다. 이런 입법화를 위한 노력과 함께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진행하고 있는 여성친화기업에 투자하는 더우먼펀드 등의 힘들이 더해지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복실(왼쪽) 회장과 손병옥 초대 회장 ⓒ이복실 회장 제공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이복실(왼쪽) 회장과 손병옥 초대 회장 ⓒ이복실 회장 제공

사회 개선 위한 모퉁잇돌 만들고파

Q. 한국에서 우먼펀드의 태동에 WCD 한국지부가 역할을 했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2017년 히로 미즈노 일본공적연금(GPIF) 최고투자책임자(CIO)가 WCD 행사에 와서 특강을 했습니다. 일본에서 GPIF가 펀드의 일정 부분을 여성친화그룹에 투자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이 성과를 많이 낸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우리도 여성임원이 많은 기업에 투자하는 우먼펀드를 만들어보자고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걸 메리츠자산운용에서 채택해 지난해 11월 1일 더우먼펀드가 탄생하게 됐습니다. 우먼펀드를 태동시킨 건 WCD이며, 그 정신을 홍보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Q. 여성임원 비율 개선은 기업에 어떤 이득이 있나

2015년 모건스탠리 캐피털 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이사회 내 여성 비율이 높은 기업은 ROE(자기자본이익률) 평균 10.1%,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이보다 36% 낮은 7.4%를 기록했습니다. 또한 2011~2016년 5년간 미국 기업을 분석한 결과, 이사회에 최소 3명 이상의 여성이 있는 기업의 경우, ROE가 10%p, EPS(주당순이익)가 37% 증가한 반면, 이사회 여성의 수가 3명 미만인 기업은 ROE가 1%p, EPS는 8%만큼 감소했습니다. 지난해 포럼에 초청한 김수이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아시아·태평양 대표도 “기업 이사회가 다양성과 효과성을 갖추고 있을 때 더 높은 재무실적을 낸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다양성을 갖춘 조직의 조직문화가 더 유연하고 수평적이며, 생산성을 제고하는데 순기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임기 중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항은 무엇인가

먼저 회원들의 참여 확대와 역량강화입니다. 주변에서 여성을 추천하려고 해도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우리 협회에 문의하라고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로 우리 회원 중에 유능하고 자격을 갖춘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회원들의 역량강화와 기회확대를 위해 노력할 계획입니다. 이어 사회의 의식개선과 제도화를 위한 노력입니다. WCD의 미션인 여성이사 확대를 위한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우리 협회의 존재의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끝으로는 우리 단체를 사회를 개선하기 위한 모퉁잇돌로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참여가 필수입니다.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상장기업 2072곳의 사업보고서를 분석해 여성이사현황을 파악, 우리 단체를 알리고 홍보할 계획입니다. 아직 소수자인 여성들끼리 연대해 함께 공부하고, 목소리를 내다보면 유의미한 결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아울러 올해에는 오는 10월 15일에는 여성경영 확대를 주제로 국제포럼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또 오는 11월 1일이면 더우먼펀드가 발족한 지 만 1년이 됩니다. 우먼펀드를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홍보를 강화할 계획입니다.

Q. 유리천장에 좌절하고 있는 여성들에게 조언을 전한다면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너무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는 여성들이 많습니다. 특히 임신, 출산, 육아 때문에 지금이 너무 힘들어 당장 그만두고 싶어 합니다. 이렇게 힘들 때는 유리천장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일단 견뎌라, 일단 이 힘든 과정을 견뎌야지만 결실이 있더라, 견디지 않고 포기하면 결실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선배들도 제가 임신, 육아로 힘들 때 그 이야기를 해줬는데, 저도 그런 생각이 듭니다. 혼자 힘으로 이를 견뎌내긴 어렵습니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이 힘든 과정을 버텨내고, 소수자인 여성들끼리 연대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대해서 공통의 목소리를 내야 사회에 메시지가 전달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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