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 7월 23일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1인 시위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 의원은 '딸 채용 부정청탁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피의사실을 누설했다며 수사 지휘라인 검사 3명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뉴시스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지난 7월 23일 서울남부지검 앞에서 1인 시위 도중 눈물을 훔치고 있다. 김 의원은 '딸 채용 부정청탁 의혹'과 관련해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피의사실을 누설했다며 수사 지휘라인 검사 3명을 피의사실 공표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피의사실공표죄’를 두고 검경이 맞붙었다. 검찰은 ‘약사면허증 위조’ 사건과 관련해 경찰의 피의사실공표 혐의 수사를 이어가고 있고 경찰은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의 채용청탁 의혹을 수사한 검사들을 피의사실공표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수사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모양새다.

이미 사문화된 조항을 두고 검경이 충돌하면서 일각에서는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전제로 하는 피의사실공표죄는 피의자 인권보호 측면에서 마련된 조항이다. 피의사실공표죄를 규정한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기소) 전에 공표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부 산하 검찰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피의사실공표로 접수된 346건 중에서 기소에 이른 경우는 단 한 사례도 없다. 피의사실공표죄는 사실상 사문화 된 지 오래다.

검찰과 경찰은 각각 법무부 훈령 제1060호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준칙’, 경찰청 훈령 제917호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을 통해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사 상황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다.

두 훈령은 모두 △사건관계인의 인권을 침해하거나 수사에 지장을 줄 수 있는 오보 및 추측성 보도를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공공의 안전에 대한 급박한 위협이나 그 대응조치에 대해 국민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 △범인의 검거 또는 중요한 증거 발견을 위해 정보제공 등 국민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는 경우 등에 한해 공보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검경은 수사 공보 과정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등 스스로 이 조항을 사문화한 측면이 있다. 약사면허증 위조 사건의 경우에도 경찰이 검찰에 송치하기 전 언론에 혐의를 알려 피의사실을 공표한 사례에 해당한다. 김성태 전 의원의 딸 채용 청탁 혐의를 밝힌 검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에서는 피의사실공표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공인의 범죄나 국민적 공분을 자아내는 범죄에 대해서는 피의사실공표를 통해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마련된 조항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피의사실공표죄가 국민의 알 권리와 충돌하는 가운데 피의사실공표의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법무부·경찰청 훈령이나 대법원 판례 등은 예외적으로 피의사실공표를 허용하고 있다. 피의사실공표의 허용 기준에서 국민의 알 권리는 강하게 주장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피의사실공표는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도 위배가 된다”며 “단순히 알 권리로만 말하게 된다면 재판결과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피의사실공표로 피해를 입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형법규정이 있음에도 피의사실공표죄로 유죄판결을 받아 처벌된 사례를 찾기가 어렵다. 지금까지 피의사실공표죄를 너무 가볍게 다뤄온 것”이라며 “최근에는 피의사실공표죄를 더욱 엄격하게 적용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공개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장 교수는 “무분별한 피의사실공표를 막기 위해 과거의 관행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며 “현재까지는 검경 공통의 새로운 기준을 마련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정도의 상태고 구체적인 기준에 대한 합의는 아직까지 없다”고 부연했다.

피의사실공표의 기준에 대해서는 “그동안 범죄로 인한 피해의 급속한 확산 또는 동종 범죄 발생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공공의 안전에 대한 급박한 위협이나 그 대응조치에 대해 국민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가 됐다”면서 “여기에 하나 더해 재판 결과 무죄로 판결됐을 때 피의자가 어느 정도의 피해를 입을 것인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경의 자의적인 피의사실공표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될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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