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맛있는 건 같이 먹도록 하게
[칼럼] 맛있는 건 같이 먹도록 하게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8.03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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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색다른 음식이 있거든 아무리 적어도 노소(老少)ㆍ귀천(貴賤)간에 고루 나누어 먹음으로써 화기애애하게 하라.”<이덕무(李德懋, 1741-1793>

먹자, 선생님 맘을 몰랐네.

며칠 전 친한 후배들과 종로에 있는 아귀찜 집에서 술을 한 잔 하고 온 적이 있다. 술에 잔뜩 취해서 들어가자 아내가 웃으면서 타박을 한다.

“왜 내가 먹을 건 안 사 왔어? 나도 아귀찜 좋아하는데?”

“아, 그게….”

“선생님이 아무리 좋은 말씀을 하시면 뭘 해. 제자가 듣지도 않는데…. 흥.”

예전에 아내는 아귀찜을 좋아하지 않았다. 껍데기를 먹을 때 느낌이 물컹물컹한 게 이상하다고 했다. 그랬는데 이제는 아귀찜을 좋아한다. 사연이 있어서 그렇다. 10년 전, 내가 박사학위를 취득했을 때의 일이다. 학위논문을 들고 대학시절 은사이신 배상현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선생님은 문을 열고 들어서는 나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 앞으로 다가오셔서는 내 손을 잡고, 꼭 안아주셨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이제야 내가 어디 가서 선생노릇 제대로 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네. 고맙네. 뭐가 되려고 하지 말고 그저 열심히 하게. 뭐가 되고 되지 않고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냐.”

“선생님, 제 논문, 그리 잘 쓴 게 아닙니다. 부끄럽습니다.”

“아닐세. 우리 밥 먹으러 가세. 축하주도 한 잔 해야지. 아무 소리 말고 따라오게.”

둘이서 지하철을 타고 동십자각 근처에 있는 아귀찜 집으로 갔다. 선생님이 주문을 하신다.

“여기 아귀찜 중자하고, 복분자술 한 병 주시오.”

“어? 선생님, 술 안 드시잖아요.”

“그래. 나는 술을 안 먹지. 그래도 오늘은 좋은 날이니 마셔야지. 한 잔만 하겠네.”

한 잔씩 마셨다.

“자네, 한 잔 더 하게.”

“아, 아닙니다. 선생님도 안 하시는데, 선생님 앞에서 저만 얼굴 벌개 지면 남들이 흉봅니다.”

“그래. 그럼 자네 편한 대로 하게. 이보시오. 사장님!”

“네. 할아버지.”

“아귀찜이 참 양이 많구먼. 고맙소. 이거 우리 둘이 다 못 먹으니까 절반은 포장을 해 주시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사모님 드리려고 하시나 보다.’

식당을 나서는데 선생님은 아까 마시던 복분자술과 포장한 아귀찜 봉지를 나한테 건네셨다.

“나는 술을 안 하고, 내자는 아귀찜을 좋아하지 않네. 자네가 가지고 가게.”

“아, 선생님, 사모님 드리려고 한 거 아니셨어요? 저는 괜찮아요. 선생님 드세요.”

“아냐. 자네 내 말 좀 들어보게. 자네만 밖에서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 보게. 아이엄마가 내색은 안 할 테지만 섭섭해 하네. 늘 안사람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야. 맛있는 건 내외가 같이 먹어야 정도 쌓이고 그러는 거야. 혹시 나중에 자네가 맛있는 걸 먹었으면 집에 들어갈 때 빈손으로 가지 말고 뭐라도 사들고 가도록 하게.”

“네. 선생님. 제가 선생님 뜻도 모르고….”

집에 왔다. 아내가 말했다.

“웬 아귀찜이야?”

“당신 먹으라고 선생님이 주신 거야.”

“나 아귀찜 잘 안 먹는데….”

아내한테 선생님이 해 주신 말씀을 옮겼다. 아내는 포장을 물끄러미 보면서 잠시 말을 하지 못했다.

“먹자. 선생님 맘도 몰랐네.”

이때부터 아내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먼저 아귀찜을 먹으러 가자고 한다.

어려웠을 때를 잊어선 안 되는 거야

선생님의 저와 같은 배려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선생님은 선비였기 때문에 아마 옛 사람의 행실에서 본받으신 점이 있을 것이다. 조선 정조(正祖) 시기의 이름난 학자 이덕무(李德懋, 1741-1793)는 「사소절(士小節, 선비가 지켜야할 소소한 예절)」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에 색다른 음식이 있거든 아무리 적어도 노소(老少)ㆍ귀천(貴賤)간에 고루 나누어 먹음으로써 화기애애하게 하라.”<이덕무,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사소절」>

굳이 옛 사람의 글을 읽지 않았더라도 이와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처럼 저런 말을 읽고, 저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고 있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거나 잊어버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가족의 화목은 사실 이처럼 작은 일을 실천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막상 그 상황이 닥치면 잊어버린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또 그랬다.

몇 년 전, 스승의 날 언저리에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다. 선생님께서는 이번엔 족발 가게에 가자고 하셨다. 내가 말했다.

“족발집이요? 선생님 식사하셔야죠. 밥을 먹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그럴까? 그럼 밥 먹으러 가세.”

전골 집에 들어갔다. 선생님은 메뉴판을 한참 보신다.

“날이 차니 국물 있는 거 먹게. 불낙전골로 시키게.”

음식이 나왔다. 작은 걸 시켰는데도 양이 무척 많았다.

“이 양 좀 보게. 너무 많네. 이걸 둘이서 어떻게 다 먹겠나. 덜어서 포장을 좀 해달라고 해야겠네.”

“아, 선생님. 많기는 한데요. 선생님 많이 드셔야죠. 조금 남으면 버리면 되잖아요. 김치가 많아서 그렇지 낙지하고 불고기는 얼마 안 됩니다.”

“그래. 그럼 놔두지.”

다 먹고 나니 잡채 부스러기와 김치 건더기가 조금 남았다.

“선생님, 저 잠시 전화 한 통만 하고 오겠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자리에 오니 하얀 비닐에 전골 국물이 담겨 있다. 기어이 포장을 하신 거였다.

“내 아까 족발집에 가려고 했지. 거기 가서 우리 먹을 거 먹고, 절반은 포장을 해서 자네 안사람 주려고 했지. 이건 내가 가지고 감세.”

“제가 그 사이에 또 잊었네요. 선생님. 그런데 이 국물을 어떻게 드시려고….”

“내 말 좀 들어보게. 우리 못 먹고 못 살적에 땅에 떨어진 낱 알갱이도 주워 먹었지 않은가. 이 아까운 음식을 어떻게 버릴 수 있겠는가. 어려웠을 때를 잊어서는 안 되는 거야.”

“제가 잘못했어요. 선생님.”

“아닐세. 자네 탓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야. 우리는 자존심이 있고, 체면이 있어서 옷맵시를 가다듬어야 할 때가 있네. 그러나 이 음식 앞에서는 그런 체면을 차려서는 안 되는 걸세.”

“….”

이덕무가 이 시대에 살았으면 선생님과 좋은 벗이 되었을 것 같다. 이덕무는 이런 말을 남겼다.

“대장부가 거처와 음식을 어찌 늘 호화롭고 정결하게만 할 수 있겠는가?”<이덕무, 『청장관전서』, 「사소절」>

또 이렇게 말했다.

“돌아가신 어머니께서는 우리 형제자매를 기를 때에 음식을 절약해서 먹게 하셨다. 그런 때문에 우리 네 형제자매는 자라서도 남보다 지나친 욕심이 거의 없었다.”<이덕무, 『청장관전서』, 「사소절」>

눈물을 흘리면서

▲ 김재욱 칼럼니스트▷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왜곡된 기억 외 6권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작은 일에서 큰 가르침을 베풀어주신 분인데 불초한 나는 돌아가시고 한참 뒤에 별세 소식을 듣게 되었다.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 계실 때 찾아뵌 뒤에 연락이 두절되어 버렸다. 이 죄는 두고두고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내가 아귀찜을 먹던 날, 포장지를 물끄러미 보면서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었는데, 선생님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자 또 잠시 말을 못하더니 그 때 그 표정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맛있는 건 내외가 같이 먹어야 정도 쌓이고 그러는 거야.”

“어려웠을 때를 잊으면 안 되네. 음식 앞에서는 체면을 차리면 안 되는 거야.”

여전히 그러고 있지 못하면서,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해라’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딸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선생님의 가르침을 전한다. 눈물을 흘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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