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분화·전문화된 노동으로 인정받는 ‘가사노동’
그러나 가사노동자 66년 째 근로기준법서 제외
노동권 보장 위한 ‘가사근로자법’ 국회서 숙면 중
“가사노동자협약 비준·고용개선 법률안 통과 촉구”

지난해 6월 18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우렁각시, 한국YWCA연합회원들의 ILO 가사노동자 일자리 협약 비준 고용개선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해 6월 18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우렁각시, 한국YWCA연합회원들의 ILO 가사노동자 일자리 협약 비준 고용개선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과거 가사노동은 자녀 돌보기, 집안 어르신 돌보기, 청소, 빨래 등 집안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고, 가능한 의무적인 집안일 정도로 가벼이 인식돼 왔다.

그러나 사회가 변화하면서 가사노동도 노동력을 제공하고 이에 합당한 임금을 지불받는 유급노동으로 변화 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우리 사회 뿌리 깊게 박힌 ‘여성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인식 탓에 가사노동자들이 진정한 노동자로서 인정받기까진 어려움이 컸다.

국제노동기구(ILO)에 가사노동자와 기존의 노동자와의 노동조건을 보장하도록 정한 협약을 채택하는 등 최근에는 가사의 노동성을 적극 인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가사노동자들은 여전히 법의 테두리 밖에 놓여 있다. 현행법상 가사사용인, 즉 가사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에서 배제되고 있는 것. 

가사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으로부터의 해방과 노동자성을 인정받고자 10년 가까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까지도 그들의 요구에 답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식모서 가사노동자가 되기까지

가사노동이란 육아, 요리, 청소, 교육, 간호, 세탁 등 가정생활을 영위하는데 꼭 필요한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말한다. 이를 위해 고용되는 사람들이 가사노동자다.

우리나라 가사노동자들은 1960~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식모’라는 호칭으로 불려왔다. 계급이 존재하던 전통사회에서는 가사노동을 집주인과 종속적 관계의 ‘노비’ 혹은 ‘하녀’가 담당해 온 가사노동을 계약관계를 맺은 식모들이 하나의 직업으로서 이행해왔다.

그러나 실제 노동의 성격이나 수행 주체의 조건에 큰 변화는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주인집의 수발을 들고, 집안의 모든 가사를 식모가 도맡아왔다. 가사노동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여전히 하녀 수준에 불과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는 당시 산업화 과정에서 제조업이 성장했고, 어린 여성들이 공장으로 대량 유입되는 방향의 노동시장 변화가 일어났다. 여기다 식모 기피 현상도 한몫했다. 식모 인권유린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되면서 식모기피 현상이 야기됐고, 식모 인력이 줄어들며 식모난(難)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여성들이 집에서의 살림보다 사회적 활동을 선택하는 경향이 증가하고 핵가족화에 따라 가사와 육아 등 가사노동을 대리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식모의 역할이 필요했다. 이 즈음부터 식모가 없는 집안에서 잔치, 김장 담그기 등으로 일손이 필요할 때 일당을 받고 일을 해주는 출장 가정부, 이른바 ‘시간제 식모’가 등장하게 된다.

1990년대 IMF경제위기 이후에는 해고와 대량실업, 노동의 유연화로 인한 비정규직 양산, 그로 인한 빈곤층의 대량 발생 그리고 이혼율 증가하며 여성가장이 늘어났다. 중장년 기혼 여성의 일자리 요구가 커졌지만 이들이 노동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이력은 공장 경력, 혹은 식당 주방, 서빙, 건물 청소, 간헐적 ‘파출부’ 그리고 집에서의 부업 수준이었다.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던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많이 해왔던 노동, 특별한 노력 없이 바로 노동력 제공하고 돈을 벌 수 있는 가사노동을 택했다. 이후 가사노동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으로서 본격 정착되기 시작했고 가사 관리, 산후 관리. 홈클리닝, 베이비시터 등 업무에 따라 세분화되고 전문화됐다.

지난 2013년 6월 진행된 ILO 협약을 통해 고용보험과 노동권을 보장해 줄 것을 촉구하는 가사노동자들의 퍼포먼스 ⓒ뉴시스

가사노동자 쏙 빠진 근로기준법

최근 가사노동이 전문화됨에 따라 종사자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보이지만, 이들의 노동자성을 공식화하고 이를 보호할만한 법적인 체제는 아직 미비하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근로기준법에 근거해 노동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가사노동자는 예외다.

근로기준법 11조 1항에서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 다만,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 또는 사업장과 가사사용인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정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가사사용인’이 바로 가사노동자들이다. 이 근거조항으로 인해 가사노동자들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불안에 떨며, 해고 이후에도 실업급여나 퇴직금은 꿈도 꿀 수 없다. 최저임금 보장도 어려우며, 임금을 받지 못하더라도 고용노동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 또 근무 중 다치더라도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자비를 들여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최영미 공동대표는 현장의 가사노동자들도 이 같은 사회보장 측면에서의 차별을 가장 피부로 느낀다고 증언했다.

최 대표는 “현장에서 느끼는 가장 큰 차별은 사회보장이다”라며 “근무 중 다쳐도 산재보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개인 돈으로 치료를 해야 하고, 일을 못하는 상황이 와도 쉬는 동안 실업급여 혜택도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임금 체불은 거의 없지만 임금 수준의 문제가 있다. 시급이 보통 1만2000원~1만3000원인데 식대, 교통비, 수당 등이 별도로 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가사노동자의 근로자성을 부정하는 근로기준법 11조 1항은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개정 없이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사의 노동적 가치가 인정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60여년전 수준에 고착돼 있다.

최 대표는 이런 현상에 대해 여성문제와 맞물리는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이 문제는 거시적인 측면에서 여성문제와 일맥상통한다”며 “가사노동은 그동안 가정에서 딸이나 며느리, 어머니 등 여성이 해온 일이다. 때문에 ‘무슨 집에서 하는 일까지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느냐’는 시각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세가 많은 노동자가 많다 보니 중고령자 노동을 하대하는 시각이 반영된 것도 있다”며 “이 밖에도 정부가 노동문제의 파트너를 노동조합으로 삼고 있는데, 노조 측에서 이를 조직하지 않은 문제도 있다”고 부연했다.

ILO는 가사노동을 ‘노동’으로 인정하고, 2011년 6월 16일 제네바에서 열린 제100차 ILO 총회에서 ‘가사노동자를 위한 괜찮은 일자리 협약’(이하 가사노동협약)를 채택했다.

이 협약은 가사노동자들의 최소 하루 이상의 정기휴일과 산재 발생 시 보상절차 보장, 노조 결성 등 노동기본권을 인정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울러 고용인이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때 일반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급여, 노동조건, 노동시간 등이 명시된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함으로써, 가사노동자가 최소한의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해당 협약을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비준에 앞서 걸림돌이 되는 근로기준법 11조 1항 등 관련법 개정이 우선돼야 하는데, 가사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인정하고 보호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 이른바 ‘가사근로자법’이 18대·19대 국회에서 외면받으며 임기만료 폐기로 마무리됐다.

지금의 20대 국회에서도 이 같은 내용의 법률안이 3개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여전히 구체적 논의 없이 계류 중이며 이대로라면 18대·19대 국회에서와 같은 결과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해 6월 18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우렁각시, 한국YWCA연합회원들의 ILO 가사노동자 일자리 협약 비준 고용개선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지난해 6월 18일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우렁각시, 한국YWCA연합회원들의 ILO 가사노동자 일자리 협약 비준 고용개선 법률안의 조속한 처리 촉구 기자회견 ⓒ뉴시스

“가사근로자법으로 물꼬 터야”

한국YWCA연합회와 한국가사노동자협회는 지난달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같은 달 16일로 지정된 ‘국제가사노동자의 날’을 기념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사회 환경과 가족구조가 변화함에 따라 가사노동자의 사회적 역할과 규모가 확대되고 있지만, 이들이 건강하고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은 부재하다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정부에게 ▲ILO 가사노동자협약 비준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을 통한 근로기준법 개정 ▲ 가사노동자 산재·고용보험 즉각 시행 ▲가사노동의 공적 고용지원시스템 구축 등을 촉구했다.

최영미 공동대표는 “가사노동자들도 점점 자신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노동자라는 인식을 하기 시작했지만 정치권에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가사노동자와 이용자 모두를 위해서라도 가사노동자를 법률상 노동자로서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사노동자들이 노동권 인정과 보호의 물꼬를 트기 위해서는 가사근로자법이 빨리 통과돼야 한다“며 ”동시에 사회적 대화기구를 마련해 가사노동에 관한 각종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해 논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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